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일한 | 욕망의 키메라, BMW M760Li xDrive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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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한 제조사의 플래그십 세단이라고 하면 고급스러움과 안락함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물론 큰 차체를 끌기 위해 일반적으로 배기량과 출력이 높은 엔진을 탑재하지만, 일반적으로 이런 엔진들은 경쾌한 반응보다는 반 박자정도 느린 반응을 통해 다루기 쉽게 다듬어지는 것이 보통이다. 플래그십 세단이라 함은 운전자보다는 뒷좌석을 먼저 생각하게 되기 때문이고, 운전자의 운전 재미는 그만큼 감소하기 마련이다. 특히 뒷좌석을 좌우로 거의 완전하게 분리하는 형태의 롱 휠베이스 모델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세상의 모든 자동차들이 같을 수는 없는 법이고, 그것은 플래그십 세단에서도 마찬가지다. 높은 출력을 자랑하는 대배기량 엔진을 탑재하고 운전의 재미와 짜릿함을 살리고자 하는, 그런 모델들도 존재한다. 평범한 운전자들과는 다른 삶을 살고 싶어하는, 승차감 위주의 플래그십 세단임에도 불구하고 역동성을 중시하고 싶다는 운전자의 모순된 욕망을 만족시키기 위한 모델들이 있는 것이다.
BMW 7 시리즈 라인업 중에서도 760이라고 하면 가장 높은 숫자를 부여받은, 고성능 엔진을 품은 모델이다. 7 시리즈라는 이름이 처음 등장할 때부터 고성능 모델은 갖추어져 있었지만 본격적으로 760이라는 이름이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크리스 뱅글’이 디자인했던 E65 7시리즈부터이다. 이 모델은 영화 ‘택시 더 맥시멈’에서 여성 악당들이 애용하는 자동차로 등장해서 고성능을 자랑하기도 했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번에 기자의 앞에 서 있는 모델은 2세대 후에 등장한 M760Li xDrive다. 고성능 엔진이라고 해도 터보차저를 장착하고 배기량을 줄이는 다운사이징 시대에 6L를 넘기는 대배기량 V12 엔진을 탑재하고, 차체에는 M 전용 에어로파츠를 둘러 멋을 냈다. 고성능을 품고 과감하게 주행하지만, 뒷좌석에는 플래그십 세단에 걸맞는 편안한 시트와 다양한 기능을 적용했다. 고성능과 편안함, 모순된 두 가지의 욕망이 혼재된 것이다.
현재 BMW의 디자인 코드를 이끌고 있는 7 시리즈의 디자인은 언뜻 보면 BMW 대중소 중에서 대를 맡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그 안에 디테일을 적용해 다른 이미지를 만들어내고 있다. BMW를 상징하는 키드니 그릴은 좌우로 좀 더 넓게 간극을 벌리는 것과 동시에 아래로도 영역을 넓혔고, 가로로 긴 형태의 헤드램프가 바로 그릴과 맞닿는다. 자칫 심심할 수 있는 헤드램프는 끝부분을 치켜올리는 형태로 마무리해 엑센트를 주었다.
측면 프론트 펜더 하단에 적용된 에어벤트부터 시작해 하단을 따라 길게 이어지는 별도의 장식은 단순한 디자인으로 인해 자칫 심심해보일 수 있는 측면 디자인의 포인트가 된다. C 필러를 장식하는 호프마이스터킥은 이 차가 BMW라는 것을 정확히 알려준다. L자 형태로 다듬어진 테일램프는 방향지시등과 브레이크램프 사이에 크롬 라인을 적용해 영역을 구분하는 것은 물론 고급스러움도 강조하고 있다.
M760Li가 일반 모델과 다른 점은 역시 과감하게 두른 M 전용 에어로파츠다. 프론트 범퍼 하단의 에어 인테이크는 일반 모델보다 더 크게 제작되었고, 물결 무늬의 그릴이 적용되어 있어 역동성이 더해진다. 측면에는 사이드스커트를 더했고, 본래 리어 범퍼 하단에 두르고 있던 크롬 라인이 삭제되어 머플러가 조금 더 커져 보이는 효과가 있다. 시승차는 무광 색상을 적용해 역동성이 배가되어 보이는 효과가 있다.
실내는 대시보드만 바라봐도 ‘이 차는 BMW입니다’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특색이 있다. 수평으로 디자인 된 대시보드는 계기반이 있는 부분만 돌출시켰고, 센터페시아 상단에는 돌출형 모니터가 위치한다. 7시리즈만의 다른 점은 센터페시아의 버튼류를 전부 은색으로 마감했다는 점으로, 스타트 버튼도 은색으로 마감되어 고급스러움이 조금 더 강조된다. 대시보드 뿐 아니라 도어 트림과 센터콘솔에도 가죽, 우드, 은색 마감을 골고루 적용하고 있다. 센터터널의 기어 노브 옆에 새겨진 ‘V12’ 엠블럼은 이 차의 성능을 극단적으로 드러낸다.
뒷좌석 위주의 플래그십 세단이지만 앞좌석에도 고급 가죽과 퀼팅 처리를 적용했다. 시승차는 인디비주얼 옵션으로 메리노 가죽이 적용되어 있는데, 앉자마자 부드러움이 먼저 느껴진다. 시트의 위치는 물론 사이드 볼스터의 조임 정도까지 세세하게 조절할 수 있어 과감한 주행에서도 상체가 잘 고정된다. 마사지 기능이 있는 것은 덤이다.
뒷좌석은 암레스트를 위로 올려서 3명이 탑승할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는 2명이 탑승하는 것을 전제로 하고 있다. 특히 우측 뒷좌석은 편리함의 극이라고 할 수 있는데, 등받이를 최대한 눕힌 후 앞좌석 뒤에 있는 발판을 꺼내서 발을 올려놓으면 아늑한 휴식공간이 만들어진다. 시승차의 경우 태블릿 고장으로 시험해 볼 수는 없었지만, 버튼으로 손을 뻗을 필요 없이 태블릿을 터치하는 것만으로 뒷좌석 블라인드는 물론 조명, 좌석 조절도 할 수 있으니 편리하다고 할 수 있다.
M760에 탑재된 엔진은 배기량 6.6L의 V12 터보차저 가솔린 엔진으로 최고출력 609마력, 최대토크 81.6kg-m을 발휘한다. 거대한 차체 크기와 무게에도 불구하고 막강한 출력이 발휘되기 때문에 0-100km/h 도달에 3.7초라는 다소 비현실적인 수치를 자랑하며, 이 출력은 4륜구동 시스템을 통해 4바퀴에 고르게 분배된다. 숫자만으로도 ‘역동적인 주행을 위해 준비된 모델’이라는 것이 느껴진다.
당장 운전대를 잡고 싶지만, 플래그십 모델이라는 이 차의 성격 상 주행 중의 뒷좌석을 꼭 경험해보고 싶었기에 파트너 기자에게 양해를 구하고 먼저 뒷좌석에 앉았다. 등받이를 최대한 편하게 조정하고 앞좌석을 조정하면서 발판을 꺼낸 후 블라인드를 모두 올리고 마사지 기능을 작동시키니 편안함이 온 몸을 감싼다. 비행기 탑승 시 요금을 더 지불하고서라도 비즈니스 클래스를 탑승하는 사람들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그런데 그 편안함을 방해하는 것이 있었다. 파트너 기자가 성능을 즐기기 위해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고 급가속과 급감속을 반복하고 있는 것이다. 차체가 앞뒤로 출렁거리는 느낌이 뒷좌석에서 조금 더 예민하게 전달되면서 편안함이 아니라 어지러움이 먼저 급습해온다. 결국 등받이를 다시 세우고 나서야 어지러움을 상쇄할 수 있었는데, 만약 파트너 기자가 아니라 고용된 운전사가 운전하는 거였다면 그 자리에서 해고했을지도 모르겠다.
고속 영역에서의 거동은 정말 안정적이고, 초고속 영역에 돌입해도 뒷좌석에서 느껴지는 불안감은 거의 없다. 단지 누군가 뒷좌석에 탑승했다면 목적지까지 빨리 이동해야 하는 이유가 없는 이상 스포츠 모드만큼은 자제하는 것이 좋겠다. 급가속하면서 뒷좌석에 앞뒤로 흔들리는 느낌을 전달하지 않는 것은 불가능일 것이고, 배기음도 뒷좌석에서는 크게 울리면서 들린다. 뒷좌석 헤드레스트에 머리를 완전히 묻고 있어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다.
교대 지점이 되어 운전사와 승객을 바꾸는 시간이 되었다. 시트를 맞추고 운전대를 잡는 순간 방금 전 성능을 즐겼던 파트너 기자가 이해가 되기 시작했다. 시동을 걸었을 때 V12 엔진의 음색이 들리는 순간, 뒷좌석 승객의 존재는 잊어버리게 될 정도로 아드레날린이 온몸을 감싼다. 두툼하면서도 지름이 작은 M모델 전용 3스포크 스티어링 휠과 크기가 제법 큰 패들시프트도 주행 본능을 자극한다.
높은 출력을 갖고 있어서인지 가속 페달은 상당히 민감하다. 일반적으로 주행할 때 많이 사용하는 컴포트 모드로 맞추고 가속 페달을 1/7 정도 밟아서 출발해도 앞머리가 약간씩 들리는 것이 느껴질 정도다. 만약 뒷좌석에 귀빈이 탑승했고 운전 중 불쾌함을 전달해서는 안 된다면, 에코 모드로 맞추면 가속 페달 제어가 조금 더 쉬워진다. 스포츠 모드는 뒷좌석에 탑승한 사람이 없을 때 사용하는 것을 권하고 싶다.
가속 감각은 가속이라기보다는 워프에 가깝다. 2.3 톤의 차체가 이렇게 경쾌하게 질주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고, 전방에 장애물만 없다면 고속 영역을 넘어 초고속 영역까지도 금방 도달한다. 만약 장애물이 나타난다고 해도 침착하게 브레이크만 밟을 수 있다면 걱정은 없을 것이다. M 전용 브레이크가 커다란 차체를 순식간에 정지 상태로 만들어준다.
5.2m가 넘는 긴 차체를 갖고 있는데다가 롱 휠베이스 모델이기 때문에 코너링 성능에서는 큰 기대는 할 수 없다. 와인딩 코스가 없어서 과감한 진입은 시도하지 못했지만 적정 속력 내에서는 스티어링이 회전하는 대로 차체가 따라와 준다. 조향 시 속력에 따라 뒷바퀴의 조향 각도를 조절하는 인테그럴 액티브 스티어링(Integral Active Steering)이 큰 영향을 주고 있을 것이다. 조금만 속력이 높으면 무게로 인해 언더스티어가 쉽게 발생하기는 하지만, 운전자의 실력으로 제어할 수 있는 수준이다.
M760Li는 뒷좌석의 편안함으로, 플래그십 모델의 막강한 성능으로 독특함을 구사하고 있다. 플래그십 모델을 구매할 수 있는 재력을 갖춘, 그 중에서도 그 모델 속에서 막강한 성능을 원하는 니치 고객을 노리지만, 오히려 그만큼 노리는 고객층이 확실하기에 어필하기 좋은 모델이 아닌가 한다. 평상시에는 바쁜 일정으로 인해 운전사를 두고 움직여야 할 정도이지만, 잠시 여유가 생기는 밤이나 주말에 직접 운전하는 것을 즐기는 독특한 운전자를 위한 모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언제든 잠재된 힘을 사용할 수 있다’라는 여유로움과 자신감도 있다. BMW M의 방식대로 욕망을 조합한 모델, 어쩌면 키메라일지도 모를 M760Li는 그렇게 특수한 고객들에게 어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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