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페이스, 주제가 명확한 재규어 첫 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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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4월 우연히 F-페이스를 볼 기회가 있었다. 아주 잠깐이지만 실물로 본 F-페이스는 생각보다 멋졌다. 사진에서 드러나지 않았던 입체감이 도드라져 오랫동안 눈길을 사로잡았다. 3개월이 지난 후 다시 F-페이스를 만났다. 이번에는 론칭을 겸한 미디어 시승회라는 공식적인 자리다. 다시 봐도 F-페이스는 멋지다. 특히 보디 비율이 끝내준다. 영국 <탑기어>에서 너비가 우라칸만큼 넓다고 했는데 가까이서 보니 그 말이 맞다. 덕분에 차체가 낮고 떡 벌어져 스포츠카 같은 분위기를 풍긴다.
영롱한 풀 LED 헤드램프는 30d S에만 기본으로 들어가고 다른 트림은 선택장비다
F-페이스 디자인의 백미는 뒤쪽이다. F-타입의 것을 거의 그대로 가져온 테일램프가 그 중심에 있다. 키가 커졌을 뿐 전체적인 모습은 F-타입을 따른다. 특히 뒷유리와 테일램프 사이, 재규어 엠블럼이 달린 부분이 꼭 닮았다. 리어 펜더 위쪽의 넓은 숄더라인과 날렵한 D필러와 해치 게이트를 보면 F-타입 쿠페가 떠오른다. 이안 칼럼이 F-페이스를 두고 ‘가장 실용적인 스포츠카’라고 말한 이유를 알 것 같다.
센터콘솔 양옆이 높은 것을 빼면 XE나 XF와 크게 다르지 않은 디자인
디자인이 익숙한 실내는 세단보다 넓고 여유롭지만 F-페이스만의 개성이 그리 진하지는 않다. 12.3인치 가상계기판과 인컨트롤 터치 프로가 들어간 10.2인치 터치스크린 등 재규어의 첨단장비도 빼놓지 않았다.
10.2인치 터치스크린(우)에는 최신 인컨트롤 터치 프로가 들어간다
달릴 때는 F-타입의 기운이 느껴진다. 특히, 인제 서킷을 달리는 F-페이스의 모습은 영락없는 F-타입이다. F-타입이 빠른 달리기보다 운전재미를 극대화하는데 초점을 맞춘 것처럼 F-페이스도 재미가 넘친다. 운전자의 실력에 따라 F-페이스의 움직임은 확연히 달라진다.
적정 속도를 넘어 코너에 진입하면 여지없이 언더스티어가 발생하고 탈출할 때 스로틀을 조금만 일찍 열면 차체가 춤을 춘다. F-페이스는 SUV다. 따라서 F-타입처럼 운전자가 상황을 수습할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언더스티어가 감지되면 안쪽 바퀴에 제동을 거는 방식의 토크벡터링이 작동하고, 자세가 엉망일 때는 주행안전장치가 차체를 바로잡는다.
2.0L 인제니움 디젤 엔진은 F-페이스에 아주 중요한 존재다. 변속기는 자동 8단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3.9kg·m인 2.0L 디젤 엔진을 사용하는 20d는 밸런스가 좋아 서킷에서 갖고 놀기 좋다. 하지만 짜릿함이 조금 부족하다. L당 100마력을 뿜어내는 300마력의 최고출력과 최대토크 71.4kg·m를 뽑아내는 30d가 그 목마름을 해소해준다. 서킷에서 조금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초당 100회 이상 노면 정보를 모니터링해 최적의 댐핑을 제공하는 어댑티브 다이내믹스 같은 장비가 더해져 고성능을 좀더 수월하게 다룰 수 있다.
SUV이지만 스포츠카인 F-타입의 기운을 불어 넣었다
F-페이스의 재미는 일반도로에서도 이어진다. 서킷과 달리 적당한 속도로 달려야 하는 구불거리는 도로에서 F-페이스는 거의 완벽한 몸놀림을 보인다. 전자장비 개입 없이 오로지 섀시의 기본기만으로 빠르고 재미있게 달릴 수 있다.
여태껏 재미있게 달렸다고 생각했는데 진짜 재미가 기다리고 있었다. 바로 오프로드 주행이다. F-페이스가 오프로드에서도 강하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싶었는지 재규어코리아에서 20km에 이르는 오프로드 코스를 준비해놨다.
부지런히 산을 오르고 있는 랜드… 아니, F-페이스들
SUV 타이틀을 단 차라면 누구나 다닐 수 있는 임도를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해발 1,117m인 한석산을 오르는 길은 랜드로버나 헤쳐나갈 수 있을 듯한 험한 코스였다. 하늘과 땅이 1분에 몇번씩 번갈아 보일 만큼 험준한 코스를 F-페이스는 우직하게 올라갔다. 생각보다 여유롭게 말이다.
오프로드 주파 능력은 기대 이상이다
사실 F-페이스에는 눈에 띄는 오프로드용 장비가 없다. 랜드로버처럼 전자동 지형 반응장치가 있는 것도 아니고 저단 기어나 에어 서스펜션도 쓸 수 없다. 대신 네바퀴굴림과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ASPC)이 있다. 이것들이 F-페이스의 옹골차면서도 유연한 섀시와 유기적으로 결합해 기대 이상의 오프로드 주파력을 발휘했다. 이 정도 수준이면 오프로드 전용 SUV라고 당당하게 명함을 내밀 수 있겠다.
트렁크 용량은 508L나 되고 뒷좌석도 넉넉하다
승용차 전문 메이커가 SUV를 처음 만들 때는 엉성한 부분이 많다. 디자인은 애매하고 온로드와 오프로드 중 어느 쪽에 초점을 맞춰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F-페이스는 모든 것이 명확하다. 디자인은 눈에 띄게 멋지고 주행성능도 온·오프로드를 모두 아우른다(그래도 온로드 실력이 더 출중하다). F-페이스의 유일한 걱정거리는 경쟁자가 수두룩하다는 점. 어떤 결과가 나올지 기대된다.
* <탑기어> 2016년 9월호 발췌·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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