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시승기] ‘흙 속의 진주’ 캐딜락 CT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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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기] ‘흙 속의 진주’ 캐딜락 CT5

자동차 시승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다. 모든 시승차를 같은 조건에서 평가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변수가 많은 탓이다. 예를 들어 시승할 때 날씨와 기온, 바람, 장소 등에 따라서 평가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있다. 이런 변수 요소를 최소화하려면 일정한 규격을 갖춘 트랙이나 시험주행로를 이용해야 하는데, 수많은 이슈를 혼자서 처리해야 하는 상황에서는 쉽지 않은 일이다.

서론에 자동차 시승의 어려움을 늘어놓은 이유는, 시승 후 곧바로 평가할 수 있는 차가 있는가 하면 몇 차례 시승을 한 후에 그 차의 진가가 드러나는 경우가 있어서다. 최근 시승한 캐딜락의 중형차 CT5는 후자에 속하는 차였다.

CT5를 처음 만난 건 지난해 9월 경기도 용인 에버랜드 스피드웨이에서 열린 ‘미디어 트랙데이’에서였다. CT5는 BMW 5시리즈,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아우디 A6 등과 경쟁하는 중형급 차이고, 이날 함께 선보인 CT4는 BMW 3시리즈, 벤츠 C클래스, 아우디 A4 등과 경쟁하는 차다.

평가장소가 자동차 경주장인 데다 행사 내용에 짐카나 코스가 있다 보니 상대적으로 날렵한 핸들링을 지닌 차가 유리한 상황이었다. 이 때문에 CT5보다는 CT4의 민첩함이 훨씬 돋보였다.

올해 2월에 CT5를 다시 타볼 기회가 있었지만, 이때는 평일에 일반도로를 달리면서 시승을 한 터라 특별한 인상을 받지 못했다. 분명 전작 CTS에 비하면 좋아진 게 분명한데, 명확히 어떤 점인지 떠오르지 않았다.

이런 상황을 겪은 후에 잊히는 차도 많지만, CT5는 특이하게도 자꾸 머릿속에 남았다. 그리고 이번에 다시 타보고 평가해보기로 했다.

◆탄탄한 체구, 스포티한 실내

[시승기] ‘흙 속의 진주’ 캐딜락 CT5

CT5는 캐딜락 라인업 중에 최초로 시간당 4.5테라바이트 처리가 가능한 차세대 자동차 디지털 플랫폼을 적용한 차다. 이 플랫폼은 전자구동과 반자율주행, 능동안전시스템 등을 적용할 때 훨씬 빠르고 정확하게 데이터를 처리하게 해준다.

차체 크기는 길이 4925㎜, 너비 1885㎜, 높이 1455㎜이고, 휠베이스는 2947㎜다. 차체 길이는 BMW 5시리즈(4965㎜),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4940㎜)보다 짧고, 휠베이스는 5시리즈(2975㎜)보다 짧고 E클래스(2940㎜)보다 길다. 대신 너비는 경쟁차보다 15~25㎜ 넓고, 높이는 20~25㎜ 낮다. 낮고 넓게 설계된 차체가 경쟁차보다 훨씬 스포티하다. 트렁크 용량은 337ℓ로 경쟁차보다 작은 편이다.

타이어는 프리미엄 럭셔리에 245/45R 18 사이즈가 장착되고, 시승차인 스포츠 트림에는 245/40R 19 사이즈가 장착된다. 가격이 최대한 비슷한 경쟁차의 엔트리 트림이 모두 18인치 사이즈에 그치는 것과 대비된다.

[시승기] ‘흙 속의 진주’ 캐딜락 CT5

실내에도 스포티한 느낌이 물씬하다. 세미아닐린 가죽시트의 촉감은 아주 뛰어나고, 앞좌석은 몸을 아주 잘 감싸준다. 하지만 차체가 낮은 탓에 키 180㎝가 넘어가면 불편할 수 있겠다. 또한 뒷좌석에는 별다른 편의장비가 없어서 심심한 느낌이 있다.

계기반은 요즘 차답지 않게 아날로그 타입. 시승차는 2020년형이고, 2021년형부터는 12인치 컬러 디지털 클러스터로 업그레이드됐다는 점을 참고하시길.

◆훌륭한 밸런스…다양한 엔진 아쉬워

[시승기] ‘흙 속의 진주’ 캐딜락 CT5

CT5는 미국에서 직렬 4기통 2.0ℓ 가솔린 터보, 직렬 6기통 3.0ℓ 가솔린 트윈 터보, V8 6.2ℓ 가솔린 슈퍼차저 등 세 가지 라인업이 나온다. 이 가운데 국내에는 가장 아랫급인 2.0 엔진만 들어온다.

라인업에서는 가장 낮은 출력이지만 스포티한 운전을 즐기기에는 부족함이 없다. CTS의 276마력보다 36마력이 낮아졌음에도 불구하고, 10단 자동변속기와의 궁합이 찰떡같아서 매끄럽게 가속된다. 1500~4000rpm 사이에서 폭넓게 나오는 최대토크도 일품이다. 주행모드는 투어와 스포츠, 눈길·빙판길, 마이 모드(개별 설정) 등 네 가지. 스포츠 모드가 좀 더 공격적인 세팅이지만 투어 모드에서도 치고 나가는 맛이 꽤 쏠쏠하다.

CT5의 인증 연비는 도심 8.7㎞/ℓ, 고속도로 12.7㎞/ℓ. 시가지와 간선도로를 대략 3:7로 섞어서 달린 이번 시승에선 8.6~9.8㎞/ℓ 사이를 오갔다. 정속주행을 더 지속한다면 고속도로 인증 연비 이상을 기록하는 것도 어렵지 않겠다.

[시승기] ‘흙 속의 진주’ 캐딜락 CT5

승차감은 살짝 단단한 편. 스포츠 트림에만 장착되는 마그네틱 라이드 컨트롤(MRC)은 와인딩에서 차체 쏠림이 적어서 속도를 높여도 불안해지지 않는다.

특별한 상황이 아니면 꽤 만족스러운 세팅이지만 좀 더 강력한 엔진에 대한 갈증은 남는다. 특히 저물어가는 내연기관 시대에 V8 6.2ℓ 가솔린 엔진을 맛볼 수 있다는 건 얼마나 매력적인가. 게다가 CT5-V와 CT5-V 블랙윙은 트랙 모드와 V 모드를 갖춰 본격적인 트랙 주행도 즐길 수 있다. 아직 타보진 않았지만, 배기음도 2.0 모델보다는 훨씬 매력적일 것으로 기대된다.

CT5의 가격은 프리미엄 럭셔리가 5420만원, 스포츠가 5920만원이다. 성능이 훨씬 떨어지는 경쟁차의 엔트리급 모델이 최소 6000만원 중반인 점을 감안하면 CT5의 가성비는 상당히 돋보인다.

다만 홍보가 잘 안 된 탓인지, CT5의 판매는 올해 1월부터 11월까지 156대에 머물고 있다. 경쟁차의 브랜드 파워가 강력하다고 해도 이해가 안 가는 실적이다.

[시승기] ‘흙 속의 진주’ 캐딜락 CT5

캐딜락 오너 사이에서 ‘차는 좋은데 AS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라는 얘기가 많은데, 이게 판매 부진의 원인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다. 다행히 최근 들어 캐딜락 서비스센터가 빠르게 늘고 있어서 이러한 불만도 점차 줄어들 것으로 보인다.

캐딜락 CT5는 전반적으로 꽤 잘 만들어진 중형 세단이다. 탄탄한 차체에 잘 조율된 서스펜션과 효율적인 파워트레인을 갖춰 일상 주행부터 스포티한 주행까지 두루 만족시킨다. 지금까지는 ‘흙 속의 진주’처럼 묻혀있지만, 좀 더 활발한 홍보와 마케팅의 지원을 받는다면 더욱 좋은 판매실적을 거둘 것으로 예상된다.
임의택 기자 (ferrari5@rpm9.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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