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파격 속의 편안함, 닛산 무라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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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무라노가 등장했다. 어느새 3세대 모델이다. 2002년 첫 선을 보인 무라노는 미래지향적인 독특한 디자인이 매력이었다. 이는 2007년 11월 등장한 2세대 모델에서도 마찬가지. 2세대 모델은 닛산이 국내 진출을 선언한 2008년 11월 처음 한국 땅을 밟았다. 잔뜩 찌푸린 모습의 헤드램프와 그릴의 조합이 인상적이었던 차. 한국인 디자이너 최정규 씨가 디자인에 참여해 화제를 빚기도 했다. 2010년 11월에는 좀처럼 볼 수 없는 SUV 컨버터블로도 변신했다. 무라노 크로스카브리올레가 그 주인공. 지붕을 열 수 있는 네바퀴굴림 크로스오버로는 세계 최초다. 판매 부진으로 2014년 4월 단종됐지만, 시대를 앞선 차였다.

이처럼 무라노는 파격적인 디자인을 계속 시도해왔다. 강한 개성으로 기억에 남아야 할 닛산 크로스오버의 이미지 리더이기 때문이다. 이번 3세대 모델은 닛산의 미래 디자인을 제시하는 모델. 지난 2013년 닛산은 디트로이트 모터쇼에서 레조넌스(Resonance) 콘셉트를 선보이며 SUV의 미래 디자인을 제시했다. 신형 무라노는 레조넌스 콘셉트의 양산형에 가깝다. 무라노의 디자인이 향후 닛산 SUV의 기반이 되는 것이다.

닛산의 부회장이자 디자인 치프, 나카무라 시로는 신형 무라노의 디자인 테마가 '미래의 여행'이라고 했다. 그에 따라 바람이 흘러가는 듯한 감성적인 디자인을 담으려 했다고. 스포츠카 370Z에 달렸던 부메랑 스타일의 헤드램프, 테일램프를 무라노에 맞게 재해석했고, 닛산 전체 라인업에 적용될 V-모션 그릴 또한 아주 큼지막하게 달았다. 인상적인 디자인의 플로팅 루프 또한 빼놓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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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로팅 루프는 유리와 검게 칠한 필러로 지붕을 띄운 듯한 느낌을 주는 수법. 채광면적이 조금이나마 넓어져 실내가 좀 더 밝아지는 효과도 있다. 닛산은 이를 "중력에서 자유로운 듯한 디자인"이라고 표현했다. 곳곳에 크게 휜 곡선을 더하는 등 디자인 요소를 여러 부분에서 강조하는 동시에 기능적 통합도 이뤘다. 액티브 그릴 셔터, 펜더 립, 리어 범퍼, 타이어 디플렉터, 통합형 리어스포일러 등 공기역학 관련 부품을 정교하게 배치해 기존 모델보다 공기역학 효율이 16% 늘었다. 공기저항수치는 0.31Cd.

미래로의 여행이라는 디자인 테마는 실내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하지만 겉모습과 달리 실내는 편안한 응접실 같은 분위기다. 닛산은 3세대 무라노의 실내에 대해 스타일, 프리미엄, 기능을 넘어 이제 효율을 추구했다고 밝혔다. 넓고 편안한 시야, 사용하기 쉬운 조작성을 부여했다는 이야기다. 대시보드의 높이를 낮추고 8인치 멀티미디어 스크린에 대부분의 기능을 담았다. 2세대 모델의 오디오, 내비게이션 스위치는 25개였는데, 3세대 모델은 10개에 지나지 않는다고. 스마트폰 다루듯 위젯과 어플리케이션을 배치할 수 있어 쓰기 쉽다.

높이를 낮추면서 대시보드와 도어트림을 연결하는 랩 어라운드 디자인을 택한 것도 흥미로운 요소. 도어트림과 맞물려 실내 전체에 안정감을 주며 편안한 시트와 어우러져 VIP 라운지 느낌을 낸다. 뒷좌석은 리클라이닝 기능이 있어 편하게 기댈 수 있다. 키 180cm 성인이 앉았을 때 다리 공간은 여유롭고, 머리 공간도 충분하다. 지붕 대부분을 파노라마 루프로 처리한 것이 좋다. 크기는 기존 대비 40% 늘어났고, 열리는 부분도 29% 늘어났다. 세그먼트에서 가장 큰 파노라마 루프를 다는 것을 목표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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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무라노의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직렬 4기통 2.5L 슈퍼차저 엔진과 모터를 더한 구조다. 엔진은 최고출력 233마력을 5,600rpm에서, 최대토크 33.7kg·m을 3,600rpm에서 낸다. 모터출력은 15kw로 약 20마력이다. 둘을 합쳐 253마력을 낸다. 모터 하나에 두 개의 클러치를 사용하는 '인텔리전트 듀얼 클러치 시스템'을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엔진과 모터 사이에 클러치 1이, 모터와 변속기 사이에 클러치 2가 달린다. 엔진-(클러치1)-모터-(클러치2)-변속기의 구조. 모터가 토크 컨버터의 역할도 맡는다. 엔진, 모터, 변속기를 바로 맞물려 직결성을 높이기 위해서다. 또한, 엔진을 사용할 때는 클러치 1과 2를 모두 연결하고, 모터만 사용할 때는 클러치 2만 연결하는 방식이다. 변속기는 닛산 엑스트로닉 CVT로 자트코에서 공급한다.

CVT 변속기의 특성은 가속페달을 다루는 방식에 따라 가속의 차이가 확연하다는 것. 기본 로직은 초반에 회전수를 높여 빠르게 가속하고 회전수를 줄이는 방식이다. 물론 회전수를 계속 낮춘 채 부드럽게 가속하는 것도 가능하지만, 1,915kg의 공차중량을 고려하면 엔진을 돌려 힘을 쓸 필요가 있다. 가속 페달을 아무리 부드럽게 밟아도 전기모터로만 가속할 수는 없었다. 엔진은 사용하되 회전수를 올리게 되는 부하상황을 줄이기 위해 전기모터를 단 것으로 보이는 세팅이다. 가속페달을 느긋하게 밟고 있을 때 전기모터의 개입이 가장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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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차저를 달아 출력과 회전수의 상승을 균일하게 노린 세팅 덕분에 힘을 다루기 쉽다. 하지만 드라마틱한 맛을 찾아보긴 어렵다. 힘을 전달하는 방식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최고출력 260마력의 V6 3.5L 엔진과 비교해 직렬 4기통 2.5L 슈퍼차저+하이브리드 시스템의 출력 차이는 10마력에 불과하다. 회전수 높일 때 반응이 좋은 V6 엔진에 비해, 신형 하이브리드 시스템은 철저한 주행 도구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얻은 것이 더 많다. 연료효율성이 V6 3.5L 엔진 대비 35% 늘어났고, 상당히 조용한 주행이 가능해졌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아도 소리의 유입은 크지 않다. 약 5700rpm을 기점으로 타코미터 바늘이 오르내린다. 자동변속기와 비슷한 느낌을 주기 위한 세팅으로 보인다. 차체가 높고 안정적인 덕분에 속도감은 크지 않지만 속도계 바늘이 치솟는 속도는 빠르다. 하지만 빠르게 몰아치기 보다는 여유롭게 모는 것이 가장 잘 어울린다. 엔진회전수를 슬쩍 올리고 유지만 해도 계속 부드럽게 가속하기 때문이다.

순항 때는 반대의 경우도 가능하다. 회전수를 최대한 낮출 수 있기 때문. 닛산 무라노의 공인 연비는 복합 11.1km/L, 도심 10.2km/L, 고속 12.4km/L다. 실제 주행에서 도심 연비를 기록하려면 좀 느긋하게 몰아야 했다. 반면 고속주행에서는 기대 이상의 연비를 거둘 수 있었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의 유용성은 평균 정도. 르노-닛산에서 공동으로 쓰는 세팅이다. 시속 25km부터 설정할 수 있으며 정지 상황에선 자동으로 멈춰 선다. 아주 잠깐 멈추고 출발하는 정도는 자동으로 움직이지만, 멈춰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 자동으로 해제되는 점이 아쉽다. 막히는 도로에서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에 완전히 기대는 것은 무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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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티어링과 서스펜션의 세팅은 전형적인 미국시장용 일본차 세팅. 노면 충격을 흡수하기 위해 서스펜션의 세팅을 약간 무르게 잡았다. 충격을 받았을 때 추가 진동이 일어나지 않고, 물결치는 노면에서 흔들림이 적은 점이 좋다. 스티어링은 적당히 무게감을 더한 편이다. 노면이나 접지력 등을 전하는 타입은 아니지만, 반응성 및 주행 궤적 만들기는 정확하다. 스티어링 휠을 꺾는 만큼 정확히 회전하는 방식이다. 코너를 파고 들 때면 기우는 폭이 약간 있다. 타이어가 소리를 질러대기 시작하는 속도가 낮다는 점에서 1915kg의 공차중량을 실감한다.

하지만 이를 보완할 구석도 충분히 갖췄다. 네바퀴굴림 시스템이다. 좌우 연속으로 몰아쳐도 자세를 잃지 않는다. 타이어가 소리를 질러대도 좀처럼 궤도를 벗어나지 않는다. 퍼포먼스 SUV가 아닌 이상 코너를 공략할 일은 그다지 없을 테지만, 힘주어 몰아붙여도 안정감을 유지한다는 점에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 있겠다.

안전장비의 구성은 충분한 수준. 사각지대 경고, 후측방 경보, 이동물체 감지, 전방충돌예측 경고, 전방 비상 브레이크, 어라운드 뷰 모니터 등의 장비를 갖췄다. 안전과 동시에 편안한 주행을 가능하게 하는 요소. 사각지대 경보 기능의 경우 다가오는 차의 거리가 아주 가까움에도 방향지시등을 켜면 경고음을 울린다. 어라운드 뷰는 좁은 길을 빠져나올 때 특히 유용했다. 차체가 높은 터라 차체 바로 앞의 상황을 보기 어렵다는 단점을 해결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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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 무라노는 국내 시장에서 독특한 위치의 차다. 크기를 국산차와 비교하면 기아 쏘렌토보다는 크고 모하비보다는 작다. 무라노의 5490만원이란 가격 선에서 고를 수 있는 직접적인 경쟁자라면 닛산 패스파인더와 혼다 파일럿이 떠오른다. 두 모델 모두 V6 3.5L 엔진을 얹고, 7명이 탈 수 있는 넉넉한 구성을 자랑한다. 하지만 무라노에는 이 급에서 좀처럼 보기 어려운 하이브리드 구동계가 있다. 7명이 넉넉히 탈 수 있는 크기의 차를 5명이 여유롭게 탄다는 점. 그러면서도 최대한 효율적인 구동계를 택했다는 것이 흥미롭다.

디자인을 중시하는 사람이라면 스타일리시한 SUV로 무라노를 보겠지만, 그 이상의 가치가 있다. 스포티한 디자인 속에 편안함이라는 반전 매력이 있다. 닛산은 무라노의 3세대까지 줄곧 여행이라는 속성을 부여해왔다. 신형 무라노가 내세운 미래로의 여행이라는 테마답게, 무라노는 어딘가 떠나고 싶어지는 차다. 넉넉하고, 편안하고, 조용하고, 안정적인 거동이 맘에 든다. 혼자보다는 여럿이 함께 떠날 때 무라노의 가치는 더 빛날 것이다.

안민희 에디터 c2@iautocar.co.kr
사진
이충희 작가 c2@iautocar.co.kr
제공
오토카 코리아 (www.iautocar.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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