쉐보레 말리부, The Great Success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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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말리부 등장으로 국내 중형세단시장 판도가 변하고 있다. 그렇다. 현대 쏘나타는 이제 그만 들어갈 때도 됐다. 말리부의 완벽한 진화에 아낌없이 박수를 보낸다.
중형세단이라는 선택지 앞에서 우리는 한참을 고민에 빠졌다. 우선, 눈앞 디자인이 중요하다. 세단을 타면서 스타일을 구길 수는 없는 일. 자비로운 실내공간은 필수가 되고,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워야 한다. 무엇보다 성능은 도저히 양보할 수 없는 분야. 말이 그렇지, 결코 쉬운 조건이 아니다. 맞다. 중형세단은 원래 그런 자리다. 지극히 평범하지만 어디 하나 빠지는 구석이 없어야 한다. 우리의 까다로운 안목은 오히려 동기부여가 됐다. 쉐보레 말이다. 쉐보레는 완전히 새로워진 신형 말리부를 선보이며 국내 중형세단시장을 세차게 흔들어 놓았다. 출시 당시부터 폭발적인 반응이었다. 잘생긴 디자인, 좋은 상품성, 합리적인 가격, 연이은 호평으로 주자는 만루 상황. 이제 4번타자의 홈런포만 기다리면 되는 분위기다. 그렇게 기대심리가 요동칠 때 말리부를 처음 만났다.
[듀얼 포트 그릴은 마치 마우스피스를 물은 모습]
말리부의 새로운 변화를 기대하며 무조건적으로 박수부터 보냈다. 틀에 박힌 국산 세단시장에 조금이라도 변화를 보고 싶어서다. 기대 반, 걱정 반이었던 우리의 시선은 실물을 보고서야 안심할 수 있었다. 말리부의 디자인은 성공적이다. 세단답게 진중한 표정도 좋았고, 넓은 어깨와 쭉 뻗은 실루엣이 황금비율을 만나 안정적이다. 차체는 더 길어졌다. 4천925밀리미터까지 늘어난 차체는 심지어 그랜저보다 더 길다. 애매한 사이즈를 타파하는 말리부의 후한 신체 조건이다. 또렷한 이목구비는 금방 눈에 익는다. 날렵하게 뻗은 HID 프로젝션 헤드램프와 강렬하게 자리 잡은 듀얼 포트 그릴은 신흥 쉐보레의 마스크였다. 한편, 낮고 우람한 스탠스는 입체적인 캐릭터라인을 만나 우아한 몸매로 승화되었다. 특히 스포츠쿠페처럼 유연하게 떨어지는 C필러 라인은 누구나 공감하는 디자인. 아마 ‘좋아요!’ 버튼이 있었다면 꽤 쏟아졌을 것이다. 외모 감상은 조금 뒤로 미루고 서둘러 차에 올랐다. 잘난 외모가 더욱 호기심을 자극한다.
역사로 따지면 9세대에 이른 말리부는 완벽한 풀모델체인지다. GM의 중형 플랫폼 엡실론2를 E2XX로 교체하고, 구형 엔진을 모두 터보 가솔린엔진으로 대체해 그야말로 환골탈태나 다름없다. 새로운 E2XX 플랫폼의 핵심은 역시 경량화다. 그리고 휠베이스의 연장, 인테리어 품질 향상이 부제로 떠오른다.
[아듀 자연흡기! 터보는 사랑입니다]
엔진은 2.0리터 자연흡기 방식과 영원한 이별을 선언했다. 대신 1.5리터 터보, 2.0리터 터보로 현명한 다운사이징을 실현했다. 고성능을 표방하는 2.0 터보엔진의 최고출력은 253마력이다. 캐딜락 CTS에도 올라간 이력으로 국내 중형세단 중 가장 뛰어난 성적이다. 하지만 대중적인 선택은 1.5리터 터보엔진으로 쏠릴 것이다. 마침 우리의 시승차는 1.5 터보 사양의 LTZ 트림. 하지만 보수적인 사람들은 다운사이징을 의심하기 마련이다. 표면적인 배기량은 줄었고, 복잡한 부품이 늘었으니, 출력을 의심하며 까다로운 유지보수를 걱정한다. 하지만 쓸데없는 걱정은 접어두어도 좋다. 터보는 배기량보다 연료량과 공기량에서 출력이 결정되며, 컨디션을 관장하는 냉각능력과 똑똑한 ECU가 안정성을 책임진다.
말리부의 1.5 터보엔진은 경쾌하면서 때로는 부드럽게 파워를 쏟아냈다. 2천rpm부터 터지는 25.5kg·m의 윤택한 토크와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166마력의 최고출력은 모자람이 없다. 트랜스미션은 보령공장에서 생산하는 3세대 자동 6단 기어. 한국 지형에 최적화된 기어비와 부드러운 변속감각이 특징이다. 둘의 조합은 성숙한 세단처럼 한결같이 부드럽고 매끈하다. 엔진은 정제된 출력을 아낌없이 제공하고, 트랜스미션은 물 흐르듯이 기어를 바꿔 물며 동력을 전달한다. 복잡한 도심에서는 스타트/스톱 기능이 소리 없이 존재감을 알렸다. 잠깐을 느껴도 충분했다. 말리부의 다운사이징은 역시나 모범적이다. 파워부터 소음과 진동까지,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효율성까지 완벽하게 균형을 맞췄다.
시가지를 빠져 나오자 평균속도는 더 높아졌다. 셀렉트 레버를 ‘L’기어로 변경하고 와인딩로드를 타고 넘는다. 말리부의 서스펜션 구조는 앞 맥퍼슨 스트럿, 뒤 멀티링크. 풍요로운 서스펜션이 바빠지는 시점이다. 새로운 플랫폼은 무려 130킬로그램 다이어트에 성공했다. 덩치는 커졌지만 군살 없이 가벼워진 차체는 윤택한 핸들링 성능에 일조한다. 거친 굽이를 정확하게 조정하는 비결은 보쉬의 랙타입 EPS다. 시종일관 여유로웠던 댐퍼는 유연하게 횡g에 맞섰다. 좌·우 롤을 허용하지만 진득한 인내심이 빛을 발했고, 언더스티어에 시달릴지언정 결코 위험한 상황에 빠지지 않는다. 브레이크는 깊이에 따라 끝까지 성능을 끌어낼 수 있다. 학대만 하지 않으면 절대 배반하지 않는 탄탄한 주행성능이다. 속도를 한층 높이면서 타이어 스키드 소리에 자세제어장치가 유난을 떨었다. 과도한 주문이 이어지자 운전자에게 안전을 권한다. 그렇게 기본기가 좋은 말리부는 겸손함까지 갖추고 있었다.
고속도로에 진입해 제법 빠른 속도까지 숨을 끌어올린다. 이때부터 프리미엄 세이프티 안전장비가 전방위 경호에 나선다. 차선을 넘어서면 경고음과 함께 운전대를 되돌렸고, 지능형 어댑티브 크루즈컨트롤은 앞차와의 거리를 계산해 대열을 맞춘다.
한편, 실내는 고요한 라운지 분위기를 풍기며 정숙함을 고집한다. 쉐보레 특유의 듀얼 콕핏 인테리어는 스티어링 휠, 계기반은 물론 각종 버튼까지도 완전히 새 디자인을 입었다. 정직한 좌우대칭형 구조와 레이어 트리밍이 말리부 인테리어의 주제다. 여기에 센터스택 분리형으로 설계한 센터페시아는 디스플레이 존과 수납공간을 동시에 꿰차고 있다. 디자인 키워드는 ‘다운 앤 어웨이’(Down & Away). 키워드처럼 낮은 대시보드 라인을 고집해 운전자 시야의 개방감이 압권이다.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8인치 고해상도 터치스크린을 달았다. 쉐보레의 마이링크 인포테인먼트는 내비게이션을 비롯해 애플 카플레이와 시리 음성명령 기능까지 탑재했다. 더불어 스마트폰 무선충전시스템과 네 개의 USB 포트를 마련해 최신 IT 트렌드와 구색을 갖춘다.
[기본에 충실한 주행감각. 이제 차를 믿고 탈 수 있다]
말리부의 꼼꼼한 패키지는 좀처럼 트집 잡기 힘들다. 이제 남들과 다른 선택을 하면서 무엇 하나 양보할 필요가 없어진 셈. 사활이 걸린 쉐보레의 강한 의지를 반영한다. 말리부의 출발 가격은 2천310만 원. 공격적인 가격에서도 쉐보레의 야심이 드러났다. 더는 삼인자의 슬럼프를 기억할 필요 없다. 마침 국산 세단이 모두가 풀모델체인지를 마치고서 정면대결을 펼칠 양상. 타이밍도 참 좋다. 말리부의 장점은 충분하다. 고성능이 아니라 모범적인 다운사이징, 철저하게 감량에 성공한 새로운 아키텍처, 안전사양을 비롯한 다양한 편의장비까지 모두가 대중이 열광하는 조건을 줄줄이 갖췄다. 출시 4일 만에 6천 대 계약 소식. 그렇게 역전 드라마는 시작된다.
Malibu Bloodline
1세대(1964~1967)
쉐보레 셰빌 라인업의 최고급 모델. 컨버터블부터 왜건까지 다양한 보디 타입으로 존재했다.
2세대(1968~1972)
패스트백 쿠페 스타일로 재탄생. 5.0리터 V8 엔진으로 뒷바퀴를 굴리며 200마력을 냈다.
3세대(1973~1977)
쉐보레 셰빌의 중간 엔트리 라인업으로 재편성. 네 개의 사각 헤드램프와 클래식한 쿠페 스타일로 진화했다.
4세대(1978~1983)
쉐보레 셰빌 대신 말리부 이름을 본격적으로 사용. 더욱 작고 가벼운 차체에 효율적인 엔진을 달았다.
5세대(1997~2005)
뒷바퀴굴림을 버리고 앞바퀴굴림으로 체질 개선에 성공. 긴 공백 기간을 깨고 15년 만에 부활한다.
6세대(2004~2008)
엡실론 플랫폼을 적용해 4도어 세단과 5도어 해치백으로 진화했다. 말리부 SS는 240마력을 자랑한다.
7세대(2008~2012)
휠베이스가 늘어난 엡실론 플랫폼과 2.4, 3.5 V6엔진을 올려 일본 세단과 정면승부를 펼친다.
8세대(2013~2015)
국내에 처음으로 말리부가 등장했다. 여섯 개 대륙에서 판매되며 쉐보레의 글로벌 중형차로 등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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