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 V8의 축복, 쉐보레 카마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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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식 스포츠카를 바라보고 있으면 묘한 기분이 든다. 다운사이징과 친환경은 저 멀리 던져버린 것 같은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 직진만 잘 할 것 같은 거대한 차체와 그에 비해 넓지 않은 실내 공간을 바라보고 있으면 마치 빙하기 전 멸종을 기다리는 공룡 같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이러한 미국식 스포츠카만이 줄 수 있는 감성에 젖어들게 된다. 휘발유와 타이어 소모에 신경 쓰지 않고 마음껏 질주할 수 있는 감성 말이다.
흔히 ‘포니카’로 대변되는 카마로 역시 이러한 감성을 충실히 갖추고 있다. 그 감성은 6세대로 진화한 지금에도 거의 변하지 않았다. 그런데 이 감성에 더불어 최신 기술과 향상된 코너링 성능, 개선된 연비까지 갖췄다. 향상된 기술이 어떻게 운전자의 감성을 자극해야 하는지를 정확히 알고 있는 것이다. 이만하면 ‘포니카’의 진정한 ‘진화’라고 부를 만하다. 어쩌면 카마로의 진화는 발전의 이름 아래 독특한 감성이 점점 옅어지고 있는 다른 제조사에 보내는 경고장일지도 모르겠다.
6세대로 진화한 카마로의 외형은 기존 5세대의 특징을 유지하면서도 더 가늘어진 형태로 바뀌었다. 보행자 안전을 위해 범퍼의 돌출을 줄이고 일체형에 가깝게 디자인했음에도 불구하고 전면을 장식하는 사각 형태의 헤드램프와 프론트 그릴, 대형 에어 인테이크로 인해 한 눈에 봐도 카마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 놀랍다. 안전과 효율을 위해 많은 변화를 거쳤음에도 불구하고 어느 부분을 특징으로 남겨야 할지를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다.
중앙이 불룩 솟아오른 보닛은 범상치 않은 엔진을 탑재하고 있음을 알려주며, 롱 노즈 숏 데크라는 스포츠카의 특징을 그대로 담고 있다. 캐딜락 ATS와 동일한 알파 플랫폼의 적용으로 인해 기존 모델보다 차체가 더 작아졌음에도 불구하고 디자인으로 인해 그 차이를 알아보기는 힘들다. 후면을 장식하는 테일램프도 기존 모델의 사각 형태를 재해석해 날렵한 형태로 다듬었으며, 뒷 범퍼 하단에 위치한 두 개의 대형 머플러가 미국식 스포츠카의 위압감을 풍긴다.
실내는 1열 좌석, 그 중에서도 운전석에 맞춰서 모든 것이 디자인되었다고 봐도 좋다. 2열 좌석은 성인이 탑승하기에는 무리가 따르며 아이가 탑승하거나 자잘한 화물을 보관하기에 알맞은 정도. 세미 버킷 형태의 1열 시트는 상체를 잘 잡아주거나 하지는 않지만 일상적인 영역에서 안정적인 자세를 취하도록 도와준다. 정면 시야는 그런대로 괜찮지만 측면과 후면 시야는 상당히 좋지 않은 편으로 모서리를 가늠하기 힘들다. 후면 주차는 카메라와 센서의 힘을 빌리는 수밖에 없다.
계기반은 속도계외 회전계는 아날로그로, 그 외는 디지털로 표시하고 있는데 두 영역간의 이질감을 거의 느낄 수 없다. D컷 형태의 3 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지름이 작고 그림감이 좋아 스포츠카에 걸맞는 형태로 진화한 듯하다. 센터페시아에 위치한 8인치 터치스크린과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카마로가 디지털을 받아들이기 시작했다는 증거로 애플 카플레이도 지원한다. 햇빛으로 인해 화면이 안보이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스크린 하단이 안쪽으로 들어가 있는데 이로 인해 약간의 이질감이 발생한다.
터치스크린 하단에 일렬로 배열된 공조장치 버튼과 송풍구 바깥쪽을 돌려서 온도를 조절하는 부분은 좁은 센터페시아를 영민하게 활용하기 위한 아이디어다. 폭이 넓은 센터터널에는 기어 노브와 TCS 버튼, 주행 모드 조절 버튼과 전자식 주차 브레이크 레버가 있다. 2열 센터터널에는 휴대폰 무선 충전장치까지 마련되어 있어 ‘전자장비의 시대’가 왔음을 실감케 한다. 실내를 장식하는 LED 무드등도 이와 같은 느낌을 더한다.
6.2L V8 OHV 자연흡기 엔진은 카마로 제작 기술의 정수이며 6,400 rpm 까지 회전시킬 수 있다. 일반 엔진하고 비슷한 회전이라고 무시할 수도 있지만 본래 OHV 엔진은 고회전이 상당히 힘든 엔진이라는 것을 상기해야 한다. 미국 NASCAR에 출전하는 경주차에 적용되는 OHV 엔진이 9,000 rpm까지 회전하는데 이를 일반적인 OHC 엔진에 대입하면 1,300 rpm 회전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카마로 엔진에 적용된 기술이 일반 엔진에 적용된다면 9,000 rpm 이상의 고회전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회전 영역의 상승은 출력의 상승뿐만 아니라 한계 회전 영역의 증가로 코너 탈출 성능까지도 높인다. 게다가 V형 8기통과 OHV 방식이 조합되니 미국 스포츠카 특유의 그르렁대는 음색이 계속해서 운전자를 자극한다. 머플러를 통해 분출되는 배기음도 분명히 카마로만의 특성을 그대로 담고 있다. 자연스럽게 가속 페달에 힘이 들어가게 하는 자극적인 소리를 듣고 있으면 머릿속에서 “V8”이라는 구호가 연속으로 들려온다.
그러나 이 엔진이 단순히 운전자를 자극하고 휘발유를 도로에 뿌리도록 만들어진 엔진이라면 이렇게까지 찬양받을 이유가 없을 것이다. 사실 이 엔진에는 직분사, 가변 밸브 타이밍 등 연비 절약과 고효율을 위한 기술이 아낌없이 적용되어 있다. 게다가 기통 휴지 기능까지 적용했다. 쉽게 말하면 V8을 필요에 따라 V4로 만드는 건데, 연비를 극단적으로 절약할 뿐 아니라 두 모드를 오가는 형태도 상당히 자연스럽다. 역시 100년 이상 자동차를 제작해 온 저력은 무시할 수 없다.
더 놀라운 것은 차체와 서스펜션의 반응이다. 알루미늄을 적극적으로 적용한 알파 플랫폼으로 인해 기존 모델보다 90kg 가량 경량화가 진행된 데 더해 카마로 전용의 강화 부품이 적용되어 차체 강성이 상당히 높아졌는데, 이로 인해 코너에서 버티는 힘이 높아졌다. 게다가 역동적인 코너링을 돕는 MRC(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가 적용되어 코너에서도 자신있게 속력을 낼 수 있다. 이제 ‘코너링이 약한 미국 스포츠카’는 머릿속에서 완전히 지워버려도 되겠다.
좌우로 굽이치는 코너가 연속되는 산길을 몇 번이나 주행하면서 점차 속도를 올려봐도 흔들리기는커녕 오히려 더 굳건하기 버티면서 더욱 더 속도를 높이기를 요구한다. 단지 브레이크에 대해서는 큰 점수를 줄 수 없겠다. 휠하우스를 꽉 채우지는 않는 디스크 브레이크는 휠을 잠글 정도로 제동력을 발휘하지만, 타이어기 이를 받쳐주지 못하기 때문이다. 시승차에 장착된 타이어가 순정 타이어인 굿이어 이글 F1이 아니라 피렐리 P제로라서 그럴 수도 있겠다.
TCS를 끈 채로 가속 페달을 깊숙이 밟으면 62.9 kg-m의 막대한 토크가 뒷바퀴로 전해지면서 번아웃을 일으킨다. 전자 장비를 꺼도 자동으로 부활해 운전자의 자율적인 행동을 막는 최근의 자동차들과는 정반대의 성질이 너무나 반갑다. 역시 자동차, 특히 스포츠카는 운전자가 모든 상황을 스티어링과 페달 조작만으로 제어하는 데서 오는 짜릿함이 있다. 과거의 유산이 된 줄 알았던 이 느낌을 최신 기술이 적용된 신형 스포츠카에서 느낄 수 있을 줄은 전혀 몰랐다.
카마로는 최첨단 기술이 지배하는 이 시대에 자동차가 가져야 할 감성이 무엇인지를 확실히 알려주고 있다. 결코 양립할 수 없을 것 같았던 기술과 감성이 GM의 조율 아래 교집합을 찾은 것이다. 유럽의 스포츠카들과 경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면서도 미국 스포츠카의 감성은 유지하고, 여기에 5,098만원(볼케이노 레드 패키지 5,178만원) 이라는 합리적인 가격까지 갖추고 있다. 스포츠카 시장의 지배자가 되겠다는 강한 의지가 느껴진다.
한 때 단종의 위기까지 맞았던 카마로는 2009년에 화려하게 부활한 이후 지금까지 인기를 이어오고 있다. 그 이면에는 미국 스포츠카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의 감성도 있고, ‘트랜스포머’ 출연을 통해 얻은 인기도 있다. 대부분의 자동차들이 높은 출력과 경량화를 얻은 지금, 자동차가 진짜로 갖춰야 할 감성이 무엇인지, 마케팅은 무엇인지를 카마로가 진지하게 알려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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