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다 HR-V, Small But Smar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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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는 시대상이다. 당대 어떤 차가 사람들의 마음을 훔치고 있는지 알고 있다면 그 시대를 정확히 가늠하고 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만큼 소비재로 자동차 역할이 대단하다는 이야기. 그렇다면 지금은 어떤 자동차가 시대를 지배하고 있을까? SUV다.
2000년대 초반부터 시작된 SUV 바람은 그 끝이 비교적 명확하다고 여겨졌다. 세단을 비롯한 일반 승용차 대비 환경적인 문제에서 약점이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때까지만 해도 SUV라고 함은 크고, 힘세며, 남성미를 내세운 오프로더가 전부였으니까. 그런데 기술의 발전은 눈부시다. 승용차 프레임에 기반한 SUV로의 전환이 재빠르게 이루어졌다. 실용성에 합리성까지 잡은 SUV가 주류가 된 것이다.
크로스오버가 그 중심에 서있다. 본래 음악에서 재즈와 록, 팝 등 여러 스타일의 음악을 혼합한 연주형식을 뜻하는 ‘크로스오버’는 간단하게 설명하면 ‘융합’이다. 즉 사물의 특성이 하나에 머무르지 않고 다양한 성질을 품고 있다는 뜻. SUV의 실용성을 원하면서도 세단의 정숙성과 편안함을 바라는 소비 패턴이 크로스오버에 녹아있다.
혼다 HR-V는 이런 가치 아래 태어났다. 시작은 본격적인 SUV 붐이 시작되기 전인 1990년대 말. 일상생활에서의 편리함, 작고 가벼운 차체, 또한 환경에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 여기에 운전의 즐거움을 겸비한 ‘J-무버’(Mover)의 하나로 HR-V가 등장했다. 이름에 들어간 ‘하이-라이더’(Hi-Rider) 개념 역시 혁신적이면서도 수준 높은 이동수단을 바라는 혼다의 의지가 담겨있다. 때문에 혼다는 HR-V 출시 초기에 SUV로 부르지 않고, ‘제트 필 하이-라이더’라는 이상한 용어를 쓰기도 했다. 그만큼 특별했다는 뜻. 현재 일본에서는 그 명맥을 ‘베젤’이 잇고 있지만 해외에선 여전히 HR-V(Hi-rider Revolutionary Vehicle)다.
혼다의 다른 차보다 그나마 존재감을 드러내는 그릴
개발 키워드는 세 가지로 ‘안심&안전’, ‘존재감’, ‘활용성’. 그런데 생각해보면 혼다뿐만 아니라 모든 자동차는 이 컨셉트를 담고 있다. HR-V라고 해서 딱히 특별하진 않다는 이야기다. 그래서 혼다는 HR-V의 특별함을 디자인으로 풀려고 했는지 모른다. 최근 일본차는 내놓는 차마다 괴상하거나 난해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나마 HR-V는 현재 주류라고 할 수 있는 유럽형 디자인에 적절하게 올라탄 분위기다. 다이내믹 크로스 솔리드라는 알기 힘든 디자인 컨셉트는 차치하더라도 시빅R이 보여준 모던하고, 자신감 넘친 디자인이 HR-V에도 이식됐다. 쿠페의 날렵함을 버무린 외관에 괴상하다는 느낌은 전혀 없다.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혼다 로고가 선명하다. 엠블럼을 크게 넣는 것은 자부심이자 정체성 표현이다. 라디에이터 그릴은 크고 기하학적이며, 로고를 꿰뚫는 수평 크롬바는 안정적이다. 그런데 할로겐램프다. 확실히 누런 조명색은 요즘 추세가 아니다. 옥에 티, 아니면 원가절감의 증거? 옆모습에서 ‘SUV+쿠페’라는 이 차의 컨셉트가 확실히 드러난다. 든든한 하체와 쿠페를 연상케 하는 유려한 상체가 만났다. 뒷문 손잡이는 겉으로 드러나지 않도록 창문 모서리에 녹였다. 우리에게는 이미 쉐보레 스파크로 익숙한 형태. 손잡이를 숨긴다고 얼마나 쿠페처럼 보일까 싶지만 의도가 그렇다니 일단 그렇다고 해두자. 뒷모습은 선이 굵다.
작은 공간에 여러 요소를 담아낸 부분은 분명한 장점
실내는 전형적인 일본차다. 기본에 충실하다. HR- V의 경우 센터페시아의 일부를 광택 마감해 단점을 상쇄하고 있지만 크게 두드러지는 요소는 아니다. 센터콘솔의 컵홀더가 깊고, 넉넉하다. 차를 탈 때 꼭 대용량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타야 하는 사람이라면 반길만한 부분. 게다가 작은컵은 공간을 작게, 큰컵은 깊게 사용할 수 있도록 형태 변화가 자유롭다. 센터콘솔의 아래에는 간단한 수납과 HDMI, USB, 파워 아웃렛 단자 등을 배열했다. 차안에서 멀티미디어 기기 사용빈도가 높아지는 것과 무관치 않다.
역동적이며, 견고하되, 쿠페의 유려함도 엿보인다
HR-V는 혼다의 소형차 피트에 기반을 둔 차. 그래서 피트에 적용한 센터탱크 레이아웃도 그대로 담았다. 센터탱크 레이아웃은, 보통은 뒷좌석 아래에 놓는 연료탱크를 앞좌석 아래로 이동시킨 것으로, 혼다의 특허기술 중 하나다. 이 때문에 소형차임에도 중형세단 수준의 공간을 확보하고, 여기에 최적화된 등받이 각도를 통해 장거리운행에도 전혀 피로하지 않는 자세를 유지할 수 있다. 뒷좌석 착좌면을 들어올릴 수 있게끔 만들어 화분, 유모차 등 키가 큰 짐을 싣기에 좋다. 마법 같은 기능이어서 이름도 매직시트.
1.8리터 가솔린엔진은 소리마저 아름답다. 솔직히 이제는 디젤이라는 말은 지긋지긋하다. 요새 디젤차 판매 인증이 낙타가 바늘구멍으로 들어가기보다 어렵다는 말이 있다. 전적으로 폭스바겐 탓은 아니어도 상황 자체가 그렇다. 위기는 기회라고 했던가? 어쨌든 소비자들이 다시 가솔린차를 찾고, 또 고려하는 때다. 하지만 일본에서 인기가 많은 하이브리드 라인업 부재는 아쉽다. 혼다가 일본 외 지역에서 HR-V 하이브리드의 판매를 전혀 계획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향후 검토 정도는 하겠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 여전히 ‘차 안 팔려도 괜찮아. 오토바이 많이 팔리는데 뭐….’라는 생각?
‘기술의 혼다’답게 엔진기술력은 의심할 필요가 없다. 논농사에 필수인 양수기나 모터보트의 엔진으로 더 유명한 회사가 아니던가. 자동차용 엔진기술 이름은 이름마저 어여쁘다. ‘어스 드림 테크놀로지’(Earth Dream Technology). 요즘 같은 때는 더더욱 지구를 생각하자. 6천500rpm에서 최고출력 143마력을 발휘하는 엔진은 밸런스가 좋다. 힘의 분배가 적재적소에 이뤄진다. 4천300rpm에서 내는 17.5kg·m의 최대토크는 디젤엔진에 익숙한 사람에게는 분명히 약하게 느껴질 거다. CVT와의 연계는 마치 다이내믹 듀오다. 속도를 높여 가는 일에 있어 일반 자동변속기와 큰 차이가 없다. 즉각적인 반응은 아닐지언정 그렇다고 답답하지도 한다.
단순명료. 군더더기 없음
소형 SUV 홍수다. 소비자들은 선택의 자유로움에 비명을 질러도 좋을 때다. 현대자동차조차 소형차 엑센트를 없애고, 이를 대체할 소형 SUV를 만든다고 하니까. 반대급부로 메이커 혹은 제품 사이의 경쟁은 어느 때보다 치열하다. 이미 낙제점을 받은 차도 수두룩하다. 사실 막 발을 내딛은 HR-V도 상황은 녹록치 않다. 그래도 베스트셀러는 아니어도 스테디셀러를 다수 보유한 혼다의 뚝심을 믿어봐야 하나? HR-V 역시 스테디셀러의 유전자가 다분하기에.
HR-V, 넌 도대체 누구냐?
중국형 HR-V ‘빈치’
일본에서 HR-V(베젤)는 공전의 베스트셀러. 지난해 7만1천21대로 일본시장 자동차판매 전체 9위다. SUV로는 최고순위.
2013년 북미국제오토쇼에서 어번 SUV 컨셉트(URBAN SUV CONCEPT) 발표. 동시에 일본에서는 양산형 이름 ‘베젤’ 결정.
2013년 11월 도쿄모터쇼에서 베젤 양산형 세계최초 공개.
2014년 4월 뉴욕모터쇼에서 미국버전 HR-V 발표. 생산은 멕시코. 베이징모터쇼에서는 중국판 ‘빈치’ 공개.
2014년 10월 브라질버전 HR-V 발표.
2014년 일본 SUV 신차 판매 역대 최고기록 달성. 10만479대.
2014년 아르헨티나 공장에서 남미판 HR-V 생산.
2016년 7월 한국 출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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