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재규어 I-페이스, 낯설지만 강렬한 추격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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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뿔소처럼 툭 튀어나온 트렁크 라인 때문일까. 차체에 비해 커다란 20인치 휠 때문일까. 재규어 I-페이스의 첫인상은 매우 낯설다. 새빨간 컬러로 한층 부각되는 독특한 외관에 적응하기 위해 꽤 긴 시간이 필요했다.
툭 튀어나온 트렁크 라인과 극단적으로 짧은 오버행, 상대적으로 낮은 전고까지 일반적인 SUV 디자인에서 한 발 벗어난 인상이다. 이를 두고 재규어는 80여년 브랜드 디자인 DNA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했다고 설명한다. 지금은 회사를 떠난 이안 칼럼 디자인총괄 디렉터는 “전기차 기술이 발전하며 내연기관차에서는 없었던 디자인의 자유도가 생겼다”라며 “그 점이 가장 잘 보이는 것이 I-페이스”라고 강조한 바 있다.
전면은 재규어 특유의 ‘J’ 블레이드 그래픽 LED 헤드램프와 그릴 디자인이 적용돼 뚜렷한 존재감을 드러낸다. 대형 그릴이 적용된 것처럼 보이지만, 대부분 막혀있고 위쪽 일부만 뚫어놓아 공기가 보닛을 지나 루프라인으로 자연스럽게 흐른다.
측면에서는 3m에 육박하는 휠베이스가 낯섦을 극대화한다. 정확한 휠베이스는 2990mm로, 대형 SUV 못지 않다. 차량 지붕은 거의 끝까지 평평하게 뻗어있고, 끝부분은 Z자로 뒷유리와 어긋나있다. 뒷유리는 극단적으로 누워있으며, 트렁크 라인부터 범퍼 하단까지 거의 수직으로 서 있다.
실내에 오르면 디지털 계기판과 중앙에 위치한 두 개의 디스플레이가 시선을 사로잡는다. 3분할 디지털 계기판은 각각의 영역을 자유롭게 설정할 수 있다.
센터 콘솔 윗쪽에는 10.2인치, 아랫쪽에는 5인치 터치스크린이 연동되어 작동한다. 10.2인치 디스플레이는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해 스마트폰 내비게이션을 편리하게 사용할 수 있다. 하지만, 스크롤 방식이 일반 스마트폰과 달라 이질감이 느껴진다. 스마트폰에서 화면을 스크롤 하면 손가락이 이동한 만큼 화면이 움직이지만, I-페이스의 스크린은 스크롤 길이와 관계없이 같은 거리만을 이동한다. 사실상 웹서핑 시 키보드에서 페이지 업·다운 버튼을 누른 것과 비슷하다.
아래 위치한 5인치 터치스크린은 10.2인치 디스플레이와 별개로 항상 현재 듣고 있는 노래 정보를 띄워놓을 수 있다. 다만, 공조 장치의 바람 방향도 해당 디스플레이를 통해 조작해야 하기 때문에 직관적이지는 않다.
온도 조절 다이얼은 독특하다. 가볍게 다이얼을 돌리면 온도가 변하며, 다이얼을 앞으로 한 번 밀고 돌리면 시트 통풍·열선 기능을 조작할 수 있다. 다이얼을 한 번 잡아당기고 돌리면 풍량을 조절할 수도 있다. 하나의 다이얼로 3가지 기능을 조작할 수 있어 신기하고 공간 낭비도 적지만, 이 역시 직관성이 떨어진다.
다이얼 아래는 기어 버튼과 드라이브 모드, 에어서스펜션 조절 버튼이 위치한다. 기어 버튼은 배치가 독특하다. 일반적으로 익숙한 P-R-N-D의 배치가 아닌, D-N-R-P 배치가 적용됐다. 양쪽 버튼 사이에는 T자형 빈 공간이 있는데, 사실 이 공간은 활용성이 애매하다. 카플레이를 이용하기 위해 USB를 연결한 스마트폰을 두기에는 다소 좁고, 휴대폰 무선 충전 기능도 지원하지 않는다.
몇몇 단점과는 별개로 실내는 매우 고급스럽다. 시승차는 외관 색상과 마찬가지로 실내도 빨간색 가죽으로 마감됐다. 손이 닿는 모든 부분의 가죽은 부드럽고 촉촉한 느낌이 난다. 천장에 나있는 거대한 글래스 루프는 앞·뒤 승객 모두 답답하지 않게 시야를 확보해 주며, 햇빛이 강하게 비쳐도 부담스럽지 않다.
3m에 달하는 휠베이스를 가지고 있음에도 2열 좌석은 다소 좁게 느껴진다. 183cm인 기자를 기준으로, 앞 좌석을 편안하게 맞춰놓았을 때 2열에 앉으면 무릎이 닿는다. 등받이 각도도 다소 서있는 느낌이다.
상대적으로 트렁크 용량은 넉넉하다. 2열 폴딩 시 수치상 용량은 1453L까지 늘어난다. 이외 엔진이 없는 만큼 보닛 아래 작은 트렁크도 활용할 수 있다.
차량 전원을 켜고 운전을 시작했다.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도 차가 움직이지 않아 당황했다. 알고 보니 차량 설정에서 크리핑 모드를 따로 설정할 수 있다. 크리핑 모드를 켜고 나서야 내연기관차처럼 브레이크 페달에서 발을 떼면 차량이 조금씩 전진한다. 회생 제동은 강·약 2단계로 조절할 수 있으며, 강하게 설정해 놓을 경우 완전히 멈출 때를 제외하고는 ‘원 페달 드라이빙’이 가능하다. 정차 시 회생 제동을 유지하다가 브레이크 패드가 물리적으로 개입할 때 이질감이 느껴지지 않고 자연스럽게 멈추는 점이 인상적이다.
가속 페달을 밟으면 차량은 급하게 앞으로 튀어 나간다. I-페이스는 두 개의 모터를 탑재해 최고출력 400마력, 최대토크 71.0kg·m라는 강력한 성능을 발휘한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단 4.8초 만에 도달한다. 전기차임에도 이중접합 차음유리를 적용하는 등 소음관리에 신경 쓴 덕분에 타이어 소음을 제외하고 풍절음은 거의 느낄 수 없다. 0.29cd라는 낮은 공기저항 계수도 풍절음 감소에 한몫을 한다.
첨단 사양이 집약된 전기차인 만큼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 등 주행 보조 사양도 우수하다. 앞차와의 간격을 부드럽게 조절하며, 속도를 유지한다. 다만, 차선 유지보조 기능은 살짝 아쉽다. 좌우로 다소 흔들거리며 차선 중앙을 찾아가는 느낌이다. 심지어 시승 첫날에는 디지털 계기판에 오류 메시지가 나오며 작동하지 않기도 했다.
주행모드는 에코, 컴포트, 다이내믹 모드 등이 있다. 사실 에코 및 컴포트 모드로 주행할 때도 가속력에 아쉬움이 느껴지지는 않았다. 하지만, 다이내믹으로 설정하면 차는 어느새 스포츠카로 돌변한다. 승차감과 스티어링 휠 감각이 다소 단단해지며 스포츠 주행에 적합한 상태가 됐음을 어필한다.
다이내믹 모드에서는 가속 페달을 살짝만 밟아도 뒷머리를 받침대에 부딫힌다. 빠르게 속도를 높여가는 중에도 차량은 좌우로 흔들리지 않고 안정감을 유지한다. 탄탄한 코너링 성능도 인상적이다. 전자식 에어 서스펜션과 어댑티브 지면 반응 시스템, 50:50의 전·후 무게배분의 조합으로 고속 코너에서도 안정적으로 바닥에 붙어있다. 배터리팩이 바닥에 깔려있는 만큼 무게 중심이 잘 제어된다는 느낌이다. 세미 버킷 시트는 차량이 이리저리 흔들려도 양쪽 옆구리를 든든하게 지지해준다. 에어서스펜션은 버튼을 통해 직접 차체를 40mm 낮추거나 50mm 높일 수 있고, 105km/h가 넘는 속도로 장시간 운전할 때 공력성능을 위해 차고가 자동으로 낮아진다.
I-페이스는 90kWh 용량의 배터리를 탑재했다. 국내 인증 기준, 1회 충전 최대주행가능거리는 333km다. 차량 후방에 장착된 배터리 매니징 시스템 덕에 실제 주행거리는 이보다 더 길다. 야간에 헤드램프까지 켜고 약 21.3km를 주행한 뒤 주행가능거리는 약 10km밖에 줄어들지 않았다.
배터리 소모량을 정확히 측정하기 위해 조금 더 장거리를 주행해봤다. 출발할 때 배터리 잔량은 87%로, 주행가능거리는 283km가 남아있었다. 야간에 헤드램프를 사용했으며, 날씨가 다소 쌀쌀했던 탓에 히터와 열선시트를 간헐적으로 작동했다. 약 152km를 주행한 뒤 배터리 잔량은 39%, 주행가능거리는 132km를 가리켰다. 주행가능거리는 실제 주행거리 대비 약 70% 수준인 106km밖에 줄어들지 않은 것이다.
다양한 상황에서 차량을 테스트하기 위해 주행 모드를 바꿔가며 달렸음에도 실제 배터리 소모율은 낮았다. 100kW 급속충전을 통해 40분만에 80%까지 충전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출퇴근 용으로도 적합하다. I-페이스의 배터리 관리 시스템은 경쟁 제품인 메르세데스-벤츠 EQC 대비 강점을 가질 수 있는 부분이다.
I-페이스는 전기 SUV로 분류되지만 이 두 단어만으로는 형용할 수 없는 다양한 매력을 갖췄다. 재규어는 I-페이스에 우수한 성능, 이전에 본 적 없는 새로운 디자인, 주행의 즐거움까지 담았다. 시장에 테슬라란 강력한 선구자가 존재하지만, 추격자인 I-페이스에는 재규어만의 ‘감성’이 더해지며 낯설면서도 신선한 매력을 발산한다. 다가오는 전기차 시대를 위해 재규어가 그려나가는 밑그림을 I-페이스를 통해 엿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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