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주의자를 위한 포르쉐 911 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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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이 지금 보고 있는 것은 가장 훌륭한 스포츠카의 가장 훌륭한 버전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상상해왔던 일반도로용 차 중 가장 뛰어난 차라고 말할 수 있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일반도로용'이라는 수식어다.
GT3 RS를 개발할 때, 포르쉐 모터스포츠는 탁월한 트랙데이용 차를 목표로 삼았다. 엄청난 횡가속도를 받아 볼살이 파르르 떨릴 수 있을 정도로 설계했고, 최적의 랩 타임을 뽑아낼 뿐 아니라 운전자로 하여금 진지하게 도전하게 만들도록 조율되었다. 그저 가볍게 상대할 차는 아니다. 911 R은 그런 차의 분신이다. 그렇긴 해도, 두 차가 지킬과 하이드처럼 양면성을 지녔다고 하는 것은 너무 단순화한 표현이다. 그보다는 서로 다르게 치장하고 다른 목표에 초점을 맞춘 일란성 쌍둥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RS는 서킷이, R은 일반도로가 주 무대다.
두 차 사이에는 중요한 차이점들이 있고, 모든 차이점들은 속도 대신 재미를 추구하도록 설계되었다. 가장 큰 차이점은 변속 패들이 있는 7단 듀얼클러치를 6단 수동으로 바꾼 변속기다. 왜 7단 수동변속기를 쓰지 않았을까? 처음은 아니지만, 모터스포츠 부문은 독자적인 길을 가고 있다. 바이자흐의 연구진은 7단 기어가 손으로 직접 변속하기에는 불필요하게 복잡한데다가 7번째 기어를 빼면 1kg 남짓 무게가 가벼워진다고 본다. 그 대신 1단부터 4단까지는 원래 기어비를 유지하되 간격을 넓힌 5단과 6단 기어를 쓴다. 걸작인 수평대향 6기통 4.0L 500마력 엔진은 그대로지만, 변속기의 마찰손실이 줄어든 덕분에 뒷바퀴로 전달되는 힘은 조금 더 커졌다.
차체는 기본형 911의 것을 바탕으로 하고 있고, 탄소섬유로 만든 앞 스포일러와 플라스틱을 사용한 뒷창은 이어받았다. 하지만 RS는 물론 기본형 GT3에도 쓰이는 화려한 공기역학 구조는 빠져 있다. 그 대신 일반 카레라 모델의 리어 스포일러가 쓰이는데, 911 R로는 훨씬 더 높은 속도를 낼 수 있으므로 그에 걸맞게 다운포스가 약간 더 높아지도록 길이를 조금 늘였다. 공기저항이 낮은 만큼, 판매되고 있는 911 중 유일하게 시속 360km 이상을 낼 수 있다. 한편, 차체 아래쪽은 대부분 평평하게 만들어졌고 뒤 디퓨저와 티타늄으로 만든 배기계통이 설치되었다. 전체적으로 무게는 GT3 RS보다 50kg 가벼워져, 전비중량은 1,370kg에 불과하다.
섀시를 살펴보면, GT3 RS의 설정은 완전히 무시했다. RS와 다운포스가 달라지면서 차체를 지지하기 위해 극도로 단단한 서스펜션을 쓸 필요가 없고, 그래서 GT3에서 가져온 스프링과 함께 맞춤 조율된 댐퍼를 썼다. 뒷바퀴 스티어링 특성을 다시 프로그래밍하면서 새로운 스티어링 소프트웨어 맵도 바꾸었다. 타이어 크기도 GT3 RS의 것보다 두 단계씩 줄어, 너비가 앞은 245mm, 뒤는 305mm가 되었다. 그러나 포르쉐 고유의 카본세라믹 브레이크는 기본으로 달린다. 이 브레이크는 일반적으로는 추가 비용을 지불하는 선택사항이고, GT3 RS에서도 마찬가지다.
911 R은 일반적인 주행조건에서는 운전이 무척 재미있다. 즐거움은 모든 영역에서 똑같이 중요하다. 우선, 운전을 즐기기 위해 폭발하는 화산에서 탈출하듯이 차를 몰 필요가 없다. 수동변속기는 모든 시대를 통틀어 포르쉐가 만든 가장 뛰어난 것 중 하나다. 지금도 카이맨과 박스터에 쓰이는 놀라운 변속기만큼이나 좋다. 그리고 그 덕분에 차와 동떨어진 느낌은 거의 들지 않고 운전자가 차의 움직임을 제대로 통제하고 있다는 느낌을 들게 만든다. 스티어링은 GT3 RS의 것보다 훨씬 더 가볍게 움직이고, 평범하게 달릴 때에는 훨씬 더 좋다.
무엇보다 911 R 같은 차를 갖고 있다면, 차를 제대로 활용할 수 있는 장소를 알고 있고 그런 곳에서 차를 몰아보길 바란다. 그래야 이 차가 GT3 RS로도 할 수 없는 능력을 발휘할 수 있음을 알게 될 것이다. 일단 구동력을 되찾으면 911 R은 GT3 RS보다 더 빨리 가속하고, 8800rpm인 엔진 회전한계가 가까워지면 터무니없이 과장된 배기음도 GT3 RS보다 더 훌륭해진다.
물론, 정말 달리 느껴지는 점은 주행감각이다. GT3 RS가 코너와 코너 사이를 화살처럼 공격적으로 치고 나간다면, R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달린다. 미쉐린 파일럿 컵 2 타이어의 접지력은 엄청나다. 사람이 기계를 다루고 있다는 좀 더 전통적인 감각이 모든 움직임에 묻어나고 반응으로 이어진다. 이것은 차의 움직임과 운전자가 하나가 되는 듯한 만족감을 자아낸다. 접지력 한계에 가까이 가지 않더라도, 911 R은 탄탄하게 노면을 끌어안고 달리며 정교한 주행 라인으로 RS보다 훨씬 더 큰 재미를 느끼게 한다.
911 R을 몰고 최대한 한계에 가깝게 또는 최소한 일반도로에서 상식 선에서 가장 비슷한 정도까지 몰아붙이면 그동안 911에서 느꼈던 감각이 어땠는지 떠오를 것이다. 뒷바퀴 조향 기능이 있음에도 991 시리즈의 섀시가 지나치게 긴 탓에 과거 911의 주행특성을 그대로 되살리기는 불가능하겠지만, 기본으로 돌아간 마니아적 정신과 모험 감각을 느낄 수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상상할 수 없었던 탁월한 역동성이 되살아난 것이다. 그래서 모든 911 중 가장 가볍고 가장 운전자 중심으로 만들어졌던 1967년의 오리지널 911 R을 떠오르게 하는 911 R이라는 이름을 이 차에 붙이지 않았나 생각한다.
911 R을 아무리 간절히 갖고 싶어 한다고 해도, 손에 넣으려면 행운이 뒤따라야 한다. 이미 생산되고 있는 991 버전의 모든 모델은 우선권이 주어진 소비자들(대부분 이미 918 스파이더를 소유한 사람들이다)에게 제공되었고 순식간에 계약이 모두 끝났다. 그 이후에 극소수만이 이해할 수 없는 가격표를 달고 시장에 나왔다. 그 중 한 대에는 74만5000유로(약 11억3836만원)라는 값이 붙었고, 포르쉐는 또 다른 소유자가 100만 유로(약 15억2800만원)를 부르는 것으로 파악했다. 이제 그런 미친 가격 이야기는 잊어버리고 쿨하게 객관적 시각에서 911 R을 평가해 보자.
포르쉐가 무척 차를 영리하게 만든다는 사실은 분명하다. 911 R은 주로 이미 존재하는 부품들을 가지고 만들어낸 차이기 때문이다. 차체는 카레라에서, 엔진은 RS에서, 서스펜션은 GT3에서 가져왔고 다른 부분들도 마찬가지다. 현재로서는 이 모델에만 쓰이기는 해도, 변속기조차 내년에 나올 991 시리즈 GT3 2세대 모델에는 기본장비로 적용될 예정이니 포르쉐가 앞으로 만들려고 하지 않았던 요소는 아니다.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시스템도 맞춤 튜닝을 거치긴 했어도 하드웨어 자체는 이미 존재하는 부품을 새롭게 조합한 것이나 마찬가지다.
이런 점들이 문제가 될까? 전혀 그렇지 않다. 도자기의 가치는 흙 자체가 아니라 도예가의 손길에서 비롯되고, 이 차에서 표현된 손길은 더 이상 좋을 수 없을 정도다. 911 R은 GT3 RS보다 더 나은 차가 아니라 다른 차이다. 이처럼 풍부한 운전 감각을 줄 능력을 지닌 것은 GT3 RS와 맥라렌 570S 뿐이다. 두 차는 모두 별 5개 평점을 받았듯, 911 R도 평점은 같다. 다른 어느 차에도 그보다 더 높은 점수를 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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