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신형 쉐보레 말리부...˝쏘나타 아니라 그랜저 잡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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쉐보레 말리부 시승기
“우와 쏘나타 아니라 그랜저를 잡겠네!”
차를 보자마자 크기에 압도된다. 커도 너무 크다. 한단계 윗급인 그랜저와 비교해도 사실 좀 더 크다. 그럼에도 디자인에서는 날렵하고 루프라인도 쿠페 스타일로 만들어져 차가 거대해 보이기 보다는 스포츠카 같은 느낌을 자아내고 있다.
외계인의 얼굴 같은 프론트 마스크는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이 나뉠 수 있는데, 측면 라인은 워낙 우아하고 비율이 좋아서 모두가 만족할만한 디자인이다. 뒷모양이나 테일램프 디자인도 한등급 위인 임팔라보다도 고급이다.
루프가 쿠페 스타일로 날렵하게 내려오는걸 보고 벤츠 CLS나 폭스바겐 CC처럼 머리 공간이 부족하진 않을까 우려도 했다. 하지만 쏘나타보다 넉넉한 실내와 머리공간이 충분하게 느껴진다. 뒷좌석 시트가 움푹 패여 몸을 잡아주는 부분도 매력적이다. 등받이 각도가 조금 세워진 부분은 아쉽지만 그래도 쏘나타 시트보다 편하게 느끼는 사람들이 많겠다.
말리부가 현대차 그랜저보다 더 길고, 무게는 르노삼성 SM6보다 더 가볍다. /자료=한국지엠
실내는 검정색과 브라운이 있는데, 시승차는 브라운이다. 브라운 색과 조합되는 색상들이 너무 화려한데, 조금 눌러주는 색으로 정돈해주면 좋을 뻔 했다. 더구나 일부 사용된 염가 플라스틱 질감이 지나치게 도드라지는 면이 있다. 실내는 검정색이 좋겠다.
공간은 최근 미국차들이 추구하는 콕핏구조를 채택했다. 버튼들이 손에 닿기 좋은 위치로 전진해 있고, 조작 편의성이 우수하다.
각종 첨단 기능의 총동원
이 차를 사면서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을 선택하지 않는다면 차를 절반만 사는 셈이다. 정말 잘 만든 크루즈컨트롤이 이 차에서 가장 부각될만한 점이다. 고속도로는 물론 막히는 길을 달리는 동안 내내 페달에 발을 댈 필요가 없었다.
차선을 인식해 핸들도 어느 정도 돌려주기 때문에 손을 댈 필요도 없었다. 독일 자동차들은 핸들을 돌려주는 기능에 적극적인데, 특성이 좀 다르다. 독일차들은 차선을 절대 넘지 않는걸 원칙으로 하는 반면, 말리부는 차선을 다소 넘어가면서 운전한다는게 어째 좀 미국적으로 느껴진다. 차가 핸들을 완전히 넘겨받는 대신 어디까지나 운전자를 보조하는 역할 정도다. 그럼에도 꽤 큰 도움이 되고 잠시 주의가 흐려진 순간이라도 유용했다.
앞차에 추돌할 가능성이 있거나, 심지어 보행자를 추돌할 가능성도 인식해 경고를 하고 스스로 제동까지 한다. 사실 이 차의 첨단 안전 기능은 너무나 많아 일일히 나열하기 힘들 정도다. 쉐보레 홈페이지를 한번 살펴보기 바란다.
현대기아차가 지배하는 시장에선 이 정도 차급에 이런 기능이 주어지는건 불가능했다. 핸들을 돌려주는 기술은 현대차도 있지만 제네시스급에서도 최상위 트림에만 장착되는 기술이다. 보행자 추돌 방지도 마찬가지로 중형차에 들어올 기능이 아니다. 왜냐면 현대차는 상위 모델과 판매 간섭을 우려하기 때문이다. 상위모델의 눈치를 볼 일 없는 한국GM이나 르노삼성은 그런면에서 적극적이고 더 과감한 옵션을 내놓을 수 있다.
이렇듯 차량의 주행과 안전에 대한 전자장비는 현대차에 비해 한단계씩 윗급인데, 내비게이션은 그렇지 못하다. 현대차 2017년형 쏘나타는 이전에 비해 더욱 매우 매끄럽고 원활한 시스템으로 바뀌었는데 말리부의 내비게이션은 버튼을 누를 때마다 수시로 사라져 버리는 등 아직 몇년전 수준에 머물러 있다.
달리는 성능은 만족, 변속기도 꽤 좋아졌다
이 코너를 이 속도로 달려도 괜찮은건가? 계속 속도를 높여가며 도전해보지만 안정감은 무너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서스펜션의 세팅이 굉장히 세련됐고 독일차 같은 느낌도 든다.
조향 감각이 꽤 든든하다. 그 흔한 스포츠모드도 없는데 기본기가 워낙 잘 돼 있다보니 별다른 사술은 필요가 없는 느낌이다. 흔히 R-EPS라고 하는 시스템에 여러가지 기술을 더해 직진성능을 더 우수하게 했다.
빗길에서 시속 100km까지 가속하는데 7.1초가 나왔다. 노면도 미끄러운데다 전륜구동이라 구동축이 살짝 들려 휠스핀이 일어났다는 점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은 수치다. 출력은 쏘나타 2.0 터보보다 우수하고 무게는 더 가벼운 덕분이다. 이렇게 큰 차를 이렇게 가볍게 만든다는건 좀 충격적이다.
엔진 성능은 동급에서 가장 우수하다. 하지만 변속기는 그렇지 못하다.
많은 소비자들이 우려했던 젠3 변속기는 전혀 문제가 없었다. 물론 시승해보지 않은 1.5리터 터보는 아직 모른다. 2.0리터 터보 엔진은 토크가 워낙 우수해 변속할 일이 적고, 락업이 풀린 상태에서도 불만이 생기지 않으니 어지간한 변속기를 붙여도 문제 될 일은 없겠다.
변속기 자체보다는 기어 시프트 레버에 문제가 있다. 힘이 우수하고 달리기 좋은 차인 만큼 자연히 기어를 메뉴얼로 두고 더욱 역동적으로 달리고 싶은 마음이 솟아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기어 실렉터를 L모드까지 내린 후 노브 위의 작은 버튼을 눌러야 하는건 좀 옹색하다. 사실은 실제 변속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해당 기어 단수까지만 올라가도록 하는 기능이어서 시프트다운은 되지만 시프트업은 운전자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다이내믹한 주행용이라기 보다는 내리막길에서 간혹 엔진 브레이크를 걸때 사용하는 기능으로 보는게 좋다. 사정이야 있겠지만 신형 8단 변속기를 도입하지 않는 점은 아쉽다.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은 딱 적당하다. 현대기아차의 경우 브레이크와 가속페달이 초반에 몰려있는 느낌인 경우가 많았는데, 이 차는 전통적인 GM차처럼 브레이크의 힘이 전 영역에 퍼져있는(linear) 느낌이다. 기대보다 튀어나가거나 예상보다 급제동을 해서 차가 앞뒤로 휘청거리는 일이 없다. 승객입장에서 보면 쏘나타 대신 말리부가 택시 시장에 많이 팔리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경쟁의 ‘새 시대’ 열렸다
어쩌면 우리는 갈라파고스에 살았다. 정치적 이유로 경쟁자를 배제한 독과점 시장으로 인해 그저 ‘쏘나타’가 곧 ‘중형차’라고 막연히 믿어왔던 것이다. 그래서 ‘쏘나타급’이라는 말도 했다. 그러나 세상은 넓고 자동차는 많았다. 소비자들이 다양한 수입 자동차에 열광했던 점이나 하릴 없이 많은 점유율을 내준 것도 그런 이유에서다.
쉐보레 말리부는 그런 이유에서 큰 의미가 있다. 르노삼성 SM6와 함께 우리나라 소비자들의 눈을 깨게 해준 자동차다. 단지 적당한 크기를 제공하는 것에 그치는게 아니라 다양한 즐거움을 갖춰야 구매가치 높은 자동차라는 걸 일깨워줬다는 점에서 높이 살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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