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츠가 정의하는 고성능 소형 로드스터, 메르세데스 AMG SLC43
컨텐츠 정보
- 1,106 조회
- 목록
본문
SLK55가 SLC43으로 거듭났다. 엔진을 V8 자연흡기에서 V6 바이터보로 바꿨지만 오히려 더 경쾌해졌다. 고속도로와 오르막 코너에서만 짜릿했던 이전과는 달리, 이젠 언제 어디서든 즐겁다.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고성능 전략이 달라졌다. 이제 출력에 따라 모델을 세분화하고 있다. 메르세데스 벤츠(AMG)의 43, 63, 63 S와 BMW의 M퍼포먼스, M이 대표적이다. 아우디와 재규어 역시 고성능 모델을 두 가지로 나누고 있지만 이유는 정반대다. 벤츠와 BMW는 폭발적으로 증가하는 판매에 대응하는 전략인 반면 아우디와 재규어는 고성능 모델의 수요가 적기 때문에 세운 전략이다.
메르세데스-AMG의 2015년 글로벌 판매는 6만8,875대로 전년 대비 44.6% 성장했다. BMW M도 같은 해 6만2,400대로 39% 성장을 기록했다. 즉, 이들에게 고성능 세분화 전략은 선택이 아닌 필수인 셈이다. 참고로 메르세데스 AMG의 지난 5년(2010~2015년)간 국내 연평균성장률(CAGR)은 42.5%다. 2011년 287대에서 2015년 1,688대로 수직 상승했다. 특히 2015년에는 전년 대비 117.5%나 늘었다. 같은 기간 글로벌 판매 증가율을 2.5배 웃도는 수치다.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가 최근 AMG 모델의 출시시기를 앞당기고 AMG 65를 투입하기 시작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43의 시작
SLC43은 최초의 AMG 43이자 SLK55 AMG의 뒤를 잇는 모델이다. 부분변경을 거치며 이름을 바꾸고 엔진을 V6로 줄였다. V8과의 이별에 실망할 수는 있겠지만, 마음 아파할 필요는 없다. AMG 43이 ‘스포츠 모델’이라 한들, 성격이나 성능에는 별 차이 없으니까. 따지고 보면 SLK55도 아주 본격적인 고성능 모델은 아니었다. ‘63’ 사이에서 홀로 ‘55’ 배지를 달고 V8 5.5L 바이터보 M157의 변종 자연흡기 저출력 버전인 M152 엔진을 얹었다는 사실만 봐도 그렇다. 컨셉트 역시 이전 그대로다. 벤츠 오픈톱 모델 기준에서는 여전히 작고, 가볍고, 스포티하다.
이름을 바꾼 만큼 인상은 크게 달라졌다. 앞뒤 램프와 범퍼, 라디에이터 그릴 등을 다듬어 이전보다 한결 매끄럽고 자연스러운 분위기다. 사실 변경 전에는 2세대 SLK에서 가져온 유선형 루프와 남성미를 강조한 보디가 그다지 조화롭지 못했다. 또한 이번 변화로 최근 데뷔한 나머지 형제들과도 이질감이 없어졌다. 스포츠 모델을 상징하는 다이아몬드 그릴도 썩 잘 어울린다. 헤드램프 역시 어댑티브 기능이 포함된 풀 LED 방식(LED 인텔리전트 라이트 시스템)으로 바뀌었다.
그러나 실내는 이전과 비슷하다. ‘D컷’ 스티어링 휠, 전자식 변속레버, 신형 계기판과 커맨드 등이 눈에 띄는 전부다. 견고한 디자인의 대시보드와 제트 엔진 모양의 송풍구는 여전히 매력적이지만, 자잘한 버튼의 오디오 유닛을 바꿨다면 더 좋을 뻔했다.
물론 세세한 변화들은 적지 않다. 트렁크의 파티션을 스스로 내려 루프 적재공간을 확보하는 세미 오토매틱 부트 세퍼레이터의 도입과 루프 작동 중 시속 40km까지 달릴 수 있게 개선한 점이 가장 반갑다. 먼발치에서 리모트 키로 루프를 열거나 닫을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는 특징이다. 목 뒤에 따뜻한 바람을 불어주는 에어스카프, 글라스 루프의 명암을 조절할 수 있는 매직 스카이 컨트롤 등 기존 SLK의 매력들은 그대로다.
언제 어디서나 느낄 수 있는 즐거움
엔진은 최고 367마력, 53.1kg·m의 힘을 내는 V6 3.0L 바이터보다. S400, CLS400 등에 쓰이는 M276의 고출력 버전이다. ‘최초의 43’이라는 표현을 쓰긴 했지만, 사실 이 엔진은 최근 AMG C43으로 개명한 C450 AMG에 사용되고 있었다. C450 AMG와 마찬가지로, 엔진 커버에는 벤츠 엠블럼만 있다. 검수는 AMG가 하지만 조립은 벤츠가 하고 있기 때문이다.
실린더 두 개와 배기량 2,465cc를 줄여 연비를 약 10% 개선했음에도 성능은 SLK55와 비슷하다. 최고출력이 조금 떨어지긴 했으나 토크가 비슷하고 변속기의 전진기어를 7개에서 9개로 늘렸기 때문이다. 0→시속 100km 가속 시간도 4.7초로 이전(4.6초)과 별 차이 없다.
변속기의 완성도는 기자가 그동안 경험했던 토크컨버터 방식 중 가장 뛰어나다. 변속 속도, 충격, 회전수 보정 등에 흠잡을 곳이 없고, ECO 모드에선 상황에 맞게 동력전달을 끊어 효율까지 높인다. 세일링 기능을 작동할 땐 계기판에 자그마한 요트 그림을 띄운다. 이 정도라면 괜히 덜그럭거리고 유지비도 비싼 듀얼 클러치 변속기가 필요 없겠다.
가속 감각은 굉장히 경쾌하다. SLK55에 대한 기억이 홀연히 사라질 정도다. 최대토크를 더 빨리 쏟아내기 때문에 운전도 한층 더 즐겁다. 토크밴드를 당긴 건, SLC처럼 빠른 리스폰스가 생명인 모델에게는 아주 중요한 변화다. 최신 6기통 터보 엔진 대부분이 그렇듯, 터보랙 따위도 느낄 겨를이 없다.
배기 사운드는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달라진다. 에코와 컴포트에서는 조용하고 스포츠와 스포츠+에서는 화끈하다. 볼륨과 톤은 머플러 안쪽의 플랩으로 조절한다. 만약 사운드가 C450과 비슷했다면 기자는 SLK55를 그리워했을지도 모르겠다. SLK55의 웅장한 배기음은 그것만으로도 나름의 세계를 구축할 정도로 강력했기 때문이다. V8 자연흡기 엔진만큼은 아닐지라도, SLC43의 사운드도 결코 실망할 수준은 아니다. 특히 고막을 때리는 중고음이 한층 더 강해졌다. 사람들이 AMG에 기대하는 것 중 하나가 사운드라는 사실은 AMG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SLC43의 백미는 엔진 반응이나 사운드가 아닌, 핸들링이다. 이전보다 더 빠릿빠릿해진 것은 물론, 코너에서의 한계도 더 높아졌다. 자세제어장치(ESP)도 이제 어느 정도의 슬립을 허용하는 스포츠 핸들링 모드를 지원한다. 또한 그립을 넘어가는 시점에서도 운전자에게 무게이동 과정을 세밀하게 전달한다. 아울러 다운사이징으로 인해 차체 앞쪽이 가벼워지고 섀시 장악력이 높아져 안정감이 더 뛰어나다. SLK55가 고속도로와 오르막 코너에서만 짜릿했다면, SLC43은 언제 어디서든 즐겁다.
흐르는 바람을 타고
하지만 SLC43가 가장 사랑스러운 때는 따로 있다. 그건 적당한 리듬을 유지하는 순간이다. 이를 악물고 쏘아대면 어딘가가 살짝 어긋나는 기분이다. 마치 의도된 것처럼. 이토록 생생한 섀시와 파워트레인을 두고 왜 그랬을까? 이것이 바로 메르세데스 벤츠가 정의하는 SLC43의 성격일 것이다. SLC43은 무리하게 정통 스포츠카의 자리를 넘보지 않았다. 바람을 경쾌하게 가르는 소형 로드스터의 본분에 충실하다.
사실 SLC43과의 만남은 이번이 두 번째였다. 처음은 지난 봄 프랑스 남부의 한 눈부신 해변도로였고, 이번은 강원도의 어느 얼어붙은 산길이었다. 적지 않은 시간이 흘렀고 많은 것이 달랐지만 즐겁고 행복하긴 마찬가지였다. SLC43이 그만큼 따뜻했기 때문이리라. 기자는 아마 이 찬란한 경험들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