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네시스 EQ900, 무엇에 놀라야 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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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처음 출시된 제네시스를 브랜드로 격상시키고 현대차 기함 에쿠스를 선두로 포진시켜 프리미엄 경쟁에 뛰어든 현대차 그룹의 승부수, EQ900를 만난 건 지난 17일 미디어 시승이 네 번째다. 남양연구소 프리뷰 행사, 미국 모하비 사막에 있는 현대차 주행시험장 체험, 그리고 정몽구 회장이 직접 참석한 신차 출시 행사까지 찾아 다녔지만 이날에서야 직접 몰아 볼 기회가 왔다.
EQ900의 쇼퍼 드리븐 체험
제네시스는 EQ900 시승에 앞서 전문 기사가 운전하는 차량의 후석에 탑승해 쇼파 드리븐 체험 시간을 갖게했다. 시승차는 3.3 터보 GDI, 계약자의 절반가량이 선택하고 있는 트림이다. 전문 인스트럭터들의 운전과 설명이 곁들여진 도심 주행 체험에서는 현대차 엔지니어들이 EQ900의 어떤 부분에 공을 들였는지 엿보인다.
어느 좌석에서나 안락한 승차감을 느끼고 누구든 특별한 기분이 들도록 실내를 꾸몄고 최고급 천연가죽으로 둘러싼 시트는 그 중 압권이다. 이탈리아 파수비오, 오스트리아 복스마크라는 이름만으로도 시트의 재질과 품질이 최고 수준임을 입증한다. 이것이 바로 제네시스 EQ900이 원하는 컨셉이다.
여기에 독일 척추 건강 협회가 인증하고 항공기 일등석을 벤치마킹한 시트는 앉아 있는 느낌부터 손에 닿는 감촉, 눈에 보이는 호화로움까지 최상의 수준이다. 2열에는 1열 조수석까지 콘트롤하는 버튼이 콘솔에 배치돼 있고 누워있는 자세까지 리크라이닝이 가능하다. 2열 콘솔 버튼은 직관적으로 설계돼 조작이 쉽고 접근성도 뛰어나다.
짧은 거리에 9개의 과속방지턱이 이어진 이면도로에서는 차체의 부드러운 반응이 돋보였다. 속도를 줄이지 않아도 차체로 전해지는 모든 충격 요소의 형태를 스스로 평가해 반응하는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이 큰 요동없이 과속방지턱을 넘도록 돕는다. 사전 설명에서 공개한 벤츠 S클래스 비교 영상에서도 EQ900은 과속방지턱과 울퉁불퉁한 노면, 그리고 고속 주행에서 차체의 흔들림이 더 적다는 것을 작은 컵에 담긴 액체로 증명해 보였다.
EQ900만의 독창성은 아쉬워
출시 전부터 EQ900는 뭘 닮았다는 얘기를 들어왔다. 기존 제네시스 얼굴에 에쿠스의 엉덩이를 달아 놨다는 혹평도 나왔다. 반면 브랜드를 효과적으로 알리기 위해서는 제네시스의 디자인 컨셉이나 DNA를 어느 정도 계승하는 것이 효율적이라는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호평과 악평이 넘쳐나지만 5미터가 넘는 차체 길이에도(5205mm)의 측면의 날렵함은 그 중 백미다. 후륜 구동의 특성상 전후 비례가 좋고 짧은 오버행과 긴 후드는 익숙한 느낌의 앞, 뒤 모습과 다르게 역동적이다. 인테리어는 화려하다. 시승차는 검은색을 메인으로 메탈 소재의 가니쉬 라인과 버튼류로 포인트를 줬고 센터 모니터와 클러스터를 수평으로 연결해 실내를 더 넓어 보이게 했다.
아쉬운 것들도 있다. 전 세계 명품 시계를 분석해 만들었다는 아날로그 시계는 없는 편이 더 좋아 보이고 EQ900, 나아가 제네시스만의 독창성이 보이지 않는다. 겉모습뿐만 아니라 인테리어 만으로도 존재감이 확실하게 드러나는 메르세데스 벤츠나 BMW와 같은 자신의 색깔이 아쉽다.
잘 버무려진 첨단 기능들
EQ900이 자랑하는 첨단 기능과 자랑거리는 크게 세 가지다. 제네시스 어댑티브 컨트롤 서스펜션과 고속도로 주행지원 시스템, 그리고 완벽하다고 얘기하는 정숙성이다. 서스펜션 기능은 만족스럽다. 엄청난 크기에 경쟁 차종들을 압도하는 무게를 비교적 잘 견뎌내며 차체를 거동시킨다. 내장형 밸브와 효과적인 감쇠력 제어로 선회 안전성과 반응을 빠르게 했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메르세데스 벤츠 S클래스에 탑재된 매직 보디 컨트롤의 혁신적이고 놀라운 기능에 비교할 바는 아니다. S클래스와 차체 안정감이 어떻고 상하, 좌우 반응이 어떻고 하는 것은 아직 시기상조다. 벤츠 S클래스나 BMW 7시리즈를 경험한 사람들에게는 와 닿지 않는 얘기다. 그냥 현대차도 이 정도의 차를 만들어 냈다고 자부심을 강조하는 선에서 자제를 해야 한다.
고속도로주행지원시스템은 기존의 기능들을 버무려 한국에 맞도록 개량한 기술이다. 크루즈 컨트롤에 차간 거리을 유지해 주는 장치(ASCC)와 차선을 감지해 이탈을 경고하고 유지해 주는 장치(LKAS), 여기에 내비게이션을 연동시켜 고속도로 요금소를 지나면 이때부터 능동적인 주행을 지원한다.
과속카메라가 있으면 스스로 속도를 낮추는 기능이 추가된 것이지만 교통 안전 등을 생각하면 좋아 보이지 않는다. 또 자율주행에 근접한 지능형 주행 지원이라고 설명하지만 기존의 기술들을 응용한 수준에 불과하다. 따라서 서울~춘천 간 고속도로를 달리는 시승에서 이 시스템이 주는 특별함은 없었다. 차선 이탈을 경고하고 유지해주는 기능이나 앞차와 일정한 거리를 확보하기 위해 스스로 속도를 줄이고 높이는 기능은 이미 일반화된 '첨단장치'다.
정숙성 압권, 트윈 터보 만족
이런 기능들보다 눈에 띄는 것은 정숙성과 3.3 터보엔진의 성능이다. 소리만으로는 속도를 가늠할 수 없을 정도로 시동을 걸었을 때나 달릴 때나, 속도를 높여도 안쪽이 조용하다. 동승한 시승자가 차체와 외부 공간 사이에 하나의 막이 더 있는 것 같다고 했을 정도로 고요하다.
여기에 370마력(6000rpm), 52.0kg.m(1300~4500rpm)의 성능을 발휘하는 트윈 터보 V6 엔진의 가속감이 환상적이다. 1300rpm에 불과한 낮은 회전수에서 시작하는 최대토크가 시작부터 강렬하게 차체를 밀어내고 속도를 상승시킨다. 운전자가 느끼지 못할 정도로 조용하고 빠르게 제한속도를 넘겨 버린다. 과속 딱지를 받지 않으려면 헤드업 디스플레이나 계기반의 속도를 자주 살펴봐야 한다.
또 정확하고 민첩하게 원하는 속도에 반응한다. 현대차가 처음 만든 트윈 터보 V6의 성능이 이런 수준으로 시작한다는 점이 놀랍다. 더 재밌는 운전을 원하면 스포츠 모드가 있다. 배기 사운드가 거칠어 지고 스티어링 휠과 가속페달의 느낌과 반응이 매끈한 스포츠 세단을 닮는다.
내년부터 제네시스 앰블럼을 달고 이어져 나올 앞으로의 모델들이 기대되는 것도 이 터보 엔진의 매끄러운 성능 때문이다. 아직은 현대차 앰블럼을 달고 있는 제네시스가 G80으로 개명을 하고, 2017년 하반기 출시 예정인 중형 럭셔리 세단 G70, 그리고 새로운 SUV와 스포츠 쿠페 등에 이런 수준의 파워트레인이 올려 질 수 있기를 기대한다.
덧붙여 고급 차의 조건은 여러 가지다. 실내외 디자인과 감성품질, 소재, 정숙성, 첨단 기술, 그리고 여기에 걸맞은 성능까지 갖춰야 한다. EQ900의 가장 큰 장점은 달리는 능력과 승차감이다. 따라서 3.3터보는 쇼퍼 드리븐보다 오너 드리븐에 더 적합한 차다. 그만큼 차체 거동이 민첩하고 또 잘 달린다. 이런 차를 후석에 앉는 것만으로 만족하면 후회를 할 수도 있다.
총평
글로벌 시장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고급 차 경쟁에 뛰어든 제네시스 EQ900의 국내 반응은 일단 고무적이다. 영업일 기준 12일 만에 1만 대가 계약됐고 구매자들의 평균 연령대가 2.2세 낮아졌으며 개인 구매 비중이 높아졌고 수입차를 갖고 있다가 EQ900를 선택한 비율은 무려 20% 증가했다.
하지만 EQ900이 놀 물은 여기가 아니다. 좀 더 큰물에서 놀아야 하는데 경쟁 모델들과 차별성이 없다는 점이 우려스럽다. 제네시스답다, EQ900답다는 칭찬을 들으려면 뭔가 독보적인 것이 필요하다. 내수에서 거둔 성과가 다른 시장에서도 같을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곤란하다. 무엇으로든 세상을 놀라게 할 묘책이 필요하다. 가격은 3.8 GDi 7300만원~1억700만원, 3.3 터보 GDi 7700만원~1억1100만원, 5.0 GDi 1억1700만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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