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세팡 서킷에서 달려본 F4 머신, 꿈같은 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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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레이시아 세팡 인터네셔널 서킷에서 열린 미쉐린 파일럿스포츠 익스피리언스에서 포뮬러4(F4) 레이스카를 시승해봤다.
들어가기에 앞서 단언컨대, 지금까지 살아오며 가장 크고 의미 있는 경험 중 하나였다. 시승기를 작성하면서 사진들을 골라내면서 아직도 가슴이 이렇게 두근거리긴 처음이다.
로터스가 순수 달리기만을 위한 자동차라곤 하지만, F4는 도로에서는 달릴 수 없는, 철저히 서킷주행만을 위한 결정체 그 자체다. 아마 평생을 살면서 타보기 힘든 차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F4는 그런 유니크한 매력을 갖는 자동차다. 돈만 있다면 얼마든지 한 대 구입해서 서킷을 전세내고 타볼 수 있겠지만, 빈털터리 기자가 이런 경험이 과연 흔하겠는가
일본의 애니메이션 ‘사이버 포뮬러’를 보면서 자랐고, 대학생 시절 국내 최초로 개막했던 F1 코리아 그랑프리에 열광했었기에, 이 차를 운전해본다는 건 꿈같은 경험이었다.
F4는 F1으로 가는 입문용 포뮬러 레이싱카 중 가장 낮은 단계의 레이싱머신이다. 형태는 F1 머신과 비슷하지만, 더 낮은 출력을 발휘한다.
출력은 낮지만 결코 무시할 수만은 없다, F4머신의 최고출력은 160마력에 불과하다. 그러나 카본으로 설계된 차체 중량은 470kg밖에 되지 않거니와, 에어로다이내믹 및 그립력에 최적화된 차체구조를 갖고 있다.
이런 주행성능에 맞춰진 차체 구조를 가졌기 때문에, 일반 시승에서 논할 수 있는 시트의 안락함이나 거주성은 논할 수 없다. 시트는 없고, 그냥 차체 바닥에 걸터 앉는 형태다.
되려 운전자가 차에 몸을 맞춰야 하는 구조였기 때문에, 체형에 따라 몸을 지지해줄 수 있는 보형물들을 여유공간에 끼워 넣어 시트포지션(?)을 조절하는 원초적인 방법을 사용해야 했다.
타이어 역시 평범하지만은 않다. 미쉐린이 제작한 슬릭타이어는 미쉐린이 보유한 타이어 라인업 중 가장 높은 성능을 발휘하는 초고성능타이어의 라인업에 속한다.
F4 경기는 물론 F1 경기에서도 주행에 가장 중요한 요인으로 지목되는 타이어는 주행 성능에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발을 일자로 쭉 뻗은 상태로 차체에 앉게 되면 손은 자연스레 스티어링에만 집중하게 되어있고, 브레이크와 엑셀러레이터, 클러치를 움직일 수 있을 정도의 최소한의 레그룸 만이 남아있다. 차에 탔다기 보다는, 차에 갇혔다는 표현이 알맞을지도 모르겠다.
변속기 역시 독특한 방식을 사용한다. 앞서 시승한 르노 클리오 컵카의 형태와 유사한 형태의 시퀀셜 기어를 사용하는데, 출발 전, 양쪽의 패들시프트를 동시에 당긴 뒤 오른쪽 패들시프트를 한번 더 당겨주면 1단 기어가 매칭된다.
클러치를 천천히 떼고 엑셀러레이터에 조금씩 압박을 가하면 1단기어가 완전히 매칭되며 이후에는 별도의 클러치 조작 없이 패들시프트로만 변속이 가능하다.
시퀀셜 기어 특성상 변속기의 소음과 변속 충격은 상당하지만, 직결감과 변속 속도는 수동변속기의 그것보다 더 편리하고 빠르다.
차량 특성상 인스트럭터가 동승할 수 없기 때문에, 세이프티카로 선도 주행에 나선 폭스바겐 시로코의 후미를 따르며 서킷의 라인을 익히는 연습주행에 나섰다. 브레이킹 포인트는 물론, 탈출구간, 가속 포인트에 따라 차량의 움직임을 면밀히 관찰했다.
저속 주행에서 느낀 주행질감은 정말 시끄럽고, 얼굴은 내놓고 윈드실드 등 바람을 막아줄 수 없는 채로 주행하기 때문에 속도감이 엄청나다는 정도, 그리고 스티어링의 조작감과 차량의 운동성능은 기자가 생각한 것보다 훨씬 더 한계치가 깊다는 것이었다.
연습 주행이 어느 정도 마무리 되자 코스 막바지에서 선도 차량이 비상등을 점멸한다. 피트로 복귀해야 한다는 신호였다. 피트에서 기다리고 있던 담당 인스트럭터는 “아주 잘 하고 있으니 학습한 라인을 토대로 최대한 빠르게 주행해보라”고 주문했다.
다시 침착하게 클러치에 발을 떼고 서킷 메인코스로 진입했다. 세이프티카로 주행하고 있는 시로코긔 페이스가 연습주행 대비 빨라졌다는 걸 단번에 확인할 수 있는 순간이었다.
무슨 오기가 발동했는지, 차간 거리를 좁혀내겠다는 무의식에 이전보다 속도를 높였다. 물론 코스를 어느 정도 익혔다는 자신감도 충분했기 때문이란 게 기자의 생각이다.
말레이시아의 습한 맞바람을 막아주는 건 오직 헬멧 뿐, 몇km/h로 주행하고 있는지 감도 잡히지 않는 상태에서 정신없이 주행을 이어나갔다. 마치 게임을 하는 것처럼 F4는 원하는대로 움직여주고, 원하는 방향으로 원하는 만큼 나아가줬다.
속도가 한껏 붙어있는 상태에서 조금씩 엑셀에 힘을 줘 나가며 코너를 빠져나가는 순간에서도 얼굴을 잔뜩 일그러트리는 횡가속력 때문에 불편함이 가득했을 뿐 그런 횡가속력을 버텨내며 꾸준히 코스를 이탈해나가는 움직임의 짜릿함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였다.
어느덧 선도 주행에 나선 시로코와 차간거리가 제법 좁혀졌다고 생각한 순간, 세이프티카는 기다렸다는 듯 기자가 탄 F4와의 거리를 더 벌리기 시작했다. 충분히 빠르게 주행했다고 생각했는데, 페이스는 더 높아져만 갔다.
직선구간에서 점점 멀어지는 시로코를 따라잡기 위해 끝까지 엑셀을 밟은 순간, 밀려들어오는 풍절음과 엔진 소리 탓에 순간적으로 정신은 멍해졌다. 전자식 계지판이 가리키는 속도는 어느새 210km 인근을 가리켰고, 아주 잠깐 모든 것들이 슬로우모션처럼 보여 지더니 일순간 200km가 넘는 속도를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는 상황에 정신이 확 깼다.
그럼에도 F4는 이보다 더한 상황도 버텨낼 수 있다는 듯 꿋꿋하게 주행을 이어나갔다. 한계를 모르는 그립, 고속에서도 유턴이 가능할 것만 같은 코너링 실력은 지치는 모습이 없었다. 되려 운전을 하고 있는 기자의 몸으로 몰려드는 횡가속력 탓에 신체 피로도는 가중되어만 가고 있었다.
우주에서 지구로 귀환한 우주인들이 갑자기 높아진 중력 탓에 몸을 잘 가누지 못하듯, 한창동안 서킷을 즐기고 나온 뒤 F4에서 내리려니 몸에 힘이 쭉 빠져있는 상태였다. 상위 클래스의 F3나 F1은 어느 정도의 수준일지 전혀 감이 오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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