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캐딜락, CT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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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드사이즈 세단은 중형급 크기를 갖춘 차량으로 가족과 함께 이용할 수 있는 너무 작지도, 그렇다고 너무 크지도 않은 세단을 뜻한다. 이러한 중형급 차량을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내놓으면 비즈니스 세단이라고도 불린다. 자동차를 통해 사회적인 역할, 또는 사람의 지위를 나타내는 용도로도 활용되기 때문이다. 메르세데스-벤츠 E-클래스, BMW 5시리즈, 아우디 A6, 캐딜락 CTS, 렉서스 GS, 재규어 XF, 제네시스 G80 등이 이 그룹에 속한다.
고급스러운 부분이 강조되는 것은 이들 차량이다. 또한 조용할수록 좋다. 그런데 이 차들을 튜닝해 조금 더 강성 성능을 만들려는 브랜드 들이 꽤 많다. 제네시스 G80 스포츠는 370마력을 발휘한다. 렉서스는 GS에 5.0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넣어 473마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아시아를 지나 독일로 가면 출력이 확 높아진다. 향후 국내 출시될 BMW M5의 출력은 600마력. 출시를 앞둔 AMG E 63 S는 무려 612마력을 발휘한다. 정말 무시무시한 출력이다.
역시 ‘독일 엔지니어링은 대단해’란 말을 외치려는 찰나, 저 멀리 미국 브랜드가 별거 아니라는 표정의 미소를 띈다. 캐딜락이다. 그들이 만든 CTS-V는 이미 648마력을 갖고 있다.
648마력. 앞으로도 이런 출력을 발휘하는 차량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말이지 다른 세계에 있는 수치다. 왠지 2억원은 족히 넘는 차량에 어울리는 출력이지만 1억 1천만원대라는 가격표가 다시 한번 눈길을 사로잡는다.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양산형 세단 CTS-V는 그렇게 가성비까지 갖췄다.
엄밀하게 따지면 외적인 모습에서의 차별화는 없다. CTS에 새로운 그릴과 범퍼를 장착하고 뒤쪽에 새로운 머플러와 디퓨저, 리어스포일러를 장착한 정도다.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변화 모두가 냉각 효율과 공기역학 성능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물망 형태의 그릴 디자인을 비롯해 범퍼 하단도 실제 뚫려있다. 그리고 이 안쪽을 살펴보면 냉각장치들이 빼곡하게 자리한다. 다른 차량들을 보면 그물망 형태의 그릴이라고 해도 부분적으로 막혀 있고 범퍼 양 측면 부분도 공기흡입구처럼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막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CTS-V는 모두 공기 흡입을 위한 형태다.
왜 그물망 형태로 바꿨을까? 멋도 있지만 공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냉각장치까지 끌어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 공기가 흘러 들어오는 방향을 바꾸지 않는 형태이기도 하다. 고성능 모델이니까 이렇게 바꾼 것이 아니라 고성능 모델이기 때문에 이렇게 바꿀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엔진 후드는 불룩 솟았다. 6.2리터 엔진에 슈퍼차저를 더하며 엔진이 커졌기 때문이다. 또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빼기 위해 엔진 후드에 공기배출구를 마련했다.
휠은 19인치를 사용한다. 휠이 필요 이상으로 커지면 성능에 방해만 된다. 외적인 것보다 성능을 중심으로, 캐딜락은 CTS-V를 진지하게 개발했다.
후면부 범퍼 하단에는 4개의 대구경 머플러와 넓은 면적의 디퓨저를 달았다. 메르세데스-AMG 등은 외부에 보이는 머플러를 가짜로 만들어 더 크고 멋지게 보이려 했지만 CTS-V는 진짜로 4개의 원형 파이프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인테리어는 일반적인 CTS 세단과 같다. 대신 스티어링휠과 기어레버, 천장 등 넓은 부위에 스웨이드 및 마이크로파이버 소재를 사용해 차별화시켰다. 스티어링휠은 상당히 두툼하다. 12.3인치 디스플레이 계기판은 CTS-V를 위한 전용 그래픽을 지원한다. 트랙 모드로 변경하면 흰색 타코미터가 크게 자리하는데, 야간 주행처럼 어두운 상황에서 이 흰색 타코미터가 운전자의 눈부심을 만들어내 아쉽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있는데, CTS-V 만을 위한 차별화 포인트는 없다. 참고로 캐딜락의 HUD는 타사 제품 대비 조금 어두운 느낌이 짙다. 조금 더 선명해지면 좋겠다.
실내 곳곳에 위치한 카본 패널은 스포티한 감각을 더해주는 요소다. 고성능 모델답게 시트는 레카로 버킷 타입이다. 허벅지를 지지해주는 부분도 두꺼워 앉기만 해도 스포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물론 이로 인한 단점도 존재한다. 먼저 통풍 기능이 삭제됐다. 또 시트가 두터워진 만큼 뒷좌석 공간도 좁아졌다. 시트 뒷 부분이 홀쭉하지 않고 볼록 튀어나와 뒷좌석 레그룸이 좁아진 것.
뒷좌석 레그룸이 좁아졌다지만 헤드룸은 성인 남성이 앉아도 불편이 없다. 여기에 뒷좌석 전동 선셰이드나 윈도우 선셰이드와 같은 기능도 갖춰 이 차량이 비즈니스 세단임을 잊지 않게 해준다.
오직 달리기에만 집중했을 것 같지만 각종 편의 및 안전장비를 갖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스마트폰 무성 충전 시스템도 최신 트렌드를 잘 따르는 요소다. 전방 추돌 경고, 차선을 넘지 않도록 스티어링 휠이 직업 제어되는 차선이탈 방지 기능도 있다. 특히 평행 및 직각 주차를 지원하는 자동주차 시스템은 인식률이 높다. 형식적으로 탑재한 것이 아니라 실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건다. 아메리칸 머슬 V8의 엄청난 배기음이 쏟아질 것을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조용하다. 아이들 정숙성을 측정한 결과 46.5dBA로 나타났다. 소음 유입 정도가 조금 큰 디젤 차량과 유사한 수준이다. 주행모드를 트랙으로 설정하면 가변 배기 시스템이 작동하며 수치가 52dBA까지 상승한다. 시속 80km의 속도로 정속 주행하는 환경에서는 59.5dBA을 기록했다. 일반적인 세단들과 동일한 수준의 정숙성이다.
어쨌든 이 차는 중형 등급의 세단인 것이다. 승차감과 정숙성도 중요했기에 2중 차음 유리를 사용했을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 물론 여기서 조용하다는 것은 일반 차량의 조용함과 전혀 다른 영역이다.
6.2리터 8기통의 강력함은 아이들 상태에서도 느낄 수 있다. 스티어링휠, 시트 등에서 대배기량 8기통 엔진의 진동이 전해진다. 가속 페달을 살짝 밟으면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변 공기마저 울려 버린다.
가속 페달은 살짝 무디게 설정했다. 너무 민감한 설정이 사고를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속페달을 처음 밟는 부분에서는 엔진의 반응이 더디다가 가속페달을 깊게 밟을수록 정확한 반응성을 이어가는 타입이다.
일반 운전 환경에서는 648마력이라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편하다. 하지만 1,500rpm 미만 영역에서 느껴지는 토크감이 일반 세단과 다르다. 힘이 워낙 좋기에 도심 속 차량 무리를 따라가며 2천rpm 이상 사용할 일이 없다. 변속기도 1천rpm 대에서 기어를 올리는 흔하지 않은 광경도 쉽사리 목격된다. 심지어 그 환경이 언덕일지라도.
승차감은 단단한 편이다. 노면의 요철은 모두 읽으면서 가는 성격이고 푹신한 승차감과는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차량의 출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탄력적이다. 딱딱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쫀득한 감각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일반 차량과 비교하면 단단하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는 것은 아니다.
가속페달을 중간 정도 밟아본다. 엔진 회전수가 4천rpm 정도까지 상승하며 속도를 올린다. 그냥 일반적인 승용차가 조금 빠르게 가속하는 정도의 감각이다. 하지만 감각으로 느끼는 것과 실제 속도가 올라가는 것은 전혀 달랐다. 차량이 조금 더 힘을 쓰는 것이라 느껴지지만 속도계는 이미 앞자리수를 바꾸고 있다. 아직 슈퍼차저 소리도 못 들었는데…
중간에 언덕길을 만났다. 다른 차량이었다면 기어를 저단으로 바꿔 엔진 회전수를 높인 상태로 올라갔을 테지만 CTS-V는 1,100rpm 대에서 그냥 밀고 올라간다. 이때 기어가 3단이었다. 가속페달을 밟아봤다. 그대로 속도가 상승하는데 이때 200마력 전후 차량의 가속감이 느껴진다.
간보는 것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테스트에 나선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 시간부터 측정해본다.
런치 컨트롤 기능을 활성화 시키는 방법도 일반적이지 않다. 우선 차량의 주행모드를 트랙 모드로 변경한다. 이후 차체자세제어장치 해제 버튼을 빠르게 두번 누른다. 그러면 숨겨져 있던 PTM(Performance Traction Management) 모드로 진입한다. 여기서 레이스 모드를 설정하면 준비가 끝난다. 나머지는 동일하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는다. 그러면 엔진회전수가 일정한 영역대에 고정되고 브레이크 페달만 놓으면 출발한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가속페달을 밟자 엔진회전수가 1,500rpm 밑부분에서 고정된다. 너무도 강력한 토크를 뒷바퀴에만 전달하기 때문에 엔진 회전수가 높아지면 정상적인 접지력 확보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캐딜락이 선택한 방법은 저회전 영역에서 엔진의 파워를 제대로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측정 결과는 4.31초. 매우 어렵게 측정된 결과값이다. 트랙션 컨트롤이 최대한 타이어가 미끄러지지 않게 도왔음에도 1단에서 슬립, 2단에서 슬립, 3단이 들어가도 슬립이 발생했다. 테스트가 수 차례 반복되고 나서야 타이어가 제대로 열을 받았고, 그제서야 정상적인 가속력 측정이 가능했다. 그래도 1단에서 2단으로 넘어갈 때 휘청거리긴 한다.
참고로 CTS-V에는 전륜 265mm, 후륜 295mm의 미쉐린 파일럿 슈퍼 스포츠가 기본으로 장착된다. 테스트 모델에는 후속 모델인 파일럿 스포츠 4 S 타이어가 장착됐다. 정말 높은 성능을 발휘해주는 타이어지만 648마력과 87.2kg.m의 토크를 받아내기에는 부족했다. 타이어 성능이 아쉽다가 아닌, 차량이 과할 뿐이다.
가속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가속감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다양한 차량들을 접해왔지만 이와 같은 가속감을 전달해주는 차량은 없었다. 얼마만큼 빠르고 강력한 것을 떠나 이처럼 광기서린 가속은 처음이다. 만약 후륜 타이어 너비를 넓히고 미쉐린의 파일럿 스포츠 컵 2와 같은 타이어를 장착한다면 CTS-V는 충분히 3초대는 진입할 것이다.
막강한 가속성능을 만들어내는 것은 엔진과 변속기의 조합 덕이다. LT4 엔진. 8기통 6.2리터 슈퍼차저 사양으로 GM의 스몰블록 시리즈 중 최신 모델이다. 구닥다리 푸시로드 방식이라고? 푸시로드 방식이기 때문에 실린더 헤드 사이즈를 비약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어지간한 V6 엔진 보다 작은 사이즈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엔진룸을 살펴보면 엔진이 빽빽하게 자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빈 공간이 많을 정도로 컴팩트한 모습이었다.
작으면 무게도 가벼워진다. LT4 엔진 무게는 240kg 내외. 현대 기아차가 사용하는 3.3 터보 엔진의 무게가 218kg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얼마나 가벼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신 사양에 해당하는 엔진인 만큼 직분사 시스템과 가변실린더 기술, 실린더 오일 스프레이 시스템 등을 추가했다. 특히 푸시로드 방식 엔진에서 실린더 내에 직분사 장치와 점화플러그를 이상적인 위치에 두기 위해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만 600만 시간을 썼다고 한다.
엔진과 결합되는 슈퍼차저는 이튼사의 제품이다. 1.7리터 용량을 바탕으로 2만rpm까지 돌며 엔진으로 압축 공기를 불어넣는다. 참고로 신형 콜벳 ZR1에 사용되는 사양은 슈퍼차저의 용량을 더 키워 출력을 755마력까지 향상시켰다.
변속기는 GM이 개발한 8L90 자동변속기다. 국내에서는 크루즈나 말리부에 탑재된 GEN I 변속기 때문에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보령미션’이란 불리며 놀림감이 됐다. 하지만 이 변속기는 전혀 다르다. 시프트업 속도는 포르쉐의 PDK 변속기보다 800분의 1초 빠르다. 토크컨버터 방식의 변속기가 듀얼클러치 변속기의 속도를 넘어서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럼에도 변속기의 부피는 기존 6단 자동 수준에 불과하다. 토크 대응력 90kg.m 이상의 변속기가 이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강력한 파워트레인을 바탕으로 막강한 가속성능을 만들어내지만 차체의 떨림이나 견고함(강성감)에서의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마치 돌덩이 같은 차체 느낌이다. 불안한 감각 따위는 없다.
이를 위해 차체의 뒤틀림을 막아주는 스트럿 타워가 2개 추가됐다. 측면 로커 패널 격벽 역시 강화시켰으며, 후면 크래들과 로커를 연결시키는 구조물의 강성도 향상됐다. 이를 통해 차체 강성이 25% 가량 높아졌다고 한다. 차체만 보강된 것이 아니라 섀시 역시 보강됐다. 단단해진 스프링과 스태빌라이저 바, 유압식 부싱 등의 적용으로 롤 강성은 20% 향상됐다. 섀시 뿐일까? 동력성능이 너무 높으면 휠이 견디지 못하고 깨질 수도 있기에 CTS-V 전용 휠은 일반모델 대비 휠 강성이 45% 가량 높다.
브레이크는 브렘보 제품을 사용한다. 전륜은 390mm 디스크에 6-피스톤 캘리퍼를, 후륜은 365mm 디스크에 4-피스톤 캘리퍼가 탑재된다. 제동 답력 자체는 후반으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설정이다. 또 초반에 너무 민감하게 제동력이 발휘되는 성격은 아니기에 처음 접하는 소비자도 어렵지 않게 큰 제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날카롭게 멈추지 않고 다소 무딘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데, 실제로 발휘되는 제동성능은 충분히 강력하다.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35.89m였다. 캐딜락 차량이 보편적으로 38m대를 기록하는데 한층 강력해진 사양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후반 영역으로 갈수록 페달 답력이 무거워지기에 그만큼 큰 힘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무지막지한 가속성능과 강화된 섀새와 브레이크.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 S의 조합은 과연 트랙에서도 통할까? 서킷 테스트를 담당하는 전인호 기자의 코멘트를 더한다.
서킷 시승기 : CTS-V의 주행 모드는 투어, 스포츠, 트랙, 스노우/아이스를 선택할 수 있다. 투어모드와 트랙 모드는 서스펜션 댐핑압력, 스티어링 답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부분에서 MRC의 영향이 크다. 투어 모드에서는 MRC 성향이 비교적 부드럽게 조절된다. 그로 인해 스티어링을 돌렸을 때도 차량이 반박자정도 느긋한 여유를 갖는다. 하지만 트랙 모드는 다르다. 모드 변경이 이루어지자 즉각 서스펜션이 단단하게 대비를 마치고, 스티어링에 무게감이 한껏 실린다.
차량 자체가 가지는 관성력은 꽤나 컸다. 좌, 우로 급격하게 연속된 코너에서 먼저 시작된 코너를 강하게 돌았다면, 그 다음 이어지는 반대 방향의 코너는 살며시 페이스를 줄이게 된다. CTS-V는 큰 관성이 작용하고 적은 차체의 기울어짐을 가진다. 대부분의 코너에서 차체가 수평을 유지해낸다.
코너링의 시작은 약한 언더스티어에서 뉴트럴한 성향을 가진다. 코너 중간까지 일관성을 유지한다. CTS-V는 운전자를 쉽게 긴장시키는 과한 출력을 가진 차량이다. 고 출력 엔진이 가져다 주는 엄청난 토크는 항상 후륜 타이어를 미끄러뜨려 오버스티어 상황을 자주 맞이하게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뒷바퀴가 미끄러지는 상황에 맞서야 할 때, 미끄러짐에 대한 예측이 쉽다. 좋은 밸런스를 가졌다는 것이다. 폭력적일만큼 가혹하게 가속 페달을 급격하게 조작하지 않는 이상, 낮은 마력대의 후륜 구동 모델로 스포츠 주행을 경험해 본 운전자라면 무난하게 적응할 수 있다. 코너링 탈출 성향은 운전자의 오른발을 다루는 의지에 달려있다. 원하는 것을 해내면 된다.
엔진은 강하다. 단단한 MRC라고 하더라도 풀 스로틀 가속에 있어서는 후륜 차고를 내려 앉혀 버린다. 인제 스피디움 서킷 메인 스트레이트 끝에서 기록한 계기판 속도는 무려 240km/h. 운전자가 패들 쉬프터로 변속기를 통제할 수 있는 완전한 매뉴얼 모드가 제공되지만, 스포츠 주행을 할 때 변속을 차에 맡겨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변속을 똑똑하게 한다. 엔진 출력 특성상 RPM을 전부 다 사용할 필요가 없는 만큼, 오히려 상황에 따라 운전자의 조작보다는 차량의 변속 로직 자체가 더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648마력의 출력은 사실 굉장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캐딜락은 스포츠 주행을 주 목적으로 하는 차량에 운전의 재미를 그대로 살리며 안전한 주행을 가미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제공되는 것이 PTM(Performance Traction Management)이라는 주행모드다. 트랙션 컨트롤의 감도를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으로 ATS-V에도 제공된다. 런치 컨트롤 기능도 PTM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작동한다.
주행모드를 트랙으로 변경하고 자세제어장치 해제 버튼을 두번 연속으로 누르면 계기판 디스플레이에 PTM 메뉴가 활성화된다. 주행 모드는 WET, DRY, SPORT 1, SPORT 2, RACE로 나뉜다. 제공 되는 각 주행 모드들은 차량의 조향 각도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엔진 출력으로 인해 발생되는 파워 오버스티어 상황을 제어한다. 출력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는 기능이다.
그러나 마른 노면에서 타임어택 혹은 드리프트 주행을 위해서라면 PTM을 활성화 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빠른 랩타임을 목표로 하는 주행에서 휠 스핀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일 때, 순간적으로 엔진 출력이 차단된다. 이는 랩타임의 손실로 이어진다. 가장 개입 정도가 느슨한 RACE 모드에서조차 득보다는 실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제동 페달 답력은 리니어한 편이다. 강한 제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페달 밟는 힘을 꽤 많이 들여야 한다.
최근에는 “운전자의 마음에 맞춰주는 차량이 좋은 차”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물론 고성능 차량들의 설계에도 영향을 준다. BMW를 시작으로 맥라렌과 AMG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드리프트 모드가 좋은 예다. 하지만 CTS-V는 그런 모델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더욱 야성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운전의 난이도를 놓고 보면 CTS-V는 운전자의 섬세함을 요구한다. 출력의 이점을 보려면 코너 탈출에서 가속 페달을 조심스럽게 밟을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하다. CTS-V에 폭발적이며 마초적인 이미지가 깔려 있지만 정작 랩타임을 작성할 때, 운전자는 모든 본능을 통제하고 냉철하게, 이성적인 계산으로 CTS-V를 다뤄야 한다.
CTS-V는 국내에 출시된 수입 스포츠 모델 중 쉴새 없이 자세를 비틀어대는 출력과 가속력을 즐길 수 있는 모델이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캐딜락 CTS-V가 작성한 기록은 1분 53초 90. 직접 비교대상은 아니지만 BMW M3가 1분 53초 86을 기록했으니 어느 정도로 잘 달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648마력인데 430마력대 차량이랑 비슷하게 달리는 거 아냐? 라고 물을 수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근육질의 한 덩치 하는 사람과 호리호리한 사람이 있다. 힘만 따지면 덩치 큰 사람이 앞설 것이다. 하지만 만약 술래잡기를 한다면? 요리조리 날렵하게 도망치기에는 호리호리한 사람이 유리할 것이다. 서킷 역시 마찬가지다. 무게는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다. 덩치도 큰 것보다 작은 것이 유리하다. 앞으로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코너를 잘 돌아나갈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서킷이다. 그런 환경에서 CTS-V가 M3와 동급의 기록을 냈다는 것은 마치 씨름 선수가 육상선수에 버금가는 달리기 기록을 작성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참고로 해외 서킷 기록을 보면 CTS-V의 기록이 ATS-V의 것을 앞서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서킷 레이아웃 덕분이다. 인제 스피디움은 테크니컬 코스로 고저차가 심하게 바뀌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가 CTS-V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때문에 긴 직선 구간(가속페달을 발을 시간이 긴)이 많은 서킷이라면 CTS-V가 더 빠른 랩타입을 기록할 수 있게 된다. 국내 영암 F1서킷에서도 기대감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CTS-V의 매력은 서킷보다 고속도로에 있을 때 더욱 빛이 난다. 차량이 가진 잠재 성능이 매우 높기 때문에 어떤 환경을 만나도 좋다. 그 속도가 60km/h이건 200km/h이건 말이다. 내가 원하는 움직임을 자동차가 너무나도 쉽게 해준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편하고 고급스럽다고 느끼기 충분하다.
물론 연비는 좋지 않다. CTS-V와 함께 다양한 환경에서 주행을 한 결과 6km/L대를 기록했다. CTS-V의 가속 성능을 평소보다 많이 느꼈다면 3km/L대는 각오해야 한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평속 15km의 도심 정체구간에서는 5.5km/L 수준으로 가솔린 3리터급 차량 수준의 효율을 보였다.
반대로 고속도로에서 정속주행을 하는 환경이라면 꽤나 좋은 연비를 확인할 수 있다. 시속 80km/h의 속도로 정속주행 하는 환경에서는 14.8km/L의 연비를 보였다. 시속 100~110km의 속도로 주행하는 상황에서는 12.5km/L 수준의 연비를 기록하기도 했다. 8개의 실린더 중 4개만 사용하는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 시스템 (Active Fuel Management) 덕분이다. 이 기능은 캐딜락 CT6 3.6 모델에도 적용된다. 다만 CT6와 다른 점은 6.2리터의 절반만 사용해도 3.1리터나 되고 힘도 충분하기 때문에 이 기능을 사용하는 시간이 길었다. 반면 CT6는 제한적인 배기량으로 가변 실린더 가용 시간은 짧은 편에 속했다.
캐딜락 CTS-V는 마초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고성능 세단이다. 사실은 과하게 강력한 성능이다. 강력한 것만 따지면 양산형 세단 중 최고다. 이처럼 강력한 세단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출력에 대한 목마름? CTS-V에서는 전혀 필요 없는 문장이다.
가격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F10 기반의 BMW M5는 1억 4천만원대였다. 신형 M5는 모델체인지가 이뤄졌으니 가격은 더 오를 것이다. 과거 E 63 AMG 모델은 1억 3천만원대였고, 앞으로 등장할 AMG E 63 S 모델은 가격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렉서스 GS F도 1억 2천만원대다.
하지만 CTS-V는 가장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고 있음에도 1억 1천만원대라는 가격표를 달았다. 카본 패키지 모델이 1억 2천만원대라지만 실제 딜러가 제공하는 할인을 생각하면 실구매 가격은 다소 낮아진다. 이 급에서 가성비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소비자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세단을 갖는다는 것. 분명한 매력이다. 세단의 기능성을 충족시키면서도 필요하면 언제든 야수로 돌변하는 강력함. 거기에 경쟁모델과 비교해 가격도 합리적이다. 벌써부터 다음 세대로 교체될 새로운 CTS-V가 두려워진다. GM은 ZR1에 장착할 755마력을 발휘하는 LT5 엔진을 개발했다. 이를 그대로 혹은 조금 디튠한 뒤 차기 CTS-V에 넣겠지?
고급스러운 부분이 강조되는 것은 이들 차량이다. 또한 조용할수록 좋다. 그런데 이 차들을 튜닝해 조금 더 강성 성능을 만들려는 브랜드 들이 꽤 많다. 제네시스 G80 스포츠는 370마력을 발휘한다. 렉서스는 GS에 5.0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넣어 473마력을 발휘하게 만들었다. 아시아를 지나 독일로 가면 출력이 확 높아진다. 향후 국내 출시될 BMW M5의 출력은 600마력. 출시를 앞둔 AMG E 63 S는 무려 612마력을 발휘한다. 정말 무시무시한 출력이다.
역시 ‘독일 엔지니어링은 대단해’란 말을 외치려는 찰나, 저 멀리 미국 브랜드가 별거 아니라는 표정의 미소를 띈다. 캐딜락이다. 그들이 만든 CTS-V는 이미 648마력을 갖고 있다.
648마력. 앞으로도 이런 출력을 발휘하는 차량을 만나기는 어려울 것이다. 정말이지 다른 세계에 있는 수치다. 왠지 2억원은 족히 넘는 차량에 어울리는 출력이지만 1억 1천만원대라는 가격표가 다시 한번 눈길을 사로잡는다. 현존하는 가장 강력한 양산형 세단 CTS-V는 그렇게 가성비까지 갖췄다.
엄밀하게 따지면 외적인 모습에서의 차별화는 없다. CTS에 새로운 그릴과 범퍼를 장착하고 뒤쪽에 새로운 머플러와 디퓨저, 리어스포일러를 장착한 정도다. 디테일하게 살펴보면 이러한 변화 모두가 냉각 효율과 공기역학 성능을 높이기 위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물망 형태의 그릴 디자인을 비롯해 범퍼 하단도 실제 뚫려있다. 그리고 이 안쪽을 살펴보면 냉각장치들이 빼곡하게 자리한다. 다른 차량들을 보면 그물망 형태의 그릴이라고 해도 부분적으로 막혀 있고 범퍼 양 측면 부분도 공기흡입구처럼 만들었지만 실제로는 막혀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CTS-V는 모두 공기 흡입을 위한 형태다.
왜 그물망 형태로 바꿨을까? 멋도 있지만 공기를 가장 효율적으로 냉각장치까지 끌어오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또 공기가 흘러 들어오는 방향을 바꾸지 않는 형태이기도 하다. 고성능 모델이니까 이렇게 바꾼 것이 아니라 고성능 모델이기 때문에 이렇게 바꿀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엔진 후드는 불룩 솟았다. 6.2리터 엔진에 슈퍼차저를 더하며 엔진이 커졌기 때문이다. 또 엔진에서 발생하는 열기를 빼기 위해 엔진 후드에 공기배출구를 마련했다.
휠은 19인치를 사용한다. 휠이 필요 이상으로 커지면 성능에 방해만 된다. 외적인 것보다 성능을 중심으로, 캐딜락은 CTS-V를 진지하게 개발했다.
후면부 범퍼 하단에는 4개의 대구경 머플러와 넓은 면적의 디퓨저를 달았다. 메르세데스-AMG 등은 외부에 보이는 머플러를 가짜로 만들어 더 크고 멋지게 보이려 했지만 CTS-V는 진짜로 4개의 원형 파이프를 그대로 노출시켰다.
인테리어는 일반적인 CTS 세단과 같다. 대신 스티어링휠과 기어레버, 천장 등 넓은 부위에 스웨이드 및 마이크로파이버 소재를 사용해 차별화시켰다. 스티어링휠은 상당히 두툼하다. 12.3인치 디스플레이 계기판은 CTS-V를 위한 전용 그래픽을 지원한다. 트랙 모드로 변경하면 흰색 타코미터가 크게 자리하는데, 야간 주행처럼 어두운 상황에서 이 흰색 타코미터가 운전자의 눈부심을 만들어내 아쉽다.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있는데, CTS-V 만을 위한 차별화 포인트는 없다. 참고로 캐딜락의 HUD는 타사 제품 대비 조금 어두운 느낌이 짙다. 조금 더 선명해지면 좋겠다.
실내 곳곳에 위치한 카본 패널은 스포티한 감각을 더해주는 요소다. 고성능 모델답게 시트는 레카로 버킷 타입이다. 허벅지를 지지해주는 부분도 두꺼워 앉기만 해도 스포티한 분위기가 물씬 풍긴다. 물론 이로 인한 단점도 존재한다. 먼저 통풍 기능이 삭제됐다. 또 시트가 두터워진 만큼 뒷좌석 공간도 좁아졌다. 시트 뒷 부분이 홀쭉하지 않고 볼록 튀어나와 뒷좌석 레그룸이 좁아진 것.
뒷좌석 레그룸이 좁아졌다지만 헤드룸은 성인 남성이 앉아도 불편이 없다. 여기에 뒷좌석 전동 선셰이드나 윈도우 선셰이드와 같은 기능도 갖춰 이 차량이 비즈니스 세단임을 잊지 않게 해준다.
오직 달리기에만 집중했을 것 같지만 각종 편의 및 안전장비를 갖춰 시대에 뒤떨어지지 않도록 했다. 스마트폰 무성 충전 시스템도 최신 트렌드를 잘 따르는 요소다. 전방 추돌 경고, 차선을 넘지 않도록 스티어링 휠이 직업 제어되는 차선이탈 방지 기능도 있다. 특히 평행 및 직각 주차를 지원하는 자동주차 시스템은 인식률이 높다. 형식적으로 탑재한 것이 아니라 실제 유용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좋다.
버튼을 눌러 시동을 건다. 아메리칸 머슬 V8의 엄청난 배기음이 쏟아질 것을 기대했지만 생각보다 조용하다. 아이들 정숙성을 측정한 결과 46.5dBA로 나타났다. 소음 유입 정도가 조금 큰 디젤 차량과 유사한 수준이다. 주행모드를 트랙으로 설정하면 가변 배기 시스템이 작동하며 수치가 52dBA까지 상승한다. 시속 80km의 속도로 정속 주행하는 환경에서는 59.5dBA을 기록했다. 일반적인 세단들과 동일한 수준의 정숙성이다.
어쨌든 이 차는 중형 등급의 세단인 것이다. 승차감과 정숙성도 중요했기에 2중 차음 유리를 사용했을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 물론 여기서 조용하다는 것은 일반 차량의 조용함과 전혀 다른 영역이다.
6.2리터 8기통의 강력함은 아이들 상태에서도 느낄 수 있다. 스티어링휠, 시트 등에서 대배기량 8기통 엔진의 진동이 전해진다. 가속 페달을 살짝 밟으면 ‘우르릉’거리는 소리와 함께 주변 공기마저 울려 버린다.
가속 페달은 살짝 무디게 설정했다. 너무 민감한 설정이 사고를 유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가속페달을 처음 밟는 부분에서는 엔진의 반응이 더디다가 가속페달을 깊게 밟을수록 정확한 반응성을 이어가는 타입이다.
일반 운전 환경에서는 648마력이라는 것이 전혀 부담스럽지 않을 만큼 편하다. 하지만 1,500rpm 미만 영역에서 느껴지는 토크감이 일반 세단과 다르다. 힘이 워낙 좋기에 도심 속 차량 무리를 따라가며 2천rpm 이상 사용할 일이 없다. 변속기도 1천rpm 대에서 기어를 올리는 흔하지 않은 광경도 쉽사리 목격된다. 심지어 그 환경이 언덕일지라도.
승차감은 단단한 편이다. 노면의 요철은 모두 읽으면서 가는 성격이고 푹신한 승차감과는 거리감이 있다. 하지만 차량의 출력을 생각하면 이 정도로 괜찮을까?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탄력적이다. 딱딱하기만 한 것이 아니라 쫀득한 감각이라는 표현이 맞겠다. 일반 차량과 비교하면 단단하지만 그렇다고 그 정도가 매우 심하다는 것은 아니다.
가속페달을 중간 정도 밟아본다. 엔진 회전수가 4천rpm 정도까지 상승하며 속도를 올린다. 그냥 일반적인 승용차가 조금 빠르게 가속하는 정도의 감각이다. 하지만 감각으로 느끼는 것과 실제 속도가 올라가는 것은 전혀 달랐다. 차량이 조금 더 힘을 쓰는 것이라 느껴지지만 속도계는 이미 앞자리수를 바꾸고 있다. 아직 슈퍼차저 소리도 못 들었는데…
중간에 언덕길을 만났다. 다른 차량이었다면 기어를 저단으로 바꿔 엔진 회전수를 높인 상태로 올라갔을 테지만 CTS-V는 1,100rpm 대에서 그냥 밀고 올라간다. 이때 기어가 3단이었다. 가속페달을 밟아봤다. 그대로 속도가 상승하는데 이때 200마력 전후 차량의 가속감이 느껴진다.
간보는 것은 이쯤에서 마무리하고 본격적으로 테스트에 나선다. 정지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 시간부터 측정해본다.
런치 컨트롤 기능을 활성화 시키는 방법도 일반적이지 않다. 우선 차량의 주행모드를 트랙 모드로 변경한다. 이후 차체자세제어장치 해제 버튼을 빠르게 두번 누른다. 그러면 숨겨져 있던 PTM(Performance Traction Management) 모드로 진입한다. 여기서 레이스 모드를 설정하면 준비가 끝난다. 나머지는 동일하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는다. 그러면 엔진회전수가 일정한 영역대에 고정되고 브레이크 페달만 놓으면 출발한다.
브레이크 페달을 밟고 가속페달을 밟자 엔진회전수가 1,500rpm 밑부분에서 고정된다. 너무도 강력한 토크를 뒷바퀴에만 전달하기 때문에 엔진 회전수가 높아지면 정상적인 접지력 확보가 불가능해진다. 그래서 캐딜락이 선택한 방법은 저회전 영역에서 엔진의 파워를 제대로 전달하자는 것이었다.
측정 결과는 4.31초. 매우 어렵게 측정된 결과값이다. 트랙션 컨트롤이 최대한 타이어가 미끄러지지 않게 도왔음에도 1단에서 슬립, 2단에서 슬립, 3단이 들어가도 슬립이 발생했다. 테스트가 수 차례 반복되고 나서야 타이어가 제대로 열을 받았고, 그제서야 정상적인 가속력 측정이 가능했다. 그래도 1단에서 2단으로 넘어갈 때 휘청거리긴 한다.
참고로 CTS-V에는 전륜 265mm, 후륜 295mm의 미쉐린 파일럿 슈퍼 스포츠가 기본으로 장착된다. 테스트 모델에는 후속 모델인 파일럿 스포츠 4 S 타이어가 장착됐다. 정말 높은 성능을 발휘해주는 타이어지만 648마력과 87.2kg.m의 토크를 받아내기에는 부족했다. 타이어 성능이 아쉽다가 아닌, 차량이 과할 뿐이다.
가속 테스트를 진행하면서 느낀 가속감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다양한 차량들을 접해왔지만 이와 같은 가속감을 전달해주는 차량은 없었다. 얼마만큼 빠르고 강력한 것을 떠나 이처럼 광기서린 가속은 처음이다. 만약 후륜 타이어 너비를 넓히고 미쉐린의 파일럿 스포츠 컵 2와 같은 타이어를 장착한다면 CTS-V는 충분히 3초대는 진입할 것이다.
막강한 가속성능을 만들어내는 것은 엔진과 변속기의 조합 덕이다. LT4 엔진. 8기통 6.2리터 슈퍼차저 사양으로 GM의 스몰블록 시리즈 중 최신 모델이다. 구닥다리 푸시로드 방식이라고? 푸시로드 방식이기 때문에 실린더 헤드 사이즈를 비약적으로 줄일 수 있었고 어지간한 V6 엔진 보다 작은 사이즈를 가질 수 있게 됐다. 실제로 엔진룸을 살펴보면 엔진이 빽빽하게 자리할 것이라는 예상과 달리 빈 공간이 많을 정도로 컴팩트한 모습이었다.
작으면 무게도 가벼워진다. LT4 엔진 무게는 240kg 내외. 현대 기아차가 사용하는 3.3 터보 엔진의 무게가 218kg이라는 점을 생각하면 얼마나 가벼운지 알 수 있을 것이다.
최신 사양에 해당하는 엔진인 만큼 직분사 시스템과 가변실린더 기술, 실린더 오일 스프레이 시스템 등을 추가했다. 특히 푸시로드 방식 엔진에서 실린더 내에 직분사 장치와 점화플러그를 이상적인 위치에 두기 위해 슈퍼컴퓨터 시뮬레이션만 600만 시간을 썼다고 한다.
엔진과 결합되는 슈퍼차저는 이튼사의 제품이다. 1.7리터 용량을 바탕으로 2만rpm까지 돌며 엔진으로 압축 공기를 불어넣는다. 참고로 신형 콜벳 ZR1에 사용되는 사양은 슈퍼차저의 용량을 더 키워 출력을 755마력까지 향상시켰다.
변속기는 GM이 개발한 8L90 자동변속기다. 국내에서는 크루즈나 말리부에 탑재된 GEN I 변속기 때문에 이미지가 좋지 않은 것이 사실이다. ‘보령미션’이란 불리며 놀림감이 됐다. 하지만 이 변속기는 전혀 다르다. 시프트업 속도는 포르쉐의 PDK 변속기보다 800분의 1초 빠르다. 토크컨버터 방식의 변속기가 듀얼클러치 변속기의 속도를 넘어서는 수준에 도달한 것이다. 그럼에도 변속기의 부피는 기존 6단 자동 수준에 불과하다. 토크 대응력 90kg.m 이상의 변속기가 이렇다는 것이다.
이렇게 강력한 파워트레인을 바탕으로 막강한 가속성능을 만들어내지만 차체의 떨림이나 견고함(강성감)에서의 아쉬움은 없다. 오히려 마치 돌덩이 같은 차체 느낌이다. 불안한 감각 따위는 없다.
이를 위해 차체의 뒤틀림을 막아주는 스트럿 타워가 2개 추가됐다. 측면 로커 패널 격벽 역시 강화시켰으며, 후면 크래들과 로커를 연결시키는 구조물의 강성도 향상됐다. 이를 통해 차체 강성이 25% 가량 높아졌다고 한다. 차체만 보강된 것이 아니라 섀시 역시 보강됐다. 단단해진 스프링과 스태빌라이저 바, 유압식 부싱 등의 적용으로 롤 강성은 20% 향상됐다. 섀시 뿐일까? 동력성능이 너무 높으면 휠이 견디지 못하고 깨질 수도 있기에 CTS-V 전용 휠은 일반모델 대비 휠 강성이 45% 가량 높다.
브레이크는 브렘보 제품을 사용한다. 전륜은 390mm 디스크에 6-피스톤 캘리퍼를, 후륜은 365mm 디스크에 4-피스톤 캘리퍼가 탑재된다. 제동 답력 자체는 후반으로 갈수록 무거워지는 설정이다. 또 초반에 너무 민감하게 제동력이 발휘되는 성격은 아니기에 처음 접하는 소비자도 어렵지 않게 큰 제동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 날카롭게 멈추지 않고 다소 무딘듯한 감각을 느낄 수 있는데, 실제로 발휘되는 제동성능은 충분히 강력하다.
시속 100km에서 완전히 정지하는데 이동한 거리는 35.89m였다. 캐딜락 차량이 보편적으로 38m대를 기록하는데 한층 강력해진 사양임을 확인할 수 있다. 다만 후반 영역으로 갈수록 페달 답력이 무거워지기에 그만큼 큰 힘으로 브레이크 페달을 밟아야 한다는 점을 참고해야 한다.
무지막지한 가속성능과 강화된 섀새와 브레이크. 미쉐린 파일럿 스포츠 4 S의 조합은 과연 트랙에서도 통할까? 서킷 테스트를 담당하는 전인호 기자의 코멘트를 더한다.
서킷 시승기 : CTS-V의 주행 모드는 투어, 스포츠, 트랙, 스노우/아이스를 선택할 수 있다. 투어모드와 트랙 모드는 서스펜션 댐핑압력, 스티어링 답력에서 큰 차이를 보인다. 이 부분에서 MRC의 영향이 크다. 투어 모드에서는 MRC 성향이 비교적 부드럽게 조절된다. 그로 인해 스티어링을 돌렸을 때도 차량이 반박자정도 느긋한 여유를 갖는다. 하지만 트랙 모드는 다르다. 모드 변경이 이루어지자 즉각 서스펜션이 단단하게 대비를 마치고, 스티어링에 무게감이 한껏 실린다.
차량 자체가 가지는 관성력은 꽤나 컸다. 좌, 우로 급격하게 연속된 코너에서 먼저 시작된 코너를 강하게 돌았다면, 그 다음 이어지는 반대 방향의 코너는 살며시 페이스를 줄이게 된다. CTS-V는 큰 관성이 작용하고 적은 차체의 기울어짐을 가진다. 대부분의 코너에서 차체가 수평을 유지해낸다.
코너링의 시작은 약한 언더스티어에서 뉴트럴한 성향을 가진다. 코너 중간까지 일관성을 유지한다. CTS-V는 운전자를 쉽게 긴장시키는 과한 출력을 가진 차량이다. 고 출력 엔진이 가져다 주는 엄청난 토크는 항상 후륜 타이어를 미끄러뜨려 오버스티어 상황을 자주 맞이하게 한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뒷바퀴가 미끄러지는 상황에 맞서야 할 때, 미끄러짐에 대한 예측이 쉽다. 좋은 밸런스를 가졌다는 것이다. 폭력적일만큼 가혹하게 가속 페달을 급격하게 조작하지 않는 이상, 낮은 마력대의 후륜 구동 모델로 스포츠 주행을 경험해 본 운전자라면 무난하게 적응할 수 있다. 코너링 탈출 성향은 운전자의 오른발을 다루는 의지에 달려있다. 원하는 것을 해내면 된다.
엔진은 강하다. 단단한 MRC라고 하더라도 풀 스로틀 가속에 있어서는 후륜 차고를 내려 앉혀 버린다. 인제 스피디움 서킷 메인 스트레이트 끝에서 기록한 계기판 속도는 무려 240km/h. 운전자가 패들 쉬프터로 변속기를 통제할 수 있는 완전한 매뉴얼 모드가 제공되지만, 스포츠 주행을 할 때 변속을 차에 맡겨도 만족할 수 있을 정도로 변속을 똑똑하게 한다. 엔진 출력 특성상 RPM을 전부 다 사용할 필요가 없는 만큼, 오히려 상황에 따라 운전자의 조작보다는 차량의 변속 로직 자체가 더 효율적인 모습을 보여준다.
648마력의 출력은 사실 굉장히 부담스럽다. 하지만 캐딜락은 스포츠 주행을 주 목적으로 하는 차량에 운전의 재미를 그대로 살리며 안전한 주행을 가미시키고자 했다. 이를 위해 제공되는 것이 PTM(Performance Traction Management)이라는 주행모드다. 트랙션 컨트롤의 감도를 단계별로 조절할 수 있는 기능으로 ATS-V에도 제공된다. 런치 컨트롤 기능도 PTM이 활성화된 상태에서 작동한다.
주행모드를 트랙으로 변경하고 자세제어장치 해제 버튼을 두번 연속으로 누르면 계기판 디스플레이에 PTM 메뉴가 활성화된다. 주행 모드는 WET, DRY, SPORT 1, SPORT 2, RACE로 나뉜다. 제공 되는 각 주행 모드들은 차량의 조향 각도에는 관여하지 않으며 엔진 출력으로 인해 발생되는 파워 오버스티어 상황을 제어한다. 출력에 대한 부담감을 덜어줄 수 있는 기능이다.
그러나 마른 노면에서 타임어택 혹은 드리프트 주행을 위해서라면 PTM을 활성화 시키지 않는 것이 좋다. 빠른 랩타임을 목표로 하는 주행에서 휠 스핀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일 때, 순간적으로 엔진 출력이 차단된다. 이는 랩타임의 손실로 이어진다. 가장 개입 정도가 느슨한 RACE 모드에서조차 득보다는 실로 연결되는 경우가 많다.
제동 페달 답력은 리니어한 편이다. 강한 제동력을 얻기 위해서는 페달 밟는 힘을 꽤 많이 들여야 한다.
최근에는 “운전자의 마음에 맞춰주는 차량이 좋은 차”라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물론 고성능 차량들의 설계에도 영향을 준다. BMW를 시작으로 맥라렌과 AMG 등에서 사용하고 있는 드리프트 모드가 좋은 예다. 하지만 CTS-V는 그런 모델과는 차별화된 모습을 보여준다. 더욱 야성적인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결코 쉬운 상대가 아니다.
운전의 난이도를 놓고 보면 CTS-V는 운전자의 섬세함을 요구한다. 출력의 이점을 보려면 코너 탈출에서 가속 페달을 조심스럽게 밟을 줄 아는 인내가 필요하다. CTS-V에 폭발적이며 마초적인 이미지가 깔려 있지만 정작 랩타임을 작성할 때, 운전자는 모든 본능을 통제하고 냉철하게, 이성적인 계산으로 CTS-V를 다뤄야 한다.
CTS-V는 국내에 출시된 수입 스포츠 모델 중 쉴새 없이 자세를 비틀어대는 출력과 가속력을 즐길 수 있는 모델이다. 매우 인상적이었다.
캐딜락 CTS-V가 작성한 기록은 1분 53초 90. 직접 비교대상은 아니지만 BMW M3가 1분 53초 86을 기록했으니 어느 정도로 잘 달렸는지 알 수 있을 것이다.
648마력인데 430마력대 차량이랑 비슷하게 달리는 거 아냐? 라고 물을 수 있다. 간단하게 설명하겠다. 근육질의 한 덩치 하는 사람과 호리호리한 사람이 있다. 힘만 따지면 덩치 큰 사람이 앞설 것이다. 하지만 만약 술래잡기를 한다면? 요리조리 날렵하게 도망치기에는 호리호리한 사람이 유리할 것이다. 서킷 역시 마찬가지다. 무게는 가벼우면 가벼울수록 좋다. 덩치도 큰 것보다 작은 것이 유리하다. 앞으로만 달리는 것이 아니라 반복되는 코너를 잘 돌아나갈 수 있는 것이 중요한 것이 서킷이다. 그런 환경에서 CTS-V가 M3와 동급의 기록을 냈다는 것은 마치 씨름 선수가 육상선수에 버금가는 달리기 기록을 작성한 것이라고 표현하고 싶다.
참고로 해외 서킷 기록을 보면 CTS-V의 기록이 ATS-V의 것을 앞서는 경우가 많다. 이는 서킷 레이아웃 덕분이다. 인제 스피디움은 테크니컬 코스로 고저차가 심하게 바뀌는 독특한 구조를 갖고 있다. 이 구조가 CTS-V에게 불리한 조건을 제공했다. 때문에 긴 직선 구간(가속페달을 발을 시간이 긴)이 많은 서킷이라면 CTS-V가 더 빠른 랩타입을 기록할 수 있게 된다. 국내 영암 F1서킷에서도 기대감을 키울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CTS-V의 매력은 서킷보다 고속도로에 있을 때 더욱 빛이 난다. 차량이 가진 잠재 성능이 매우 높기 때문에 어떤 환경을 만나도 좋다. 그 속도가 60km/h이건 200km/h이건 말이다. 내가 원하는 움직임을 자동차가 너무나도 쉽게 해준다는 것. 그 자체만으로도 편하고 고급스럽다고 느끼기 충분하다.
물론 연비는 좋지 않다. CTS-V와 함께 다양한 환경에서 주행을 한 결과 6km/L대를 기록했다. CTS-V의 가속 성능을 평소보다 많이 느꼈다면 3km/L대는 각오해야 한다. 가다서다를 반복하는 평속 15km의 도심 정체구간에서는 5.5km/L 수준으로 가솔린 3리터급 차량 수준의 효율을 보였다.
반대로 고속도로에서 정속주행을 하는 환경이라면 꽤나 좋은 연비를 확인할 수 있다. 시속 80km/h의 속도로 정속주행 하는 환경에서는 14.8km/L의 연비를 보였다. 시속 100~110km의 속도로 주행하는 상황에서는 12.5km/L 수준의 연비를 기록하기도 했다. 8개의 실린더 중 4개만 사용하는 액티브 퓨얼 매니지먼트 시스템 (Active Fuel Management) 덕분이다. 이 기능은 캐딜락 CT6 3.6 모델에도 적용된다. 다만 CT6와 다른 점은 6.2리터의 절반만 사용해도 3.1리터나 되고 힘도 충분하기 때문에 이 기능을 사용하는 시간이 길었다. 반면 CT6는 제한적인 배기량으로 가변 실린더 가용 시간은 짧은 편에 속했다.
캐딜락 CTS-V는 마초적인 매력을 느낄 수 있는 고성능 세단이다. 사실은 과하게 강력한 성능이다. 강력한 것만 따지면 양산형 세단 중 최고다. 이처럼 강력한 세단을 국내에서 만날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이색적으로 느껴진다. 출력에 대한 목마름? CTS-V에서는 전혀 필요 없는 문장이다.
가격에 대한 이야기도 빼놓을 수 없다. F10 기반의 BMW M5는 1억 4천만원대였다. 신형 M5는 모델체인지가 이뤄졌으니 가격은 더 오를 것이다. 과거 E 63 AMG 모델은 1억 3천만원대였고, 앞으로 등장할 AMG E 63 S 모델은 가격이 더 높아질 가능성이 다분하다. 렉서스 GS F도 1억 2천만원대다.
하지만 CTS-V는 가장 강력한 성능을 발휘하고 있음에도 1억 1천만원대라는 가격표를 달았다. 카본 패키지 모델이 1억 2천만원대라지만 실제 딜러가 제공하는 할인을 생각하면 실구매 가격은 다소 낮아진다. 이 급에서 가성비라는 표현을 쓰는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겠지만 적어도 소비자들에게 가장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고 있음에는 분명하다.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세단을 갖는다는 것. 분명한 매력이다. 세단의 기능성을 충족시키면서도 필요하면 언제든 야수로 돌변하는 강력함. 거기에 경쟁모델과 비교해 가격도 합리적이다. 벌써부터 다음 세대로 교체될 새로운 CTS-V가 두려워진다. GM은 ZR1에 장착할 755마력을 발휘하는 LT5 엔진을 개발했다. 이를 그대로 혹은 조금 디튠한 뒤 차기 CTS-V에 넣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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