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픈톱 마니아, 그들을 위한 선택
컨텐츠 정보
- 438 조회
- 목록
본문
성격과 외모 모두 다르다. 공통점이라고는 오직 뚜껑이 열린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이미 내 마음속 리스트 상위권에 올라앉았다. 언젠가 꼭 한 번쯤은 가져보고 싶은 드림카 리스트 말이다. 가끔은 기분 따라 과감히 투자할 때도 있지만 현실적인 소비를 중시하는 나에게, 매번 트랙을 달릴 것도 아닌데 굳이 값비싼 고성능 오픈카만 오매불망 바라볼 필요는 없다고 스스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작은 고추가 얼얼하게 매운 것처럼, 작고 다루기 쉬운데다 심장을 두근거리게 만들어줄 정도면 충분하다.
일단 반드시 뚜껑이 열려야 한다는 점에서, 그리고 고성능까지는 아니더라도 운전재미가 있어야 한다는 점에서, 명단을 작성해보자. 우선, 오늘의 무대를 성사시킨 두 주연배우, 아우디 TT 로드스터와 미니 컨버터블이다. 어느덧 3세대로 진화한 TT는, 아우디 디자인을 대변하는 아이콘이다. 디자인에만 현혹되어서는 곤란하다. TT는 스포츠카의 성능까지 탐하는 스포티한 패션카니까. 미니 컨버터블이 한 체급 아래라고 해서 당당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 날카롭게 다듬은 TT와 달리, 미니는 여전히 귀엽고 동글동글한 인상을 무기 삼아 소비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지 않은가?
TT 로드스터와 나란히 세워볼 오픈카로는, 메르세데스-벤츠 SLC와 BMW Z4가 있겠다. 불행하게도, SLK의 후속모델인 SLC는 아직 국내에 상륙하지 않았고, Z4 역시 후속모델 Z5가 독일 본토에서 마지막 담금질을 거치는 중이다. 미니 컨버터블이라면, 폭스바겐 비틀 카브리올레나 아직 국내에 진출하지 않은 브랜드이기는 하나 전세계적인 인기를 얻고 있는 마쓰다 MX-5 정도면 꽤 그럴듯한 그림이 나온다. 아쉽지만, 두 모델 역시 신차로 우리의 손에 들어올 일은 당분간 없을 듯하다. 이들 말고도, 피아트 500C와 스마트 포투 카브리올레 정도가 떠오른다. 예전에 경험했던 500C는 여전히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있지만, 과감히 뺐다. 언제든 마음 굳게 먹으면 살 수 있는 차를 드림카로 올려두기에는 좀 그랬다. 포투도 마찬가지.
이렇게 추리고 추려서 결국 만난 둘. 우선 미니 컨버터블을 골랐다. 평범한 화이트 컬러의 TT에 비해, 가슴 깊은 곳까지 시원해지는 푸른 빛(캐리비안 아쿠아 메탈릭)으로 온몸을 두른 미니가 눈길을 사로잡았기 때문. 다이아몬드 패턴으로 고급스러움을 강조한 짙은 브라운 가죽시트에 몸을 맡겼다. 컨버터블이라고 인테리어 디자인이 특별한 건 아니다. 여느 3세대 미니처럼 아날로그와 디지털 감성이 적절히 섞인 실내를 지배하는 디자인요소는 동그라미. 그리 많은 정보를 보여주진 않지만, 헤드업디스플레이가 있는 게 어디냐며 붉게 두근거리는 토글스위치를 눌러 시동을 건다. 이제 막 잠에서 깨어난 미니에게 화창한 아침햇살을 선사하기 위해 곧바로 뚜껑을 열었다. 18초 내외로 열린 소프트톱은 뒷좌석 바로 뒤에 착착 접혀 쌓이더니, 결국 후방 시야를 가리고 만다.
장마전선과 태풍이 북상하면서 며칠간 비가 줄기차게 내리더니, 오랜만에 뜨거운 여름햇살이 내리쬔다. 주간날씨도 제대로 알려주지 못하는 기상청을 못 미더워하며 혹시 몰라 챙긴 장우산을 트렁크에 넣으려 했지만 일찌감치 포기했다. 짐공간으로 쓰면 딱 좋은 뒷좌석에 우산과 가방을 던져놓고 출발. 루프를 열어젖히면 온몸으로 쏟아지는 해방감을 만끽하는 일이나, 스치는 바람의 노래를 온몸으로 누리는 일만큼은 즐거웠다. 비록 2.0리터에 불과한 배기량이지만 방방거리는 배기사운드에 귀까지 호사를 누렸다. 출발 직후부터 쉭쉭거리며 공기를 빨아들이는 터보 가솔린엔진의 숨소리에 따라 기운차게 힘을 내는 성능도 부족함이 없었다. 약간의 롤을 허용하면서 노면을 놓치지 않으려 노력하는 하체도 충분했다. 여유를 갖고 크루징할 때는 군더더기 없이 편안했다.
▲ 미니는 클래식한 멋이 있어야 한다. 헤드업디스플레이도 좋다. 아날로그 계기반은 남겨달라!
하지만 작렬하는 태양의 복사열은 훤히 드러난 얼굴과 스티어링 휠을 잡은 두 팔을 태워버렸다. 덕분에 나는, 위아래 색감이 다른 팔을 갖게 됐다. 그래, 오픈카를 타는데 이 정도는 애교다. 그럼 무엇이 중요하냐고? 아무리 창문을 닫아도 바싹 곧추선 윈드실드를 타고 넘어 들이치는 습한 바람은 얼굴을 끈적거리게 만들었고, 통풍기능 없는 시트에 기댄 등과 엉덩이에는 땀이 줄기차게 흘러내렸다. 결국 나는 에어컨을 가장 강하게 틀어 뜨겁고 차가운 공기의 흐름을 인위적으로 조절해야 했다. 그래도 하만카돈 스피커의 사운드는 끝내줬다. 누가 봐도 땀 뻘뻘 흘리며 왜 뚜껑 열고 달리는지 이해하기 어려웠겠지만, 즐겨 듣는 노래를 귀가 뻥 뚫리게 틀고서 해안도로를 시원하게 질주하는 순간은 그 무엇과도 바꾸기 싫었다.
다음은 1세대부터 이어온 동그란 형태는 유지한 채, 날카롭고 매끈한 선으로 다듬은 TT 로드스터. 2인승 로드스터 실내는 미니 실내가 화려해 보일 정도로 단순하다. 완벽에 가깝게 화려함을 없애고, 오직 필요한 기능을 최소한의 장비에 담은 모습이 담백하게 맛깔스럽다. 차에 대한 각종 정보나 내비게이션, 엔터테인먼트 기능은 12.3인치 버추얼 콕핏 계기반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에 달린 버튼과 기어레버 아래 MMI 터치 컨트롤러 조작만으로도 시스템 구석구석 세팅할 수 있다. USB 포트를 무려 두 개나 마련해놓은 건 감지덕지한 일이다. 미니의 수동식 시트조절 버튼이 불편하지는 않았지만, 옆구리 조임까지 조절할 수 있는 TT 시트가 더할 나위 없이 편하다. 최대한 낮춘 시트포지션은 진정 스포츠카의 그것처럼 바닥에 닿을 것 같다.
▲ 콰트로시스템을 품었지만 주로 앞바퀴를 굴리는 TT의 2.0리터 엔진은 가로로 놓여있다
엔진을 깨우자, 미니 컨버터블의 기지개소리보다 더 우렁찬 사운드를 낸다. 출발하기 전부터 설레는 마음이라니. 소프트톱을 열자 천장을 바라보며 절로 나오는 감탄의 소리. 10초도 안 걸리는 뚜껑 개폐 속도는 오픈카 마니아들의 취향을 저격하는 이유 중 하나 아닌가? 심지어 미니 컨버터블의 시속 30km보다 빠른, 시속 50km 내에서 열리는 소프트톱은 더더욱 말이다. 전동식 윈드 디플렉터는 실내로 들이치는 바람을 일부분 막아줘 오픈 드라이빙을 더 쾌적하게 누리도록 도와주는 요소. 옆자리에 앉을지도 모를 그녀를 위한 목 히터도 있다. 그런데 왜 더울 때를 대비해 냉풍은 안 나오는 거지?
▲ 6단 S-트로닉 듀얼클러치는 똑똑하고 재빠르다. 수동모드에서 레드존 직전 멋대로 변속하는 건 혼나야겠지만
이미 타버릴 대로 타버린 두 팔은 잊은 지 오래. 난 그저 가득 차오르는 희열에 정신을 내던졌다. 같은 배기량이지만, 미니 컨버터블의 192마력, 28.6kg·m보다 강력한 220마력, 35.7kg·m의 성능을 보유한 가솔린 터보엔진은 앞뒤 바퀴로 줄기차게 힘을 보냈고, TT 로드스터는 그저 운전자의 부름을 받아 소리 지르며 앞으로 내달리는 종마였다. 엔진과 변속기, 스티어링 휠뿐만 아니라 콰트로시스템, 엔진사운드까지 다이내믹하게 세팅할 수 있는 드라이브 모드는 이성을 마비시키는 촉진제였다.
▲ 화면 가득 나타나는 지도, 각종 설정이 이루어지는 계기반마저 TT에게서 빼앗는다면? 그때는 자율주행 시대일 것이다
미니 컨버터블에 올랐을 때, 저만치 맹렬하게 앞서 나가던 TT 로드스터를 따라잡기란 불가능에 가까웠다. 계기반 속 숫자가 200이 넘어갈 때쯤에야 겨우 꽁무니에 붙었다. 미니 컨버터블의 핸들링도 명료하고 기민하다 생각했지만, TT 로드스터는 그보다 더 예리했고 날카로웠다. 스포츠카를 꿈꾸는 TT 로드스터의 단단한 하체가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있었다. 물론 미니만큼은 아니지만, TT 역시 노면을 스캔하는 방식이 직관적이라 운전자에게 많은 얘기를 건넨다. 하지만 감각을 곤두세우면, 화술이 다르다는 걸 금세 안다. 미니는 직접 화술에 능하다. 공격적이고 통통거린다. 반면 TT는 상대방이 받아들이기 쉽도록 한 차례 걸러 얘기한다. 그래도 할 말은 하고야 마는, 성격 강한 아이다. 그렇기에 빠른 속도로 요철을 타고 넘을 때, TT의 서스펜션 마운트가 찢어지진 않을까 걱정도 든다. 사운드 시스템은 미니의 것보다 아래급인데다가, 소프트톱 사이로 들리는 풍절음도 미니보다 크기에 음악을 즐길 여유는 없었다. 그저 배기사운드에 취하고 이를 배경음악 삼아야 했을 뿐.
햇볕이 가장 뜨거운 시간에 몸을 혹사하며 오픈 에어링을 경험했다. 교외라 그렇지, 교통정체 심한 한낮의 서울 시내 안에서 뚜껑을 열기란 쉽지 않다. 정부가 그토록 신경 쓰고 있는 미세먼지며 쏟아지는 주변의 시선이 아직은 낯설다. 오히려 시원스레 뚫린 새벽의 강변도로를 달리며 신선한 공기를 마시는 일이 더 즐겁다. 누군가는 야근을, 어떤 이는 왁자지껄 즐기고 있을 시간에 새벽바람을 즐기며 여유롭게 달리기에는 미니 컨버터블이 더 어울리고, 정말 신나게 달려보기만 할 생각이라면 TT 로드스터가 낫다. 미니 컨버터블의 하만카돈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오는 볼륨을 키워 바람과 음악, 배기사운드의 삼중주에 흠뻑 빠져보는 시간도 즐겨보고, TT 로드스터 엔진의 거친 숨결과 날카로운 바람의 노래를 뒤로 흘리며 시간을 불태우는 것도 만끽해보자. 물론 좀더 합리적인 제너럴리스트를 꼽으라면, 그리고 지극히 현실적이고 지갑 사정까지 고려해야 하는 나는, 전자를 선택하겠지만.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