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BMW, 520d (럭셔리 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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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한해 BMW는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 중심에 디젤 엔진이 있다. 과거 BMW는 가솔린 엔진을 중심으로 시장에서 높은 판매량을 이어 나갔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졌다. 이제 BMW 소비자 상당수가 디젤 엔진을 갖춘 모델들을 원한다. 디젤 엔진은 BMW코리아의 성장에 큰 기틀이 됐지만 역으로 고급 사양을 구입하던 VIP 소비자들을 떠나게 만든 계기가 됐다. 국내 소비자들은 똑같은 디자인을 갖춘 고가 트림에 많은 투자를 하지 않으려 한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시장에서 BMW를 이끌던 것은 530i였다. 그리고 당시 모델은 평균 8천만 원대에 팔렸다. 그리고 그런 흐름이 일정 수준 이어졌다. 적어도 E60 5시리즈 시절까지만 해도 중심을 이루던 것은 6기통 가솔린 엔진의 528i였다. 하지만 F10 5시리즈가 등장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2.0리터 디젤 엔진의 520d가 시장을 주도해 나갔던 것. E60 때도 520d가 있었지만 인기가 그리 폭발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520d(F10). 기존 가솔린 모델 대비 저렴한 6천만 원대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같은 디자인을 가진 8~9천만 원대 고가의 가솔린 모델을 찾는 소비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
국내 소비자 중 상당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폼 나는 상품을 갖길 원한다. 최근의 일일까? 아니다. 현대차가 뉴그랜저를 내놓았을 당시도 상황이 같았다. 도로를 주행하는 그랜저 모두가 V6 3.0 표시를 하고 있었다. 당시 2.0 가솔린이 꽤나 팔렸지만 거리에서 만나긴 어려웠다. 굳이 구분하려면 실내를 들여다봐야 했는데, V6 버전은 주차 때 핸드 브레이크가 아닌 풋브레이크를 썼다.
다시 5시리즈로 돌아가자. 520d가 큰 인기를 끌어 BMW코리아의 볼륨 확장에 도움을 줬지만 그동안 고가의 트림을 찾는 소비자들은 똑같은 디자인을 갖춘 5시리즈를 8~9천만 원 혹은 그 이상 주로 구입해야 할 의미를 잃었다. 비싼 비용을 들여 구입해도 남들이 보기엔 520d와 다르지 않았던 것. 결국 상급 트림 시장은 무너졌고 520d를 중심으로 시장이 유지됐다.
그리고 차기 5시리즈(G30)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그 사이 폭스바겐 발 디젤 게이트가 있던 터라 가솔린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커졌지만 역시 BMW를 이끌던 것은 520d였다. 하지만 올여름 화재 이슈가 떠오르면서 BMW 디젤 엔진은 치명상을 입었다.
물론 BMW의 잘못이긴 하다. 개발 단계부터 문제를 알면서 방치했다면 모르지만 그들도 차를 판매한 이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공식적으로 실수를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사에서 문제를 찾는 데는 의외로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은 다른 의견이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그들의 대응이 빨랐다는데 의견을 모으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올 한해 쏟아진 BMW 관련 기사는 BMW코리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쓰인 모든 기사와 맞먹는 규모가 아니었을까 싶다. 정말 많은 곳들이 기사를 썼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기사를 낸 곳들도 많았다. 더 자극적인 것, 그를 통해 포털의 선택(메인 페이지 노출)을 받기 위한 언론사들의 몸부림이 그칠 줄 몰랐다는 얘기다. 가짜 뉴스만큼 무서운 우리네 미디어 현실이다. 물론 자극적 제목을 클릭부터 하는 네티즌이 많기에 벌어지는 일이겠지만.
사설이 길었다. 우리 팀이 520d(G30)를 만난 것은 지난 7월 중순이었다. 이 시기는 엔진 화재 문제가 커지기 이전이다. 정확히는 화재 건이 몇 건 나오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컨텐트를 준비하는 동안 화재 건이 극에 달했고, 결국 520d의 업데이트를 늦춰야 했다. 화재와 무관한 엔진이 탑재된다지만 일단 반감부터 갖는 소비자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간 해를 넘길 것 같아 520d 편을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물론 앞뒤 가리지 않고 욕부터 써댈 네티즌들도 있겠지만 똑똑한 소비자들은 전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것이다.
그럼 520d를 만나보자.
앞서 언급된 것처럼 520d는 BMW코리아의 사세(社勢)를 확장하는데 큰 영향력을 행사한 모델이다. 정말 여기 가도 저기 가도 5시리즈가 즐비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단순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연비라는 요소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구성, 그것이 5시리즈의 인기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G30 5시리즈는 한층 세련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완성도가 대폭 높아졌다. 한층 탄탄해진 차체, 무게도 줄였다.
우리 팀은 처음 5시리즈(G30 530i)를 만나며 일부 실망감을 표했었다. 그리고 BMW 마니아들과 5시리즈 소비자들 일부는 우리를 원망했다. 하지만 정확히 짚고 볼 부분이 있다. 한국형 5시리즈는 M 패키지가 기본이었다. BMW에게 M 이란 무엇인가? 고성능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한층 강화된 성능을 떠올리게 되는데 국내형 M 패키지에는 노멀 사양의 말랑한 서스펜션이 기본이었다. 당시 질타를 받았던 것은 그 부분이다. 하지만 컴포트한 성향의 고급 세단으로 접근하면 5시리즈는 매력적인 차가 된다. 또한 탄력성 좋은 서스펜션을 가진 540i는 좋은 승차감과 성능을 보였다.
이번에는 520d다. 경제성과 편안함을 추구한 고급 중형 세단이다. 고성능을 주장하지도, 그 이상의 것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대중적인 성격의 모델이다.
디자인도 앞서 테스트한 모델들과 조금 다르다. 현재의 520d는 M 스포츠 패키지가 적용되지 않은 럭셔리 라인이다. BMW 코리아는 7세대 5시리즈 출시와 함께 ‘국내 모델 M 스포츠 패키지 기본 적용’이라는 큰 결정을 했다. 결국 엔트리 모델과 최상위 모델을 구분 짓는 요소가 사라졌다. M 스포츠 패키지 모델만 보다가 럭셔리 라인을 만나니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차체 곳곳은 어두운 다크 몰딩 대신 반짝이는 크롬으로 장식했다. 불필요하게 큰 휠을 사용하기보다 적절하게 18인치 휠을 넣어 실리를 챙겼다. 그래도 후면부 머플러는 2개를 노출시켜 밋밋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입문형 모델에 속하지만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한다. 나무의 촉감을 연상시키는 고급스러운 우드 트림도 넣었다. 시트는 통풍 기능을 지원하며 파이핑으로 멋을 낸 나파 가죽으로 마감된다. 프리미엄 모델다운 구성이다.
과거의 520d는 구성이 약했다. 반면 이번 520d(G30)는 디스플레이 계기판, 대형 센터페시아 모니터, 디스플레이 키, 무선 충전 시스템,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다양한 장비들을 갖췄다.
자동 주차 기능도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자동 주차와 더불어 가장 진보한 시스템으로 평가받는 기능이다. 현재까지 자동 주차는 차량이 주차 공간을 인식하면 스티어링 휠만 스스로 조작해줬다. 변속기를 전진과 후진으로 조작하거나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행동 등은 운전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5시리즈의 자동 주차 기능은 주차 공간을 인식한 후 기어 레버 하단에 위치한 주차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차량이 스스로 전진과 후진을 하며 주차를 해준다. 긴급한 상황에 대비해 운전자는 브레이크 페달에 발만 올려놓고 대기하면 된다. 평행 주차와 직각 주차 모두 가능하며 인식률도 뛰어나다.
다만 조금 더 조심해서 주차를 해줬으면 좋겠다. 조금은 터프하게 주차를 해주는데 탑승자가 겁을 먹을 수 있기 때문. BMW의 반자율 주행 시스템도 탑승자를 살짝 불안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자동으로 조작되는 시스템인 만큼 보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면 좋겠다. 물론 기능의 문제가 아닌, 작동 속도를 언급하는 것이다.
520d에도 반자율 주행 기능이 기본이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이탈 경고 및 방지, 사각 및 후측방 경고,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시스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조작도 매끄럽고 차선 인식도 빠르게 잘한다. 하지만 이따금 한쪽 차선에 가까이 붙거나 옆 차로에 차가 있어도 이를 무시하고 달리는 경우가 있어 운전자를 긴장시키곤 한다.
뒷좌석은 넉넉하다. 국산 모델인 제네시스 G80과 비교하자면 레그룸이 좁지만 헤드룸은 더 넓다. 비즈니스 세단으로는 충분한 공간이다.
본격적인 테스트에 앞서 7세대 520d가 국내 시장에서 얼마나 잘 팔리는지 살펴보자. 7세대 5시리즈는 지난 2017년 2월 출시됐다. 이후 2018년 6월까지 3만 9,624대가 판매됐다. BMW가 판매한 10대 중 4대 이상이 5시리즈라는 얘기다.
그런 5시리즈 중에서 가장 잘 팔린 모델이 520d였다. 5시리즈를 구입한 소비자 중 520d를 선택한 비율이 62%(61.69%)에 달했다. 5시리즈의 이미지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제 주행을 시작해 보자. 520d에 탑재된 엔진은 너무나도 유명한 4기통 2.0리터 디젤. 최고출력 190마력과 40.8kg.m의 토크는 이제 업계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수치다. 여기에 SCR 후처리 시스템을 달아 질소산화물 배출도 저감 시킨다.
시동을 걸면 BMW 특유의 4기통 디젤 엔진 소리를 들려준다. 현대 기아의 2.2리터 디젤과 비교해 조금 더 낮은 톤으로 ‘겔겔’거리는 모습이다. 아이들 정숙성을 측정한 결과 39.0 dBA. 인피니티 Q60S, 렉서스 IS 200t 등 가솔린 모델과 비교될 정숙성이다. 통상 우리 팀이 기준으로 보는 것은 40.0 dBA 수준. 쉽게는 인피니티나 렉서스가 시끄러운 것이 아닌, BMW의 디젤 엔진이 조용하다는 것이다.
다만 스티어링 휠을 통한 진동이 조금 부각되긴 한다. 이 부분은 국산 브랜드가 잘하는 영역이긴 하다. 하지만 520d도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N.V.H. 부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부분은 주행 때의 정숙성이다. 80km/h의 속도로 주행하는 환경에서 확인된 정숙성은 55.0 dBA에 불과했다. 제네시스 G80 디젤과 동일한 수치이며 자사 최고급 세단 730d의 57.5 dBA보다도 조용한 결과를 냈다. 엔진 소음과 풍절음은 물론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상당히 잘 억제시킨 모습이다.
이번에는 무게를 확인했다. 7세대 5시리즈는 각종 경량 소재를 활용해 이전 모델 대비 최대 100kg까지 감소시켰다. 하지만 국내 사양에는 많은 장비가 탑재돼 줄어든 무게만큼의 이점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에 따른 7세대 520d의 무게는 1,683 kg으로 확인됐다. 우리 팀이 6세대 520d의 무게를 측정한 결과가 1,700 kg이었으니 참고가 될 것이다.
토크를 중심으로 밀어붙이는 초반 발진 가속감은 여느 디젤 차와 유사하다. 하지만 실제 가속력이 좋다. 적어도 출력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실제 가속 성능부터 확인해 보자. 우리 팀의 계측 결과는 7.62초 수준으로 동급 모델로는 좋은 수준이었다. 252마력의 530i xDrive가 6.46초를 기록했으니 상당히 빠른 기록임에 분명하다. 참고로 제네시스 G80 2.2d는 9.9초를 소요해 시속 100km에 도달한다.
이와 같은 빠른 가속에는 런치 컨트롤의 역할이 컸다.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변속기는 S, 여기에 차체자세제어장치를 해제하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엔진 회전수가 3000 rpm까지 치솟으며 런치 컨트롤 기능이 작동한다. 이후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면 마치 용수철이 튕기듯 빠른 가속을 이어나간다. 190마력이라는 보편적인 출력을 최대한 활용한 예다.
사실 BMW 모델들은 발진 가속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xDrive가 채용된 모델들의 가속력은 더 뛰어나다. 이번 테스트 모델은 후륜 버전이었는데도 좋은 성능을 냈다.
참고로 발진 가속의 기준이 되는 시속 100km 이상에 오르면 후륜구동 모델의 가속력이 더 빠른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같은 힘을 4바퀴로 나누는 것과 2바퀴에 집중하는 것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BMW의 가속력이 빠른 이유는 변속기에 있다. BMW는 ZF가 만든 변속기를 사용하는데, 꽤나 빠른 반응이 매력이다. 과거엔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반응이 자동변속기를 압도했지만 ZF가 내놓은 8단 자동변속기는 매우 빠른 반응으로 발진 가속에 큰 도움을 준다. 적어도 이 변속기는 현존하는 후륜구동형 자동변속기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속 성능에 대해 인상적이라는 말을 했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제동 성능이다.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34.76 m로 대단한 성능을 기록해 냈다. 마세라티 기블리나 그란투리스모 스포트, 쉐보레 카마로 SS 정도가 34.0 m 대를 기록했는데, 일반 디젤 세단이 고성능 스포츠카에 범접하는 제동 성능을 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단순히 1회 성으로 제동성능이 좋았던 것이 아니다. 테스트의 반복, 그를 통해 기록된 가장 긴 제동거리는 35.77 m였다. 최대 1m 정도밖에 밀려나지 않은 것.
브레이크 페달 조작감도 매우 좋았다. 페달 답력이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았다. 초반에는 적당히 민감한 느낌으로 쉽고 편하게 속도를 줄이게 만들고, 이후엔 밟는 만큼 강력한 제동성능을 끌어내도록 설정했다. 운전자가 원하는 지점을 생각하고 그에 맞춰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그 지점에서 정확히 멈춰준다는 얘기다.
참고로 520d 럭셔리 라인에는 M 스포츠 브레이크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았다. 전륜은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후륜은 일반 디스크 타입이다. 한층 성능을 올린 시스템이 아닌, 가장 보편적인 브레이크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성능을 냈다. 몇 피스톤 캘리퍼, 카본 세라믹 디스크 등의 스펙도 중요하겠지만 뛰어난 성능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팀은 520d의 브레이크 성능을 평가하며 별 5개 만점을 줬다. 이 등급에서 최고였으니까.
520d가 좋은 기본기를 가졌다는 점은 타이어를 봐도 알 수 있다. 245mm 너비의 타이어는 미쉐린의 프라이머시 3 런플랫 제품이다. 원래 프라이머시 3는 사이드월이 부드러워 좋은 승차감을 만들어내며 좋은 접지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20d에 장착된 프라이머시 3 ZP는 런플랫 타이어 특성 때문에 단단한 사이드월을 갖지만 그렇다고 불쾌한 승차감을 만들지는 않는다.
접지력도 좋았다. 전 후 245mm로 동일한 사이즈가 후륜 구동 방식과 매칭되지만 코너링 때 리어축이 미끄러지는 현상을 경험하기 어렵다. 190마력의 출력과 40.8kg.m의 토크 정도는 여유롭게 소화해낸다. 코너에서 가속페달을 조심스럽게 밟지 않아도 안정적이면서 재미있는 성능을 즐길 수 있다.
타이어가 좋다고 잘 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섀시가 이를 받아줘야 한다. 서스펜션은 과거 모델(F10)보다 부드럽다. 참고로 xDrive 버전보다 후륜구동 쪽이 조금 더 단단한 감각을 전한다.
조율이 잘 된 서스펜션 덕에 깔끔한 움직임으로 코너를 탈출한다. 바디롤(차체 기울어짐)을 일정 수준 허용하지만 차체가 흐느적대지 않는다. 잡아줄 때는 확실하게 잡아준다는 것. 부드러운 성격의 서스펜션 덕에 날카로움이 반감됐지만 적어도 운전자의 의도대로 움직인다는 점이 좋다. 성능과 승차감 모두를 겸한 모습이랄까?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만큼 연비도 수준급이다. 시속 100km의 속도로 정속 주행할 때 22km/L를 기록했을 정도. 우리 팀의 다양한 주행 테스트 이후의 연비는 11km/L 내외였다. 최근 디젤엔진의 이미지가 나빠졌다지만 하이브리드 버금가는 효율을 낼 수 있는 내연기관 엔진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520d 럭셔리 라인은 5시리즈 중에서 가장 저렴한 모델이다. M 스포츠 패키지도 빠지고 강력한 엔진도 탑재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팀은 이 차의 가치를 높게 산다.
이유는? ‘그래도 BMW의 기술력은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
요즘 말로 하면 소위 ‘아이템빨’이라는 것이 있다. 고성능 엔진, 여기에 맞춰 튜닝된 섀시, 고성능 타이어, 각종 화려한 인테리어와 첨단 장비들을 모두 집약시켰다면 당연히 좋아야 한다. 그것이 1억 원이 넘는 가격표를 갖는 540i xDrive M Sport Package Plus, 혹은 M550d xDrive다. 여기서 몇 가지 핵심 요소들을 빼보자. 그리고 일반 2.0 디젤 엔진을 넣고 기본형 브레이크 시스템과 서스펜션 등을 넣으면 바로 밑천이 드러날 것이다. 아마도 볼품없는 디젤 세단이 되어버릴 것.
하지만 520d는 그 조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2.0 디젤 엔진으로는 좋은 수준의 가속성능, 기본형 브레이크 시스템으로 믿지 힘든 성능까지 냈다. 부드럽기만 하던 서스펜션도 충분한 성능을 내주고 있었다. 물론 주행 느낌도 고급스럽다. 그것뿐일까? 반자율 주행 시스템 같은 첨단 장비도 기본이다.
정리하자면 기본기가 좋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BMW를 따르는 팬들이 있고,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위상을 지켜갈 수 있다. 또한 이런 것들이 BMW를 구입하고 싶도록 만든다.
엔진룸의 화재 문제. 분명 심각한 결함이다. BMW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엔진의 문제가 BMW가 쌓아온 기술력을 한순간에 무너지고 저평가될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BMW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일반 대중 브랜드와 차별화된 자동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당분간 모든 BMW 관련 기사에는 악플이 달릴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99%는 BMW의 예비 고객들이 아니다. 댓글을 통해 어떤 대상을 폄하하며 그를 통해 자신의 만족도를 채우려는 네티즌이 상당수라는 것.
이 시승기에도 520d를 다뤘다는 것을 욕하는 댓글이 달릴지 모른다. 하지만 제조사의 실수 자체에 대해서는 질타를 하되 모든 것을 그것과 연결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런 기준이라면 당신은 아무런 차도 탈 수 없다. 순결한, 마치 백지같이 깨끗한 자동차 브랜드는 없으니까.
또한 BMW의 눈치를 보고 이런 시승기를 썼다는 둥의 의견을 내는 네티즌도 없기를 바란다. 지금의 BMW코리아는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어떤 것들도 노출되지 않기를 원하니까. 단지 7월 중순 테스트한 차에 대한 얘기를 화재 건이 한창이던 시기에 올릴 수 없었기에 조금 잠잠해진 지금에야 올린 것이 팩트일 뿐이다.
2000년대 초반 국내 시장에서 BMW를 이끌던 것은 530i였다. 그리고 당시 모델은 평균 8천만 원대에 팔렸다. 그리고 그런 흐름이 일정 수준 이어졌다. 적어도 E60 5시리즈 시절까지만 해도 중심을 이루던 것은 6기통 가솔린 엔진의 528i였다. 하지만 F10 5시리즈가 등장하며 상황이 달라졌다. 2.0리터 디젤 엔진의 520d가 시장을 주도해 나갔던 것. E60 때도 520d가 있었지만 인기가 그리 폭발적인 수준은 아니었다.
520d(F10). 기존 가솔린 모델 대비 저렴한 6천만 원대로 소비자들의 사랑을 받기 시작했다. 하지만 문제가 생겼다. 같은 디자인을 가진 8~9천만 원대 고가의 가솔린 모델을 찾는 소비자들이 줄어들기 시작한 것.
국내 소비자 중 상당수는 상대적으로 낮은 비용으로 폼 나는 상품을 갖길 원한다. 최근의 일일까? 아니다. 현대차가 뉴그랜저를 내놓았을 당시도 상황이 같았다. 도로를 주행하는 그랜저 모두가 V6 3.0 표시를 하고 있었다. 당시 2.0 가솔린이 꽤나 팔렸지만 거리에서 만나긴 어려웠다. 굳이 구분하려면 실내를 들여다봐야 했는데, V6 버전은 주차 때 핸드 브레이크가 아닌 풋브레이크를 썼다.
다시 5시리즈로 돌아가자. 520d가 큰 인기를 끌어 BMW코리아의 볼륨 확장에 도움을 줬지만 그동안 고가의 트림을 찾는 소비자들은 똑같은 디자인을 갖춘 5시리즈를 8~9천만 원 혹은 그 이상 주로 구입해야 할 의미를 잃었다. 비싼 비용을 들여 구입해도 남들이 보기엔 520d와 다르지 않았던 것. 결국 상급 트림 시장은 무너졌고 520d를 중심으로 시장이 유지됐다.
그리고 차기 5시리즈(G30)가 바통을 이어 받았다. 그 사이 폭스바겐 발 디젤 게이트가 있던 터라 가솔린에 대한 소비자 관심이 커졌지만 역시 BMW를 이끌던 것은 520d였다. 하지만 올여름 화재 이슈가 떠오르면서 BMW 디젤 엔진은 치명상을 입었다.
물론 BMW의 잘못이긴 하다. 개발 단계부터 문제를 알면서 방치했다면 모르지만 그들도 차를 판매한 이후에야 이 사실을 알게 됐다. 물론 공식적으로 실수를 인정하기까지 시간이 걸리긴 했다. 하지만 자동차 제조사에서 문제를 찾는 데는 의외로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점을 참고할 필요가 있다. 소비자들은 다른 의견이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그들의 대응이 빨랐다는데 의견을 모으는 경우가 많았다.
아마도 올 한해 쏟아진 BMW 관련 기사는 BMW코리아 설립 이후 지금까지 쓰인 모든 기사와 맞먹는 규모가 아니었을까 싶다. 정말 많은 곳들이 기사를 썼다. 그리고 필요 이상의 기사를 낸 곳들도 많았다. 더 자극적인 것, 그를 통해 포털의 선택(메인 페이지 노출)을 받기 위한 언론사들의 몸부림이 그칠 줄 몰랐다는 얘기다. 가짜 뉴스만큼 무서운 우리네 미디어 현실이다. 물론 자극적 제목을 클릭부터 하는 네티즌이 많기에 벌어지는 일이겠지만.
사설이 길었다. 우리 팀이 520d(G30)를 만난 것은 지난 7월 중순이었다. 이 시기는 엔진 화재 문제가 커지기 이전이다. 정확히는 화재 건이 몇 건 나오기 시작하던 시점이었다. 하지만 컨텐트를 준비하는 동안 화재 건이 극에 달했고, 결국 520d의 업데이트를 늦춰야 했다. 화재와 무관한 엔진이 탑재된다지만 일단 반감부터 갖는 소비자들이 다수 있을 것으로 예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렇게 가다간 해를 넘길 것 같아 520d 편을 업데이트하기로 했다. 물론 앞뒤 가리지 않고 욕부터 써댈 네티즌들도 있겠지만 똑똑한 소비자들은 전후 상황을 정확히 판단할 것이다.
그럼 520d를 만나보자.
앞서 언급된 것처럼 520d는 BMW코리아의 사세(社勢)를 확장하는데 큰 영향력을 행사한 모델이다. 정말 여기 가도 저기 가도 5시리즈가 즐비할 정도였으니까. 하지만 단순 가격이 저렴하다는 것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기 어렵다. 연비라는 요소도 중요하지만 전체적인 구성, 그것이 5시리즈의 인기를 이끌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G30 5시리즈는 한층 세련된 모습으로 돌아왔다. 디자인에 대한 호불호가 갈릴 수 있지만 완성도가 대폭 높아졌다. 한층 탄탄해진 차체, 무게도 줄였다.
우리 팀은 처음 5시리즈(G30 530i)를 만나며 일부 실망감을 표했었다. 그리고 BMW 마니아들과 5시리즈 소비자들 일부는 우리를 원망했다. 하지만 정확히 짚고 볼 부분이 있다. 한국형 5시리즈는 M 패키지가 기본이었다. BMW에게 M 이란 무엇인가? 고성능을 상징한다. 그렇다면 한층 강화된 성능을 떠올리게 되는데 국내형 M 패키지에는 노멀 사양의 말랑한 서스펜션이 기본이었다. 당시 질타를 받았던 것은 그 부분이다. 하지만 컴포트한 성향의 고급 세단으로 접근하면 5시리즈는 매력적인 차가 된다. 또한 탄력성 좋은 서스펜션을 가진 540i는 좋은 승차감과 성능을 보였다.
이번에는 520d다. 경제성과 편안함을 추구한 고급 중형 세단이다. 고성능을 주장하지도, 그 이상의 것을 내세우려 하지 않는 대중적인 성격의 모델이다.
디자인도 앞서 테스트한 모델들과 조금 다르다. 현재의 520d는 M 스포츠 패키지가 적용되지 않은 럭셔리 라인이다. BMW 코리아는 7세대 5시리즈 출시와 함께 ‘국내 모델 M 스포츠 패키지 기본 적용’이라는 큰 결정을 했다. 결국 엔트리 모델과 최상위 모델을 구분 짓는 요소가 사라졌다. M 스포츠 패키지 모델만 보다가 럭셔리 라인을 만나니 단정하고 고급스러운 이미지가 신선하게 다가온다.
차체 곳곳은 어두운 다크 몰딩 대신 반짝이는 크롬으로 장식했다. 불필요하게 큰 휠을 사용하기보다 적절하게 18인치 휠을 넣어 실리를 챙겼다. 그래도 후면부 머플러는 2개를 노출시켜 밋밋해 보이지 않도록 했다.
입문형 모델에 속하지만 인테리어는 고급스러움을 강조한다. 나무의 촉감을 연상시키는 고급스러운 우드 트림도 넣었다. 시트는 통풍 기능을 지원하며 파이핑으로 멋을 낸 나파 가죽으로 마감된다. 프리미엄 모델다운 구성이다.
과거의 520d는 구성이 약했다. 반면 이번 520d(G30)는 디스플레이 계기판, 대형 센터페시아 모니터, 디스플레이 키, 무선 충전 시스템, 헤드-업 디스플레이 등 소비자들의 시선을 끌 수 있는 다양한 장비들을 갖췄다.
자동 주차 기능도 있다. 메르세데스-벤츠의 자동 주차와 더불어 가장 진보한 시스템으로 평가받는 기능이다. 현재까지 자동 주차는 차량이 주차 공간을 인식하면 스티어링 휠만 스스로 조작해줬다. 변속기를 전진과 후진으로 조작하거나 브레이크 페달을 밟는 행동 등은 운전자의 몫이었다.
하지만 5시리즈의 자동 주차 기능은 주차 공간을 인식한 후 기어 레버 하단에 위치한 주차 버튼을 누르고 있으면 차량이 스스로 전진과 후진을 하며 주차를 해준다. 긴급한 상황에 대비해 운전자는 브레이크 페달에 발만 올려놓고 대기하면 된다. 평행 주차와 직각 주차 모두 가능하며 인식률도 뛰어나다.
다만 조금 더 조심해서 주차를 해줬으면 좋겠다. 조금은 터프하게 주차를 해주는데 탑승자가 겁을 먹을 수 있기 때문. BMW의 반자율 주행 시스템도 탑승자를 살짝 불안하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자동으로 조작되는 시스템인 만큼 보다 조심스러운 움직임을 보여주면 좋겠다. 물론 기능의 문제가 아닌, 작동 속도를 언급하는 것이다.
520d에도 반자율 주행 기능이 기본이다. 액티브 크루즈 컨트롤, 차선이탈 경고 및 방지, 사각 및 후측방 경고, 전방 추돌 경고 및 긴급제동 시스템 등을 포함하고 있다. 조작도 매끄럽고 차선 인식도 빠르게 잘한다. 하지만 이따금 한쪽 차선에 가까이 붙거나 옆 차로에 차가 있어도 이를 무시하고 달리는 경우가 있어 운전자를 긴장시키곤 한다.
뒷좌석은 넉넉하다. 국산 모델인 제네시스 G80과 비교하자면 레그룸이 좁지만 헤드룸은 더 넓다. 비즈니스 세단으로는 충분한 공간이다.
본격적인 테스트에 앞서 7세대 520d가 국내 시장에서 얼마나 잘 팔리는지 살펴보자. 7세대 5시리즈는 지난 2017년 2월 출시됐다. 이후 2018년 6월까지 3만 9,624대가 판매됐다. BMW가 판매한 10대 중 4대 이상이 5시리즈라는 얘기다.
그런 5시리즈 중에서 가장 잘 팔린 모델이 520d였다. 5시리즈를 구입한 소비자 중 520d를 선택한 비율이 62%(61.69%)에 달했다. 5시리즈의 이미지가 예전만 못하다지만 여전히 대다수의 소비자들의 선택을 받는다는 것이다.
이제 주행을 시작해 보자. 520d에 탑재된 엔진은 너무나도 유명한 4기통 2.0리터 디젤. 최고출력 190마력과 40.8kg.m의 토크는 이제 업계 표준으로 받아들여지는 수치다. 여기에 SCR 후처리 시스템을 달아 질소산화물 배출도 저감 시킨다.
시동을 걸면 BMW 특유의 4기통 디젤 엔진 소리를 들려준다. 현대 기아의 2.2리터 디젤과 비교해 조금 더 낮은 톤으로 ‘겔겔’거리는 모습이다. 아이들 정숙성을 측정한 결과 39.0 dBA. 인피니티 Q60S, 렉서스 IS 200t 등 가솔린 모델과 비교될 정숙성이다. 통상 우리 팀이 기준으로 보는 것은 40.0 dBA 수준. 쉽게는 인피니티나 렉서스가 시끄러운 것이 아닌, BMW의 디젤 엔진이 조용하다는 것이다.
다만 스티어링 휠을 통한 진동이 조금 부각되긴 한다. 이 부분은 국산 브랜드가 잘하는 영역이긴 하다. 하지만 520d도 고급스러움을 느낄 수 있을 만큼 N.V.H. 부분에서 좋은 모습을 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놀라운 부분은 주행 때의 정숙성이다. 80km/h의 속도로 주행하는 환경에서 확인된 정숙성은 55.0 dBA에 불과했다. 제네시스 G80 디젤과 동일한 수치이며 자사 최고급 세단 730d의 57.5 dBA보다도 조용한 결과를 냈다. 엔진 소음과 풍절음은 물론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도 상당히 잘 억제시킨 모습이다.
이번에는 무게를 확인했다. 7세대 5시리즈는 각종 경량 소재를 활용해 이전 모델 대비 최대 100kg까지 감소시켰다. 하지만 국내 사양에는 많은 장비가 탑재돼 줄어든 무게만큼의 이점을 보여주지 않았다. 그에 따른 7세대 520d의 무게는 1,683 kg으로 확인됐다. 우리 팀이 6세대 520d의 무게를 측정한 결과가 1,700 kg이었으니 참고가 될 것이다.
토크를 중심으로 밀어붙이는 초반 발진 가속감은 여느 디젤 차와 유사하다. 하지만 실제 가속력이 좋다. 적어도 출력 이상의 것을 느끼게 한다.
그렇다면 실제 가속 성능부터 확인해 보자. 우리 팀의 계측 결과는 7.62초 수준으로 동급 모델로는 좋은 수준이었다. 252마력의 530i xDrive가 6.46초를 기록했으니 상당히 빠른 기록임에 분명하다. 참고로 제네시스 G80 2.2d는 9.9초를 소요해 시속 100km에 도달한다.
이와 같은 빠른 가속에는 런치 컨트롤의 역할이 컸다. 주행모드를 스포츠로, 변속기는 S, 여기에 차체자세제어장치를 해제하고 브레이크 페달을 밟은 상태에서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엔진 회전수가 3000 rpm까지 치솟으며 런치 컨트롤 기능이 작동한다. 이후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면 마치 용수철이 튕기듯 빠른 가속을 이어나간다. 190마력이라는 보편적인 출력을 최대한 활용한 예다.
사실 BMW 모델들은 발진 가속에 강한 모습을 보인다. 특히 xDrive가 채용된 모델들의 가속력은 더 뛰어나다. 이번 테스트 모델은 후륜 버전이었는데도 좋은 성능을 냈다.
참고로 발진 가속의 기준이 되는 시속 100km 이상에 오르면 후륜구동 모델의 가속력이 더 빠른 경우가 많다. 아무래도 같은 힘을 4바퀴로 나누는 것과 2바퀴에 집중하는 것에 차이가 생기기 때문이다.
BMW의 가속력이 빠른 이유는 변속기에 있다. BMW는 ZF가 만든 변속기를 사용하는데, 꽤나 빠른 반응이 매력이다. 과거엔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반응이 자동변속기를 압도했지만 ZF가 내놓은 8단 자동변속기는 매우 빠른 반응으로 발진 가속에 큰 도움을 준다. 적어도 이 변속기는 현존하는 후륜구동형 자동변속기 중 최고라는 평가를 받는다.
가속 성능에 대해 인상적이라는 말을 했지만 정말 놀라운 것은 제동 성능이다.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34.76 m로 대단한 성능을 기록해 냈다. 마세라티 기블리나 그란투리스모 스포트, 쉐보레 카마로 SS 정도가 34.0 m 대를 기록했는데, 일반 디젤 세단이 고성능 스포츠카에 범접하는 제동 성능을 낸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단순히 1회 성으로 제동성능이 좋았던 것이 아니다. 테스트의 반복, 그를 통해 기록된 가장 긴 제동거리는 35.77 m였다. 최대 1m 정도밖에 밀려나지 않은 것.
브레이크 페달 조작감도 매우 좋았다. 페달 답력이 너무 가볍지도, 그렇다고 너무 무겁지도 않았다. 초반에는 적당히 민감한 느낌으로 쉽고 편하게 속도를 줄이게 만들고, 이후엔 밟는 만큼 강력한 제동성능을 끌어내도록 설정했다. 운전자가 원하는 지점을 생각하고 그에 맞춰 브레이크 페달을 밟으면 그 지점에서 정확히 멈춰준다는 얘기다.
참고로 520d 럭셔리 라인에는 M 스포츠 브레이크 시스템이 적용되지 않았다. 전륜은 벤틸레이티드 디스크, 후륜은 일반 디스크 타입이다. 한층 성능을 올린 시스템이 아닌, 가장 보편적인 브레이크 시스템이라는 것이다. 그럼에도 좋은 성능을 냈다. 몇 피스톤 캘리퍼, 카본 세라믹 디스크 등의 스펙도 중요하겠지만 뛰어난 성능을 내는 것이 더 중요하다. 우리 팀은 520d의 브레이크 성능을 평가하며 별 5개 만점을 줬다. 이 등급에서 최고였으니까.
520d가 좋은 기본기를 가졌다는 점은 타이어를 봐도 알 수 있다. 245mm 너비의 타이어는 미쉐린의 프라이머시 3 런플랫 제품이다. 원래 프라이머시 3는 사이드월이 부드러워 좋은 승차감을 만들어내며 좋은 접지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520d에 장착된 프라이머시 3 ZP는 런플랫 타이어 특성 때문에 단단한 사이드월을 갖지만 그렇다고 불쾌한 승차감을 만들지는 않는다.
접지력도 좋았다. 전 후 245mm로 동일한 사이즈가 후륜 구동 방식과 매칭되지만 코너링 때 리어축이 미끄러지는 현상을 경험하기 어렵다. 190마력의 출력과 40.8kg.m의 토크 정도는 여유롭게 소화해낸다. 코너에서 가속페달을 조심스럽게 밟지 않아도 안정적이면서 재미있는 성능을 즐길 수 있다.
타이어가 좋다고 잘 달릴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섀시가 이를 받아줘야 한다. 서스펜션은 과거 모델(F10)보다 부드럽다. 참고로 xDrive 버전보다 후륜구동 쪽이 조금 더 단단한 감각을 전한다.
조율이 잘 된 서스펜션 덕에 깔끔한 움직임으로 코너를 탈출한다. 바디롤(차체 기울어짐)을 일정 수준 허용하지만 차체가 흐느적대지 않는다. 잡아줄 때는 확실하게 잡아준다는 것. 부드러운 성격의 서스펜션 덕에 날카로움이 반감됐지만 적어도 운전자의 의도대로 움직인다는 점이 좋다. 성능과 승차감 모두를 겸한 모습이랄까?
디젤엔진을 사용하는 만큼 연비도 수준급이다. 시속 100km의 속도로 정속 주행할 때 22km/L를 기록했을 정도. 우리 팀의 다양한 주행 테스트 이후의 연비는 11km/L 내외였다. 최근 디젤엔진의 이미지가 나빠졌다지만 하이브리드 버금가는 효율을 낼 수 있는 내연기관 엔진이라는 점에는 변함이 없다.
520d 럭셔리 라인은 5시리즈 중에서 가장 저렴한 모델이다. M 스포츠 패키지도 빠지고 강력한 엔진도 탑재되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 팀은 이 차의 가치를 높게 산다.
이유는? ‘그래도 BMW의 기술력은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
요즘 말로 하면 소위 ‘아이템빨’이라는 것이 있다. 고성능 엔진, 여기에 맞춰 튜닝된 섀시, 고성능 타이어, 각종 화려한 인테리어와 첨단 장비들을 모두 집약시켰다면 당연히 좋아야 한다. 그것이 1억 원이 넘는 가격표를 갖는 540i xDrive M Sport Package Plus, 혹은 M550d xDrive다. 여기서 몇 가지 핵심 요소들을 빼보자. 그리고 일반 2.0 디젤 엔진을 넣고 기본형 브레이크 시스템과 서스펜션 등을 넣으면 바로 밑천이 드러날 것이다. 아마도 볼품없는 디젤 세단이 되어버릴 것.
하지만 520d는 그 조건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다. 2.0 디젤 엔진으로는 좋은 수준의 가속성능, 기본형 브레이크 시스템으로 믿지 힘든 성능까지 냈다. 부드럽기만 하던 서스펜션도 충분한 성능을 내주고 있었다. 물론 주행 느낌도 고급스럽다. 그것뿐일까? 반자율 주행 시스템 같은 첨단 장비도 기본이다.
정리하자면 기본기가 좋다는 것이다. 그렇기에 여전히 BMW를 따르는 팬들이 있고, 프리미엄 브랜드로의 위상을 지켜갈 수 있다. 또한 이런 것들이 BMW를 구입하고 싶도록 만든다.
엔진룸의 화재 문제. 분명 심각한 결함이다. BMW는 모든 수단을 동원해 근본적인 원인을 해결해야 한다. 하지만 엔진의 문제가 BMW가 쌓아온 기술력을 한순간에 무너지고 저평가될 정도는 아니다. 여전히 BMW는 독일 프리미엄 브랜드로서 일반 대중 브랜드와 차별화된 자동차를 만들어내고 있다.
당분간 모든 BMW 관련 기사에는 악플이 달릴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 99%는 BMW의 예비 고객들이 아니다. 댓글을 통해 어떤 대상을 폄하하며 그를 통해 자신의 만족도를 채우려는 네티즌이 상당수라는 것.
이 시승기에도 520d를 다뤘다는 것을 욕하는 댓글이 달릴지 모른다. 하지만 제조사의 실수 자체에 대해서는 질타를 하되 모든 것을 그것과 연결하지는 않았으면 한다. 그런 기준이라면 당신은 아무런 차도 탈 수 없다. 순결한, 마치 백지같이 깨끗한 자동차 브랜드는 없으니까.
또한 BMW의 눈치를 보고 이런 시승기를 썼다는 둥의 의견을 내는 네티즌도 없기를 바란다. 지금의 BMW코리아는 긍정적이던 부정적이던 어떤 것들도 노출되지 않기를 원하니까. 단지 7월 중순 테스트한 차에 대한 얘기를 화재 건이 한창이던 시기에 올릴 수 없었기에 조금 잠잠해진 지금에야 올린 것이 팩트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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