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마세라티 MC20, 전동화를 거부한 시대의 반항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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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처럼 신차 소식이 없던 마세라티가 드디어 완전 신차를 선보였다. 그것도 최근의 전동화 흐름을 역행하는 듯한 순혈 슈퍼카다. 모터와 배터리의 도움 없이, 순수 내연기관의 힘만으로 엄청난 퍼포먼스를 발휘하는 MC20. 페트롤 헤드의 마음을 설레기 충분하다.
마세라티는 지난 2019년 완전히 새로운 스포츠카를 출시할 것이라 예고했다. 이미 대부분의 자동차 브랜드들이 전동화를 선언하던 시기, 마세라티 역시 전기 파워트레인을 더한 하이브리드카를 내놓을 것이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그러나 마세라티는 이런 예상을 보기 좋게 깼고, 미드십 구조를 갖춘 순수 내연기관 슈퍼카 'MC20'을 세상에 공개했다.
워낙 오랜만에 등장한 마세라티의 신차인데, 강력한 심장을 탑재한 슈퍼카라니 반가울 따름이다. 데뷔 1년 반만에 한국 땅을 밟은 MC20을 타고 주행에 나섰다.
MC20은 소위 말하는 '사진발'을 잘 받지 못하는 모델이다. 눈매가 비교적 선해보여서일까, 사진으로 봤을 때는 그저 그런 순한맛 스포츠카처럼 느껴졌다. 그러나 실제로 마주하면 포스 넘치는 슈퍼카의 자세를 제대로 보여준다. 바닥에 바짝 붙은 차체와 떡 벌어진 어깨, 이를 받치고 있는 20인치 광폭 휠과 타이어의 존재감이 상당하다. 물론, 브리지스톤의 고성능 여름용 타이어인 포텐자 스포츠와 카본 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이 적용돼 기능적으로도 뛰어나다.
슈퍼카의 실내는 언제나 설렌다. 하늘을 향해 활짝 열리는 버터플라이 도어가 운전자를 맞이한다. 마치 바닥에 붙어있는 듯한 시트에 앉기 위해서는 몸을 한껏 숙여야 한다. 불편함 보다는 두근거림이다.
자극적인 외모와 달리 인테리어는 비교적 단순하다. 디자인 요소들도 익숙하지 않다. 기존 마세라티 모델과 공유하는 부품이 적다는 뜻이다. 탄소섬유로 마감된 센터콘솔에는 주행모드 셀렉터와 버튼식 변속기, 윈도우 스위치, 오디오 조작부 등이 자리한다. 주행에 필요한 최소의 기능만 남긴 모습이다. 오롯이 나만을 위해 만들어진 차를 타고 있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스티어링 휠은 스포츠 주행에 적당한 크기다. 무엇보다 '손맛'이 좋다. 인체공학적으로 파놓은 컨투어와 알칸타라 마감은 두 손을 떼기 싫을 만큼 감동적이다. 카본으로 마감된 커다란 패들시프터는 여느 마세라티와 같은 컬럼 고정식이다.
디지털에도 신경썼다.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은 10.25인치 터치스크린이 적용됐고,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과 무선 애플 카플레이까지 지원한다. 계기판은 조금 아쉬운데, 스크린 크기가 작고 그래픽 디자인도 다소 심심하다. 차량의 성격을 생각하면 한껏 멋을 부리면 더 좋을 듯하다.
당연하지만 수납 공간은 여유롭지 않다. 콘솔박스는 카드지갑 하나면 꽉 차는 수준이며, 그 뒤로 단 하나의 컵홀더만 있다. 다만, 미드십 슈퍼카로는 드물게 엔진 뒤편에 약 100리터의 트렁크가 존재한다. 부족한 수납공간을 채워줄 소중한 공간이다. 알아서 잘 만들었겠지만, 엔진과 워낙 가까운 부분이니 열에 취약한 물건은 피하는게 좋을 것 같다. 전면부에도 프렁크(프론트+트렁크)가 마련됐는데, 크기가 작아 실용성에는 의문이다.
그동안 마세라티의 고성능 모델에는 페라리가 설계한 V8 엔진이 탑재됐다. 그러나 이번 MC20에는 마세라티가 직접 설계하고 생산한 신형 네튜노 엔진이 올라간다. 20년 이상 공백 끝에 자체 파워트레인을 다시 보유하게 됐다는 점은 의미가 크다.
MC20은 운전석 바로 뒤에 엔진이 자리한 정통 미드십 슈퍼카다. 폴리카보네이트로 만들어진 커버를 통해 외부에서도 엔진을 감상할 수 있게 했는데, 생각보다 잘 보이지 않는다. 엔진이 바닥으로 푹 꺼져있기 때문인데, 그만큼 주행 성능을 위해 무게중심을 낮췄다는 것이니 감수해야겠다.
신형 3.0리터 V6 터보 가솔린 엔진은 최고출력 630마력, 최대토크 74.4Kgf·m의 성능을 발휘한다. 리터당 210마력에 달하는 고출력 엔진이다. 정지 상태에서 100km/h까지 단 2.9초만에 주파하며, 최고속도는 325km/h로 제한됐다.
시동 버튼을 누르면 630마력 심장이 우렁차게 깨어난다. 먼저 기본 주행모드인 GT로 설정하고 도심 주행에 나섰다. 출발부터 낯설다. 스티어링 휠 뒤편 '+' 패들시프터를 작동하면 드라이브(D) 레인지가 체결된다. 양쪽 시프터를 모두 당기면 중립(N)으로 바뀌는 방식이다. 변속 버튼이 따로 마련됐지만, 기계적인 맛의 시프터를 조작하는 것이 훨씬 더 운전하는 재미가 있다.
엔진 소리는 거칠다. 그간 만나봤던 마세라티 차들은 고음의 소프라노와 같다면, MC20의 엔진음은 깊고 낮은 바리톤에 가깝다. 언뜻 경쟁사 수평대향 엔진의 그것을 연상케한다. 낮은 rpm에서 가속페달을 깊게 밟으면 터보차저 팬이 만들어내는 바람 소리가 귓가를 맴돈다. 이어 3000rpm 이상 높아지면 걸걸하면서도 웅장한 배기음이 실내를 가득 채우기 시작한다.
GT모드에서는 낮은 rpm을 적극적으로 쓰는 세팅값이 설정됐다. 간혹 추월 상황에 가속 페달에 힘을 주어도 단수를 내리기 보다는 높은 토크로 꾸준히 밀어내며 속도를 높여나간다. 브레이크 답력은 후반에 몰려있다. 레이스카와 유사한 세팅이다. 덕분에 브레이킹 한계를 알기 쉬워 조금 더 과감한 조작이 가능하다.
고성능 차량을 시승할 때는 날씨도 따라줘야 한다. 노면 및 타이어 상태에 따라 주행 특성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엔 운이 따르지 않았다. 영하 10도의 날씨에 고성능 여름용 타이어가 제 역할을 수행해내지 못한다.
스포츠 모드를 체결하고 본격적인 가속 성능을 체험하려 했지만, 조금만 힘을 주면 여지없이 휠 스핀이 발생한다. 계기판에 표시되는 타이어 온도는 좀처럼 정상으로 올라올 생각을 않는다. 심지어 공식 기능인 런치 컨트롤 모드를 사용해도 엄청난 스핀이 발생하며 제대로 된 가속 성능을 체험할 수 없었다.
게다가 이차는 후륜구동이다. 630마력의 출력을 오롯이 뒷바퀴가 감당해야 한다. 아무래도 네 바퀴를 모두 굴리는 차량보다 트랙션 확보에 어려움이 있다. 뜨겁게 달아오른 한 여름의 아스팔트가 그리워지는 순간이다.
지상고는 주먹하나 제대로 들어가기 어려울 정도로 낮다. 운동 성능에 도움을 주지만, 일상 주행에서는 골칫거리다. 값비싼 카본 파츠들이 손상될까 염려스러워 가파른 언덕이나 램프 구간은 자연스럽게 피하게 된다.
그나마 옵션으로 제공되는 리프트 기능을 통해 어느 정도 불편을 해소할 수 있다. 스티어링 휠 왼쪽에 위치한 리프트 버튼을 누르면 앞 차축이 빠르게 상승하며 지상고를 높여준다. 약 50mm 수준으로, 극적인 변화는 아니지만 분명한 차이를 느낄 수 있다. 무엇보다 심리적 안정감이 크다. 이 기능은 시속 40km를 넘어서면 자동으로 다시 내려간다.
사소한 불편함은 또 있다. 연료탱크 용량이 60리터에 불과하다. 기름을 많이 먹어서 서운하기 보다는 주유소를 자주 가야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조금만 더 컸으면 어땠을까. 참고로 MC20의 연비는 복합 8.6km/l다. 출력을 생각하면 준수한 편이다.
화려함의 꽃인 버터플라이 도어는 일상에선 그닥 환영받지 못한다. 도어가 열리는 궤적이 커 주차 공간이 좁다면 여는 것조차 부담스럽다. 그럼에도 매번 이를 여는 순간 만큼은 기분이 좋다. 불편을 감수해도 좋을 예쁨이다.
화려한 외모와 개성 넘치는 기교, 발군의 달리기 실력까지 갖춘 MC20은 그간 부족했던 마세라티 라인업에 대한 갈증을 말끔히 날려버리기에 충분했다. 기대 이상의 완성도와 함께 완전 신차라는 프리미엄을 생각하면 슈퍼카 시장에서 충분한 경쟁력을 보여준다. MC20 시작가격은 3억900만원이며, 시승차 가격은 다양한 옵션이 더해진 4억원 후반대다.
마세라티는 향후 사륜구동을 탑재한 컨버터블 모델과 순수전기 모델까지 MC20의 라인업을 늘려갈 계획이다. 새로운 플래그십 슈퍼카의 활약이 기대된다. 다만 염려스러운건 네튜노 엔진이다. 시대를 잘못 타고난 비련의 주인공같다. 전동화 시대에 너무 늦게 세상 빛을 본 것은 아닐까. 5년만 빨리 나왔다면 더욱 널리 사랑받지 않았을까. 어찌됐든 좋으니, 신형 V6의 생명 연장을 꿈꿔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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