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 혼다 CB300R 시승기 feat. 르노 마스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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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작은 르노 마스터가 한국땅을 밟을 때였다. 넉넉한 화물 적재능력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르노가 선택했던 방법은 모터사이클을 적재하는 것. 곧이어 혼다와 KTM의 대배기량 멀티퍼퍼스 모터사이클이 등장하더니 화물칸에 사뿐히 올라갔다. 그것을 보는 순간 무언가 가슴 속에서 밀려오는 것이 있었다. 오랜 기간 꿈으로만 남겨놓았던 ‘자동차로 오프로드 전용 모터사이클을 운반하기’를 실현하기 좋은 때라고 생각했다.
글 : 유일한(글로벌오토뉴스 기자)
그런데 그 꿈을 실현하기에는 시기가 안 좋았던 모양이다. 기자의 실력으로 그나마 제어할 수 있을만한 저배기량 오프로드 모터사이클을 수배해 봤지만, 보유한 차량이 없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렇다고 포기할 수는 없었기에, 발상을 전환하기로 했다. 오프로드를 갈 수 없다면, 그 동안 자동차 전용도로만 있어서 모터사이클이 쉽게 접근할 수 없었던 곳을 가면 된다. 예를 들면 고속도로만 있기에 모터사이클은 배로만 접근할 수 있는 영종도 같은 곳 말이다.
발상을 전환하니 그 뒤는 쉽다. 이제 가벼우면서도 되도록 높은 출력을 낼 수 있으며 다루기가 쉬운 모터사이클을 고르면 된다. 그래서 결정한 것이 바로 혼다 CB300R. ‘네오 스포츠 카페’ 컨셉트의 두 번째 모델로 고전적인 네이키드 모터사이클의 형태를 현대적으로 다듬은 것과 동시에 혼다의 혁신적인 엔지니어링 기술을 적용한 모델이다. 배기량 1L의 CB1000R도 있지만 이 모델을 고른 이유는 ‘적당히 가볍다’는 것이 크다.
결전 당일, 마스터의 광활한 문을 열고 CB300R이 들어간다. 목적지로 가는 자동차 전용도로에 들어서니 항상 입구를 지키고 있는 경찰아저씨가 날카로운 눈매로 마스터를 훑어본다. 본능적으로 모터사이클의 존재를 알아챈 것일지도 모르지만, 그 감각도 지금은 소용없을 것이다. 비록 화물 운반용이라고 해도 마스터는 자동차이니까 말이다. 평소에 쉽게 지나갈 수 없었던 도로에 올라 기어를 넣고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니 즐겁기까지 하다.
목적지에 도착한 후에는 두 개의 뒷문을 활짝 열고 스티어링 휠에서 핸들바로 붙잡을 것을 바꿀 준비를 한다. 차 안에서 장갑을 끼고 헬멧을 쓰는 것도 처음이라 기분이 오묘하다. 살며시 시동 버튼을 눌러 CB300R의 잠을 깨우고, 본격적으로 밖으로 뛰쳐나갈 준비를 한다. 비록 영종도를 주행하는 것이지만 마음만큼은 ‘아일 오브 만 TT’에 출전하는 레이서 못지않다. 목표는 섬을 따라 한 바퀴 돌면서 일주하는 것. 그 동안 CB300R의 능력도 검증해 볼 예정이다.
CB300R의 원형이 되는 모델은 2017년 도쿄모터쇼 무대를 장식했던 ‘네오 스포츠 카페 컨셉트(Neo Sports Café Concept)’이다. 갓 공개된 컨셉트 모델이지만 완성도가 뛰어났으며 현실적으로 실현 가능한 디자인을 갖고 있어 양산 가능성을 상당히 높게 봤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 며칠 뒤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개최된 EICMA에서 양산형 모델들을 차례로 공개하며 놀라움을 일으켰던 기억이 있다.
양산형에 맞춰 디자인 또는 램프가 일부 변경되기는 했으나 대부분의 영역에서는 컨셉트의 모습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전체적으로는 ‘다년간의 스포츠 모터사이클 경험을 갖고 있는 성숙한 라이더를 위한 차세대 네이키드 모터사이클’을 표방하고 있는데, 이를 연료탱크와 엔진의 형상 그리고 원형 헤드램프에서 크게 느낄 수 있다. 전체적으로는 고전적인 네이키드 모터사이클을 현대적으로 해석한, 네오 레트로에 가까운 면모를 보여준다.
네이키드 모터사이클답게 카울이 없다. 엄격히 이야기하면 전면에서 라디에이터 그릴을 좌우로 감싸는 카울이 있는데, 이마저도 상당히 정제되어 있다. 사진으로 봤을 때도 길이가 상당히 짧다고 느꼈었는데, 실제로도 2m를 겨우 넘기는 짧은 길이 내에 모든 것을 응축시켜서 그런지 당당하면서 옹골찬 느낌을 주는 자세(stance)를 연출하고 있다. 연료탱크와 측면을 가로지르는 라인은 일견 날카로워 보이지만, 실제로는 라이더에게 편한 자세를 만들어준다.
계기반은 사각형으로 심플하게 다듬었지만 주행에 필요한 정보는 모두 표시한다. 낮에 햇빛이 강하게 들이쳐도 정보를 확인하는 데는 지장이 없다. 기어 단수가 표시되지 않는다는 점이 아쉽지만, 라이딩에 익숙해지면 신경쓰지 않게 된다. 시트는 라이더 시트와 텐덤 시트가 완전히 분리되어 있으며, 라이딩 시트는 제법 앉기 편한 자세를 만든다. 시트고는 그리 높지 않아 다리가 그리 길지 않은 기자도 양 발 앞쪽을 땅에 붙일 수 있다.
CB300R은 쿼터급 모터사이클에 알맞은 286cc 단기통 엔진을 탑재한다. 최고출력 31마력, 최대토크 2.8kg-m으로 다루기 쉬운 출력을 갖고 있는데다가 차체 무게도 150kg 이하이므로 경쾌한 주행을 기대할 법도 하다. 이 곳까지 이동하는 데 힘을 써 준 르노 마스터는 잠시 주차장에서 휴식을 취하게 하고 이제 본격적으로 CB300R의 시동을 걸어본다.
클러치를 연결하고 출발할 때부터 ‘과연 혼다’라는 감탄이 나온다. 혼다의 모터사이클들은 라이더를 배려하고 있고 이로 인해 초보 라이더라고 해도 다루기 쉬운 특성을 지닌다. 저회전에서의 토크도 제법 갖추고 있어 저속 주행이 많아지는 도심에서도 2~3단 기어에서 굳이 기어를 또 변경할 필요가 없다. 지그시 가속 그립을 제어해주면 대부분의 주행에 대응할 수 있고 클러치까지 써야하는 상황은 거의 오지 않는다.
그러면서도 가속은 빠르고 경쾌하다. 경쾌하다고만 하면 라이더마다 다르게 느낄 수 있으므로 부연 설명을 하자면, 1~3단 기어 체결 시 레드존인 10,500rpm까지 도달하는 데 대략 2~3초 전후가 소요된다. 엔진 회전 한계는 11,000rpm으로 그 이상은 돌릴 수 없는데, 사실 일반 주행에서 이 영역까지 회전을 사용할 일은 없을 것이다. 변속 시점이 되면 계기반 중앙의 흰 불빛이 깜박이기 때문에 기어 단수를 몰라도 헛갈릴 일은 없다.
처음에는 휠베이스가 짧은데다가 무게도 상대적으로 가벼운 모델이기에 고속주행 시 안정감을 걱정했었는데, 고속 영역에 들어서도 차체가 지면과 붙어서 가는 감각이 그대로 전해진다. 앞바퀴가 가벼워지는 느낌조차 없으며, 이대로 초고속 영역에 진입해도 괜찮다고 느껴질 정도다. 물론 쿼터급 모터사이클인 만큼 초고속 영역에는 진입할 수 없지만, 이 정도라면 장시간 고속 주행을 즐기기에도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
단지 네이키드 모터사이클인 만큼 머리와 상체로 들어오는 주행풍을 각오해야 한다. 그 때는 팔에서 힘을 빼고 핸들바를 조금 낮은 자세로 잡은 뒤 배를 연료탱크에 살짝 닿게 하고 상체를 자연스럽게 숙이면 어느 정도는 극복할 수 있다. 기온이 영하로 떨어지는 겨울이기 때문에 방한장비를 착용하고 있어도 조금씩 한기가 스며들지만, 오랜만에 찾아온 재미를 포기할 수는 없기에 다시 한 번 스로틀 그립을 감아본다.
프론트 도립식 텔레스코픽, 리어 모노쇼크 방식의 서스펜션은 승차감보다는 단단함과 안정감쪽에 조금 더 초점이 맞추어져 있다. 요철에서의 충격을 감소시킨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는 승차감과 타협하고 있지만, 그보다는 어떤 주행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자세를 유지하면서 라이더에게 안심을 주는 데 더 집중하는 것으로 보인다. 스트로크 역시 보기보다는 짧은 것으로 느껴진다.
코너에 진입하면서 CB300R의 의외의 면을 발견하게 되는데, 코너링이 조금 힘들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기본에 충실한 코너링을 하지 않는다면 쉽게 차체를 기울이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기자의 경우 저속 주행이 많다보니 습관적으로 신체보다는 모터사이클을 더 눕히는 ‘린 아웃’을 사용하는데, 이것을 잘 받아내지 않는다. 어디까지나 정직하게, 코너의 깊이에 따라서 신체와 모터사이클이 같이 자연스럽게 눕는 ‘린 위드’를 구사해야만 한다.
린 위드도 어설픈 자세로는 안 된다. 두 다리 사이에 연료탱크를 제대로 끼우고 단단하게 그러나 자연스럽게 힘과 무게를 실어야 한다. 만약 CB300R이 운전하기 불편하다는 라이더가 있다면, 그 라이더는 운전을 제대로 배우지 못 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모델이 ‘다년간의 스포츠 모터사이클 경험을 갖고 있는 성숙한 라이더를 위한 차세대 네이키드 모터사이클’ 이라는 점이 단숨에 와 닿는 순간이다.
연속되는 코너에서 차체를 좌우로 기울이다 보면 그 성격은 더욱 확실해진다. 분명히 출발 때는 초보 라이더도 잘 받아주는 모터사이클이었는데, 어느 새 잘못 배어있는 라이딩 자세를 지적하며 처음부터 다시 달려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화려함을 보여주는 자잘한 능력보다는 부드럽게 달래줄 수 있는, 기본에 충실한 움직임을 차체가 원한다. 그리고 그 요구에 응하면, 옹골차게 버티던 차체는 자연스럽게 눕기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도 불안감은 전혀 없다. 차체를 눕힐 때 너무 눕힌 나머지 타이어가 그립을 잃거나 무게중심이 갑자기 변해 차체가 미끄러지는 것을 걱정하기도 하는데, 적어도 CB300R에서는 그런 것이 느껴지지 않는다. 자연스러운 코너링 감각을 라이더에게 요구하기 때문에 가능한 것일 수도 있지만, 무게중심이 차체에서 적절한 곳에 위치했다는 것이 느껴진다. 혼다의 기본기 그리고 놀라움을 보여주고 있다.
어느 덧 영종도를 한 바퀴 순환했다. 추운 날씨에도 잠시 모터사이클을 타면서 행복했지만, 이제는 또 다시 현실과 마주쳐야 한다. 그래도 괜찮다. 신명나는 주행을 즐겼던 CB300R은 이제 다시 마스터의 넓으면서도 포근한 적재공간으로 돌아간다. 그리고 헬멧을 벗은 라이더는 다시 시트에 앉아 스티어링을 잡는 일상으로 돌아간다. 레저란 그런 것이다. 신명나게 즐길 수는 있어도 현실을 벗어날 수는 없기에 다시금 현실로 돌아가 버틸 수 있는 에너지를 주는 것이다.
다시 마스터의 엔진을 깨우고 영종도를 벗어났다. 고속도로를 순회하는 경찰의 BMW 모터사이클이 날카로운 눈매로 먹잇감을 노리고 있지만, 마스터 안에서 이제 휴식을 취하고 있을 CB300R에게는 닿지 않으리라. 국내에서 모터사이클을 즐길 수 있는 방법이 이것밖에 없다는 것이 약간 슬프기도 하지만, 레저를 즐길 수 있는 방법을 마스터가 제시한다는 것도 하나의 해결책이 되는 것 같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니 마스터는 조금 큰 것도 같다. 크기가 적당할 것 같은 르노 캉구는 언제쯤 국내 땅을 밟을 수 있을까?
주요제원 혼다 CB300R
크기
전장×전폭×전고 : 2,020x805x1,050mm
휠 베이스 1,352mm
시트고 : 800mm
공차중량 : 145kg
연료탱크 용량 : 10.1리터
엔진
형식 : 286cc 단기통
보어 x 스트로크 : 76 x 63 mm
압축비 : 10.7:1
최고출력(ps) : 31 / 8,500rpm
최대토크(kg.m) : 2.8 / 6,500rpm
트랜스미션
형식 : 수동 6단
기어비 : ---
최종감속비 : ---
섀시
서스펜션 앞/뒤 : 도립식 텔레스코픽/모노쇼크
브레이크 앞/뒤 : 싱글 디스크
타이어 앞/뒤 : 110/70R17 / 150/60R17
성능
0-100km/h : ---
최고속도 : ---
연비: 42.5(60km/h 정속시 연비)
시판 가격
641만원
(작성 일자 2018년 12월 18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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