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서도 통할 전형적인 미국 SUV, 혼다 파일럿 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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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서 가솔린 SUV의 인기는 그다지 높지 않다. 특히 대형급 가솔린 SUV의 인기는 더 낮다. 한마디로 국내 환경과 정서에는 맞지 않는 것. 혼다는 이 시장에 파일럿이라는 가솔린 SUV를 판매하고 있다. 과연 잘 팔릴까? 다양한 테스트를 통해 성공 가능성을 살폈다.
파일럿은 북미시장을 겨냥해 제작된 모델이다. 생산도 혼다의 미국공장에서만 한다. 하지만 현재의 3세대 모델은 2015년 한해 동안 13만 6천대 이상 판매되며 꾸준한 인기를 누리는 중이다. 경쟁모델인 닛산 패스파인더의 판매량이 8만 2천대 수중이니 꽤나 괜찮은 성적이다.
기존모델이 다소 맹한 표정이었다면 3세대 모델은 한층 세련된 모습이다. 차체는 크지만 비율이 좋아 부담스럽다는 느낌도 적다. 물론 가까이서 대면하면 정말 크다. 헤드램프 하나도 수박만하다. 작아 보이는 사이드미러도 실제로 상당한 크기로 만들어졌다. 하지만 매끄러운 디자인 덕분에 공기저항을 20% 가량 감소시켰다고 한다.
특히 3세대로 변경되며 크기가 한층 커졌다. 차체도 80mm 길어졌는데 이중 휠베이스가 45mm 가량 확장됐다. 하지만 이리 큰 차체를 가졌음에도 미국에서는 중형급 SUV로 분류된다. 미국에서 풀사이즈 SUV(대형 SUV)로 분류되려면 길이가 5m를 넘어야 한다. 파일럿은 중형 SUV중 가장 큰 4.9m 수준의 차체길이를 가졌다.
크기가 큰 만큼 실내는 광활하다. 2열은 준대형급 세단 부럽지 않은 수준이다. 무엇보다 3열 공간이 상당히 넓다. 2열 시트를 최대한 뒤로 밀어 넣은 상태에서도 3열시트에 성인이 앉을 수 있을 정도다. 2열시트를 조금만 양보해 앞으로 당기면 3열 공간은 최소 경차 이상급의 뒷좌석 공간까지 확장된다.
3열시트로 드나드는 것도 편하다. 2열 시트에는 “2열 워크 인 스위치”가 있는데, 이 버튼을 누르는 것 만으로 3열 출입 공간이 만들어진다. 들어갈 때나 나올 때 모두 이 스위치만 누르면 된다.
각종 수납공간도 상당하다. 센터콘솔 박스에는 노트북이 들어갈 정도다. 도어 포켓에는 컵홀더가 2개씩은 있다. 심지어 3열석에도 한 쌍의 컵홀더가 마련됐다. 미국 시장을 노리는 SUV 다운 구성이다. 미국 시장은 컵홀더를 중시하기 때문이다.
단점이라면 내비게이션이다. 8인치 센터페시아 모니터 자체는 매우 밝고 선명한 화질을 보여준다. 조작성 부분에서도 아쉬움이 없다. 한글화까지 잘 돼있다. 하지만 내비게이션을 작동시키기 위해 좌측 “Back” 버튼을 길게 눌러야 한다. 임의로 연결시킨 시스템이기 때문에 별도의 작동법이 필요한 것.
전체적으로 매우 만족스러운 구성이다. 차가 커서 부담스러울 수 있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큰 차를 좋아하지 않았던가? 의외로 괜찮은 모습에 주행감각이 더욱 궁금해진다.
시동을 걸어도 실내는 잔잔하다. 가솔린 모델이기 때문이다. 분명 디젤과는 차별화된 정숙성과 진동이다. 아이들 정숙성을 확인해 보니 약 40.5dBA의 소음 수준을 나타냈다. 체감상으로 고급세단과 크게 다르지 않을 정도다.
주행을 시작하며 가속페달을 밟는다. 파일럿은 스르륵 미끄러지듯 움직인다. SUV에서 이렇게 고급스러운 주행감각을 느낄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가다서다를 반복해도 스트레스가 크지 않다. 운전을 하는 것이 편하다는 것. 디젤의 시끄러운 소음과 진동을 참아가며 가속페달을 밟아도 굼뜬 반응을 보이는 디젤과 분명히 차별화 되는 요소다.
한가한 고속도로를 주행하면 편안함이 극대화된다. 왜 미국사람들이 가솔린 엔진의 대형 SUV를 선호하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시속 80km의 속도로 주행하는 상황에서 측정된 소음 역시 59.5dBA로 보편적인 승용차 평균보다 소폭 낮았다.
편의 및 안전장비도 많다.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물론 스티어링휠을 작동시켜 차선을 유지해 주는 보조 시스템도 탑재됐다. 오른쪽 방향지시등을 작동시키면 영상으로 사각지대를 보여주는 레인 워치 기능도 갖춰졌다. 어코드가 탑재되던 장비다. 이는 파일럿과 같은 큰 차량에게 매우 유용하다. 방향 지시등을 작동하지 않더라도 버튼을 눌러 활성화시킬 수도 있다.
하지만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과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이 뭔가 아쉽다. 우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딱 110km/h까지만 설정할 수 있다. 여기에 작동조건도 시속 50km 이상부터다. 이 이하로 속도가 하락하면 자동으로 해제된다. 정차 및 재출발은 지원하지 않는다. 최근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은 시속 20~180km까지 설정할 수 있고, 다수의 차량들이 정차 및 재출발까지 지원해 나가는 추세다. 이와 비교했을 때 파일럿의 시스템은 반쪽 짜리 느낌이 크다.
차선유지 보조 시스템은 적극적으로 개입하는 타입은 아니다. 즉, 자율주행과 같은 개념이 아니라 안전한 주행을 돕는 보조 장치라고 이해할 필요가 있겠다.
고급스러운 주행감각과 다양한 장비를 확인했으니 본격적인 성능 측정에 나선다. 먼저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소요된 시간부터 측정했다. 결과는 7.2초로 닛산 패스파인더의 8.0초, 포드 익스플로러 2.3 에코부스트의 8.8초를 크게 앞섰다. 수치를 감안하지 않더라도 파일럿은 분명 좋은 가속력을 보여주고 있다.
또한 출력과 토크에서 파일럿이 우세하다. 직분사 방식으로 변경된 새로운 V6 3.5리터 엔진은 284마력과 36.2kg.m를 발휘한다. 참고로 패스파인더는 이보다 낮은 263마력과 33.2kg.m의 토크를 갖는다.
무게차이도 적지 않다. 파일럿의 중량을 직접 측정한 결과 1,915kg으로 나타났다. 패스파인더의 경우는 2,056kg였는데 약 140kg의 무게차이는 적지 않은 수준이다.
주행서 느껴지는 가속감은 상당하다. 잘나간다는 느낌만 있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잘나간다. 마력감이 좋기 때문에 엔진회전수가 상승하는 만큼 속도 역시 탄력적으로 올라간다. 시속 180km까지도 금방 오르내릴 수 있는 능력을 보였다.
엔진 회전질감도 좋다. 직분사 엔진이지만 거친 반응을 보이지 않아 좋다. 하지만 엔진회전수가 6천rpm 가까이 이르렀을 때부터 진동과 거친 소음이 느껴지기 시작한다. 마치 디젤엔진과 같은 느낌이랄까? 엔진회전수를 너무 높게 사용하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할 때까지의 제동거리는 38.8m 수준이었다. 최단 기록을 제외하면 사실상 39m대다. 테스트가 반복되며 약 40m대까지 늘어났지만 차량 등급을 생각했을 때 준수한 제동력이다. 참고로 르노삼성의 소형급 SUV인 QM3가 기록한 최단거리가 44m 내외였다. 물론 이는 제동거리가 긴 편에 속한다.
다인 승차 환경과 중량물의 짐을 실어야 하는 SUV 특성상 1회성 제동력보다 부하가 걸린 시점에서도 안정적인 제동력이 발휘되는 것이 중요하다. 그런 측면에서 파일럿의 제동력은 충분히 만족스럽다.
SUV인 만큼 다양한 주행조건에서도 안정적으로 주파할 수 있는 기능들을 지원한다. 지능형 지형관리 시스템(Intelligent Traction Management)은 눈길이나 진흙길, 모랫길과 같은 상황에서도 최적의 그립을 발휘하도록 돕는다. 물론 디퍼렌셜 락 체결과 같은 기계적인 시스템과 비교하면 한계가 따르지만 도심형 SUV로는 충분하다. 하지만 운전자가 버튼 조작만으로 차량의 주행 특성을 손쉽게 바꿀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한 강점이다.
i-VTM4라는 이름의 4륜 시스템은 전후 구동력 배분은 물론 후륜 좌우측 바퀴에 구동력을 전달하는 기능도 지원한다. 구성적으로는 오프로드보다 온로드 성격이 강조된 시스템이다. 혼다는 응답성 46%, 토크 용량 20% 가량을 향상시켰다고 한다.
테스트 장소를 와인딩 코스로 옮긴다. 어떻게 보면 파일럿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주행조건이다. 하지만 차량의 주행 완성도 및 안정성을 확인하기 위해 건너뛸 수 없는 항목이다.
6단 자동변속기는 별도의 수동모드를 지원하지 않고 있다. 이러한 차 급에서 크게 의미 없을 수 있다. 하지만 없어서 사용하지 못하는 것과 있는데 사용하지 않는 것은 다르다. 또한 북미시장에서는 9단 변속기를 옵션으로 선택할 수 있는데 국내 소비자들은 이를 선택조차 할 수 없다.
하지만 변속기가 꽤나 똑똑하게 움직여준다. 와인딩 로드를 달리는데도 기어비가 나쁘지 않다. 변속 속도 역시 무난했으며 좋은 수준의 완성도를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차량에게 핸들링 성능을 요구하는 것이 무리일 수 있다. 하지만 경쟁모델보다 가벼운 무게와 혼다 특유의 감각적인 주행성능 덕분에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핸들링 성능을 보여준다. 코너링도 의외로 좋은 수준이다.
여기에는 i-VTM4 4륜 시스템도 적지 않은 영향을 주고 있다. 단순한 전 후 구동력 배분이 아니라 후륜 좌우 구동력 배분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덕분에 속도가 높아도 안정적으로 코너 탈출이 가능하다. 또한 긴 차체를 가졌음에도 리어액슬이 따라오는 느낌이 좋았다.
물론 코너링 속도 자체가 높지는 않다. 먼저 주행안전장치(VSC)의 개입이 적극적으로 이뤄진다. 본 성능을 발휘하는데 방해가 될 수 있는 요소다. 하지만 차량 성격상 문제될 내용은 아니다.
타이어는 컨테넨탈의 크로스컨택 LX 스포츠 모델을 사용한다. 뛰어난 그립으로 노면을 움켜쥐고 달리는 성격과는 거리가 멀다. 대신 소음 발생이 적고 일반적인 SUV들이 채용한 타이어 대비 무난한 성능을 보인다는 점이 좋다.
가솔린 SUV인만큼 연비 부분의 경쟁력은 떨어진다. 시속 100~110km의 속도로 주행하는 환경서 보여주는 연비는 약 12.2km/L 정도였다. 속도를 시속 80km로 줄여야 약 14km/L 수준의 연비를 얻을 수 있다. 평속 15km로 답답한 도심을 달릴 때는 약 6km/L의 연비를 기록했다. 어코드 2.4의 경우 국산 2.0 중형세단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 연비가 특징이었다. 파일럿 역시 1.9톤 이상의 무게와 3.5리터급 엔진을 채용한 것으로는 좋은 효율을 보였다. 참고로 CVT 변속기를 사용하는 닛산 패스파인더의 경우 동일 조건서 약 1km/L 높은 연비를 나타낸 바 있다.
파일럿과 같은 모델은 혼자보다 여럿이 함께할 때 빛을 볼 수 있는 차량이다. 이렇게 고급스럽고 편안한 느낌을 전달하는 SUV도 드물다. 파일럿의 테스트 후 왜 북미의 매체들에게 극찬을 받았는지 알 수 있게 됐다.
가격은 5,390만원으로 조금은 높게 느껴진다. 모델체인지 이후 480만원이나 올랐다. 하지만 닛산 패스파인더가 5,240만원, 포드 익스플로러 3.5 모델이 5,450만원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나쁘지는 않다. 정확히는 타사들과 더불어 필요 이상의 가격을 부른다는 느낌이 크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경쟁차에 없는 액티브 세이프티와 2열 워크인 스위치, 각종 사용자 친화적 편의장비를 갖추고 있다. 더불어 주행감각 면에서는 단연 으뜸이다.
또 있다. 이 급에서 미국 IIHS 충돌테스트를 TSP+로 통과한 유일한 모델이기도 하다. 닛산의 경우 3세대 무라노가 TSP+ 등급을 받았지만 아직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다.
파일럿은 분명 좋은차다. 단점이라면 억지로 연결한 내비게이션 정도뿐이다. 가격이 소폭 높아 보이지만 포드 익스플로러와 비교해보면 훨씬 저렴하다. 하지만 지난 2월 판매량 기준, 익스플로러는 305대, 파일럿은 42대만 판매됐다. 결국 혼다가 만든 미국형 가솔린 SUV에 대한 소비자 지지율이 낮다는 반증이다. 한 달에 42대만 팔리기에 파일럿은 아까운 차다. 결국 혼다 코리아가 분발해야 한다. 혼다코리아의 낮잠이 너무 길다. 이제 일어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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