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우디 RS7 자율주행 컨셉트카, 로비를 잡아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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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 카스테욜리 서킷에서 아우디 RS7 자율주행 컨셉트카 ‘로비’의 성능을 체험했다. ‘로비’는 해당 서킷의 정밀 지도를 입력하고, 좌우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씩 달린 이후엔 스스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고의 랩 타임을 낸다. ‘로비’ 서킷 질주 시연 이후 기자는 무게와 성능이 같은 RS7으로 옮겨 탔다. ‘로비’와 랩 타임 승부를 겨루기 위해서였다.
2020년. 전세계 주요 자동차 업체들이 이구동성으로 ‘자율주행자동차 판매를 시작하겠다’고 못 박은 시기이다. 이제 5년밖에 안 남았다. 자율주행자동차의 정의는 그 이름에 고스란히 나와 있다. 도로시설과 교통상황을 파악해 스스로 달리는 자동차다. 사람이 운전대나 가속 및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하지 않아도 된다. 진정한 의미의 ‘자동차’(自動車)인 셈이다.
현재 자율주행 직전 단계까지 상용화
공상과학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실제로도 가능할까? 이미 자동차 관련 기술은 자율주행 전 단계인 ‘지능형운전보조 시스템’(ADAS)으로까지 진화한 상태다. 현재 판매 중인 일부 고급차는 후측방경보, 자동긴급제동, 차선이탈경보, 차선유지지원, 어드밴스드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주차보조장치 등 운전자의 실수를 보완할 각종 기술을 빠짐없이 챙겼다.
자율주행차는 기존 고급차의 레이저와 레이더, 초음파 센서 이외에 앞뒤 3D 카메라와 정밀 위성항법장치(DGPS)까지 갖춘다. 3D 카메라는 주변 지형지물을 지도 정보를 넘어 실제와 같은 형태의 입체로 파악하는 데 쓴다. 또한, 일반 자동차와 달리 위성항법장치(GPS)를 두 개씩 단다. 장치 위치에 따라 생길 수 있는 오차를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다.
그런데 완벽한 자율주행을 위해선 차 주변을 살피는 센서만으론 부족하다. 더 큰 그림을 봐야 한다. 따라서 쌍방향 통신인 V2X와 정밀지도 기술이 뒷받침돼야 한다. V2X는 대상에 따라 ‘자동차 대 자동차’의 V2V(Vehicle to Vehicle)와 ‘자동차 대 시설’의 V2I(Vehicle to Infrastructure), ‘자동차 대 사람’의 V2P(Vehicle to Personal)로 나뉜다.
V2X 기술은 센서의 빈틈을 꼼꼼히 메워준다. 가령 바로 앞 차 너머의 상황이나 신호를 위반하고 교차로로 질주하는 차의 존재를 미리 알려준다. 각 통신 주체끼리 실시간으로 끊임없이 정보를 주고받으며 사고의 개연성을 없앤다. 각국 정부가 자율주행차 개발을 독려하는 이유 또한 여기에 있다. 교통사고 사망 및 부상자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자율주행으로 과속이나 불필요한 차선변경, 위험운전 등을 막을 수 있다. 그 결과 에너지절약에도 도움이 된다. 군사용으로도 관심이 뜨겁다. 미 국방성은 자율주행차 기술을 이용해 지상군 전력의 3분의 1을 자동화할 계획이다. 자동차 업계도 반긴다. 고령화로 치솟는 사고율, 포화 상태에 다다른 선진국 신차 시장 등의 악재를 넘어설 수 있는 기회인 까닭이다.
아우디의 서킷 자율주행차 체험
지난 11월 15일, 아우디가 스페인 바르셀로나 인근 카스테욜리 서킷에서 치른 자율주행차 시승회에 참석했다. 아우디는 자율주행차에 대한 관심을 이끌어내기 위해 고성능차를 앞세우고 있다. 2010년엔 TTS 자율주행차로 미국의 유명 자동차 경주 코스인 ‘파이크스 힐 클라임’ 완주에 성공했다. 지난해엔 RS7 자율주행차로 서킷을 시속 240km가 넘는 속도로 누볐다.
이날 탄 차가 바로 RS7 자율주행차다. 아우디가 ‘로비’(Robby)란 애칭으로 부르는 차다. 밑바탕이 된 모델은 V8 4.0L 가솔린 트윈 터보 엔진을 얹고 560마력을 내는 RS7이다. 여기에 각종 센서와 3D 카메라, 정밀 GPS를 달아 자율주행차로 개조했다. 두뇌는 트렁크에 숨겼다. 센서가 보내는 신호를 해석해 조작에 반영하기 위한 컴퓨터와 전선으로 가득하다.
‘로비’의 외모는 차체에 요란스럽게 씌운 스티커와 앞 범퍼 밑의 카메라를 빼면 RS7와 똑같다. 실내 또한 판박이다. 다만 동반석 앞 대시보드에 작은 디스플레이 3개를 달았다. 이들 화면은 차에 가해지는 물리력을 다양한 그래픽으로 띄운다. 자율주행 시스템이 어떻게 상황을 분석하는지 탑승객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한 일종의 서비스인 셈이다.
‘로비’는 이론적으로 딱 세 가지 과정만 거치면 전세계 어떤 트랙에서도 달릴 수 있다. 먼저 해당 서킷의 정밀 지도 데이터를 시스템에 입력한다. 그리고 서킷의 오른쪽과 왼쪽 가장자리를 따라 한 바퀴씩 돈다. 이후엔 스스로 시뮬레이션을 통해 최적의 동선을 계산해 달린다. 타이어가 달아올라 접지력이 치솟거나 균형을 잃는 등의 변수에도 알아서 대응한다.
베테랑 레이서처럼 달리는 ‘로비’
이번 행사는 먼저 ‘로비’의 옆좌석에 앉아 서킷을 도는 과정을 체험하고, 무게와 성능이 같은 RS7을 직접 모는 순서로 진행했다. 출발선에 선 ‘로비’의 운전석엔 아우디 직원이 앉아 있었다. 실내에 설치한 카메라에 기자의 이름표를 보여주자 어디선가 ‘확인 완료’라는 기계음이 들려온다. 이제 출발할 시간. 아우디 직원은 손에 쥔 격발장치의 스위치를 꾹 눌렀다.
황당하다 못해 소름이 돋았다. ‘로비’가 격렬하게 서킷을 헤집기 시작했다. 기자는 그동안 옆좌석에 앉아 프로 레이서의 운전을 경험할 기회가 많았다. ‘고수’의 서킷 운전엔 공통점이 있다. 최소한의 조작으로 가장 매끄러운 동선을 그리며 최대한 빨리 달린다. 타이어가 미끄러지는 비명 소리조차 듣기 어렵다. 그리고 몇 바퀴를 돌든 기록이 거의 같다. 이 차가 딱 그렇다.
‘로비’는 코너를 오려내듯 정교하게 먹어치웠다. 기자가 머릿속으로 가늠한 ‘레코드 라인’을 한 치의 오차 없이 밟아 나간다. 타이어는 급제동 때를 제외하곤 울음과 비명을 속으로 꾹꾹 삭이면서 물리력과 치열하게 싸운다. 웜업과 핫랩, 쿨다운 랩 등 3바퀴를 도는데, 레이싱 게임 속 ‘리플레이’ 모드처럼 각 랩의 궤적이 판박이다. 드디어 ‘로비’의 시연이 끝났다.
기자는 잔뜩 긴장한 채 일반 RS7의 운전대를 쥐었다. 그리고 신호가 떨어지자마자 가속 페달을 끝까지 밟았다. RS7이 맹렬히 등을 떠미는 가운데, 앞서 경험한 ‘로비’의 궤적과 한계속도를 떠올리며 숨도 참고 달렸다. 몸 풀기, 전력질주, 엔진과 브레이크를 식히기 위한 저속주행까지 총 3바퀴를 돌고 출발점에 멈춰 섰다. 아우디 스태프가 환호성을 질렀다.
차에서 내려 기록을 확인했다. ‘로비’는 2분8초722, 기자는 2분5초903. 2.819초 차이로 간신히 이겼다. 그러나 자율주행차 개발을 총괄하는 클라우스 버웨인 박사의 설명을 듣고 좌절했다. “안전을 위해 로비는 자기 능력의 97%로 달리게 세팅했어요.” 아울러 그는 “극단적인 상황에서 차가 스스로 제어할 수 있는 능력을 다듬기 위해 로비를 개발했다”는 말을 덧붙였다.
‘황금 알을 낳는 거위’로 기대 모아
아우디의 자율주행차 기술 가운데 서킷 전용 ‘화끈이’는 일부에 불과하다. 아우디는 2015년 초 CES(소비자 가전 쇼) 기간에 발 맞춰 자율주행차 시연을 선보였다. ‘잭’이란 이름의 A7 자율주행차에 기자들을 태우고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라스베이거스까지 885km를 달리는 데 성공했다. ‘잭’은 일반도로에서 다른 차와 천연덕스럽게 섞여 달렸다.
자율주행차가 화두로 떠오르면서 기술 확보를 위한 합종연횡도 활발하다. 2015년 5월, 독일 자동차 부품업체 콘티넨탈은 자동차 소프트웨어 업체 ‘일렉트로 비트 오토모티브’를 인수했다. 7월엔 아우디와 BMW, 메르세데스 벤츠가 ‘노키아 히어’를 공동 인수했다. 정밀지도 노하우를 손에 넣기 위해서다. 혼다는 GM과 자율주행 기술제휴를 고려 중이다.
미국 시장조사 전문기관 ‘내비건트 리서치’는 2020~2035년 자율주행차 판매가 연평균 85% 가까이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다. 아울러 2035년 자율주행차 시장 규모는 연간 9,540만 대로 점쳤다. 예상대로라면 ‘황금 알을 낳는 거위’인 셈이다. 때문에 자동차 및 부품 업체는 물론 구글이나 애플 같은 IT 기업까지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에 뛰어든 상태다.
자율주행자동차 개발은 민간 차원에서 먼저 시작했다. 1977년 일본 스쿠바공대가 대표적이다. 이 대학 소속 연구팀은 도로에 미리 찍어둔 흰색 점을 좇아 시속 20km로 주행할 수 있는 자동차를 개발하는 데 성공했다. 이후 완성차 업체가 뛰어들어 1980년대 메르세데스 벤츠가 뮌헨분데스베어대학과 함께 시속 100km까지 달릴 수 있는 ‘로봇 밴’을 개발했다.
이후 제조사도 뛰어들며 기술 개발에 가속이 붙었다. 아우디는 2017년 제한적 자율주행이 가능한 신형 A8을 선보일 예정이다. 자동차 전용도로를 시속 60km 이하로 달릴 때 주변 교통상황을 파악해 차선을 바꿔 추월도 하고 양보도 하며 달릴 수 있다. GM은 “내년 캐딜락의 기함 CT6에 조건부 자율주행이 가능한 ‘수퍼 크루즈’ 기능을 넣어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운전자가 외부에서 차를 조종할 수 있는 기술도 선보이고 있다. BMW 신형 7시리즈는 운전자가 차에서 내린 뒤 리모컨 키로 원격 주차할 수 있다. 주차공간을 설정한 뒤 전진, 후진 버튼만 누르면 차가 알아서 스티어링과 가감속을 조절하며 주차한다. 랜드로버는 차 밖에서 스마트폰으로 전후진은 물론 스티어링까지 조종할 수 있는 기술을 공개했다.
구글의 행보도 관심을 모은다. 이미 1만1,000km 이상의 자율주행 시험을 진행한 구글은 준자율주행 단계를 생략하고 곧장 완전 자율주행차를 목표로 삼았다. 2014년 5월에 구글이 선보인 시제품이 그 증거로, 운전대와 페달이 아예 없다. 구글은 자율주행차 운영에 필수적인 빅데이터를 보유하고 있는 만큼 향후 시장의 주도권을 쥐고 흔들 다크호스로 주목받고 있다.
아직 풀어야 할 숙제도 많아
법규도 발맞춰 가는 중이다. 가장 발 빠르게 움직이는 나라는 미국이다. 네바다, 플로리다, 캘리포니아, 워싱턴 DC, 미시간 등 5개 주에서 자율주행차를 허용했고, 20개 주에서 검토 중이다. UN은 2013년 ‘비엔나 협약’을 46년 만에 개정해 72개국에서 자율주행차 시험과 상용화의 빗장을 풀었다. 일본은 정부 주도의 자율주행차 보급확산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다.
우리나라도 2014년 10월, 자동차 관리법 개정안을 발의해 조건부 임시운행의 근거를 마련했다. 2015년 11월 30일엔 영동고속도로의 서울요금소에서 호법까지 41km, 수원·화성·용인·고양 등의 일반 국도 320km를 시험운행 구간으로 확정했다. 2016년 2월부터 이 구간에서 시험운행을 시작하고,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지역에서 자율주행차를 운영할 계획이다.
자율주행 기술수준은 L0~L4의 5단계로 분류한다. L0의 수동 운전을 시작으로 L1은 단독기능 자동화, L2는 통합기능 자동화, L3는 조건부 자율주행, L4는 100% 자율주행이다. 2020년 판매를 선언한 자동차 제조사가 당장 양산화 가능한 기술수준은 L2 정도다. 현대차도 2015년 12월 9일 L2 수준의 ‘고속도로주행지원 시스템’을 갖춘 제네시스 EQ900을 출시했다.
그러나 아직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설령 2020년 L4 수준의 자율주행차가 나오더라도 운전자의 완벽한 자유를 기대하긴 어렵다. 자율주행 기술이 없는 일반 자동차와 도로를 함께 쓰는 까닭이다. 따라서 현재로선 상황에 따라 자율주행으로 달리되 위험 상황에선 운전자가 주도권을 넘겨받는 형태가 유력하다. 국가별로 이해관계와 지향점이 다른 V2X 기술의 통일도 관건이다.
최근엔 윤리적 문제도 대두됐다. 가령 자율주행차가 극단적 조작으로 사고를 피해야 할 때 운전자와 여러 명의 보행자 중 어느 쪽을 살려야 할지……. 사고가 났을 때 책임규명 또한 골칫거리다. 제조사 입장에선 보험사에게 떠넘길 수만도 없다. 자율주행차의 실수로 판명될 경우 제조물 책임법 때문에 심각한 위기를 맞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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