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재규어 F-페이스, “도전은 아름다워”
컨텐츠 정보
- 442 조회
- 목록
본문
재규어는 좀 늦은 편이다. 2000년대 초반부터 포르쉐를 필두로 여러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SUV 개발에 열을 올려왔다. 반면 재규어는 당시 포드 산하에서 전륜구동 세단을 만드는데 급급했고, 독일차를 웃돌던 품질이나 품격은 꽤 긴 시간 정체됐다.
재규어가 포드에게 기술력을 강탈 당하고 있는 사이, 포르쉐는 카이엔을 타고 하늘을 날았고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는 SUV 라인업을 더욱 풍성하고 견고하게 다졌다. 다행스럽게 포드로부터 재규어를 구출한 타타는 아낌없는 지원으로 재규어를 재건하고 있다.
포르쉐에 필적하는 스포츠카 브랜드라고 칭호를 받던 시절을 떠올리며 고성능 브랜드 ‘SVO(Special Vehicle Operations)’를 만들었고, 랜드로버가 있음에도 SUV 시장에 뛰어들었다. ‘이안 칼럼(Ian Callum)’이란 희대의 디자이너는 F-페이스를 유난히 돋보이는 디자인을 갖춘 SUV로 만드는데 성공했다.
# 가장 역동적인 SUV
재규어의 발전은 디자인에서부터 시작되고 있다. F-타입을 시작으로 전부 새로운 얼굴을 갖게 됐다. 정체성은 확고하다. 더 강렬한 인상과 더 이상적인 비율을 갖게 됐다. F-페이스도 여느 SUV와 사뭇 다르다. 전고가 높을 뿐이지 스포츠세단이 갖는 역동적인 비율과 보는 이를 한번에 각인시키는 재규어의 이목구비는 여전하다.
F-페이스는 길이 4731mm, 너비 1936mm, 높이 1652mm, 휠베이스 2874mm의 독특한 크기를 가졌다. 마땅히 비슷한 크기의 경쟁 SUV가 없다. 그나마 가장 비슷한게 포르쉐 마칸이다. 하지만 마칸에 비해서도 길이는 길고, 폭은 더 넓다. 휠베이스도 더 길다.
그리고 좌우 바퀴의 폭이나 오버행과 리어행을 극단적으로 만들었다. 네바퀴의 간격을 최대한 벌려놨다. 덕분에 당당하고, 역동성이 강조됐으며, 무엇보다 거대한 휠이 잘 어울린다. F-페이스는 무려 22인치 휠까지 선택할 수 있고 종류도 다양하다.
거대한 휠과 함께 F-페이스의 역동성을 가장 단적으로 보여주는 부분은 날렵하게 깎인 루프 라인이다. 마치 활 시위를 잡아당긴 모습처럼 긴장감을 머금고 있다. 비록 실용적인 측면에서는 손해를 봤지만, 이런 ‘멋’이 재규어의 가장 큰 매력이기도 하다.
# F-타입을 떠올려라
기능적인 멋을 미덕으로 삼는 독일차에 익숙한 입장에서 영국적 드레스 코드를 온전히 이해하기란 쉽지 않다. F-페이스는 실내도 극단적이다. 간결한 디자인과 고급 소재는 독일차를 넘는 품위를 지니고 있지만, 눈에 보이지 않는 부분이나 곳곳의 플라스틱 성형은 으슥한 영국의 뒷골목을 생각나게 한다.
휠베이스는 길지만 뒷좌석 공간에 할애한 건 아니다. 프로펠러 샤프트가 지나는 센터 터널도 상당히 높게 솟아올랐다. 차체가 훨씬 작은 랜드로버 디스커버리 스포츠의 실내 공간이 꽤 광활했던 것을 생각하면, 랜드로버가 F-페이스 개발에 적극적으로 개입하진 않은 것 같다. 새삼 랜드로버가 F-페이스의 탄생을 달갑게 생각했는지도 궁금해진다.
이 차는 스포츠세단인 재규어 XF와 플랫폼을 공유하는 만큼 작은 SUV가 아니라 큰 세단이라 봐야겠다. 지상고와 시트포지션이 경쟁모델보다 낮은 만큼 공간은 손해를 봤지만 세단의 편안함과 스포티한 주행을 얻은 차다.
‘늦깎이’ F-페이스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독일 브랜드보다 먼저 랜드로버와 차별성을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단순히 ‘껍데기’만 달라서는 안될 문제였다. 재규어의 목표는 선명했다. F-페이스를 탄 후 랜드로버가 아닌 F-타입을 떠올리게 해야 했다.
재규어 수석 엔지니어 마이크 크로스(Mike Cross)는 “F-타입에서 습득한 지식을 통해 F-페이스는 누구보다 민첩하고 정교한 주행 성능을 갖게 됐고, 혁신적인 섀시 설계를 통해 어떤 도로 위에서도 편안하게 달릴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하지만 2.0리터 인제니움 디젤 엔진이 장착된 ‘20d’ 모델로 서킷을 돌고 차에서 내렸을때, 주행 감각은 괜찮았지만 F-타입까지 떠오르지는 않았다.
# 달릴 줄 아는 SUV
2.0리터 인제니움 디젤 엔진은 거친 소리를 숨기지 않았다. 엔진의 회전질감도 독일 브랜드의 최신 디젤 엔진과 비교하면 매끄럽지 못했다. 또 서킷을 호쾌하게 달리기엔 힘도 조금 부족했다. 1920kg의 무게는 결코 만만한 수치가 아니었다.
▲ 2.0리터 인제니움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180마력, 최대토크 43.9kg.m의 성능을 발휘한다. |
그래도 서킷을 안정적이고, 일관되게 달리는데 큰 문제는 없었다. 무엇보다 브레이크 시스템은 외부온도가 33도를 웃도는 날씨에도 평정심을 잃지 않았다. 이미 며칠동안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았음에도 제역할을 묵묵히 수행했다. 바퀴를 거듭해도 레코드 라인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엔진은 차의 무게를 힘겨워했지만, 브레이크는 차의 무게를 충분히 견뎠다.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바람직한 세팅이었다.
보쉬가 제작한 전자식 파워스티어링도 F-페이스를 조금 달리 보이게 했다. 속도에 따라 변하는 무게는 이질감이 적었고, 코너를 세세하게 짚고 넘어갈 수 있었다.
레인지로버 스포츠에도 장착되는 3.0리터 디젤 엔진은 성능에 대한 갈증을 풀어주기 충분했다. 역시 F-타입이 떠오른 건 아니었지만, 20d와 30d는 전혀 다른 차 같았다. 엔진의 힘이나 회전질감, 소리, 성격 등이 완전히 달랐다. 또 서스펜션의 반응이나, 주행모드 변경에 따른 변화 폭도 크게 달랐다.
▲ 3.0리터 V6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300마력, 최대토크 71.4kg.m의 힘을 낸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6.2초다. |
강력한 토크가 몸을 들썩이게 만들었고, 풍족한 출력을 통해 여유롭게 속도를 높일 수 있었다. 인제 스피디움의 쭉 뻗은 직선구간에서 F-페이스는 재규어의 면모를 십분 발휘했다. 제동 성능은 여전히 신뢰감이 두터웠고, 스티어링도 명확했다.
30d에 기본으로 적용된 ‘어댑티브 다이내믹스’는 차체 움직임을 1초에 100회, 바퀴 움직임은 1초에 500회 모니터링해 댐퍼의 강약을 조절했다. 연속된 코너에서는 마치 근육이 수축하듯 아주 단단하게 힘을 줬다. 어댑티브 다이내믹스가 적용되지 않았던 20d는 연속 코너에서 하중이동이 매끄럽지 못했지만, 30d는 경쾌함을 유지할 수 있었다.
양쪽 바퀴의 토크를 제어하는 토크 벡터링은 운전 미숙을 보완해주기 충분했고, 차체 제어 시스템은 극단적인 오버스티어를 아주 강력하게 제지했다.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은 이런 극박한 상황이나 갑작스런 가속이 필요할때만 앞바퀴에 구동력을 전달했다. 타이어의 크기가 다소 아쉬웠지만, 서킷이 아닌 일반 도로에서의 승차감을 생각하며 아쉬움을 달래야 했다.
# 알루미늄 차체의 무한한 가능성
재규어는 ‘스포츠’, ‘퍼포먼스’를 크게 강조했지만 F-페이스는 서킷보단 고속도로나 굽이진 산길이 더 잘 어울렸다. 서킷과 성격이 다른 완만한 코너를 가뿐하게 지났다. 대부분이 알루미늄으로 제작된 차체는 굳건했다. 재규어는 알루미늄을 사용한 차체 제작에 가장 적극적이다. 가볍지만 단단하다. 요철이나 방지턱을 지날때 불쾌한 상황을 만들지 않았다.
단단한 골격은 오프로드에서도 빛났다. 아무리 재규어가 최초로 만든 SUV지만 랜드로버와 한 집안인 F-페이스가 오프로드에서 머뭇거릴리 없다. 랜드로버처럼 다양한 지형 설정을 갖고 있진 않지만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과 전지형 프로그레스 컨트롤(All Surface Progress Control, ASPC)은 질척한 오프로드를 수월하게 달리게 했다. 또 의외로 차체가 높아 장애물을 쉽게 넘었다.
# 도전은 아름다운 모험
F-페이스는 재규어 역사상 최초의 SUV지만 그 자체만으로는 충분히 완성도가 높았다. 재규어의 섹시함과 우아함이 그대로 녹아들었고, 달리기 성능이나 다목적성까지 두루 갖췄다. 스스로의 완성도는 높지만, 완성도와 상품성이 꼭 정비례를 이루진 않는다. 특히 막강한 경쟁 모델이 즐비한 상황에선 더 그렇다.
그래서 재규어는 틈새를 파고든다. 크기나 가격으로는 경쟁 모델을 알기 어렵다. F-페이스의 판매 시작 가격은 7260만원, 재규어임을 감안하면 어느 정도 납득이 되지만 1억350만원짜리 3.0리터 모델까지는 여간해선 받아 들이기 힘들것 같다. 재규어가 SUV를 통해 큰 모험을 한 만큼 소비자들도 통 큰 모험에 나설지 그 점이 궁금해진다.
관련자료
-
이전
-
다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