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쉐보레 볼트, 이도 저도 아니거나 절묘하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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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 국내에 소개된 2세대 쉐보레 볼트는 주행거리 연장 전기차(E-REV, extended-range electric vehicle)로 유명했던 1세대 볼트의 기본 틀을 이어받되 성능과 효율을 한층 높인 플러그인 하이브리드카(PHEV)이다.

볼트는 전기차이면서 전기차가 아니고 하이브리드인데 하이브리드가 아니다.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전기차나 하이브리드카와는 작동방식이 조금 다르다. 이 차는 일단 전기모터로만 차바퀴를 굴린다. 그리고 외부 전원에 연결해 주행용 배터리를 충전한다. 여기까지만 보면 전기차가 맞다.

그런데, 배터리가 바닥나면 휘발유 엔진으로 자체 발전을 한다. 우리나라에서 순수 전기차로 판매되는 BMW i3도 해외 시장에선 레인지 익스텐더 옵션이 있다. 그걸 선택하면 자그마한 647cc짜리 2기통 엔진(스쿠터용)이 발전기 용도로 추가된다. 볼트는 급이 다르다. 소형차 엔진으로 손색없는 1,490cc짜리 4기통 엔진을 기본으로 싣고 다닌다. 출력과 토크가 무려… 아, 그건 중요하지 않다. 구동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2개의 전기모터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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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닛을 열면 큼지막한 엔진이 자리하고 있는 모습이 여느 승용차와 다르지 않다. 살짝살짝 보이는 오렌지색 케이블들을 통해 하이브리드카임을 짐작할 뿐이다. 이렇게 번듯한 엔진을 거의 끄고 다닌다는 사실이 아무리 생각해도 미심쩍다. 운전을 해보면 배터리에 전력이 남아 있는 한 정말 순수한 전기차처럼 움직인다. 시승차를 처음 받았을 때 계기판에 나타난 EV 주행가능거리는 63km였고, 실제로도 배터리만으로 그만큼을 주행할 수 있었다. 오르막을 오르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 세자리 숫자의 속도로 달리든 엔진은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떤 주행상황에서도 전기모터는 힘이 넘쳤다. 반응이 즉각적일 뿐 아니라 차를 기운차게 밀어붙여 전혀 아쉽지 않다. 일반 준중형차와 비교하면 엔진은 엔진대로 있고 작지 않은 용량의 배터리를 추가로 실은 셈이지만 늘어난 무게가 의식되지 않는다.

8인치 화면인 계기판은 테마를 바꿀 수 있다. 별차이는 없지만

이쯤 되니 배터리에 전기가 남아 있을 때 엔진을 깨워서 충전을 시작할지, 아니면 바닥난 뒤에 충전할지 궁금해졌다. 답은 후자였다. 계기상 주행가능거리가 0이고, 배터리 그래픽이 0이라도 실제 배터리 잔량이 0은 아닐테지만.

일단 엔진이 깨어나면 엔진 주행 모드가 된다. 이것은 엔진으로만 바퀴를 굴리는게 아니라 배터리를 충전하고 모터도 돌린다는 뜻이다. 이걸 알고 운전해도 헷갈리긴 한다. 모터에게 일을 맡기고 다시 꺼지거나 조용해졌던 엔진이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덩달아 소리를 높인다. 바퀴를 직접 돌리는 것 같으면서도 가속과 엔진소리가 조금씩 따로 노는 것은 여느 하이브리드카와 비슷하다.

EV 모드로부터 바통을 건네받고 나서도 엔진은 꺼졌다 켜졌다를 반복하지만 0으로 떨어진 배터리 잔량이 높아지진 않는다. 엔진이 마지막 순간에 깨어나는 것도 일리가 있다. 언제든 외부 전원을 찾아 충전할 수 있으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아니면 굳이 연료를 쓸 필요가 없다. 대신 배터리에 전기를 남겨놓고 싶을 때는 주행 모드를 ‘대기(HOLD)’로 바꾸면 된다.

드라이브 모드는 스포츠·산악·대기·정상 4가지다

엔진을 재운 상태에서 전기로만 달릴 때의 쾌적함을 생각하면 엔진 주행 모드는 상대적으로 거슬린다. 주행 템포와 엇박자를 타는 엔진 소음뿐 아니라 진동도 유난스럽다. 이게 싫어서라도 부지런히 충전을 할 것 같다.

구동 배터리는 센터터널과 뒷좌석 아래에 T자로 배치돼 실내공간을 일부 잠식하지만 앞으로 쏠린 엔진 무게를 상쇄하고 아래쪽에서 무게중심을 잡아주어 뒤에서 잡아 끄는 느낌이 없다. 오히려 차가 조금 들뜨는 느낌마저 준다.

0→100km/h 가속은 8초 정도. 충분히 빠르다

스티어링 휠은 가벼우면서 뻣뻣하고 일관성이 떨어지지만 운전 재미를 크게 해칠 정도는 아니다. ‘친환경차’치곤 자잘한 요철이나 과속방지턱을 무마하는 솜씨도 수준급이다. 다만, 215/50R 17 규격의 미쉐린 에너지 세이버는 급하게 출발하거나 코너를 조금만 빨리 돌아도 죽는 소리를 낸다.

제동감은 크게 어색하지 않지만 시내주행이 길어질수록 이질감이 느껴진다. 그나마 가속페달에서 발을 뗄 때의 회생제동이 약하게 설정되어 있고, 스티어링 휠의 패들(왼쪽에만 있다)로 이를 조절할 수 있어서 좀 나은 편이다. 패들을 당길 때만 강한 회생제동이 작동한다. 발로 가속하고 손으로 감속하는 게 재미있다. 하지만 온오프 스위치 방식이어서 부드럽게 운전하기 어렵고 브레이크 페달을 완벽하게 대체하진 못한다.

테일램프 측면 쉐보레 로고에 조명이 켜진다. 시빅 아니라니깐!

실내외는 전기차라고 유세 떠는 스타일이 아니다. 그러면서도 세련됐고 미래지향적이며 멋스럽다. 외관도 그렇지만 실내도 - 기어 레버의 파란색 장식을 제외하면 - 신형 크루즈라고 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자연스럽다. 여느 준중형차에 뒤질 것이 없다.

뒷좌석은 좌우를 가르는 높은 터널과 낮아지는 루프라인 때문에 답답한 느낌이 들지만 아이오닉보다는 천장이 높다(실은 승객의 머리가 천장이 아니라 뒷유리 아래에 놓인다). 시트 전동 조절 기능은 없지만 에어백이 10개나 달렸고 차로유지 보조,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자동주차 보조, 스마트 하이빔, 저속 자동 긴급제동, 후측방 경고 등 안전 및 편의장비는 지나칠 정도로 많다. 그래도 가격 대비 가치가 높은 차라고 말할 수는 없다. 한국지엠이 올해 국내 배정 물량을 카셰어링 업체에만 공급하기로 했고, 가격이나 보조금에 대해 밝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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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침 지인이 전기차를 사려다가 아파트 입주자 모임에서 충전기 설치를 동의해주지 않아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얘기를 들었다. 볼트는 이런 상황에서도 눈 딱 감고 구입해서 타고 다닐 수 있는 전기차다. 주행가능거리에 구애받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차에 급속충전 기능도 없다. 빨라야 4.5시간(완전충전 기준)이 걸린다.

그럼 충전 없이 다닐 때의 연비는 어떨까? 860km를 달린 시승차의 연비는 18.5km/L였다. 그중 엔진을 켜고 달린 620km구간은 13.3km/L로 나타났다. 북미 인증 기준 가솔린 복합 연비는 17.8km/L이다. 틈틈이 충전을 할 수 있다면 연비는 어마어마하게 높아질테고 엔진에는 거미줄이 쳐질 것이다. 북미 인증 기준으로는 한번 충전으로 89km를 가고, 연료탱크를 가득 채우면 총 676km를 달릴 수 있다.

배터리를 충전해놓으면 엔진의 간섭 없이 전기차 특유의 매력을 십분 즐길 수 있다. 그러면서도 주행거리나 충전에 대한 스트레스가 없으니 굉장히 현실적인 전기차다.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현실성이 좀 떨어지지만….

민병권 기자
사진
이영석
제공
탑기어
연간 3,700여 종의 학습교재와 교과서를 발간하는 교육출판 전문기업 천재교육의 계열사 ㈜프린피아에서 '탑기어' 한국판을 2015년 10월호부터 발행하고 있습니다. 1993년 10월 창간한 '탑기어'는 영국을 비롯한 미국, 중국 등 전세계 50개국 1,500만 독자들에게 15개 언어로 매달 발행되어 신차 구매에 가장 많은 영향을 끼치는 매체로 인정받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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