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라리 296 GTS…두개의 심장, 하나의 감성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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V6 터보엔진과 전기모터. 페라리 팬이라면 고개를 갸우뚱할 단어다. 296 GTB에 6기통 엔진과 하이브리드 시스템이 들어갔다는 말에 '이게 정녕 페라리인가?'라는 의심을 떨쳐낼 수 없었다.
늘 그렇듯 걱정 많은 자동차 마니아의 기우였다. 직접 경험한 296 시리즈는 두말할 필요없는 페라리 그 자체였다. 9일 경기도 용인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트랙 체험 행사에서 296 GTS를 시승했다. 쿠페 모델은 GTB, 오픈형 스파이더에는 GTS가 붙는다.
서킷에는 2대의 296 GTS가 기다리고 있었다. 두 차의 색감은 묘하게 달랐다. 하나는 페라리 정통 빨간색에 하늘색 포인트가 더해졌고, 다른 하나는 묘하게 자줏빛이 돌고 있었다. 마치 화장품 코너에 세분화된 립스틱 컬러를 연상케한다. 페라리는 쨍한 레드가 부담스러운 오너를 위해 다양한 컬러톤을 준비한다.
먼저 하늘색 리버리가 더해진 296에 올랐다. 동승한 인스트럭터는 "트랙 주행을 위한 경량화 패키지 '아세토 피오라노'가 적용됐다"라며 "그렇다 보니 실내 대부분이 카본으로 뒤덮였다"고 설명했다. 시트부터 도어트림과 스티어링 컬럼, 센터페시아까지 수많은 곳에 리얼카본이 가득하다. 슬쩍 무늬만 넣는 행위는 페라리에선 있을수 없는 일이다.
천천히 정찰랩을 달렸다. 짧은 시간이지만 차와 친해지는 준비 과정은 필수다. 잠시 톱을 열고 트랙을 달렸는데,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800마력이 넘는 괴물을 잘 다루기 위해서는 스티어링휠과 페달의 반응을 익히는데 집중해야 한다.
정찰랩을 마치고 본격적으로 달렸다. 가속 페달에 힘주기 무섭게 쏜살같이 튀어나간다. 강렬한 엔진음이 고막을 강하게 때리며 질주 본능을 자극한다. 페달 온오프를 반복하니 뒷통수가 시트에 콩콩 닿는다. 즉각적인 엔진 반응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스피드웨이에는 꽤 긴 직선 구간이 두 곳 있는데, 200km/h는 우습게 넘기는 빨간말에게는 한없이 짧게만 느껴졌다.
V6를 의심했던 스스로를 되돌아본게 된다. 가장 우려했던 '페라리의 감성'이 그대로 살아있다. 엔진음과 배기음 어느 것 하나 거를게 없다. 페라리는 새로운 6기통 엔진을 두고 '피콜로 V12'라는 표현을 쓴다. 작은 V12 라는 뜻인데, 그 의미가 너무나 잘 이해됐다. 전기모터는 몰래 거들뿐, 296 GTS는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도움을 받지 않아도 663마력을 내는 괴물이다.
코너로 진입하기 위해 강한 브레이킹을 시도했다. 6000rpm을 넘는 살벌한 다운시프팅이 수차례 이뤄진다. 개인적으로 패들 시프터로 직접 기어 단수를 바꾸는 걸 선호하지만, 갓 마주친 성난 말을 트랙에서 조련하는건 무척 부담스럽다. 그냥 오토매틱으로 맡기고 달리는 편이 오히려 편하다. 변속 속도도 무척 빠르고 운전자가 원할때 딱딱 바꿔주는 모습에 '굳이?'라는 생각도 든다.
스티어링 반응은 예민하지만 영민하다. 아주 미세한 조작에도 또렷히 반응한다. 운전자를 배려한 마진은 허용하지 않는다. 편안하게 장거리를 달리긴 글렀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애초에 이차는 GT 성향과는 거리다 멀다.
본격 주행을 마치고 피트로 복귀하는 길, 동행했던 인스트럭터가 다시 한번 톱을 열어줬다. 그제서야 푸르른 주변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시승한 날은 운이 좋게 화창한 날씨가 이어졌다. 이렇게 좋은 날 오픈톱 페라리를 타고 달리는 오너들이 부러워 배가 아플 지경이다.
이어 자줏빛이 감도는 296 GTS로 몸을 옮겼다. 아세토 피오라노 패키지가 빠진 오리지널 모델이다. 카본 대신 가죽 비율이 훨씬 많아 더 고급스러운 느낌이다. 똑같이 정찰랩으로 서킷을 한바퀴 돌았는데, 아세토 피오라노 옵션의 유무가 즉각적으로 느껴졌다. 이전에 탔던 차가 오직 트랙만을 위해 튜닝했다면, 오리지널 모델은 조금 더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페라리는 페라리다. '이게 될까?' 싶은 매서운 속도로 코너를 공략해나간다. 빠릿한 스티어링 반응도 여전하다. 앞이 보이지 않는 블라인드 코너에서도 전혀 두렵지 않았다. 막강한 카본세라믹 브레이크와 쫀득한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S 타이어가 든든히 버텨줬다.
트랙 주행을 자주 즐기는 페라리 오너에게는 아세토 피오라노 패키지를 강력 추천하겠다. 추가적인 조율이 필요 없을만큼 완벽한 세팅이다. 다만, 수천만원에 달하는 옵션 가격과 부담스러울 정도로 딱딱한 승차감이 따라온다. 차량 앞부분을 들어올리는 리프트 기능도 선택할 수 없다. 일반 도로에서 이용하려면 반드시 고려해야 할 사항이다.
짧고 굵은 트랙 시승을 마치고 인근 도로 주행에 나섰다. 쌍둥이 쿠페형 모델인 296 GTB이 달려줄 차례다. 이번에는 스티어링 휠의 드라이브 모드 버튼을 눌러 전기모드를 넣었다. 296 시리즈는 7.5kWh 배터리를 탑재한 플러그인 하이브리드다. 전기로만 무려 25km를 달릴 수 있다.
서킷을 뒤덮던 굉음이 사라졌다. 스포츠카의 상징과 같은 자동차가 아무런 소리를 내지 않고 움직인다. 기묘한 풍경이지만 머지 않은 미래에는 익숙해질 광경이겠다. 슈퍼카 브랜드들은 점차 강화되는 환경규제 속에 하이브리드 시스템으로 연명하고 있다. 여기에 e퓨얼 등 각종 대체제도 준비 중이다.
V12, V8, 자연흡기…기후변화 속에 사라져가는 존재들이다. 고성능 브랜드에겐 뼈아픈 현실이다. 그럼에도 페라리는 규제를 지키면서 소비자들의 니즈를 정확히 파악한 모델을 개발해냈다. 여기에 운전의 즐거움을 배가하는 오픈 에어링까지 더했다. 296 GTS의 등장이 반갑기만 하다. 내연기관의 역사가 더 오랜 시간 쓰여지길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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