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6기통의 추억 지워버릴 4기의 매력, 포르쉐 718 카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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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기통 터보 엔진을 얹은 새로운 카이맨을 스웨덴에서 만났다. 높아진 출력과 토크를 더욱 넓은 회전수에서 발휘하는 수평대향 4기통 터보 엔진이 새로 손질한 섀시와 맞물린 718 카이맨은 정신없이 코너가 연속되는 스트루프 서킷을 물 만난 고기처럼 헤집고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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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18. 포르쉐는 카이맨의 이름 앞에 숫자 718을 붙이기로 했다. 엔진까지 바꾸는 큰 수술이었다고는 하지만 풀 모델 체인지가 아닌 마이너 체인지에서 모델명에 손을 대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개명이라는 선택 뒤에 뭔가 중대한 이유가 숨어 있다는 뜻이다. 718 카이맨은 기존 카이맨을 다듬은 개량형이되 매우 큰 변화를 담았고, 고객들에게 설명하고 이해시켜야 하는 큰 숙제를 떠안았다. 물론 이것은 카이맨의 책임도, 포르쉐의 책임도 아니다. 변화하는 시장 환경에 맞춘 필연적인 진화임에도 이처럼 조심스러운 접근을 선택한 이유는 이 차가 6기통을 버리고 4기통으로 갈아탔기 때문이다.

4기통 터보 포르쉐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 해 전부터 있었다. 2009년 폭스바겐이 공개했던 컨셉트 블루스포츠는 작고 날렵한 미드십 스포츠카로 폭스바겐, 아우디, 그리고 포르쉐로 양산될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돌았다. 이 경우 가격을 고려해 직렬 4기통 엔진을 쓸 가능성이 높았는데, 과연 이 4기통 엔트리 모델이 포르쉐의 정통성을 얻을 수 있을지에 대해 찬반양론이 팽팽히 맞섰다. 그런데 역사를 되짚어보면 4기통 포르쉐는 여럿 존재했으며 개중에는 폭스바겐 엔진을 그대로 얹은 것들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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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718 복스터와 카이맨이 값을 낮춘 엔트리 포르쉐는 아니다. 수평대향이라는 아이덴티티를 유지했을 뿐 아니라 성능은 오히려 기존 자연흡기 6기통을 능가한다. 그럼에도 거부감을 불러일으킬 소지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시장의 반발을 잠재우고 정통성을 부여할 수단이 필요했던 포르쉐는 옛 기록을 되짚어 적임 모델을 하나 찾아냈다. 바로 레이싱카 718이었다.

전설적인 레이싱카 550을 개량해 태어난 718은 두 가지 점에서 신형 복스터/카이맨의 정신적인 스승이다. 바로 미드십 레이아웃과 수평대향 4기통 엔진이다. 이 빛나는 레이싱 포르쉐는 1957년 르망에서 데뷔했고 다양한 버전으로 제작되어 1959년 타르가 플로리오 종합우승, 유럽 힐클라임 챔피언십 우승(1958, 59)과 르망 클래스 우승(58, 61년) 등 화려한 전적을 남겼다.

6기통 대신 선택한 4기통 터보 엔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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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변화의 핵심은 당연히 엔진이다. 벌써 탄생 20주년을 맞은 복스터는 원래 수평대향 6기통 2.5L 엔진을 얹었다가 3년 만에 배기량을 2.7L와 3.2L로 키웠다. 엔트리 모델이면서도 브랜드의 개성이 진하게 묻어나는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을 미드십에 얹었다는 점이 바로 복스터와 카이맨의 큰 특징이자 장점이었다. 가장 최근 3세대(981)의 경우 2.7L 265마력과 3.4L 315마력, 그리고 GTS 딱지를 붙인 3.4L 330마력형 외에도 3.8L 375마력(스파이더)까지 배기량과 성능을 키웠다.

카이맨은 복스터의 쿠페형이라는 점에서 이전과 같지만 위상은 조금 달라졌다. 컨버터블인 복스터보다 값이 더 비쌌던 이전과 달리(대개 쿠페보다 컨버터블이 비싸다) 가격대를 뒤집었다. 지금까지 카이맨은 복스터보다 비싼 만큼 출력도 더 높게 조정했었지만 이제 두 모델은 같은 파워트레인을 얹으며 카이맨이 복스터보다 약간 싸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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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쉐는 718 복스터와 카이맨을 위해 완전히 새로운 수평대향 4기통 2.0L와 2.5L의 두 가지 터보 엔진을 개발했다. 평범한 직렬 4기통이 아닐 뿐 아니라 낮은 무게중심과 포르쉐 아이덴티티를 유지하기 위한 선택이었다. 두 엔진은 동일한 스트로크(76.4mm)에 보어가 다르고(91/102mm), 2.5L형의 경우 싱글 터보에 가변 지오메트리 기술을 얹었다. 이 기술은 디젤 엔진에 흔하지만 가솔린에서는 911 터보에 사용된 게 최초. 높은 과급압과 반응성을 양립시키기 위한 기술이다. 덕분에 2.0L 터보는 최고출력 300마력에 최대토크 38.8kg·m, 2.5L 터보 엔진은 최고 350마력, 42.9kg·m의 힘을 발휘한다. 게다가 2.5L형이 더 낮은 1,900rpm부터 최대토크를 뿜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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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스테리어는 의외로 많은 부분이 달라져 보다 고급스럽고 남성적인 인상이 강해졌다. 앞쪽은 흡기구 형태를 다듬으면서 사이즈를 키워 냉각성능을 개선했으며, 헤드램프에는 르망 경주차에서 모티브를 가져온 4점식 주간주행등을 옵션인 LED 헤드램프와 짝지었다. 개구부를 키운 측면 흡기구에는 가로 핀을 하나 추가했고 도어 핸들을 단순화시켜 보다 깔끔해졌다. 겉모습의 변화는 사실 엉덩이에 집중되어 있다. 포르쉐 로고는 이제 뒤창 아래가 아니라 하이글로스 블랙 스트립과 함께 팝업식 리어윙 아래에 자리잡았다. 아울러 리어 콤비네이션 램프의 형태가 달라지고 브레이크 램프는 붉은 띠 형태로 바뀌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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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 역시 변화의 폭이 적지 않다. 대시보드는 기존 형태를 유지하면서 에어벤트를 둥글게 다듬었고, 918 스파이더에서 유래된 새로운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을 장비했다. 신형 911에도 쓰이는 이 스티어링 휠은 정교한 스포크 디자인이 아름다울 뿐 아니라 추월가속에 유용한 스포츠 리스폰스 스위치(PDK)가 달려 있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PCM 역시 업그레이드되었고, 사용이 편리해진 신형 내비게이션을 갖추었다.

타이트한 서킷에서 높아진 성능 발휘해

시승은 숙소인 말뫼 시내와 스트룹 공항을 잇는 주변 도로에서 이루어졌다. 공항 주변의 시골길을 누비는 도로는 롤러코스터처럼 굽이치는 고저차로 드라마틱했다. 하지만 농가를 끼고 있어 시승하기에 그리 적당한 환경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 차는 보다 강력한 엔진을 얹은 카이맨 아닌가? 이런 걱정을 의식해서인지 포르쉐에서는 코너링을 마음껏 즐길 수 있는 서킷도 준비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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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침 8시 시내 숙소를 출발한 시승차 대열이 11시 반쯤 도착한 곳은 공항 근처에 위치한 작은 서킷이었다. 1주 2.133km에 무려 12개의 코너가 오밀조밀 들어찬 스트루프 레이스웨이는 1972년 처음 만들어질 당시 1.1km짜리 꼬꼬마 서킷이었다고. 레저 카트로도 재미나게 탈 수 있을 것 같은 아담한 규모지만 실제 투어링카 레이스가 열리기도 한다.

인스트럭터가 모는 911 한 대당 두세 대씩의 718 카이맨이 따라붙어 코스 탐색을 시작했다. 그리고 기자들은 금세 코스 선택에 무릎을 탁 쳤다. 답답한 시골 도로에서 제 성능을 내지 못했던 718 카이맨은 물 만난 고기처럼 코너를 누비기 시작했다. 미드십 포르쉐의 미덕은 911마저 능가하는 코너링 능력이 아니던가. 아직 익숙지 않은 코스 레이아웃을 상기하며 아웃 인 아웃을 시도해 보지만 순식간에 다음 코너를 준비해야 하는 빠른 템포 때문에 정신을 차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718 카이맨은 이런 와중에도 안정적인 자세를 유지했고, 횡가속을 온몸으로 버티는 상황에서도 여유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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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 재빨라진 전동식 스티어링은 타이트한 헤어핀에서도 노즈를 어김없이 딱 원하는 만큼 코너 안쪽으로 밀어 넣어주었다. 아울러 섀시는 댐퍼와 스프링 세팅까지 모두 전반적으로 새로 다듬어졌다. 718 카이맨에 옵션으로 준비된 PASM을 선택할 경우 지상고는 20mm 낮아진다. 더욱 단단하지만 승차감을 해치지 않기 때문에 장거리 운전이 부담스럽지 않다. 노즈 안쪽 화물공간도 생각보다 여유가 있어 그랜드투어러로서의 능력이 의외로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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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킷 주행은 매우 즐거웠지만 718 카이맨 S의 강력한 토크를 즐길 만큼 직선로가 길지 않은 점은 아쉬웠다. 무려 1,900rpm부터 42.9kg·m를 토해내는 2.5L 터보 엔진은 코너에서 액셀 페달을 조금만 빠르게 밟아도 금세 뒷바퀴를 코너 바깥으로 흘려버리기 일쑤였다. 주행안정장치가 켜져 있는 상태였지만 개입이 늦어 적극적으로 테일 슬라이드를 즐길 수 있도록 한 것은 포르쉐다웠다. 이런 점에서 기본형인 718 카이맨 쪽이 스트룹 레이스웨이에 더 어울렸다. 300마력, 38.8kg·m의 힘은 타이트한 코스 레이아웃에 절묘하게 맞아들었고 좀 더 적극적으로 액셀 페달을 밟을 수 있었다. 물론 718 카이맨 S쪽이 덜 매력적이라는 말이 아니다. 액셀 조작에 조금 더 신경을 써야 하지만 직선로가 긴 코스라면 이는 강력한 무기로 돌변한다. 당연하겠지만 고속도로에서의 추월가속 역시 718 카이맨 S가 한결 뛰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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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단 PDK는 여전히 눈부실 뿐 아니라 터보 엔진과의 연계 플레이 역시 정교했다. 재빠른 변속과 시프트 알고리즘은 터보 엔진의 단점을 커버하는 강력한 무기다. 포르쉐는 운전자들이 자연흡기 엔진에 대한 향수를 느끼지 않도록 또 하나의 필살기를 준비했다. 스포츠나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 오른발에 힘을 뺐을 때 작동하는 프리 컨디셔닝 기능으로, 바이패스 밸브를 닫고 점화 타이밍을 늦추면서 터보의 차징 압력을 최대한 유지시켜준다. 가속 도중 발을 잠깐 뗐을 때에는 다이내믹 부스트 기능이 스로틀 밸브를 계속 열어두고 연료 공급을 차단한다. 이때 공기 흡입량은 유지되기 때문에 다시 액셀 페달을 밟았을 때 재빠르게 출력을 높일 수 있다. 반면 PDK는 새로이 코스팅 모드가 추가되어 특정 상황에서 엔진과의 연결을 끊어 연료 소비를 최소화한다. 이 덕분에 718 카이맨 기본형의 경우 L당 14.5km(PDK)를 달릴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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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변화를 당연하지 않게 완성하다

시승행사의 무대가 된 스웨덴 말뫼는 ‘말뫼의 눈물’을 통해 최근 국내에서 화제가 되었던 곳이다. 스웨덴 남서부 끝단에 위치한 스코네주의 주도이자 항구도시로 1990년대 조선업의 경쟁력 악화로 큰 어려움을 겪었던 아픈 역사가 있다. 하지만 경쟁력이 떨어진 조선산업을 과감히 버리는 대신 친환경 문화도시로 탈바꿈하는 데 성공, 이제는 도시 구석구석이 활기 넘치는 모습이었다. 한국에 단돈 1달러에 팔렸다는 골리앗 크레인 자리에는 친환경 건물 터닝 토르소가 들어서 도시의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매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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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뫼라는 시승지의 선택이 어디까지 노림수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그리 가볍게 넘길 일도 아니었다. 시대적인 흐름에 따라 변화를 강요받는 것은 도시나 자동차나 다르지 않다. 이산화탄소 감축을 위해 점점 엄격해지는 배출가스 규정은 포르쉐 같은 스포츠카 메이커에게 엄청난 압박이 되고 있다. 그 결과 메이커의 핵심 혈통인 911마저도 자연흡기를 포기하고 터보 엔진을 얹는 상황. 복스터와 카이맨이 배기량을 줄인 4기통 터보 엔진으로 갈아탄 것은 지극히 당연한 수순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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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지극히 당연한 변화를 뛰어난 매력과 높은 완성도로 승화시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배기량 축소라는 악재를 수평대향 4기통 터보 엔진으로 정면돌파한 포르쉐는 이로 인해 떠안아야 하는 다양한 문제들을 기술적 도전으로 해소했다. 그 결과 카이맨은 더욱 강력하면서도 효율이 뛰어난 718 카이맨이 되었다.

다만 여기서 드는 생각 한 가지. 굳이 이름에 718을 끌어다 붙일 필요가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정통성을 걱정한 경영진의 판단이었겠지만 포르쉐 골수팬을 자처하는 기자조차도 기억에 가물가물했던 옛 미드십 레이싱카의 후광이 굳이 필요 없을 만큼 이 차는 강력하고도 완성도가 높았다. 결과적으로 사족이 되어버린 느낌이랄까. 괜스레 길고 어려워진 이름을 다시 카이맨으로 되돌리면 어떨까 하는 것이 시승을 마친 순간의 솔직한 심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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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진 편집위원
사진
포르쉐
제공
자동차생활(www.car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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