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체험기] 레이서의 꿈은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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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로 자동차 담당 기자 27년째를 맞았다. 자동차 담당 기자의 매력은 매년 나오는 신차를 가장 먼저 타볼 수 있다는 점도 있지만, 수많은 시승 행사에 참석해 차의 성능과 내 운전실력을 알아볼 수 있다는 것도 빼놓을 수 없다.
국내 시승 행사에서 자신의 운전실력을 가늠해볼 수 있는 가장 흔한 방법은 ‘짐카나’ 경주에 참여하는 것이다. 짐카나는 고깔 모양의 파일런 사이를 지그재그로 통과해 가장 일찍 도착하는 걸 가리는 경주다. 짧은 구간 안에서 핸들링 능력이 다 드러나므로 운전실력을 알아보는 방법으로 널리 쓰인다.
물론 이 방법도 한계는 있다. 실제 레이스 서킷을 달리는 게 아니라 파일런을 통과하는 스킬에 집중하다 보니, ‘잡기술’에 능한 이가 더 높게 평가받는 일도 허다하다. 그래서 언젠가는 ‘기자들끼리 계급장 떼고 서킷에서 한판 붙어보면 좋겠다’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다.
나의 이런 바람을 어떻게 알았는지, BMW 코리아가 최근 이런 행사를 마련했다. ‘JCW 챌린지 미디어 레이스 데이’가 그것이다. BMW 코리아 측은 “MINI의 고성능 브랜드 JCW의 강력한 퍼포먼스를 경험하고 그동안 쌓아 온 운전실력을 마음껏 뽐낼 수 있는 업계 최초의 연례 기자 레이싱 대회”라고 소개했다. 공지를 보는 순간 “어머, 이건 참석해야 해” 소리가 절로 나왔고 바로 참가 신청을 했다.
결전의 날은 4월 22일, 장소는 영종도 BMW 드라이빙센터다. 나는 짐카나를 먼저 타는 조에 배정됐다.
이날 짐카나 코스는 조금 난해했다. 지그재그로 파일런을 통고하는 건 다른 짐카나와 비슷한데, 그 이후 팔(8)자 코스를 왕복한 후 다시 지그재그로 돌아오는 탓에 아주 많이 헷갈리게 했다. 이 코스를 설계한 인스트럭터는 “레벨 3에 해당하는 짐카나여서 절대 쉽지 않다”라고 귀띔한다.
한 번의 연습 후 도전한 내 기록은 47초 62. 안전 위주로 돌았더니 기록이 많이 처졌다. 이날 최고 기록인 41초 42에 비해서는 많이 느린 것이다. 전체 순위는 그때까지 알 수 없었지만, 뒤처졌다는 느낌은 확실했다.
이어서 진행된 서킷 주행. 여러 대가 동시에 출발해 겨루는 통상적인 레이스가 아니라 한 대씩 출발해 기록을 재는 타임 어택 방식으로 진행됐다. 시승차는 이런 행사와 살짝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MINI JCW 클럽맨이다. MINI 쿠퍼보다 차체가 긴 만큼 평소와는 다른 스킬이 필요하다.
실제로 이날 달려보니, MINI 쿠퍼에 비해 차체 뒤가 약간 날리는 느낌이다. 이때 한 문장이 머릿속을 스쳐 갔다. “야, 이거 클럽맨으로 서킷 타다가 뒤가 날아가면 쪽팔려서 어떡하나.”
다행히 기록 체크 때는 클럽맨이 끈끈하게 버텨줬다. 뭔가 느낌으로도 괜찮은 기록이 나왔을 것 같았다.
이윽고 다가온 순위 발표 시간. 이날은 기자들뿐 아니라 인플루언서까지 참가해 트로피의 향방을 가늠하기 어려웠다. 평소 다른 기자들 실력은 대략 알고 있지만, 인플루언서의 실력은 전혀 모르기 때문이었다.
20여 명의 참가자 중 10위부터 발표됐는데, 10위는 6점을 얻은 모 전문지 후배 기자가 차지했다. 이어서 9, 8위가 차례로 발표되고…7위가 발표되는 순간, 갑자기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7위는 RPM9 임의택 기자님입니다.”
전광판에 나온 기록을 보니, 짐카나는 전체 14위였는데 서킷에서 4위를 차지했다. 짐카나 기록이 조금만 더 좋았다면 더 높은 순위도 가능했다는 얘기다.
아무튼 이날 행사를 위해 집에서 곱게 차려입고 나온 ‘레드불 레이싱 팀’ 셔츠와 레이싱 슈즈가 부끄럽지 않게 됐다. 수많은 서킷 경험이 전혀 헛되지 않았다는 것도 스스로 증명해냈다.
물론 서킷을 무조건 많이 탄다고 실력이 늘지는 않는다. 수년 전 어떤 경제지 기자는 핸드 브레이크를 잠그고 타서 서킷을 연기로 가득 메우기도 했고, 어떤 전문지 기자는 주행안정장치를 몰래 끄고 타다가 코스를 이탈해 벽을 들이받기도 했다. 전자는 차에 대한 무지에서, 후자는 지나친 자신감에서 비롯된 결과였다.
BMW 코리아는 수입차 업체 중에 서킷 경험을 가장 많이 시켜주기로 이름난 브랜드다. 특히 영종도 드라이빙 센터 개장 이후에는 이제 막 자동차 업계를 출입한 기자들을 위한 초보 코스도 개설해 담당 기자들의 운전실력 향상에 지대한 공헌을 해주고 있다. 물론 이런 행사가 아니더라도 자동차를 담당한다면 스스로 운전실력을 키워가야 한다. 그래야 시승기를 좀 더 수준 높게 쓸 수 있고, 어디 가서 ‘차알못’ 소리를 안 들을 수 있다.
이번 행사에서 참여자 중에 7위를 했으나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다. 물론 기자 중에 1위를 하는 게 목표는 아니다. 과거 경험했던 말레이시아 세팡 서킷과 중국 주하이 서킷, 일본 스즈카 서킷에 이어서 더 많은 해외 서킷을 누비고픈 마음이 간절하다. 더 나이 들기 전에 아마추어 레이스 대회에 나가야겠다는 생각도 아직은 포기하지 않았다. 레이스를 향한 내 도전은 현재진행형이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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