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 패밀리 그란투리스모, 기아 스팅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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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배기량 스포츠카는 운전을 즐기는 대부분의 사람들의 로망일 것이다. 물론 그러한 자동차를 운영하는 데 있어 연료비, 세금, 정비비용에 대한 부담을 피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가정이 생기기 전이라면 의외로 스포츠카에 대한 부담이 적은 것도 사실이다. 삼시세끼 라면만 먹고도 자신만의 스포츠카가 있다는 것에 감사할 수 있는 시기이고, 가끔씩 운전대를 잡고 드라이브를 즐기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수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가정이 생기고 아이들이 생기는 순간, 이와 같은 극단적인 선택은 할 수 없게 된다. 스포츠카는 물론이고 강력한 출력을 발휘할 수 있는 대배기량 자동차도 ‘연비’라는 극단적인 명제 앞에서 힘을 잃는다. 두 명만 탑승할 수 있어도 충분했던 실내 공간은 울음을 보채는 아이들과 유모차, 육아용품 한 보따리 앞에서 존재의 가치를 잃어버리고 최소 4명이 넉넉하게 탑승할 수 있는 공간과 유모차를 적재할 수 있는 트렁크를 확보한 후에야 한숨 돌릴 수 있게 된다.
이와 같은 공간의 변화는 운전을 즐기는 남자에게도, 여자에게도 예외가 없다. 돈을 아무리 벌어서 곳간을 채워도 시시각각 닥쳐오는 ‘퍼가요’의 행렬은 막을 수 없고, 금방 바닥이 드러난다. 자동차가 꼭 필요해도 한 대만 구입하게 되고, 가족을 위해서 성능과 운전의 즐거움은 사라진다. 스포츠카가 라이프스타일을 바꿔준다고 해도, 설령 구매할 수 있는 돈이 있다 해도 쉽게 쓸 수 없는 것이 현실이고 저배기량 자동차가 선택되는 것이다.
이번에 시승차로 스팅어를 선택하게 된 계기는 바로 그런 현실적인 곳에서 출발하게 됐다. 3,3L 트윈터보 엔진과 그 막대한 성능에 관한 이야기, 출력만으로 가볍게 드리프트를 구사하는 영상은 많이 봤다. 그러나 대부분의 운전자들이 패밀리카라는 명목으로 스팅어를 고른다면, 가족의 반발이 그나마 없을 2.0L 엔진을 많이 고르게 될 것이다. 물론 사전계약 고객 42.3%가 3.3L 엔진을 선택했다고는 하지만, 2.0L 승용차까지만 여러 가지 혜택을 받을 수 있는 가정도 있으니 말이다.
만약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2.0L 스팅어를 선택했다면, CF를 통해 강조했던 드리프트와 직관적인 성능 등을 모두 포기해야 하는 걸까?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전혀 그럴 필요가 없고 오히려 작은 배기량의 엔진으로 인해 운전의 재미가 더욱 살아나는 부분이 많다. 그래서 지금부터 이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보고자 한다. 출력 외에도 자동차의 재미를 찾을 수 있는 운전자라면 직접 운전해보고 그 만듦새에 놀랄지도 모르겠다.
스팅어의 외형을 언급하기 전에 두 대의 자동차를 먼저 언급해야 한다. 하나는 기아차가 2011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 공개했던 ‘GT 컨셉트’, 또 한 대는 ‘마세라티 기블리’다. 스팅어의 디자이너는(피터 슈라이어는 검수와 수정을 담당했을 뿐이다) 스팅어를 디자인할 때 1960년대에 출시됐던 GT 카에서 영감을 많이 받았고, 특히 1세대 기블리에서 큰 영감을 받았다고 한다. 그래서인지 스팅어의 라인과 면이 부여하는 분위기가 기블리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물론 세세한 면은 다르게 다듬어졌지만 말이다.
롱 노즈 숏 데크 디자인, 전면을 장식하는 날카로운 형상의 LED 헤드램프와 프론트 범퍼 양 끝단에 위치한 세로로 긴 형태의 에어 인테이크가 날렵한 느낌을 준다. 전면에서만 차를 관찰해도 한눈에 넓고 낮은 형상을 취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고, 이로 인해 날렵함이 배가된다. 보닛의 에어홀은 실제로 뚫려있지는 않지만 고성능을 강조하는 느낌을 낸다. 프론트 펜더 하단에 마련된 에어벤트는 실제로 구멍이 뚫려있어 이곳을 통해 공기의 흐름을 제어할 수 있는 것으로 보인다.
측면에서 가장 눈에 띄는 것은 A 필러를 지나면서 점차 낮아지는 루프라인과 블랙크롬으로 도금된 장식들이다. 트렁크 리드 거의 전 부분까지 사용하면서 내려오는 루프라인은 그동안 ‘쿠페형 세단’을 표방했던 국산차들에서 쉽게 볼 수 없었던 라인으로 아름다움이 강조되는 동시에 후방 시야를 일정 이상 확보하는 데 도움을 준다. 고성능을 강조하기 위해 측면으로 상당히 돌출된 펜더와 휠하우스를 꽉 채우는 19인치 5 스포크 휠, 붉은색으로 칠한 브렘보 캘리퍼도 고성능을 강조하는 부분이다.
후면에서는 테일램프를 하나로 이은 듯한 디자인이 눈에 먼저 들어온다. 달리는 즐거움을 강조하는 GT답게 테일을 치켜올린 형태로 디자인됐기 때문에 테일램프도 상당히 높은 위치에 적용된 것처럼 보인다. 뒷 유리창의 각도가 낮아 패스트백이라고 볼 수 있지만 뒤 유리까지 같이 열리는 테일게이트를 갖고 있어 해치백이라고도 할 수 있다. 리어 범퍼에는 쿼드 파이프 머플러와 디퓨저가 적용되어 있다.
실내로 들어오면 스포츠카와 가족을 위한 세단의 경계에 서 있는 듯한 인테리어와 만날 수 있다. 항공기의 날개를 모티브로 디자인한 대시보드는 센터페시아가 돌출되어 있어 운전석과 조수석의 경계를 구분하는 스포츠카의 이미지를 추구하지만 센터터널의 디자인과 컵홀더, 보관함은 세단의 이미지룰 추구한다. 운전자들은 대시보드와 스티어링, 계기반을 주로 보고 주행할 것이기에 영리한 디자인이라는 생각이 먼저 든다. 대시보드에는 푹신한 감각의 우레탄을 적용해 고급스러움을 강조하려 하고 있다.
3 스포크 스티어링 휠은 스포티함을 강조하는 타입으로 엄지손가락을 올리는 부분이 두툼하게 다듬어져 있다. 3.3L GT 모델에만 D컷 스티어링 휠이 적용되는 것은 약간 아쉽지만 이 정도로도 GT의 분위기는 살릴 수 있다. 시트는 5인승을 표방하고 있지마 실질적으로는 4인승인데, 1열 시트의 경우 버킷 스타일의 나파 가죽 시트를 적용하면서 착좌감이 단단하면서도 몸에 피로나 스트레스가 느껴지지 않도록 다듬어졌다. 그동안 국산차에서 푹신함이 강조되었다는 것을 고려해 보면 변화가 제법 크다.
스포티함을 강조하는 낮은 루프라인을 갖고 있지만 2열 좌석에도 헤드룸을 마련해 두었기 때문에 평균키의 성인이 2열에 앉는 데 있어 무리가 없다. 이 정도면 가족을 태우는 것은 물론 부모님을 모시기에도 손색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의외인 점은 트렁크가 상당히 넓다는 것으로 다양한 화물을 적재하기가 용이하며 공간이 더 필요하다면 뒷좌석을 접어서 적재 공간을 늘리는 것도 가능하다. GT임에도 불구하고 실용성이 높다는 것은 패밀리카로써도 합격점을 줄 수 있는 부분이다.
스팅어는 3.3L 트윈터보 V6 엔진과 2.2L 디젤 엔진 그리고 2.0L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의 3가지 엔진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앞에서도 이야기했지만 이번에는 6,200 rpm에서 최고출력 255 마력, 1,400~4,000 rpm에서 최대토크 36.0 kg-m을 발휘하는 2.0L 엔진을 골랐다. 변속기는 모두 8단 자동변속기를 적용하고 있으며, 후륜구동 또는 4륜구동 중에서 선택할 수 있다. 시승차는 후륜구동 모델이다.
아무리 다 운사이징이 대세라고 해도 배기량의 한계는 있는 법이고, 3.3L 엔진이 뿜어내는 최고출력 370 마력, 최대토크 52.0 kg-m을 따라잡을 수는 없다. 그러나 가속 페달에 발을 올리는 순간 2.0L 엔진의 출력도 제법이라고 느껴지는데, 그 이유는 작은 엔진을 탑재한 만큼 경량화되었기 때문이다. 시승차의 공차중량이 1,670 kg이고 3.3L 4륜구동 모델의 공차중량이 1,855 kg이니 무게 당 마력에서 2.0L 스팅어가 결코 크게 뒤지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낮은 엔진 회전부터 발휘되는 최대토크로 인해 시내에서의 주행은 물론 초기 발진 가속에서도 전혀 스트레스가 없다. 가속 시 변속기의 반응도 상당히 달라졌는데, 기존의 기아차와는 다르게 가속 페달을 깊게 밟을수록 엔진 회전수를 높게 잡아준다는 점이 마음에 든다. 전방 상황에 따라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도 회전을 일정 시간동안 유지해주니 재 가속에서도 그만큼 유리해진다. 변속기를 다듬을 때 알버트 비어만의 요구가 거셌다고 하는데, 한 사람이 자동차를 이만큼 변화시킬 수 있다는 점이 신기할 뿐이다. 단, 패들시프트를 이용한 적극적인 다 운시프트 때는 엔진의 회전을 레드존 직전까지 끌어낼 수 없다는 것이 아쉽다.
정지 상태에서 급가속을 진행하면 신체가 시트에 파묻히는 듯한 가속감이 발휘되지는 않지만, 최소한 머리는 헤드레스트에 묻을 수 있을 정도로 가속할 수 있다. 고속에서의 안정감도 놀라운데, 일반적으로 도달할 수 있는 고속 영역은 물론 초고속 영역에 도달해도 차체와 하체의 반응에서 불안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는다. 고속도로에서 다소의 과속을 하게 되더라도 계기반을 바라보지 않는 이상 동승한 가족들이 불안감을 느낄 일은 없을 것이다.
직선에서의 안정감도 중요하지만 스포츠를 표방하는 GT라면 코너링 성능도 중요한 법인데, 스팅어는 코너링에서도 그 능력을 발휘한다. 프론트 맥퍼슨 스트럿, 리어 멀티링크 방식의 서스펜션은 와인딩 로드에서의 자세 제어 능력도 십분 발휘하지만 과속 방지턱을 넘는 능력이 상당히 뛰어나다. 거의 충격을 전달하지 않고 부드럽게 넘어가는데, 그동안 기아차에서 볼 수 없었던 능력이라 깜짝 놀라서 몇 번이고 반복해서 넘어봤지만 변화는 없었다. 이것만으로도 패밀리카를 겸하는 GT로써 합격점을 줄 수 있을 정도다.
무엇보다 코너링에서의 감각은 오히려 3.3 보다도 나은데, 정확히 재 보지는 못했지만 프론트의 무게가 영향을 끼치는 것으로 보인다. 핸들링 감각은 뉴트럴과 약 언더의 사이로 머릿속에서 그리는 곡선을 거의 그대로 따라갈 수 있고 스티어링에서 느껴지는 반응도 직관적이다. 페달을 밟는 만큼 반응하는 제동력을 보여주는 브렘보 브레이크는 구매 시 필수적으로 장착해야 하는 옵션이 아닐까 싶다. 코너링과 브레이크 성능에는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타이어도 영향을 끼치고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2.0 으로도 드리프트가 가능한가를 궁금해할 것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어떤 드리프트를 추구하는가에 따라서 달라진다’고 할 수 있는데, 넘치는 출력과 토크를 이용해 타이어를 밀어붙이는 드리프트는 구사할 수 없다. 그러나 조금만 속력을 붙이고 코너에서 브레이킹을 통해 전륜에 하중을 실은 후 가속 페달과 스티어링을 동시에 조작해 후륜을 미끌어트리면서 구사하는 드리프트는 가능하다. 만약 그립과 드리프트의 경계를 주행할 수 있는 운전자가 있다면, 그 사람은 스팅어를 가장 빠르게 몰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스팅어 2.0은 3.3과는 다른 원초적인 재미를 보여줬다. 그것은 ‘넘치는 출력으로 도로를 찢고 다니는’ 모습이 아닌 ‘손 안에서 다룰 수 있는 살짝 넘치는 느낌의 출력으로 운전의 재미를 일깨워 주는’ 모습이었다. 그렇게 보면 스팅어 2.0 은 ‘패밀리카’로써 뿐만 아니라 ‘드라이버를 키우는 GT’로써의 역할도 같이 수행할 수 있는, 약간의 아쉬움이 화룡점정이 되는 GT카라고 할 수 있겠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해 스팅어 3.3 을 살 수 없다고, 2.0 밖에 선택지가 없다고 슬퍼할 필요가 전혀 없다. 그동안 가족을 위해 헌신하느라 낮아져 버린 운전실력을 키우기에는 이만한 교관도 없을 것이다. 그리고 운전 실력이 높아져도 또 다른 영역으로 이끌고 또 다른 재미를 계속해서 제공해 간다. 그러면서도 동승하는 가족의 편안함은 절대로 버리지 않는다. 어쩌면 스팅어는 ‘운전자의 실력에 따라 진화하는 패밀리 GT’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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