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티 커뮤터
컨텐츠 정보
- 568 조회
- 목록
본문
어떻게 흘러갈지 모를 인생, 신명 나게 살아봐야 되지 않겠냐고 늘 되뇌었다. 삶이 천천히 흐르고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지금, 내가 뭔가 놓치고 있다는 기분에 휩싸였다. 숨 가쁘게 살다 보면 뭔가 달라질 줄 알았고, 그러다보면 남들처럼 유흥거리라도 하나 만들어 삶이 반짝일 줄 알았건만. 반복에 반복, 한 달 주기로 돌아가는 잡지기자의 삶에 문득, 쉼표 하나가 필요했다.
▲ 도심에서는 스쿠터만큼 간편하고 유용한 교통수단이 또 없다
예전부터 뭐든지 나만의 탈 것 하나 있었으면 했다. 가슴 답답할 때마다 바람이나 실컷 쐬고 돌아오면 좀 나아질까 싶어서. 그런데 여윳돈은 많지 않고, 여차하면 부모님 차를 바꾸는데 보태겠다는 목표를 깨고 싶지 않았다. 그때 불현듯, 비교적 저렴한 스쿠터가 떠올랐다. 스쿠터로 전국을 일주하는 사람들도 더러 있는데, 멀리까지 아니더라도 가까운 인천 앞바다 한번 못 가겠냐는 생각이 들었다. 체 게바라가 모터사이클 타고 여행한 뒤로 의사 지망생에서 혁명가로 삶을 개척했듯, 나도 새로운 일탈을 감행해보기로 했다.
인터넷을 뒤지며 인기 좋은 스쿠터로 베스파와 푸조 장고가 있다는 걸 알았다. 국내에서는 베스파가 좀더 일찍 등장해 인기 좋은 모양이었지만, 나에겐 푸조가 더 친숙했다. 1950년대 클래식 모델을 기리고자 등장한 장고의 레트로풍 디자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와중에 사자가 발톱으로 할퀸 흔적과 LED로 테두리 두른 주간주행등, 하얀 테두리 휠이 깜찍했다. 클래식한 멋뿐만 아니라, 앞뒤 바퀴의 브레이크를 동시에 잡아주는 연동 브레이크 기능도 곁들였다. 무단변속기는 엔진회전에 따라 꾸준히 속도를 올리기에 딱히 할 것도 없었다. 그저 얼굴과 옷섶 사이로 드나드는 바람으로 근심거리만 떨쳐내면 될 뿐이다.
▲ 장고의 텐덤 스텝은 필요에 따라 안팎을 넘나든다
프랑스 파리에서 베트남 호치민까지 푸조 장고를 타고 여행을 떠난 두 사람의 소식을 들었다. 자동차로 세계일주가 꿈인 나에게, 새로운 꿈 하나를 더 곁들일 이유가 생겼다.
도도하고 이기적인, 혼다 MSX
뜨거웠던 여름, 권태로웠다. 무한궤도 같은 일상은 지루하고 무료했다. 하릴없이 흐르는 시간에 속수무책, 딱히 손 쓸 방법이 없었다. 어제와 오늘이 비슷한데, 내일은 다를까 싶다가도 친구의 아재 개그에 빵 터져서는, 세상은 살만 하구나 싶기를 반복했다.
무엇이든 필요했다. 오뉴월 축 늘어진 무엇처럼, 맥 빠진 일상에 이스트(소다가루도 좋다)가 필요했다. 자동차마니아 친구 녀석의 빨간 바이크가 예뻐 보였다. 피 뜨겁던 고등학생 이후 타지 않은, 애써 외면했던 바이크 시트 위 세상이 그립기 시작했다. 도전적이다 못해 호전적인 성격을 아는 탓에 20대에는 바이크를 쳐다보지도 않았다. 바이크 면허도 따지 않았다. 너무 사랑해서 떠나 보낼 수밖에 없었다던, 통속 가요의 가사처럼, 바이크는 가슴 한 켠에 그렇게 존재해왔다.
▲ 125cc 귀여운 바이크지만 수동이고 디스크 브레이크다. 게다가 전투적으로 생긴 타이어도 신었다
1종 보통 자동차면허로 탈 수 있는 법적 허용 배기량은 125cc. 작은 배기량 바이크는 도심에서 쉽게 달릴 수 있는 스쿠터가 대세였다. 하지만 그건 싫었다. 편안히 걸터앉아 범퍼카처럼 싱겁게 가고 서는 게 마땅찮았다. 수동 바이크를 골랐다. 작은 배기량을 감안해 최대한 차체도 가볍고 작은 놈으로. 마침 혼다에서 신형 MSX가 나왔다. 작은 차체에 공격적이면서도 귀여운 디자인, 125cc 배기량에 수동기어가 호흡을 맞췄다. 작은 바이크는 털털거리며 시내를 잘도 달렸다. 가랑이 밑 단기통 엔진이 ‘토동통통’ 거리며 알싸하게 가속했다. 비록 4단이지만 레드존까지 드로틀을 당겨 변속하면서 치고 달리는 맛이 통쾌했다. 도로를 타고 노는 바이크 위에서 엔진소리와 진동을 고스란히 느끼며 바람을 갈랐다. 꽉 막힌 차들 사이를 부유하듯 헤쳐나갔고 뻥 뚫린 도로에서는 시속 100km 넘게 속도를 내며 스릴 아닌 스릴도 즐겼다.
철벽 같았던 권태로움은 의외로 쉽게 깨질 수 있다. 바람 위의 바이크는 누군가에게 그토록 거대하고 특별한 존재일 수 있는 것이다.
같은 125cc, 뭐가 더 있나요?
300~400만 원 사이에서 선택할 수 있는 스쿠터는 다채롭다.
▲ Honda PCX 125
혼다 모터사이클의 베스트셀러. 아이들링 스톱 기능으로 연료효율성을 최대한 끌어올린 효율성 극강 스쿠터. 볼륨감 넘치는 차체에 14인치 휠은 멋을 더해줄 최고 아이템.
▲Yamaha N-MAX
남성미 강렬한 디자인의 야마하 스쿠터. 튜블러 프레임 섀시로 강성과 경량화를 동시에 확보했다. 가변밸브타이밍과 ABS 기술로 주행성능을 대폭 업그레이드했다.
▲ Vespa PRimavera 125
푸조 장고에 앞서 레트로 스쿠터 붐을 일으킨 주역. 클래식하고 감성적인 디자인의 스쿠터를 원하는 이들에게 인기만점. 여성들에게 사랑 받을 이유는 충분하다.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