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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마트폰을 내려놓고 온전히 눈으로 즐기고 손으로 만지는 경험에 집중하는 '폰 프리(Phone Free)'가 MZ세대 사이에서 하나의 문화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디지털 세상에서 한 발 물러나 직접 경험하고 몰입하는 순간을 되찾으려는 폰 프리 현상을 체험해봤습니다.
"스마트폰은 이 철창 안에 가두면 됩니다."
지난 18일 금요일 저녁 6시 30분, 서울 용산 아이파크몰 7층 한편에 위치한 옥상정원.
용산 아이파크몰과 서울가드닝클럽이 함께 개최한 ‘폰프리 북클럽’ 부스에 도착하자마자 가장 먼저 한 일은 작은 철창 안에 스마트폰을 넣고 열쇠로 걸어 잠그는 것이었습니다.
눈만 뜨면 들여다보는 스마트폰과 잠시 '이별' 해야하는 순간. 폰프리 행사 입구에서 접한 '쇼츠 1시간 대신 책 읽기 1시간 어때요?'라는 현수막 글귀를 떠올리면서 철창 안에 스마트폰을 집어 넣어 '감금'했습니다.
이날 모인 참가자는 모두 29명. 저마다 간이 의자와 돗자리에 흩어져 하나둘 자리를 잡았습니다.
기자도 간이 의자 하나에 앉아 집에서 챙겨온 알베르 카뮈의 소설 ‘이방인’을 꺼냈습니다. 일찌감치 샀던 책이지만 제대로 읽지 못한 책, 밤공기가 제법 쌀쌀해진 요즘에 서늘한 가을밤과 어울리는 담담한 문체가 떠올라 고른 책입니다.
휴대폰이 사라지니 낯선 감각들이 깨어났습니다. 책 읽는 모습을 신기한 듯 바라보는 행인들의 시선, 주변 사람들이 책장을 사락 넘기는 소리, 빌딩 사이를 파고드는 선선한 가을바람까지. 좀처럼 책에 집중할 수 없었습니다. 다른 참가자들도 어색한 듯 연신 자세를 바꾸고 몸을 뒤척였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몰입을 방해하던 잡념들이 사라지고 책 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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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고개를 들어보니 의자 위에 양반 다리를 한 채 책에 빠진 사람들, 이곳이 야외라는 사실을 잊은 듯 돗자리에 편히 누워 책을 읽는 사람들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다른 참가자들에게 휴대폰 없는 1시간의 경험은 어땠을지 궁금해졌습니다.
◇ 알림 끄고, 눈 앞 경험에 집중…'폰프리' 참가자 급증
김 씨는 "휴대폰이 있으면 책을 읽다가 좋은 부분이 나오면 사진을 찍지 않느냐. 그러면 꼭 사진을 찍고 그냥 내려놓는 게 아니라 다른 걸 하게 되더라"면서 "확실히 휴대폰을 못 쓰니까 책에 몰입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말했습니다.
이어 김 씨는 최근 폰프리가 유행하는 이유로 쉴 새 없이 연결되는 현대인의 일상을 꼽았습니다. 김 씨는 "원하든 원하지 않든 계속 연락이 오고, 들어오는 정보량이 너무 많다"며 "그것을 좀 차단하고 나와 내 앞에 있는 것에 집중하고 싶은 마음이 현대인들 사이에서 커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행사를 기획한 서울가드닝클럽의 정효원(28) 대리는 "휴대폰을 내려놓고 진짜 현실 세계에서 직접 뭔가를 하자는 폰프리가 우리나라뿐 아니라 전 세계적인 트렌드"라고 설명했습니다.
정 대리에 따르면 기존 프로그램에는 회당 4~6명 정도가 참여했지만, 이번 행사명에 ‘폰프리’를 내걸자 30명 가까운 사람이 몰리며 참가자가 크게 늘었습니다.
프로그램 참가자들의 만족도 또한 높아, 정 대리는 '폰프리 북클럽'을 다음달에 두차례 추가로 진행하기로 했다고 귀띔했습니다.
폰프리 인기를 이끄는 대표적인 모임으로는 2024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시작된 ‘오프라인 클럽’이 꼽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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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을 맡긴 채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리고, 보드게임이나 대화를 즐기는 이 모임은 유럽 곳곳으로 확산되며 전세계 인스타그램 팔로워가 66만 명이 넘어섰습니다.
◇ 불금의 시작은 '스마트폰 해방'…"힐링하고 맛집 가요"
폰프리는 반짝 유행을 넘어, MZ세대의 힐링 문화로 정착하고 있습니다.
용산 아이파크몰에 놀러 왔다 우연히 안내 공고를 봤다는 신예지(32) 씨는 이날 퇴근을 하고 예전 직장 동료 2명과 시간을 맞춰 다시 이곳을 찾았습니다.
독립서。에서 호기심에 샀다가 묵혀둔 다윈 자서전을 이날에야 펼쳤다는 조성표(34) 씨, 친구에게 선물 받은 성해나 작가의 소설집 '혼모노'를 들고 왔다는 장예령(33) 씨와 함께였습니다.
오랜만에 지인들과 함께 모인 '불타는 금요일'에 폰프리 책읽기 행사에 참여한 것이 혹시 아쉽지 않느냐고 묻자, 신 씨는 "전혀 후회하지 않는다"고 웃었습니다.
신 씨는 "다음에 비슷한 행사가 열리면 또 방문할 계획이고 여기서 힐링을 한 뒤 맛집을 갈 것"이라고 웃었고, 장 씨와 조 씨도 고개를 끄덕이며 맞장구를 쳤습니다.
애거서 크리스티의 추리소설 ‘그리고 아무도 없어’를 읽던 신 씨는 인상 깊은 구절로 "술 한 잔 할 사람 없느냐"를 골랐습니다. ‘혼모노’를 읽던 장 씨는 "알 수 없지만 아주 좋은 하루였어요" 구절을 꼽았습니다.
휴대폰이 없어 시간을 확인하지 못하는 게 가장 답답했다는 이들은 행사 종료 시간이 되자 금세 자리를 정리하고 일어났습니다.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이들의 발걸음은 주변 행인들보다 한결 가벼워 보였습니다.
정원 곳곳에 자리를 잡고 책을 읽는 참가자들 [사진=서울가드닝클럽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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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자가 아닌 '함께'…화면 밖에서 연결되다
단순히 디지털과 단절하는 것을 강조하던 ‘디지털 디톡스’와 달리, 폰프리는 여러 사람과 만나 무언가를 함께하고 공유하는 ‘대면 연결’의 문화로 해석됩니다.
김민지 씨와 함께 온 서울의 한 초등학교 교사 조혜원(32) 씨는 "다 같이 책을 읽는 행사에 오는 건 처음인데, 사실 그 전에는 모여서 책을 읽는 게 조금 '유난'이라고 생각했다”며 “와서 느껴보니 왜 다 같이 책을 읽으려고 하는지 알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조 씨는 함께 책을 읽는 경험이 책을 대하는 마음가짐도 바꾸게 한다고 전했습니다.
그녀는 "평소에 책을 읽을 때는 공부를 해야 할 것 같고 교양을 갖춰야 할 것 같다는 생각으로 읽는데, 여기 오니까 쉰다는 마음으로 소설을 고르게 됐다”며 “진짜 책을 쉬는 것처럼 읽을 수 있는 경험이었다”고 말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에도 참가자 대부분은 여유롭게 자리를 정리하며 한동안 여운을 즐겼습니다.
이어 인상 깊었던 구절을 적어 운영 부스에 제출한 뒤, 다른 참가자가 남긴 구절이 담긴 화분을 하나씩 골랐습니다. 화분 앞에 선 참가자들은 자신이 고른 문장만큼이나 신중하게, 낯선 이가 남긴 문장을 하나하나 읽어 내려갔습니다.
이날의 경험과 묘하게 닮은 문장이라는 생각이 들어 제출했던 '이방인'의 한 구절은 다음과 같았습니다.
"처음으로 산호와 별들로 가득한 그 밤 앞에서, 나는 세계의 부드러운 무관심에 스스로를 열었다".
이번에는 다른 참가자의 화분을 골라 받을 차례.
고심 끝에 선택한 화분에는 조혜령 씨가 읽던 소설 ‘천 개의 파랑’ 속 구절이 아래와 같이 적혀 있었습니다.
"하늘이 그곳에 그렇게 빛나는데 어떻게 쳐다보지 않을 수 있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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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승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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