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렉서스 LC500h…비현실의 현실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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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한 구석은 없었다. 어떤 각도에서 보더라도 범상치 않았다. 이틀을 함께 했는데, 작별할 때까지 그 생김새가 신기했다. 나쁘진 않았다. 존재감은 하늘을 뚫을 기세였고, 가만 보면 예쁜 구석도 있다. 그동안 우리는 수많은 콘셉트카를 보고 이대로만 출시돼라 말했고, 그게 실현이 됐으니 나무랄 수도 없는 노릇이다.
일본의, 렉서스의 치밀함은 가끔 소름끼칠 정도다. 2010년 렉서스는 한정판으로 제작된 스포츠카 LFA를 내놓았다. 그리고 독일 뉘르부르크링을 달렸다. LFA는 7분 14초의 기록을 세웠다. 그 당시엔 양산차 중에서 가장 빠른 기록이었다. 이 기록은 오래가지 못했지만, 조용하다, 얌전하다, 편안하다로 고착돼가던 렉서스의 이미지를 단번에 바꿔놨다.
이에 발맞춰 렉서스는 새로운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콘셉트까지 연달아 내놨다. 렉서스는 안팎을 모두 바꾼단 계획이 있었다. 렉서스를 상징하는 ‘스핀들 그릴’도 이때 처음 등장했다. 그리고 렉서스의 미래 디자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LF-LC(Lexus Future-Luxury Coupe) 콘셉트도 모습을 드러냈다.
LF-LC의 파격적인 디자인은 LFA가 건넨 충격 못지 않았다. 극단적으로 낮고 넓은 차체와 긴 보닛, 막대한 크기의 휠, 유려한 바디와 풍만한 리어 휀더 등은 독보적이었다. 또 헤드램프와 테일램프, 라디에이터 그릴, 머플러 등은 LF-LC를 더욱 미래적으로 만들었다. 콘셉트였기 때문에 수긍했던 것이었지, LF-LC의 많은 요소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듯 했다.
그런데 그 비현실적인 디자인 요소가 양산차에 그대로 반영됐다. 여전히 미래적인 LC500h의 디자인이 이미 5-6년전에 완성됐다는 점은 놀랍다. 멋있고, 못 생기고를 떠나서 렉서스의 디자인은 누구보다 도전적이고, 진취적이다. 그리고 계획적이다. 장기적인 디자인 계획을 세우고, 뚝심있게 밀고 나갈 수 있는 회사는 몇 안된다. 홀로 동떨어진 느낌도 들지만, 이런 개성이 필요한 시대기도 하다.
인테리어 역시 생경하다. 분위기부터 다르고, 레이아웃도 평범하지 않다. 그런데 앉아보면 느낌이 확 다르다. 더없이 편하다. 갑옷처럼 생긴 시트는 포근하게 온몸을 감싼다. 등받이와 엉덩이 쿠션에는 알칸타라가 사용됐고, 석션타입 통풍 기능도 적용됐다. 알칸타라는 도어 트림, 대시보드 상단, 천장에도 쓰였다. 실내 곳곳을 뒤덮고 있는 가죽은 렉서스 장인들이 직접 재봉했다. 톤을 살짝 낮춘 금속재질도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낸다.
스티어링휠과 여러 버튼을 조작해 보고, 페달을 밟아보면, LC500h가 얼마나 인체공학적인지 알게 된다. 마치 렉서스가 수십년간 스포츠카만 만들던 회사같다. 시트를 한없이 낮출 수 있고, 스티어링휠의 위치 조절도 자유롭다. 센터페시아와 센터콘솔의 버튼은 시트에서 등을 떼지 않아도 닿을 만한 거리에 놓였다. 두 페달 간의 간격은 명확하고, 서있는 각도도 각각 다르다. 한껏 멋부린 사이드미러의 시야도 훌륭하다. 잘 짜인 구성은 운전에 대한 집중도를 높여준다.
이런 상황에서 박진감 넘치는 사운드 제네레이터는 몰입도를 더욱 끌어올린다. 렉서스는 사운드 제네레이터를 오래전부터 사용해왔고, 야마하(YAMAHA)와 함께 사운드를 조율하기도 했었다. 그만큼 소리가 운전자에게 어떤 영향을 주는지 잘 알고 있다. LC500h은 하이브리드기 때문에 오히려 더 강렬하고, 더 진짜 같은 가짜 소리를 낸다.
사운드 제네레이터는 완벽에 가까운 ‘모사’를 했지만, 변속은 그렇지 않았다. 렉서스가 말하는 ‘멀티스테이지 하이브리드 시스템’의 10단 변속은 이질적인 부분도 있었다. 가속을 계속 이어갈땐, 리드미컬하게 변속된다. 마치 진짜 변속처럼 엔진회전수가 높아지고 낮아지길 반복한다. 그런데 그 가짜 변속에는 폭발력이 동반되지 않는다. 리듬감만 있을 뿐이다. 또 급격한 감속이 진행되는 상황에서는 격정적인 다운시프트가 이뤄지지 않는다. ‘킥다운’ 역시 얌전하기만 했다.
‘멀티스테이지 하이브리드’는 기존 하이브리드 시스템에 4단 자동변속기가 추가로 탑재된 것이 핵심이다. 덕분에 엔진회전수를 낮은 속도에서부터 높게 쓸 수 있고, 전기모터의 활용 범위도 넓어졌다. 최대 엔진회전수는 6000rpm에서 6600rpm으로 올랐고, 전기모드로만 갈 수 있는 속도도 일반적인 하이브리드에 비해 높아졌다. 원활한 가속에 이점이 있을 뿐, 스포츠카의 짜릿함은 부족했다.
강렬한 생김새 때문인지, 359마력의 최고출력도 더 아쉽게만 느껴졌다.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은 5.0초다. 자랑하듯 명함을 내밀 수준은 아니다. 루프를 비롯해 도어 및 트렁크 안쪽 등에 카본 파이버를 사용한 노력도 있었지만 하이브리드 시스템, 질 좋은 내장재 등으로 공차중량은 2톤이 넘는다. 렉서스는 전차종에 대해 대대적인 경량화를 이뤄야 할 필요가 있다.
무겁지만, 밸런스는 잘 잡혔다. 교과서적이다. 엔진을 차량 중심에 가깝게 밀어넣었다. 또 최대한 낮게 배치했다. 시트포지션도 크게 낮춰서, 운전자의 엉덩이가 지면과 가깝도록 만들었다. 카본 루프를 사용해 무게 중심을 낮춘 점, LC 전용으로 제작된 새로운 서스펜션을 알루미늄으로 제작한 점 등도 무게 밸런스에 좋은 요소로 작용했다. 그래서 똑바로 달릴 때보다 굽이굽이 꺾인 산길을 달릴 때가 더 만족도가 높았다.
와인딩 로드에서는 ‘블랙 팬서’처럼 몸놀림이 재빨랐다. 스티어링휠 조작에 따라 바퀴는 눈으로 그린 궤적을 오차없이 밟고 달렸다. LC500h는 코너 안쪽을 공격적으로 파고들었다. ‘렉서스 다이나믹 핸들링’은 뒷바퀴의 각도를 앞바퀴와 반대 방향으로 살짝 틀어, 회전반경을 작게 만들었다. 넓쩍한 차체와 ‘가변제어 서스펜션’은 LC500h가 노면에 밀착하게 했다. 빠른 속도에서 급격하게 스티어링휠을 돌려도 여간해서 중심을 잃지 않았다. 오버스티어 성향이 크지 않고, 스포츠+ 모드에서 전자장비 개입이 적극적이었다. 엉덩이를 휙 날리는 독일 후륜구동 스포츠카에 비해 보수적이라고 할 수 있다.
안전장비도 빠짐없이 담겼다. 그동안 렉서스를 포함해 모든 일본 브랜드는 안전장비에 소홀했다. LC500h는 플래그십 쿠페에 걸맞게 긴급 제동 보조 시스템, 다이나믹 레이더 크루즈 컨트롤, 차선 유지 어시스트, 후측방 경고 시스템, 충돌 회피 조향 보조 등의 여러 첨단안전 장비가 탑재됐다.
첫인상은 다소 부담스럽게 보일지 몰라도, 꼼꼼히 살펴보면 렉서스의 저력과 야망이 느껴진다. 많은 브랜드가 하이브리드와 퍼포먼스의 양립을 꿈꿨지만, 대다수가 포기했다. 렉서스는 아직 포기하지 않았다. 하이브리드 플래그십 쿠페는 렉서스만이 보여줄 수 있는 장르다. 단순한 주행성능을 따지면 LC500h보다 LC500을 비롯한 여느 가솔린 스포츠카가 더 매력적이다. 하지만 숱한 도심주행과 장거리 주행의 편안함을 생각한다면 LC500h도 부족할게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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