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르쉐 박스터&타르가, 비키니와 래시가드 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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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붕이 열리는 차 두대가 앞에 서 있다. 단 두대다. 이거 아니면 저거다. 브랜드도 포르쉐로 같다. 결정하기 쉬운 문제처럼 보이는데 생각보다 간단하지 않다. 열개 중에 하나 고르는 것도 아니고 두대 중 하나를 골라야 하는데 머리가 터질 듯 복잡하다. 이미 뇌의 연산작용은 과부하 걸린 CPU마냥 버벅댄다.
포르쉐 718 박스터와 포르쉐 911 타르가 4S. 시작 가격은 박스터가 8,270만원이고 타르가 4S가 1억7,630만원으로 두배 이상 벌어진다. 당장 구입할 차는 아니니 가격 차이는 무시하기로 하자. 그러면 두대 중에 어떤 차를 고를까. 배기량과 기통수도 다르고 굴림 방식도 차이가 난다. 차급도 다르고 엔진 위치도 같지 않다. 결정적으로 지붕이 다르다. 지붕재질은 소프트톱으로 같지만 타르가는 절반만 열리는 방식이고 박스터는 완전히 열린다.
열린다는 사실만 같을 뿐 성능이나 톱 구성 등은 다르다
지붕이 열리는 특성이 두 차의 공통 분모이므로 지붕부터 파고들어 보자. 박스터는 간단하다. 통상적인 소프트톱이다. 요즘 하드톱이 늘고 있지만 멋으로 따지면 아무래도 고풍스럽고 아날로그 감성 가득한 소프트톱이 앞선다. 박스터는 미드십이라 엔진이 가운데 있다. 좌우 대칭이 맞아떨어지기 때문에 한가운데 톱이 봉긋 솟은 모습이 매우 자연스럽다. 여닫히는 시간을 재보니 여는데 8초, 닫는데 9초 걸린다. 굉장히 빠르다.
타르가는 얼핏 봐서는 지붕이 움직일 것 같지 않다. 보디 가운데 두툼한 은색 프레임을 중심으로 뒷부분은 유리다. 톱은 앞좌석 윗부분만 살짝 가릴 뿐이다. 옆에서 보면 쿠페 라인이 그대로 남아 있다. 쿠페와 카브리올레의 중간 형태다. 좋게 말하면 장점의 융합이지만 다른 시각으로 보면 같이 시승한 기자 말처럼 ‘변태’ 같은 차다.
여닫히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만 작동 방식은 매우 신기하다
뒷부분 유리 덕분에 쿠페보다 시야는 좋다. 여닫히는 시간은 길다. 각각 18초 걸린다. 성질 급한 사람은 기다리다 속 터질 만하다. 열리고 닫히는 과정은 ‘테크닉 쇼’다. 손바닥 만한 톱을 열기 위해 뒤의 커다란 유리통 부분을 들었다 놨다 한다. 상당히 비효율적으로 보이지만 이런 게 지붕 열리는 차의 묘미 아니겠는가.
신기함에 끌려 타르가 4S에 먼저 올랐다. 시동키를 돌리니 ‘쿠르릉~’ 하는 소리가 예사롭지 않다. 수평대향 6기통 엔진은 얼마 전 터보로 바뀌었다. 배기량은 3.0L지만 출력은 420마력에 토크는 51.0kg·m까지 올라간다. S 모델이라 기본형보다 출력은 50마력, 토크는 5.1kg·m 높다. 1,700rpm부터 최대토크가 치고 올라오기 때문에 가속이 매섭다. 고속에서도 지치는 기색 없이 속도계 바늘을 빠르게 위로 밀쳐낸다. 터보 래그는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터보 엔진과 PDK 조합은 꽤 만족스럽다
7단 PDK 변속기는 변속이 정말 빠르다. 회전계 바늘이 검객의 칼자루마냥 툭툭 끊어지듯 빠르게 오르내린다. 기어 단수가 차례로 움직여야 한다는 ‘순차적’ 개념은 잊는 게 낫다. 차의 상태에 따라 여러 단이 순식간에 바뀌기도 한다. 반응 빠른 엔진과 변속 빠른 변속기가 만나 가속이 상당히 경쾌하다. 이전 자연흡기는 쥐어짜면서 기를 끌어모으는 느낌을 줬는데, 터보는 초반부터 여유롭게 막강한 힘을 쏟아붓는다.
톱을 열고 나서 신비감은 사라졌다. 열기 전에는 뒤쪽에 유리로 된 탄탄한 바람막이가 있어서 일반 카브리올레보다 바람도 덜 들이치고 조용할 줄 알았다. 왠걸, 속도가 그리 높지 않을 때도 바람 소리가 크고 거칠게 바람이 몰아쳤다. 지붕이 열리는 차의 운치와 낭만보다는 특이한 구조와 오픈 방식 때문에 눈으로 감상하는 차 성격이 앞선다.
타르가는 구조가 독특하다. 유리로 구현한 쿠페 라인이 은근히 묘한 멋을 풍긴다
톱에 대한 환상은 사라졌지만 911이라는 이름값은 여전하다. 운전의 재미는 기가 막히다. 주행 모드는 노멀, 스포츠, 스포츠 플러스, 개별 설정으로 나뉜다. 스티어링 휠 한쪽에 모드 변환 다이얼을 달아놓아서 모드 변환이 편하다. 각 모드는 차이가 확실해서 도로 상황이나 취향에 맞게 달리면 된다.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서는 터보가 일찍 터진다. 계속해서 부스트가 작동하는 상태를 유지한다. 발가락 끝만 살짝 까닥거려도 맹렬하게 튀어 나간다. 다이얼 한가운데는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이 달려 있다. 누르면 순간가속을 위한 최적의 상태로 성능이 강화된다. 게임에서 주인공이 아이템을 먹는 순간 몸에서 빛을 뿜어내며 몇배속으로 움직이는 장면이 오버랩된다. 이 기능은 20초 동안 유지된다.
발가락 끝만 까딱거려도 맹렬하게 튀어 나간다
4S는 네바퀴굴림이다. 계기판에 구동력 배분 모니터 화면이 뜨는데 평상시에는 주로 뒷바퀴를 굴린다. 급격한 자세 변화에도 앞쪽으로 그리 많은 힘을 보내지 않는다. 가능한 뒷바퀴굴림 특성을 유지하려고 한다. 노멀과 스포츠 모드에서는 절대안정을 추구한다. 빈틈을 주지 않고 팽팽한 긴장 상태를 유지한다. 스포츠 플러스에서는 극한 속의 여유를 보인다. 살짝 빈틈을 만들어 운전자를 끌어들인다. 하체도 살랑살랑 미끄러지는데 마치 얼음판에서 스케이트를 신고 있는 느낌이다. 스케이트 선수라도 얼음판에서 걸을 때는 슬쩍슬쩍 미끄러진다. 하지만 막상 경주에 돌입하면 빠른 속도로 자유자재로 움직인다. 4S가 그렇다.
터보 엔진이지만 레드존은 7,400rpm에서 시작된다. 가속할 때 고회전대 엔진에서 들을 수 있는 특유의 날카로운 마찰음이 귀를 자극한다. 뒤이어 방방거리는 배기음이 흥분지수를 높인다. 자연흡기와 터보의 사운드가 같을 수는 없지만 음색만 다를 뿐 자극 강도는 예전과 비슷하다.
실린더가 줄어들었다고 무시하면 큰 코 다친다
718 박스터에 올라탔다. 기본형이라 S인 타르가와는 성능 차이가 더 두드러진다. 수평대향 4기통 2.0L 엔진은 최고 출력이 300마력이고 최대토크는 38.8kg·m다. 타르가보다 수치에서 한참 밑이지만 2.0L 엔진 중에서는 상위권이다. 4기통이 아무리 용을 써도 6기통을 따라잡을 수는 없기에 타르가 4S에 비할 수는 없지만, 튀어나가는 맛은 나름 짜릿하다. 초반 가속보다는 중고속에서 토크로 밀어붙이는 느낌이 경쾌하다.
과거 박스터는 출력보다는 미드십 구성에 따른 운전의 재미로 타는 차였지만 이제는 힘의 묘미도 함께 누리는 차라고 할 만하다. 350마력 박스터 S라면 911이 부럽지 않을 수도 있지 않을까 추측해본다. ‘형만한 아우 없다’는 소리는 이제 집어치울 때가 됐다.
귀를 멍멍하게 만드는 타르가를 타다가 박스터를 타니 얌전하기 그지 없다. 옆사람 목소리도 듣기 힘든 헤비메탈 콘서트장에 있다가 시끄럽지만 덜 요란스러운 힙합 콘서트로 옮겼다고 할까. 박스터 기본형은 사운드 강화 기능이 없어서 소리에 대한 아쉬움이 더 크다. 하지만 아쉬움은 톱이 열림과 동시에 날아가버린다. 타르가와 달리 바람도 덜 들이치고 조용한 편이다. 타르가가 바람에 끌려다닌다면 박스터는 바람을 다스린다. 지붕 열리는 차로서 공기역학에 더 최적화된 듯하다.
지붕을 열고 달리면 속도감은 배 이상이다
출력은 타르가보다 떨어질지언정 엔진과의 교감은 박스터가 한수 위다. 엔진이 한참 뒤쪽에 있는 타르가와 달리 박스터는 중간부분, 운전자의 30cm 뒤에 있다. 등뒤에서 기계부품이 들끓고 있다는 사실은 엔진 소리와는 다른 묘한 흥분을 자아낸다. 엔진과 운전자 사이에 뒷좌석이 존재하는 911은 동물원에서 웅덩이를 사이에 두고 저 멀리 맹수를 보는 경우와 같다. 박스터는 쇠창살을 사이에 두고 맹수와 마주한 기분이 든다.
미드십 구성은 와인딩에서 진가를 발휘한다. 정교한 스티어링 반응과 중립적인 움직임 덕분에 머릿속에 그리는 라인을 그대로 따라간다. 타르가 4S도 안정성이 높지만 박스터와는 질적인 차이가 느껴진다. 타르가는 전자장비와 네바퀴굴림 등 안정성을 높이는 요소를 대거 투입해 자세를 유지하는 기분이 든다. 깨끗한 수돗물이 나오기 위해서는 취수부터 시작해 복잡다단한 과정을 거치는 것처럼 말이다. 박스터도 전자장비의 도움을 받지만, 그보다는 엔진이 가운데 있는 기계적 순수성으로 인한 자세 유지가 더 크게 다가온다. 맑은 지하수를 그대로 수도꼭지로 받아먹는 그런 기분이다.
박스터도 주행 모드는 4가지로 나뉜다. 가장 아랫급 모델에 대한 한풀이라도 하듯 스포츠 플러스 모드에 두면 아래 모드로 내려 오기가 싫다. 타르가와 마찬가지로 스티어링 휠에 모드 조절 다이얼을 뒀고 스포츠 리스폰스 버튼도 달려 있다.
사실상 두대는 기계적 특성이 많이 다르고 그에 따른 운동성능도 차이가 난다. 퍼포먼스의 표현법은 다르지만 ‘고도의 운전 재미’라는 결과는 비슷하다. 결정적 차이는 지붕에서 나온다. ‘성능+감성+오픈 효과’를 종합한 느낌은 박스터가 좀더 우세하다. 아마도 911 카레라 카브리올레였다면 결과는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센터 모니터가 화려하고 클러스터 디스플레이 정보량도 풍부하다
지붕에만 눈이 팔려 모양새는 나중에서야 찬찬히 뜯어봤다. 타르가 4S는 엔진이 터보로 바뀐 게 가장 큰 변화다. 공기 흡입구와 범퍼 디자인을 살짝 바꾸고 엔진 커버에도 변화를 줬다. 주의 깊게 살펴봐야 차이가 눈에 들어올 정도로 자잘한 변화에 주력했다.
인테리어의 품질 향상도 눈에 띈다. 센터 모니터가 화려해졌고 클러스터 하나를 차지하는 디스플레이에도 많은 정보를 표시한다. 연결성과 정보 표시 및 처리에서 만족도가 아주 높아졌다.
포르쉐 실내는 어느 모델이건 달리는데 집중하게 만든다
박스터는 변화가 크다. 6기통에서 4기통으로 줄었고 터보를 달았다. 포르쉐 전설 스포츠카의 정통성을 잇는다는 명목으로 718이라는 숫자를 앞에 붙였다. 막내 모델답게 귀여운 맛이 살짝 느껴지던 이전과 달리 날카롭고 건장해졌다. 이전 박스터는 스포츠카는 잘 달리기만 하면 된다는, 또는 운전의 재미가 탁월하니 그 외적인 요소는 굳이 신경 쓰지 않아도 된다는 느낌이 좀 들었다. 718 박스터는 운전 재미 외에 다른 요소까지도 잘나야 한다는 목적을 가지고 만든 것처럼 완성도가 아주 높다. 타르가와 마찬가지로 디스플레이를 중심으로 한 연결성 강화는 박스터에서도 두드러진다.
평범한 듯 평범하지 않는 718 박스터의 디테일
성능의 차이를 논하고 구성의 다름을 따지지만 포르쉐라는 이름을 달고 있는 이상 두 차의 우열을 가리기는 힘들다. 그저 라인업 상의 형식적인 상하구분만 존재할 뿐이다. 그럼에도 차이를 논하게 되는 것은 관점의 차이 때문이다.
도무지 식지 않을 것처럼 여겨지던 뜨거운 여름도 어느 순간 지나갔다. 바람이 제법 선선하지만 유난히 더웠던 지난 여름이 잊혀지지 않는다. 여름은 노출의 계절이다. 해변가나 워터파크에서 당당하게 속살을 드러낸다. 보는 사람도 흐뭇하다. 카브리올레의 톱도 완전히 벗겨져야 진짜 오픈카 느낌도 나고 보는 즐거움도 생기게 마련이다. 박스터는 비키니처럼 과감하게 톱을 열어 젖힌다.
지붕이 열리는 스포츠카는 ‘성능+감성+오픈 효과’가 남다르다
몇년 전부터 래시가드가 유행이다. 비키니를 즐겨 입던 여성들이 속살을 가리는 래시가드를 입기 시작하면서 해변과 수영장 풍경이 바뀌고 있다. 바라보는 이의 흐뭇함도 덩달아 사라졌고 곳곳에서 남성들의 탄식이 흘러나왔다. 타르가는 래시가드처럼 벗은 듯 벗지 않은 애매한 콘셉트다. 래시가드를 입어도 몸매는 드러난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살짝 가린 래시가드가 더 섹시하다고 말한다. 타르가 역시 래시가드 위로 드러난 몸매처럼 카레라 쿠페의 라인을 그대로 유지한다. 박스터와 타르가의 관계가 꼭 비키니와 래시가드를 닮았다. 결국 여름철 우리의 관심사는 ‘노출’이다. 자동차든 사람이든.
지붕이 열리는 포르쉐 구분하기
Porsche Spyder / Speedster (왼쪽 사진)
박스터 스파이더, 918 스파이더, RS 스파이더 등 포르쉐가 모델명에 즐겨 붙이는 스파이더는 550 스파이더를 비롯한 전설적인 포르쉐들을 상기시키기 위한 이름이다. 356에 처음 썼던 스피드스터라는 이름도 가끔 부활시킨다. 기본형보다 나지막한 앞유리와 최소화된 소프트톱으로 속도감을 강조한 게 특징이다.
Porsche 911 Targa (오른쪽 사진)
원조인 911 타르가는 한동안 외도를 하다가 돌아왔다. 993, 996, 997은 넓고 평편한 롤바와 후측면까지 통으로 연결한 뒷유리 등 이전 타르가의 특징을 발견할 수 없었다. 대형 선루프가 뒷유리 안쪽으로 겹쳐 내려가는 방식을 택했기 때문이다. 991에선 원래 모습을 되찾았다. 지붕을 탈착하는게 아니라 전동으로 소프트톱을 여닫도록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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