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기 | 메르세데스-벤츠 SLK 200 시승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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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전동식 하드톱. 메르세데스-벤츠의 3세대 SLK는 근육질의 디자인과 핸들링 성능의 향상이 특징이다. 단연 돋보이는 스타일링은 도로에서 많은 시선을 받는다. 1.8리터 터보는 SLK에 와서 한층 스포티한 소리를 내고, 저속에서 움직일 때는 얼핏 포르쉐 같기도 하다. 코너에서 팽이처럼 돌아가는 핸들링 성능은 SLK의 가장 큰 매력이다. 고속 안정성이나 승차감은 벤츠에 거는 기대치를 충분히 만족한다.
지금 와서 보면 SLK의 개발은 벤츠의 탁월한 선택이었다. SLK는 현대적인 전동식 하드톱 시장을 열었고 여전히 벤츠 라인업에서 가장 끌리는 모델 중 하나로 자리 잡고 있다. 작고 날렵하고 예쁜 SLK에 전동식 하드톱까지 있었으니 많은 관심을 받는 게 당연했다. SLK는 벤츠의 연령층을 낮추는데도 한 몫 했다. 초대 모델이 제시했던 매력은 여전히 유효하다.
SLK 이후 본격적으로 프리미엄 브랜드의 오픈 모델 시장이 활성화되기 시작했다. 특히 쿠페와 오픈카를 동시에 소유할 수 있는 전동식 하드톱의 매력이 결정적이다. SLK가 나오면서 전동식 하드톱의 시장 자체도 커졌을 뿐만 아니라 제조 업체까지 관심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지금은 벤츠뿐만 아니라 대단히 많은 수의 메이커들이 전동식 하드톱 모델을 내놓고 있다. 그리고 전동식 하드톱이 발전하면서 조각수도 늘어났고 초창기에 비해 개폐 시간도 빨라지고 있는 게 특징이다. 소프트톱보다는 작동이 늦지만 그것을 상쇄할 만큼의 장점이 많은 게 전동식 하드톱이다.
SLK는 ‘Sport Light Kompact’를 뜻한다. 3세대로 진화했지만 여전히 기본 테마를 지키고 있다. R170과 R171처럼 2조각으로 분리되는 전동식 메탈 루프를 채용하고 있는 것도 같다. 그리고 플랫폼은 C 클래스와 공유하고 있다. 서스펜션과 스티어링 기구, 다수의 파워트레인을 C 클래스와 같이 쓴다.
성격상 SLK가 많이 판매되는 모델은 아니지만 그래도 꾸준하다. 1996년 데뷔한 이후 2세대까지의 누적 판매가 55만대를 넘는다. 특히 미국에서 인기가 좋다. 최근 10년 동안 연 6~7천대 사이의 판매를 보이고 있으며 2001년, 2005년, 2007년에는 연간 판매가 1만대를 넘었다. 작년 판매는 부진했지만 신형이 투입됐으니 다시 반등할 게 확실하다.
3세대 SLK는 스타일링의 극적인 변신과 함께 다수의 신기술들이 소개되고 있다. 세계 최초로 선보이는 기술로는 MSC(Magic Sky Control)가 있다. 뉴 SLK의 기본형에는 차체 색상과 동일한 루프, 상위 트림은 틴팅 루프, 그리고 고급형에는 파노라믹 전동식 루프에 MSC가 적용된다. MSC는 평상시에는 투명하지만 운전자가 버튼을 조절해 투명도를 바꿀 수 있다. 아쉽게도 국내 첫 출시 모델인 SLK 200 블루이피션시에는 이 장비가 빠져있다.
EXTERIOR
스타일링은 극적으로, 하지만 예상할 수 있는 수준으로 변했다. 2세대까지의 디자인에 비해 3세대는 완전히 남성스럽다. 전반적으로 CLS 같은 느낌이 물씬하고 각도에 따라서는 작은 SLS로 보이기도 한다. 확실한 건 지붕을 열지 않아도 도로에서 존재감이 대단한 것이다.
3세대는 컴팩트를 지키기 위해 꽤 고심한 것으로 보인다. 2,430mm의 휠베이스는 지키지만 전장과 전폭을 늘렸다. 구형에 비해 전장은 31mm, 전폭은 33mm가 늘어났다. 그 늘어난 것보다 차는 더 커 보인다. 전면에서 보면 길쭉한 보닛이 상당히 두드러진다. 전장 4,140mm 차로서는 큰 느낌으로 다가온다.
실루엣은 롱 노즈 숏 테일이라는 고전적인 테마를 지키고 있다. 1950년대에 나온 190 SL의 디자인을 현대적으로 재해석 했다는 벤츠의 설명이다. 옆에서 보면 운전자의 엉덩이가 뒷바퀴에 올라탈 것만 같다. 외관의 디테일은 모두 큼직하다. 좌우로 늘어난 그릴하며 헤드램프, 보닛과 펜더의 벤트까지 크다. SLK에는 풀 LED 헤드램프도 적용된다. 전폭이 늘어남과 함께 전면 투영 면적도 늘어났지만 공기저항계수는 오히려 0.30으로 감소했다.
SLK가, 전동식 하드톱이 좋은 이유 중 하나는 톱을 씌었을 때도 예쁜 것이다. 소프트톱은 벗고 있으면 멋지지만 덮으면 부자연스러울 때가 많다. SLK는 쿠페나 로드스터 모두 괜찮다. 앞만큼은 아니지만 뒷모습도 위압감이 풍긴다. 엔진에 비해 머플러도 꽤 크다.
17인치 알로이 휠의 디자인은 옥에 티다. 외관 디자인에 비해 휠의 모양새가 다소 평범하다. 타이어는 콘티넨탈의 콘티콘택트3, 사이즈는 앞-225/45R, 뒤-245/40R이다. 엔진에 맞는 수수한 사이즈다.
INTERIOR
SLK 같은 차의 실내는 스포티하면서도 고급스러워야 한다. 벤츠인데 스포티하기만 해서는 안 된다. 3세대 SLK는 이를 충실히 표현하고 있다. 벤츠의 세단에 앉은 것 같은 고급스러움을 여기저기서 느낄 수 있지만 메탈의 사용 비중이 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좀 더 확실한 세단과의 차별화가 필요하지 않나 싶다.
예를 들면 센터페시아와 기어 레버는 C 클래스와 같다. 센터페시아는 다른 벤츠를 타고 있다면 곧바로 손쉽게 작동할 수 있다. 조작 편의성 자체도 좋은 편이다. 공조 장치는 바람 세기와 온도 조절은 벤츠 특유의 커다란 다이얼 방식이며, 바람의 방향을 선택하는 버튼의 크기도 크다. 공조 장치 위에는 시트 히팅과 에어스카프, ESP 버튼 등이 나열돼 있다.
기어 레버 역시 벤츠 특유의 디자인이다. 기어 레버에서 별도의 수동 모드 없이 옆으로 젖히면 곧바로 S 모드, 한 번 더 치면 수동 전환 되는 타입이다. C 클래스의 경우 변속기 모드에서 E와 S만 있지만 SLK는 수동 모드인 M이 추가됐다. 시프트 패들이 있기 때문에 레버로 수동 조작할 일은 없지 않을까 싶다.
실내에서 가장 눈길을 모으는 부분은 다름 아닌 송풍구이다. 어딘지 벤츠 엠블렘을 연상시키는 4개의 송풍구가 실내 분위기를 살리고 있다. 근래에 본 송풍구 중 가장 멋진 디자인이다. 송풍구를 보고 있노라면 바람개비처럼 돌아갈 것만 같다. 실내 재질은 벤츠에 기대할 수 있는 수준이다. 벤츠의 커맨드 시스템은 여전히 아이드라이브나 MMI에 비해 기능적인 면에서 열세에 있다.
계기판은 간단한 구성이다. 2개의 큰 원에 속도계와 타코미터가 배치돼 있고 가운데에는 커다란 액정이 마련된다. 액정을 통해서는 트립 컴퓨터를 비롯한 다양한 정보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액정에 뜨는 폰트는 별로 예쁘지 않다. 야간에는 속도계와 타코미터의 바늘이 빨간색으로 바뀐다.
3스포크 디자인의 스티어링 휠에도 메탈 트림이 가득하다. 하단이 깍인 D 컷 스타일의 운전대는 그립이 대단히 좋고 보기에도 스포티하다. 시프트 패들도 가운데 손가락에 자연스럽게 닿는다. 다른 벤츠처럼 방향지시등은 새끼손가락으로 조작해야 한다. 틸팅과 텔레스코픽은 모두 전동식이다. 밝은 색상의 가죽 시트는 쿠션이 탄탄하고 몸을 잡아주는 느낌도 대단히 훌륭하다. 에어스카프 기능이 있는 SLK의 시트는 척 보기에도 값비싸 보인다.
타이트한 실내지만 수납 공간은 여기저기 마련돼 있다. 동반자석 쪽과 시트 뒤 하단에 그물이 있고 시트 사이에는 주머니도 마련된다. 이마저도 모자란다면 뒤 선반을 사용해도 된다. 쿠페 시 트렁크 용량은 335리터로 C 세그먼트 해치백 수준은 된다. 대신 톱을 수납하면 225리터로 줄어든다.
POWERTRAIN & IMPRESSION
파워트레인은 184마력의 힘을 내는 1.8리터 터보와 7G-트로닉 플러스의 조합이다. 184마력은 C와 E 클래스에도 탑재되는 유닛이며 1.8리터 터보는 204마력 버전도 나온다. 이 엔진의 SLK 200 블루이피션시는 라인업의 가솔린 모델 중에서는 가장 연비가 좋다.
C, E 클래스에서 경험했고 엔진 사양도 완전히 같지만 SLK에서는 느낌이 꽤 다르다. 같은 엔진의 C, E 클래스보다는 한층 활기차고 빠르다. 작고 가볍기 때문에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지만 세팅이 좀 다르다. SLK에서는 기계적인 엔진 사운드가 두드러진다. C, E 클래스에서도 엔진 사운드가 꽤 좋았지만 SLK는 더 하다. 저속에서 무겁게 움직이는 감각과 소리는 PDK의 포르쉐가 얼핏 연상되기도 한다.
무거운 가속 페달만큼이나 초기 터치에 따른 반응은 둔하다. 하지만 약간만 힘을 더 주면 곧바로 반응이 달라진다. 터보가 돌아가기 시작하면 반응이 상당히 빠르고 나름 시원하게 가속된다. 0→100km/h 가속 시간은 7초인데, 배기량이나 출력을 생각하면 준수하다. SLK인 것을 감안하면 특별하진 않지만 엔트리 모델인 것을 생각할 필요가 있다.
가속은 꾸준하게 진행된다. 2~4단의 최고 속도는 80, 128, 170km/h로 여기까지는 시원하게 가속된다. 5단으로 넘어가면 가속이 둔화되는데, 변속되는 220km/h 전에는 다소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러니까 제원상 최고 속도는 6단에서 나온다. 5단까지 가속되는 걸로 봐선 6단에서 추가적인 17km/h가 나오기 어려울 것 같지만, 고속빨의 벤츠이니 안 달려봤어도 충분히 믿을 만하다.
제 2자유로는 차는 별로 없지만 직선이 별로 없어 고속 주행에 최적화된 도로는 아니다. 서킷으로 치면 고속 코너의 연속인데, 가속 페달을 바닥까지 밟고 다닐 수 있는 차가 드물다. SLK는 이곳에서 시승한 차 중 가장 자세가 안정적이고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는 시간도 길다. 제원상 최고 속도 부근에서도 흔들림 없이 코너를 돌아나간다. 이런 걸 명불허전이라고 한다. 200마력도 안 되는 저출력임에도 고속 주행에 적합한 전형적인 케이스다.
7G-트로닉 플러스는 여전히 약간의 울컥댐은 있지만 SLK에서는 흠이 되지 않는다. 그것보다는 성능적인 면이 더 부각된다. SLK의 7단 변속기는 E 모드에서도 회전수 보정을 해주면서 스포티한 드라이빙을 지원한다. 신호등을 만나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기어가 내려가면서 가볍게 회전수가 상승한다. S 모드는 일단 반응 자체가 예민해진다. S 모드에서는 굳이 수동 조작을 안 해도 될 정도다. 그리고 기어를 내리고 회전수를 보정하는 게 더욱 적극적으로 변한다.
전동식 하드톱은 20초 만에 개폐가 완료된다. 22초에서 2초가 줄었다. 로드스터 시승이니 당연히 톱 열고 달려봐야 한다. 톱을 열 때 지나가던 사람들이 뭐야 라는 눈길로 쳐다봤지만 사실 열고 달릴 만하다. 빨리 달리면 비올 때도 비 거의 안 맞는다.
톱을 열고 15분 정도 고속 주행했다. 깜박 잊고 에어스카프는 작동 안 시키고 히터만 3단으로 틀었는데, 방금 말한 것처럼 달릴 만하다. 영하 2도였는데도 생각보다 춥지 않다. 유일하게 추운 부위는 왼손이었다. 이상하게 왼손에만 차가운 바람이 불어 닥쳐서 15분 달리다 톱을 닫았지만 이것도 장갑으로 해결될 문제다. 한겨울의 오픈카 드라이빙은 시내 주행보다는 차라리 빨리 달리는 게 더 낫다. 선풍기 날개처럼 생긴 에어가이드는 손으로 펼치면 된다.
핸들링 특성은 부분 변경된 C 클래스와 느낌이 비슷하다. 대신 차가 더 작고 스포티한 세팅이기 때문에 훨씬 민첩하다. 코너를 돌 때는 뒤는 고정된 상태로 뱅글 돈다고 해야 할까. 긴 코너를 돌아갈 때는 그 진가가 더욱 발휘된다. ESP가 재미를 살려가면서 출력을 조절해준다. 미끄러운 90도 코너에서는 좌우로 휘청대기도 하지만 이 역시 컨트롤 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 내가 운전 잘하는 걸로 착각할 수 있다. 그러면서도 승차감이 정말 탁월하다.
SLK는 강한 섀시에 정평난 벤츠의 서스펜션, 가변 스티어링 같은 기술이 운동 성능을 보조한다. 그리고 과거부터 써오던 가변 캐스터도 있다. 멈춘 상태로 운전대를 돌리면 차체가 움직이는 게 보인다. 사이드미러를 통해서도 확연하게 보인다. 다른 차들도 이렇긴 하지만 벤츠는 유독 많이 움직인다. 보닛을 열고 보면 마운트가 조향에 따라 기울어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3세대 SLK는 동적인 운동 성능에서의 발전이 두드러지고 감성적인 면에서도 한 단계 발전했다. 엔진의 사운드는 아날로그적인 느낌도 받게 한다. 겉으로 확연히 부각되는 스타일링도 좋지만 주행 성능에서 더욱 메리트를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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