혼다 HR-V, 기본기와 경쟁력의 극한 대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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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혼다에서 만든 차를 시승하면서 달릴 때만큼은 실망한 적이 드물었다. 승차감이 좋은 차도 경험했고 운전 재미가 뛰어난 차도 있었다. 혼다차는 저마다 콘셉트에 충실한 달리기를 보여줬다. 콤팩트 SUV HR-V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솔직히 기대는 크지 않았는데 의외의 모습을 보여줘서 깜짝 놀랐다. ‘잘 달리고 잘 돌고 잘 멈춘다’는 기본기에 충실할 뿐만 아니라 재미까지 있다. HR-V에 별 기대를 하지 않은 이유는 평범한 스펙 때문이다. 요즘 보기 힘들어진 1.8L 가솔린 엔진에 너도나도 쓴다는 터보 따위는 없다. 평범하고 밋밋한 성능을 보이리라 생각했지만 선입견이었다. 엔진은 활기차고 힘이 넘쳤다.
1.8L 자연흡기 가솔린 엔진은 저회전 토크가 넉넉해서 굳이 회전수를 끌어올리지 않아도 된다
최고출력 143마력과 최대토크 17.5kg·m가 나오는 지점은 각각 6,500rpm과 4,300rpm이다. 다른 직분사 엔진처럼 꽤 높은 편이다. 그런데도 저회전대 힘이 좋다. 2,000~4,000rpm에서 토크가 넉넉해 굳이 4,300rpm까지 회전수를 끌어올리지 않아도 된다(더 이상 올리면 소음이 급격하게 커져서 불편하다). 적어도 시내에서만큼은 스트레스 없이 달릴 수 있다.
파워트레인은 혼다의 전형적인 가솔린 엔진과 무단변속기(CVT)의 조합이다. CVT도 놀랍다. 엔진이 활기차게 느껴지는 이유가 CVT의 도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다. 최근 경험한 CVT 중 반응이 가장 빠르고 이질감도 적다. 사전 정보 없이 차를 탄다면 CVT라는 사실을 눈치채기 어렵다. 수동 모드를 제공하지는 않지만 스포츠 모드에 맞추면 스로틀 반응이 확실히 빨라진다. 회전수를 높게 유지하면 좀더 활기차게 가속한다.
스티어링과 서스펜션의 느낌은 독일산 해치백 같다
섀시 완성도도 높다. 여기서 HR-V가 재미있는 차라는 이야기가 나온다. 스티어링과 서스펜션의 느낌은 독일산 해치백 같다. 스티어링 휠은 피드백이 풍부하다. 스티어링 휠과 앞바퀴 사이에 이물감이 없고 누구처럼 꼼수를 쓰지 않았다는 확신이 든다. 반응이 아주 정직하다. 서스펜션은 단단한 편이다(승차감은 조금 손해를 봤다). CR-V처럼 나긋할 줄 알았는데 전혀 아니다. 작은 차체를 컨트롤하는 재미가 쏠쏠하다. 출력도 과하지 않아서 차를 마음대로 갖고 놀 수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다른 혼다와 마찬가지로 HR-V 역시 달릴 때 실망감을 안기지 않았다.
(좌) 쿠페처럼 보이기 위해 뒷도어 핸들을 감췄다. 여기저기서 많이 본 방식이다 (우) 요즘 시대에 어울리지 않는 마무리
사진으로 본 HR-V는 꽤 괜찮았다. 실물을 봤을 때도 그리 나쁘지 않다. 요즘 유행하는 쿠페 스타일 크로스오버 디자인을 잘 빚어냈다. 얼굴은 혼다의 디자인 콘셉트 ‘익사이팅 H 디자인’을 반영했다. CR-V와 느낌이 비슷하다. 테일램프는 대형 SUV 파일럿처럼 맹수의 이빨을 연상케 한다. 화려하거나 확 튀지는 않지만 전체적으로 균형미가 뛰어나다.
마음에 들지 않는 부분도 있다. 디자인 자체는 괜찮은데 소재나 마무리가 뒤떨어진다. HR-V는 3,000만원이 넘는다. 이 가격대 차에 소비자들이 바라는 수준은 높아질 대로 높아진 상태. 하지만 할로겐 램프와 검은색 플라스틱 범퍼, 1990년대 소형차에서 봤을 법한 머플러는 구식 느낌이다.
화려한 비주얼보다는 기능성에 초점을 맞췄다
실내는 시원시원하게 뻗은 선과 면을 써서 넓어 보인다. 스티어링 휠, 기어 레버, 대시보드 등을 인조가죽으로 덮은 점도 좋다. 딱딱한 플라스틱과 직물 시트는 눈감고 넘어갈 수 있는 부분이다. 가장 큰 장점은 차체 대비 실내가 굉장히 넓다는 사실이다. 앞좌석도 넉넉해서 운전을 할수록 편하다. 편의장비 유무와 상관없이 순수하게 디자인과 구성으로 이뤄낸 결과다.
차체 크기에 비해 짐 공간은 넓은 편이다
뒷좌석은 진짜 넓다. 보통 뒷좌석 아래에 놓는 연료탱크를 앞좌석 아래에 배치했기 때문이다. 혼다는 이 구성을 ‘센터 탱크 레이아웃’이라고 부른다. 덕분에 뒷좌석 바닥이 평평해 무릎공간이 넓어졌다. 연료탱크를 앞쪽으로 옮긴 효과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뒷좌석은 앞으로 또는 위로 접을 수 있다.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생각보다 편하고 쓰임새가 다양하다
뒷좌석은 시트 부분을 세워서 접을 수 있는 ‘매직시트’ 기능을 도입했다. 다른 SUV에서는 볼 수 없는 획기적인 아이디어다. 시트를 세우면 높이 126cm, 길이 81cm 정도의 공간이 생겨 트렁크를 열지 않고도 큰 짐을 넣을 수 있다. 생각지도 않은 곳에서 발견한 HR-V의 장점이다.
(왼쪽 위) 화려하지는 않지만 시인성이 좋다 (오른쪽 위) USB, HDMI, 파워 아울렛은 위치가 불편하다 (왼쪽 아래) 오토홀드가 있을 줄은 몰랐다 (오른쪽 아래) 무더위에 이보다 반가운 것은 없을 듯
HR-V는 꽤 잘 만든 콤팩트 SUV다. 요즘 유행하는 첨단기술을 품지는 않았지만 오랫동안 축적된 기술을 바탕으로 탄탄한 기본기를 갖췄다. 달리기 성능은 기대 이상이고 전체 디자인이나 실내 구성은 일상에서 쓰기에 부족함이 없다. 문제는 HR-V의 이런 특징을 경쟁 SUV들이 모두 갖췄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첨단 편의장비와 화려한 디자인까지 겸비하고 있다. 가격 경쟁력이 월등한 국산차라는 점이 더욱 불리한 요소다. HR-V의 앞길이 험난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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