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에라를 쓴 새 시대의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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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뻐서요.” 이보크 오너들의 구매 이유는 놀랍도록 심플했다. 어쩌면 이보크는 랜드로버를 선택하는 데 거창한 이유 따윈 필요 없음을 증명한 최초의 모델인지도 모른다. 사람들은 이보크를 처음 보고 이보다 아름다운 SUV는 없다고 칭찬했다. 하지만 불과 5년 만에 더 아름답고 더 낭만적인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이 탄생했다.
제임스 본드는 임무를 수행한다. 격투를 벌이고 사랑을 나눈다. 벌써 54년째다. 원작소설에 따르면 그는 1922년생, 우리 나이로 95세다. 하지만 007의 시간은 흐르지 않는다. ‘살인번호’(1662년)부터 ‘스펙터’(2015년)에 이르기까지 스물네 편의 시리즈가 이어지는 동안 그는 한결같이 임무를 수행하고 격투를 벌이며 사랑을 나눠왔다.
불노불사 뱀파이어와 같은 007의 롱런이 지겨워질 때쯤 색다른 스파이물이 등장했다. ‘킹스맨’은 스냅백과 야구점퍼를 걸친 빈곤층 청년이 국제비밀정보기구 킹스맨의 일원이 되어 괴짜 악당과 대결을 벌이는 이야기다. 병맛과 엽기로 버무려진 새 시대의 스파이는 007이 쌓아온 클리셰를 하나하나 깨부수며 시종일관 통쾌함을 선사한다.
영국산 스파이 영화의 오랜 공식을 박살낸 킹스맨처럼 영국산 오프로더 명가의 68년 전통을 깨고 탄생한 별종이 있다. 전혀 랜드로버 같지도 도통 레인지로버스럽지도 않으면서, 두 이름을 모두 짊어진 랜드로버 레인지로버 이보크 말이다. 이보크는 등장만으로 우리의 의식 속에 각인된 랜드로버의 전형을 산산조각 냈다.
이보크는 또다시 우리의 고정관념을 뛰어넘었다. 기존 이보크의 루프를 떼어내고 낭만을 더한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을 출시한 것. 랜드로버는 성공한 별종 이보크의 변종을 내놓으며, 사계절 어디서나 즐길 수 있는 컨버터블 SUV라 일컬었다.
별종(別種)의 변종(變種)
이보크 컨버터블은 기존 이보크의 샤프하고 진보적인 외모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기둥 네 개와 지붕을 드러냈으니 어색해 보일 법도 한데 어느 각도에서 보나 여전히 잘 생겼다. 처음부터 컨버터블을 염두에 두고 디자인한 차라고 디자이너가 너스레를 떤대도 믿어줄 수 있을 것만 같다.
이보크 컨버터블은 최초의 컨버터블 SUV가 아니다. 그럼에도 이토록 새롭게 느껴지는 건, 랭글러 스타일의 오픈톱 방식을 빗겨갔을 뿐만 아니라 무라노 크로스 카브리올레의 디자인 완성도를 뛰어넘었기 때문이다.
패브릭 소재의 루프와 스포일러로 이어지는 라인이 유려해 루프를 덮었을 때의 사이드뷰조차 뉴에라를 뒤로 쓴 듯 스타일리시하다.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버튼을 조작하면 루프가 Z 형태로 접혀 깔끔하게 수납된다. 세계적인 컨버터블 루프 시스템 업체인 베바스토(Webasto)가 개발한 Z-폴딩 패브릭 루프의 작동 시간은 열릴 때 18초, 닫힐 때는 21초. 작동한계의 최고시속은 48km다.
새롭게 적용된 프레임리스 도어는 루프를 접었을 때 완벽한 컨버터블 라인을 완성시켜준다. 커피 잔을 든 여인의 곧게 뻗은 새끼손가락처럼 작지만 우아한 스포일러와 미니 로드스터의 그것처럼 뒷면만 열리는 테일게이트도 참신하다. 251L의 적재공간은 루프 개폐와 상관없이 일정하며 적재함 내부엔 스키스루까지 갖췄다.
인테리어에도 군더더기 하나 없다. 깔끔한 메탈과 질감 좋은 가죽이 어우러져 강인함과 고귀함, 모던함을 담아낸다. 굳이 스티어링 휠 위의 ‘RANGE ROVER’ 레터링을 확인하지 않아도, 간명한 인테리어 레이아웃과 소재의 고급감만으로 충분히 이 차의 품격을 알아볼 수 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인컨트롤 터치 플러스(InControl Touch Plus)는 새 시대의 랜드로버에 걸맞은 스마트한 매력을 지녔다. 터치 감도가 우수한 10.2인치 터치스크린을 통해 내비게이션과 멀티미디어, 주자보조 시스템 등 다양한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11개의 스피커로 구성된 380W 메르디안 사운드 시스템은 모든 음역대를 명쾌하게 해석하여 승객들에게 전달한다.
시트는 맹수의 근육처럼 탄탄하며 찰떡 같이 쫀득하게 몸을 지지한다. 곱상하게 생겼어도 근본은 사나이의 차라서 요즘 컨버터블의 필수품인 에어스카프 따윈 없다. 시동을 켜면 고개를 내미는 로터리 시프터는 다이얼 방식의 공조기 조작부와 어우러져 인테리어 디자인의 완성도를 더욱 끌어올린다. 잠금장치가 달린 글러브박스는 루프를 연 채로 차를 떠나도 안심할 수 있게 해주는 상냥한 배려다.
컨버터블답게 탑승 및 적재 편의성은 다소 떨어진다. 뒷좌석 헤드룸은 의외로 충분하지만 레그룸은 성인 남자를 태우기 버거운 수준. 2열 등받이 각도도 가파른 편이라 장시간의 자동차 여행은 뒷좌석 승객과의 불화를 낳을 수도 있을 듯.
라이벌이 없는 전지형 컨버터블
두툼한 A필러와 크게 누운 윈드실드 탓에 운전자가 느끼는 개방감은 생각보다 크지 않다. 진입각 19°, 탈출각 31°에 500mm의 도하능력을 갖추고 있지만 도로에서의 주행감은 여느 도심형 SUV처럼 나긋나긋하다. 록투록 2.31회전 스티어링 휠의 반응은 기민하고 솔직하다. 덕분에 운전감각은 승용차에 가깝다.
국내에서 팔리는 이보크 컨버터블엔 2.0L 인제니움 디젤 엔진만이 담긴다. 이 엔진은 기존 SD4 엔진보다 가볍고 조용하며 효율적이다. ZF 9단 자동변속기는 신속한 변속으로 적극적인 주행을 이어가다가도, 가속 페달을 살포시 밟으면 꿀이라도 바른 듯 부드럽게 달린다.
콤팩트 SUV라 불리지만 태생이 통뼈인지라 무게는 2톤을 넘어선다. B, C필러를 대신할 보강재를 더하고 컨버터블 루프 시스템을 얹어 이보크 3도어(1,805kg)에 성인 남자 넷이 탄 것만큼(275kg) 무겁다.
라인업의 막내이지만 움직임의 특성은 레인지로버답게 웅장하고 우아하다. 초반에 쏟아지는 두툼한 토크는 망치로 내려치듯 파워풀하다. 고속영역까지 꾸준히 밀어붙이는 멧돼지 같은 기세가 매력이다. 하지만 육중한 무게 탓에 180마력의 최고출력이 그리 넉넉하게 느껴지진 않는다.
스타일리시한 SUV 컨버터블로 참신함을 추구하면서도 선조로부터 이어내려온 오프로더의 혼을 지켰다. 잔디, 자갈, 눈길, 진흙 등 지형에 맞는 주행 모드를 제공하는 전자동 지형반응 시스템(Terrain Response)은 이 차의 혈관 속에 흐르는 오프로더 DNA를 방증한다.
컨버터블만 타도 주변 시선이 따가운데, 세단 틈바구니에 우뚝 솟은 컨버터블 SUV, 하물며 오렌지색 컨버터블 SUV를 타노라니 이 차야말로 무대공포증 극복을 위한 최고의 명약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어째서일까? 시간이 지날수록 쑥스러움은 만족감이 되고, 과시욕은 낭만으로 변해갔다. 이 시대 마지막 로맨티시스트가 되어 네 바퀴 달린 요트를 타고 도심을 유람하다보면 교통체증도 미세먼지도 그다지 근심스러울 게 없다.
랜드로버는 그동안 네바퀴굴림 오프로더 메이커의 길을 우직하게 달려왔다. 최근엔 그동안 쌓아온 것에 연연하지 않고 새로운 길을 개척하는 오프로더 정신으로 더욱 무장한 듯하다. 어찌 보면 이보크는 가장 랜드로버다운 도전정신으로 랜드로버가 쌓아온 클리셰를 혁파해가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영국산 스파이 영화는 더 이상 영국신사의 전유물이 아니다. 킹스맨은 스냅백을 눌러쓴 애송이도 얼마든지 인간병기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줬다. 레인지로버 이보크는 세련되고 우아한 도심형 SUV가 고지식한 랜드로버를 혁신시킬 수 있음을 보여줬다.
포르쉐가(家)에 성공한 서자 카이엔과 파나메라가 있다면 랜드로버가(家)에는 이보크가 있다. 이보크는 지난 5년간 전세계에서 50만 대 이상 팔렸으며, 브랜드 연간 판매량의 약 3분의 1을 차지하며 랜드로버의 성장세를 이끌고 있다.
별종 이보크는 등장부터 신선한 충격이었다. 별종의 변종 이보크 컨버터블 역시 흥미로운 파격을 선사한다. 시승 중에 몇 번이나 사람들이 말을 걸었다. 보석이라도 보는 양 두 눈을 반짝이며 차 좀 구경해도 되겠냐고 물었다. 뉴에라를 뒤로 쓴 랜드로버는 그렇게 다시 한 번 브랜드의 새 시대(New Era)를 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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