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재규어 XE, 태풍을 뚫고 달리다
컨텐츠 정보
- 1,069 조회
- 목록
본문
그 누구에게도 호락호락한 곳은 아니다. BMW 3시리즈와 메르세데스-벤츠 C클래스, 아우디 A4 등 쟁쟁한 독일 브랜드가 눈을 희번득 뜨고 포진해 있어서다. 전통적으로 엔트리 프리미엄 세단 시장은 감히 다른 브랜드들이 넘기 힘든 불가침의 영역이다. 공연히 도전장을 내놓는 브랜드도 있지만, 실패의 쓴맛을 보고 잠잠해지는게 태반이다.
하지만 호랑이굴에 XE를 던져놓은 재규어코리아 직원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여유롭다. 사전 계약대수도 예상을 훌쩍 뛰어넘었고, 시승한 기자들의 반응도 매우 좋은 편이다. 태풍이 기승을 부렸던 25일, 강원도 강릉에서 재규어의 신차 XE를 시승했다.
◆ 동급 유일의 알루미늄 차체...그리 가볍지는 않다
운이 없나 싶었다. 오랜만에 호기심 진동하는 신차를 시승하기 위해 멀리 달려왔건만, 갑작스레 나타난 태풍 '고니'는 무지막지한 비바람을 쏟아냈다. 앞이 안 보일 정도로 거센 빗방울과 강풍에 차가 날아가 버릴지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 비가 미친 듯이 쏟아졌다 |
우려와 달리 재규어코리아 관계자들은 태평했다. 답사를 통해 위험한 구간은 제외했으니 차를 믿고 달리면 별문제 없을 것이라 했다. 덕분에 대관령 옛길 와인딩 구간과 정동진 해안도로 등 다른 시승에서는 없던 178km의 역동적인 코스를 달릴 수 있었다.
XE의 주행 능력은 쏟아지는 빗속에서도 확연히 돋보였다. 3시리즈와 C클래스, A4 등 동급 경쟁 모델과 비교해도 반발짝 정도 앞선다. 과격하지 않지만 꾸준히 밀어주는 힘이 있다. 영국 특유의 감성이 묻어난 듯 요란하게 티내지 않으면서 진중하게 몰아붙인다. 스포츠 세단을 지향했지만, 어디까지나 재규어의 슬로건인 '아름다운 고성능'에 충실했다.
▲ 다른날 시승한 기자들은 이런 날씨에서 XE를 탔다 |
처음에는 스포티한 디자인만 보고 구형 3시리즈(E90)처럼 주행 감각을 극단적으로 스포티하게 만들었을까 예상했는데, 막상 타보니 최신 3시리즈(F30)와 비슷하다. 생각보다 부드럽다는 말이다.
XE의 핵심은 동급 최초로 알루미늄을 사용한 모듈형 플랫폼(알루미늄 인텐시브 모노코크)으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차체 75%가량을 알루미늄으로, 25%는 강철로 만들었는데, 무게를 줄이면서도 강성을 높여 안전성을 향상시킨게 특징이다.
▲ 재규어 XE의 알루미늄 인텐시브 모노코크 바디. 이름이 거창하지만, 한 마디로 알루미늄을 많이 썼다는 이야기다 |
차체 무게 배분도 가장 이상적이라는 50:50으로 맞췄다. 게다가 역대 재규어 중 가장 낮은 공기저항계수(0.26 Cd)까지 갖춰선지 태풍이 한창인 대관령 와인딩 구간에서 흔들림 없이 자세를 유지했다.
알루미늄을 만재하고도 가벼운 편은 아니다. BMW 3시리즈에 비하면 가솔린은 40kg 이상, 디젤은 200kg나 무겁다.
◆ 탁월한 주행 능력…서스펜션은 만족, 핸들은 아쉬워
전체적인 주행감 세팅도 만족스럽다. 가속페달은 초반에, 브레이크는 중반 이후에 답력이 몰려 있어 빠르게 속도를 내고 진중하게 멈춘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설정이다.
다만, 재규어 최초로 사용한 전자식 스티어링휠은 다소 아쉽다. 조금 가볍고 어색하다. 외관과 어울리려면 조금 더 단단하고 예리해질 필요가 있다.
▲ 아무래도 세그먼트 리딩 모델인 BMW 3시리즈와 비교가 됐다. |
이 차에 장착된 ZF사의 8단 자동변속기는 재빠른 변속보다는 부드러움에 초점을 맞춘 듯하다. 같은 변속기를 사용한 3시리즈의 스포티한 세팅과는 완전히 다르게 느껴진다.
토크벡터링 기술도 더해졌다. 핸들을 조작하는데 따라 좌우 토크 배분을 조절해 차체 거동을 유지하며 코너를 빠져나갈 수 있게 하는 기술인데, 미끄러운 도로에서 빠른 속도로 코너링을 할때 더욱 확실한 안정감을 보여줬다. 시트포지션이 낮아서 운전재미를 높이는건 이 차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다.
◆ 동급 최고의 서스펜션…3시리즈보다 한 수 위
▲ 재규어 XE의 서스펜션은 3시리즈보다 한 수 위다. 돈이 깡패다. 비싼 값을 제대로 한다 |
XE의 서스펜션은 가장 높은 점수를 주고 싶은 부분이다. 인스트럭터들은 꽤 거칠게 차를 몰았는데, XE의 움직임은 놀라울 정도로 우수했다. 속도와 요철 등 도로 상황에 따라 서스펜션의 감쇄력을 최적으로 조절해주면서 부드러운 승차감을 유지했다. 딱딱하지도 말랑하지도 않게 말 그대로 쫀득했다.
XE는 전륜에 더블위시본 서스펜션을 장착했다. 후륜에도 인테그럴링크 서스펜션을 탑재해 2차 충격이 거의 전해지지 않도록 했다. 주행하는 내내 '돈 들인 티'가 났다. 서스펜션과 스티어링휠과의 조화, 고속에서의 안정성은 3시리즈와 C클래스, A4보다 한 수 위로 볼 수 있겠다.
▲ 재규어 XE의 서스펜션 구조 |
다소 과격하게 고속으로 몰아붙여도 안정성이 상당하다. 과격하고 극단적인게 아니라 운전자가 어떻게 운전을 하더라도 최대한 안전하고 예측 가능하게 맞춰주는 느낌이다. 각종 전자장비의 개입도 운전자가 눈치채지 못하게 은밀하고 신속하게 이질감 없이 이뤄진다.
◆ 만병통치약? '인제니움' 엔진
XE 디젤에는 재규어가 자랑하는 '인제니움(Ingenium)' 엔진이 또 장착됐다. 과거 포드에서 온 모듈형 엔진으로, 하나의 엔진 블럭으로 가솔린과 디젤을 모두 이용한다. 또 전륜구동, 후륜구동, 사륜구동 등 모든 모델에도 탑재할 수 있다고 자랑한다. 볼보도 같은 방법을 택하는데 완성도는 높아지겠지만 차종별 특성화, 최적화는 부족해진다.
▲ 재규어 XE의 인제니움 디젤 엔진은 독특하다. 독일차에 익숙한 사람들에게는 꽤 낯선 느낌일 듯하지만, 완성도는 매우 높다 |
음색은 특이하다. 적당한 톤과 적당한 데시벨을 유지하며 세련된 소리를 냈다. 알루미늄 실린더 블록과 트윈 역회전 밸런스 샤프트 등의 기술을 통해 소음·진동도 줄였다고 한다.
최고출력은 180마력, 최대토크는 43.9kg·m로 꽤 충분하다. 엔진 느낌이나 속도를 높이는 능력도 동급 프리미엄 디젤 엔진에 비해 전혀 부족하지 않았다. 시승한 XE 디젤은 2.0 R-스포트 모델이었는데, 전륜에는 225/45/R18을 후륜에는 245/40/R18을 사용했다. 꽤 스포티한 세팅이다. 연비는 도심 12.6km/l와 고속 17.6km/l를 포함해 복합 14.5km/l다.
▲ 재규어 XE에 들어간 2.0 가솔린 터보 엔진은 출력을 낮춘 디튠 모델이다. 동력 성능이 살짝 아쉽다 |
2.0 가솔린 터보 엔진도 앞서 XF와 XJ를 통해 검증이 됐다지만 이번에 들여온 것은 200마력 모델이다. 유럽이나 북미에는 240마력도 있는데, 이 정도는 돼야 적당할 것 같다. 가솔린엔 앞뒤 모두 225/50/R17 타이어가 장착됐다. 가솔린 모델은 상대적으로 주력에서 벗어나 있는 느낌이 든다.
◆ 스포티한 디자인과 고급스러운 실내…공간 활용은 아쉬워
재규어 XE는 매끈한 바디라인을 갖췄다. 재규어 역사상 가장 우수한 공기저항계수를 달성했을 정도로 디자인에 신경쓴 모델이다. 폭, 축거, 전장 등 제원상으로는 3시리즈보다 크지만, 전고는 좀 낮다. 디자인 때문인지 체감 크기는 실제보다 작아 보인다.
▲ 재규어의 세단의 전면부는 모두 비슷하다. 현재로서는 후면부 램프 디자인으로 구분해야 한다 |
전체적인 실루엣은 낮은 차체에 보닛이 길고 트렁크가 짧은 소위 '롱노즈 숏데크' 스타일로, 후면부도 쿠페 스타일로 다듬었다. 전면부는 XF·XJ와 비슷하게 패밀리룩이 적용됐으며, 후면부는 F-타입에서 영감을 받은 램프 디자인이 사용됐다. 곧 나올 신형 XF에도 이 디자인이 그대로 적용되는데, 브레이크등과 안개등 등 세부적인 램프 디자인은 다소 아쉬운 느낌이다.
▲ 재규어 XE 실내는 깔끔한 레이아웃에 소재도 고급스럽지만, 인체공학적 디자인과 공간 활용성에서는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
실내는 XJ 디자인을 차급에 맞게 변형시킨 새로운 레이아웃이 적용됐다. 운전석 끝에서 조수석 끝까지 반원처럼 이어지는 2중 구조의 랩어라운드 레이아웃에 'T'자형 센터페시아 디자인을 통해 8인치 모니터와 송풍구, 각종 조작 버튼 등을 간결하게 배치했다. 재규어 특유의 전자식 기어노브와 메리디안 사운드 시스템은 고급스러운 느낌을 준다. 전체적인 소재의 질감과 배치도 뛰어나다.
▲ 재규어 XE의 뒷좌석은 딱 그정도다 |
다만, 뒷좌석은 좁다. 휠베이스는 3시리즈보다 조금 길지만 차체 높이가 낮아 공간이 더 좁게 느껴진다. 특히, 인스투르먼트패널에서 기어노브, 센터콘솔, 뒷좌석까지 이어지는 구조물이 너무 두껍다. 4개의 좌석이 각각의 독립적인 공간으로 느껴진다는 장점이 있지만, 무릎에 계속 부딪힌다. 뒷좌석도 세명이 오랜시간 앉기에는 부족하다. 딱 이 차급에서 예상할 수 있는 정도로 보면 되겠다.
◆ 독일차 프리미엄과 당당히 겨룬다
▲ 재규어 XE는 3시리즈·C클래스·A4의 빈틈을 절묘하게 파고 들었다. 당당히 경쟁하기 충분하다 |
XE를 함께 시승한 기자는 "3시리즈보다 더 고급스럽고, C클래스보다 더 역동적이고, A4보다 더 감성적"이라면서도 "3시리즈보단 덜 역동적이고, C클래스보단 덜 고급스럽고, A4보단 덜 이성적"이라고 평가했다.
세부적인 평가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XE가 쟁쟁한 독일 프리미엄 세단과 경쟁하기에 충분하다는 점에선 이견이 없었다. 트랜드에 맞춰 차의 밸런스를 잘 조절하며 이들의 빈틈을 교묘히 파고들었다. 섀시와 서스펜션 등의 격차를 생각하면 가격 경쟁력도 우수한 편이다.
관련자료
-
링크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