톰 크루즈는 아니더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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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이크는 평범한 교통수단의 일탈이자 지리멸렬한 일상의 탈출구. 인간 본성을 자극하는 마초적 기질 또한 다분하다. 바이크로 여행한다는 건, 도착보다 여정의 유희에 심취함을 의미한다. 여기 마차를 버리고 말을 타고 달리듯, 차에서 내려 바이크에 오른 남자들이 있다. 자동차 마니아들이지만, 누구는 초보고 또 누구는 베테랑이다. 각자 다른 배기량과 스타일의 바이크를 몰고 일탈을 꿈꾸며 떠난 차 마니아들의 낭만 로드.
▲ BMW 모터라드 90주년 기념 모델. 이름부터 센스있다
한창 겉멋이 든 학창시절, 친구가 배달용 바이크를 타고 나타났다. 앙상한 프레임에 달랑 한 개뿐인 사이드미러를 달고서 초라한 배기음을 뿜어냈던 ‘시티100’이었다. 친구는 터프가이처럼 허세를 부렸지만, 당시 차에 푹 빠진 나에게 바이크는 초라함 그 자체였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 탑건의 주인공 톰 크루즈의 곡예운전을 보고 난 뒤 충격에 빠졌다. 바이크가 저렇게 멋진 존재라니! 저런 바이크라면 왠지 예쁜 여자친구도 뒤에 탈 것만 같았다.
뒤늦게 발견한 바이크의 매력. 나는 이미 라이더의 피가 흐르고 있다며 톰 크루즈를 사모하기 시작했다. 결국 겁도 없이 2종 소형면허를 따면서 법적으로 인정받은 라이더가 되었다. 이제 필요한 건 오직 바이크다. 우렁찬 배기음 터뜨리며 장거리투어도 거뜬히 떠날 수 있는 배기량이 큰 바이크 말이다. 마침 나에게 바이크 스승과도 같은 선배가 기꺼이 동행하기로 했다. 목적지는 양평. 짧지만 내 인생 처음으로 떠나는 바이크 투어를 시작했다.
선배는 두둑한 배를 앞으로 내밀고, 할리데이비슨 포티에잇 위에 올라탔다. 설렘과 긴장에 땀은 비 오듯이 떨어지고, 말발굽 소리처럼 울려 퍼지는 배기사운드가 고막을 때린다. 이제 내 차례다. BMW 모터라드 90주년을 기념해 나온 알나인티(R nine T)가 나를 기꺼이 받아준다. 키를 돌려 잠을 깨우고 시동버튼을 자극하자, 1.2리터 수평대향엔진이 꿈틀댄다. 뒤이어 아크라포비치 머플러는 폭음을 토해냈다. 우리는 비장하게 도심을 빠져나갔다. 오늘만큼은 올림픽대로 대신 신호등 달린 국도를 달려야 했다.
차 사이를 요리조리 빠져나가는 스쿠터가 얄미웠지만, 우리는 정직하게 달리는 정통 라이더가 아닌가. 신사답게 달리기로 했다. 마침내 뻥 뚫린 국도. 앞서 가는 할리가 우렁찬 배기사운드를 터뜨린다. 분명 선배가 드로틀을 비틀었겠지? 나도 질 수 없었다. 고개를 푹 숙이고 드로틀을 마음껏 비틀었다. 알나인티가 흥분한 야생마처럼 날뛰기 시작한다. 배려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잔인한 가속. 정신을 바싹 차려야 한다. 야생마 위에서 떨어지지 않으려면 다리를 모아 연료탱크를 바짝 조여야 한다. 기어를 올릴 때마다 속도계는 미친 듯이 날뛰었다. 그렇게 흥분한 알나인티를 다독여가며 투어를 이어갔다.
▲ 드로틀을 비틀면 아크라포비치 기관포가 뜨겁게 달아오른다
어느덧 ‘양평’ 이정표를 지나치는 순간, 야생마 같았던 알나인티가 애마처럼 친숙해졌다. 거칠게 반응하는 히스테리가 사라진 대신 부들부들한 파워로 나를 인도했다. 정확히 말하면 알나인티가 아니라, 나의 손길이 부드러워진 것이다. 이제는 드로틀과 기어페달을 능숙하게 다루기 시작했다. 야생마도 기분이 좋은지 온순하게 응답한다. 앞서가는 할리도 평화롭기는 마찬가지. 선배도 라이딩의 매력에 흠뻑 빠져든 모습이다. 우리는 꼬부랑길을 가볍게 파고들며 상쾌한 바람을 깊숙이 들이킨다. 물론 톰 크루즈처럼 곡예운전을 하지는 못했고 할 생각도 없다. 대신 진짜 라이더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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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트로 감성을 자극하는 바이크를 원하는가? 꼭 할리 데이비슨과 BMW가 아니라도 괜찮다.
▲ Honda CB1100 EX
21세기에 20세기 바이크를 모는 기분. 혼다 CB1100 EX는 혼다의 과거와 현재를 모두 품은 기함이다. 둥근 헤드램프와 반짝이는 엔진을 바라보면 클래식 바이크 매력에 흠뻑 빠져든다. 특히 엔진사운드가 백미.
▲ Ducati Scrambler
1960년대 이름을 날렸던 두카티 스크램블러가 귀환했다. 최근 레트로 바이크 유행에 따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모델. 공랭식 803cc L-트윈 엔진은 저회전 토크가 좋고, 배기사운드가 감성을 자극한다.
▲ MotoguZZi V7 II
이탈리아의 가장 오래된 모터사이클 브랜드, 모토구찌도 잊지 말 것. V7 II는 상징적인 V트윈 형식의 엔진을 계승하고, ABS와 트랙션컨트롤 장비로 안전성까지 더했다. 여기에 합리적인 가격으로 인기가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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