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을 초월한 명차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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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을 거슬러 1980년대. 우리는 뭔가에 홀린 듯 어떤 일이든 악착같이 해냈다. 저유가, 저금리, 저달러에 힘입어 대한민국 경제발전 속도는 아우토반을 달리는 스포츠카 같았다. 자동차산업은 후발주자로 뛰어들어 자동차 선진국에 한 수 배우던 시절이다. 그렇게 앞만 보고 열심히 달릴 때, 메르세데스-벤츠가 한국 땅을 밟았다. 각진 디자인과 압도적인 그릴, 그리고 보닛 위에는 그 이름도 유명한 세 꼭지 별이 반짝 빛나고 있었다. 우리는 그 별의 존재를 너무나 잘 알고 있었다. 쉽게 마주칠 일이 없었기에, 거리에 나타나면 시선을 사로잡았다.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자동차는 메르세데스-벤츠였다. 명차 중의 명차. 그렇게 귀한 대접을 받았던 메르세데스-벤츠 124가 눈앞에 나타났다. 신형 E-클래스와 뜻 깊은 만남을 위해 한자리에 모인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대를 이은 명차 드라이브에 흠뻑 빠져 들었다.
무려 25년을 훌쩍 넘은 역사의 등장이다. 굳이 관계로 따지자면 신형 E-클래스의 고조할아버지 정도? 우리는 둘 모두를 섣불리 평가할 수 없었다. 좋고 싫음이 명백한, 평소 따지기 좋아하는 기자들이었지만 입을 굳게 다물었다.
메르세데스-벤츠 124시리즈는 1985년 처음 선보였다. 그 동안 프리미엄 중형세단의 중요한 역할을 도맡았고, 드디어 메르세데스 최초로 ‘E-클래스’라는 이름표를 달았다. 하지만 출시 당시에는 ‘124 시리즈’라고 불렀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전통적으로 모델 코드네임(124시리즈의 코드네임은 W124다)을 그대로 사용했기 때문이다. 결국, 124는 만인이 인정하는 최초의 E-클래스이자, 프리미엄 중형세단의 핵심이 되었다. 디자인뿐만 아니라 기술적으로도 좋은 평판을 얻었다. 2.0리터 4기통 엔진부터 5.0리터 V8 엔진까지 다양한 라인업을 갖추고, 124에서 도입한 멀티링크 서스펜션은 현대식 자동차의 표준이 되었다. 무엇보다 공기저항을 고려한 에어로다이내믹 디자인이 압권이었다. 124는 0.28 Cd의 공기저항계수로 당시 어떤 경쟁모델보다 낮은 수치를 자랑했다.
그렇다. 124의 존재감은 강렬했다. 아니 정확히 말하면 (이미 30년 가까이 되었기에) 중후한 기품을 풍기는 노신사 같았다. 오래된 라디에이터 그릴은 빛이 바랬지만 그래서 더욱 멋스러웠다. 32만 킬로미터를 달렸으니 얼마나 많은 맞바람을 맞았을까? 노신사의 깊은 주름처럼 사연이 있는 빛 바램이었다. 길게 뻗은 세단의 자태와 정직한 캐릭터라인은 여전히 당당하다. 그 당시, 그러니까 옛날에는 모두 그랬다. 세단이라면 각지고 굵직한 남성적 디자인이 지배했다. 정확히 나뉜 3박스 형태만 같을 뿐, 신형 E-클래스와 124 사이에서 닮은 점을 찾기 어려웠다. E-클래스는 시대에 맞춰 체급을 키웠고, 쿠페처럼 아름다운 유선형 보디라인으로 진화했다. 하지만 보닛 위에 달린 세 꼭지 별은 변함이 없었다. 그리고 그 별은 예나 지금이나 시대를 앞서가는 존재감이다.
공교롭게도 둘은 정확히 같은 모델이었다. 124는 ‘300 E’, 신형 E-클래스는 ‘E 300’ 레터링을 트렁크에 붙였다. 전통적으로 배기량으로 구분했던 당시의 작명법에 따른 것이다. 하지만 신형 E-클래스는 터보차저로 출력을 높인 2.0리터 엔진을 품었다. 과거의 숫자는 의미가 달라졌지만, 그들이 말하는 300의 의미는 동일하다. 124의 보닛 안에는 3.0리터 직렬 6기통 엔진이 들어차 있었다. 어찌나 거대한지 엔진룸 깊숙이까지 자리를 차지했다.
시동키를 돌리면 일말의 주저 없이 힘차게 돌아간다. 오래됐어도 전자제어식 인젝션 시스템으로 구동하며 6천200rpm까지 매끄럽게 회전한다. 부드럽기는 신형 E-클래스도 마찬가지. 비록 실린더 두 개를 떼어냈지만, 정교한 설계와 마찰을 줄인 터보엔진은 경쾌하게 rpm을 올린다.
실내로 들어서자 둘의 차이가 극명하게 벌어진다. 바늘이 춤을 추며 오르는 124의 아날로그 계기반 대신 두 장의 디스플레이가 시선을 사로잡았고, 당시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스텝게이트 기어(계단식 기어레버 형태로 직선형태 기어레버보다 오작동이 적었다)는, 시프트 바이 와이어 기술로 스티어링 컬럼에 붙어있다. 옛날에는 당연했던 다이얼 버튼이, 이제는 온도만 맞추면 쾌적하게 반응하고, 오로지 운전하는 데만 필요했던 핸들은 이제 터치만으로 수많은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대략 30년은, 발전이라는 단어를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게끔 만든 시간이었다. 내연기관도 그렇지만 이보다 더 비약적인 속도로 진보한 건 인테리어였다. 한창 모터리제이션에 집중한 시기에는 오직 달리고 서는 데 집중했지만, 지금은 완숙한 주행성능이 기본이 됐고, 사람들은 더 편하면서도 쾌적한 환경을 원했다. 그리고 신형 E-클래스가 그 모든 걸 해냈다.
물론 124 역시 당대 최고의 럭셔리한 콕핏이었다. 전동으로 조절하는 시트와 엉덩이를 따뜻하게 데워준 열선기능은 그 당시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첨단장비였다. 가죽시트는 세월이 흘렀음에도 여전히 탄탄하게 허리를 받쳐준다. 그리고 부드럽기까지 하다. 물론 군데군데 세월의 흔적을 발견했지만 아직 팽팽하게 탄력을 유지하고 있었다. 리어시트의 헤드레스트는 필요에 따라 접을 수 있다. 물론 손이 아니라 센터페시아 버튼만 누르면 자동으로 접혀 들어간다. 우리는 오래된 우드트림을 만지작거리며 말했다. “이때나 지금이나 똑같네요. E-클래스는 역시 우드트림이 들어가야 제 맛이에요.” 맞는 말이다. 심지어 124는 스티어링 휠까지 우드트림으로 멋을 냈다.
이제는 버튼이 아니라 키를 돌려 시동을 걸어야 할 때. 서기 2016년, 단기 4949년에, 1991년식 124를 잠에서 깨웠다. 허약하게 생각했다면 오산이다. 직렬 6기통 SOHC 엔진은 박력 있게 일발 시동에 성공한다. 헐렁한 기어레버는 차라리 편하고 직관적이다. 바로 그 순간, 신형 E-클래스는 손가락으로 툭툭 움직여 도로를 빠져나갔다. 방식은 달라도 움직이는 건 똑같다. 6기통 엔진은 점잖게 출력을 토해낸다. 파워밴드가 넓고 회전이 부드러워 오래도록 가속페달을 몰아붙여도 끈기 있게 돌아나간다. 300 E의 출력은 180마력 남짓. 당시에 시속 200km를 넘도록 달리는 차는 많지 않았다.
열심히 달리는 와중에 신형 E-클래스가 나를 추월해 달렸다. 4기통 터보엔진은 245마력을 모두 쏟아내며 민첩하게 앞장선다. 세월 앞에 장사 없지만, 욕심도 없다. 착실하게 달리는 124가 그저 신통할 뿐이다. 트랜스미션에서 많은 차이가 벌어졌다. 124의 자동변속기는 4G-트로닉으로 끈질기게 기어를 물고 늘어지며 가속한다. 반응은 빠르지만, 오직 4단으로 모든 속도를 책임지려면 끈기가 필요했다. 반면에 신형 E-클래스는 무려 9G-트로닉으로 무장했다. 반응은 전광석화처럼 빠르고 어떤 속도에서도 능수능란하다. 진보한 기술의 차이를 인정해야 했다. 이제 속도는 꽤 올라 간선도로를 빠져 나온다. 마침 작은 나들목 램프에서 부드럽게 핸들을 감아 쥐었다. 묵직한 스티어링으로 진입하며 탄탄하게 횡G에 맞서는 코너링까지. 124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담백하게 코너를 돌아나갔다. 중간에 요철을 만나도 마찬가지다. 호들갑 없이 단숨에 노면을 쥐어 잡는 순발력, 그리고 메르세데스-벤츠 특유의 푸근한 승차감. 우리가 그렇게 인정했던 명차의 조건 중의 하나였다.
한편, 신형 E-클래스는 더 젊어졌다. 다이내믹 셀렉트를 ‘스포츠 플러스’로 고정하면 시종일관 쏜살같이 도로를 박차고 달렸다. 바쁠 때는 오직 헤드업디스플레이만 노려보면 된다. 수많은 주행 정보를 깔끔하게 요약해서 보여주니까 말이다. 덩치는 커져도 몸무게는 70킬로그램이 줄었고, 초강력강(Ultra high strength steel)의 비율은 오히려 늘었으니 강성과 경량 문제를 한번에 해결한 셈이다. 핸들링은 더 파릇파릇했다. 새로운 에어보디컨트롤(Air Body Control)은 멀티 챔버 시스템으로 시종일관 생기가 넘쳤다. 이제 새로운 시대의 메르세데스 핸들링이라고 말해도 좋았다.
25년이라는 시간을 초월한 만남. 그렇기에 디자인, 인테리어, 배기량, 타이어사이즈, 출력까지 닮은 점을 찾을 수 없다. 하지만 과거의 124나 현재의 E-클래스는 프리미엄 중형세단을 선도하는 선구자다. 이미 30년 전, 124는 공기저항까지 고려해 디자인을 결정했고, 새로운 E-클래스는 자율주행기능 완성을 눈앞까지 당겼다. 그리고, 중요한 건 기술이 아니라 철학이다. E-클래스는 언제나 최고로 탄생해 최고로 남았다. 앞으로 30년 후, 그때의 E-클래스는 날아다닐지 모를 일이다. 물론 그때도 틀림없이 선구자라는 타이틀은 세 꼭지 별에 담겨있을 테고.
메르세데스-벤츠 124 오너 박준규 대표
그는 차체 소재, 자동차부품 및 플랫폼 개발 회사의 CEO다. 신형 E-클래스를 경험한 그의 이야기를 들어보자.
6세대 E-클래스(124)를 만나게 된 계기는?
정말 우연이었죠. 그리고 시승하는 순간부터 그저 놀라울 따름이었습니다. 세월이 느껴진 차였는데도 성능은 그대로였습니다. 자동차 엔지니어인 저에게 놀라운 경험을 선사한 모델이라고 할 수 있죠.
당신의 124 300 E는 어떤 차인가요?
1991년식, 32만 킬로미터를 돌파했어요. 전반적인 완성도나 디자인은 역대 4도어 세단 중 최고입니다. 124를 타면서 상당히 많이 놀랐던 부분들이 있어요. 첫째가 코너링 안정성. 마치 철길을 달리는 기차 느낌이죠. 둘째는 소재. 알루미늄 부품들에서 부식이 발생하지 않죠. 이미 1980년대 독일에서는 소재 부분까지 관리를 했다는 의미죠. 셋째는 조립구조입니다. 자가정비를 위해 가끔 분해하는데, 조립이 엉성해 보입니다. ‘이게 어떻게 붙어있지?’ 그런데 막상 조립하고 나면 잡소리가 하나도 없어요.
신형 E-클래스 직접 만나봤나요?
이제는 전자장비에 집중하는 느낌입니다. 자율주행의 초기개념이라 할 수 있는 인텔리전트 드라이브 성능이 압권입니다. 최근 중점적으로 살펴보는 부분인데, 신형 E-클래스의 경우 상당한 수준까지 올라가있죠. 20년 후의 E 300이 또 궁금해지는군요.
신구 E-클래스의 만남, 둘 사이의 공통점이 있다면?
메르세데스는 오래 전부터 최고였습니다. 그 힘의 원천을 124에서 찾을 수 있죠. 그렇습니다. E-클래스는 언제나 유행을 선도합니다.
당신이 생각하는 메르세데스-벤츠란?
신기술을 바라보고, 판단하고, 개발해서 시장에 내어놓는 과정. 이를 완벽하게 수행하는 기업은 메르세데스밖에 없다는 생각입니다. 자신들만의 철학, 그리고 기술개발에 대한 확신이 이러한 일들을 가능하게 하죠.
전설이란 바로 이런 것
프리미엄 중형세단의 모범답안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70년의 역사를 돌아보자.
제1세대
W136 / W191 시리즈(1946년~1955년)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이후 메르세데스-벤츠가 생산한 최초의 승용차. 170V는 메르세데스-벤츠 승용 라인의 전신이 되었다. W136 및 W191시리즈에 사용된 섀시는 앰블런스, 픽업트럭, 소형 왜건 모델들에도 썼다.
제2세대
W120 / W121 시리즈(1953년~1962년)
메르세데스-벤츠 180 모델은 엔진룸, 실내, 트렁크가 독립된 현대적 3박스 디자인이다. 1954년 1월에는 디젤 180D가 나왔고, 1956년 W121 시리즈의 세 번째 모델 190이 등장했다. 1958년에는 또 다른 디젤 190D를 출시했다.
제3세대
W110 시리즈(1961년~1968년)
W110 시리즈 중 ‘테일핀’ 모델을 출시했다. 첫 번째 테일핀 모델은 190 및 190D 세단. 1965년 업그레이드한 200 및 200D 모델을 출시했다. W110시리즈는 당시 럭셔리 세단(W111)의 차체를 사용했는데 190 및 190D는 앞유리와 트렁크까지 S-클래스와 같은 차체를 썼다.
제4세대
W115 / W114 시리즈(1968년~1976년)
W115와 W114 시리즈는 메르세데스-벤츠의 중대형세단 중 최초의 독자적 세대에 해당한다. 4기통 200, 220, 200D, 220D와 6기통 230, 250 등을 처음으로 선보였다. 1972년에는 최상위 버전 280과 280E가 등장했고, 1974년 5기통 디젤엔진 240D가 나왔다.
제5세대
W123 시리즈(1976년~1985년)
W123 시리즈는 메르세데스-벤츠 세단의 새로운 시대를 열었다. 스타일리시한 쿠페(C123), 우아한 왜건(S123) 등 다양한 형태의 보디를 추가해 독자적인 모델 패밀리를 구축했다. 특히, 1980년 출시한 스테이션 왜건은 디젤엔진에 터보차저를 얹은 독일 최초의 승용차로 기록됐다.
제6세대
W124 시리즈(1985년~1996년)
W124 시리즈는 ‘E-클래스’라는 이름을 가진 첫 번째 모델이다. 하지만 당시에는 E-클래스라는 이름이 아닌 124 시리즈라는 코드명을 사용했다. 400 E, 500 E, E 63 AMG에 V8 엔진을 받아들였다.
제7세대
W210 시리즈(1995년~2003년)
W210 E-클래스 디자인은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네 개의 눈’이라 불리는 트윈 헤드램프가 그것. ‘레드 닷 디자인 어워드’ 수상의 영예를 안은 W210 시리즈의 획기적인 디자인은 자동차공학 및 편의장비와 조화를 이루었다. 클래식, 엘레강스, 아방가르드 라인업을 최초로 선보였다.
제8세대
W211 시리즈(2002년~2009년)
W211 시리즈는 안정성과 효율성에 중점을 둔 혁신적인 기술이 소개되었다. 2단계 안전벨트 장력 제한장치, 액티브 바이제논 헤드램프와 전기유압식 브레이크시스템, 자동 에어컨디셔너 등이 기본으로 적용되었다.
제9세대
W212 시리즈(2009년~2016년)
전통과 모던함, 세련되고 다이내믹한 디자인, 첨단기술, 향상된 연료효율성이 9세대 E-클래스를 대변한다. 독보적 안전기술인 프리-세이프를 비롯해 첨단주행 보조시스템 디스트로닉 플러스 등 편의성과 안정성이 하나로 결합된 새로운 차원의 인텔리전트 드라이브를 실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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