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시승기]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 “봄을 기다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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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구례에는 벌써 노란 산수유꽃이 기지개를 켰고, 경상남도 하동엔 코끝을 자극하는 매화가 흐드러지게 피었다고 한다. 지리산 자락이 색색으로 물들어가는 모습을 직접 보진 못했지만, 거리에서 ‘벚꽃 엔딩’이 흘러나오는 걸보니, 봄이 오긴 오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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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이 오면 흩날리는 꽃잎 맞으며 달리고 싶었던 차가 있었는데, 아쉽게도 지난 겨울 함박눈을 맞으며 달렸다. 꽃잎처럼 천천히 날리는 함박눈도 나름대로 로맨틱했지만 소프트톱을 열고 이들을 반갑게 맞이하기엔 너무 추웠다.

뚜껑이 열리는 컨버터블은 얻는 것도 많지만 감수해야 할 것도 많다. 고정된 뚜껑이 없는 만큼 차체 강성을 유지하기 어렵다. 그래서 무게가 많이 나가는 SUV와 컨버터블의 만남은 쉽지 않았다. 지프도 강성 때문에 프레임을 유지한채, 패널만 떼어내는 방식을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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닛산은 2011년 무라노를 통해 과감한 시도를 펼쳤다. 전동식 소프트톱이 장착된 무라노 크로스카브리올레는 SUV의 새로운 장을 여는 듯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아름다워야 할 컨버터블이 못생겼다는 비난을 받았다. 단순한 호기심만으로는 소비자들의 지갑이 쉽게 열리지 않았다. 그렇게 무라노 크로스카브리올레는 새로운 장의 문을 굳게 닫으며 생을 마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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굳이 새로운 것이 아니라, 잘 하고 있던 것에만 집중하는게 요즘의 자동차 회사다. 안전한 경영은 어떤 면에서 자동차 발전을 가로막는다. 시행착오를 두려워하게 된다. 무라노 크로스카브리올레의 실패를 모두가 목격했으니, SUV와 컨버터블을 엮는단 생각을 아무도 하지 않을 것만 같았다.

그런데 무라노 크로스카브리올레가 단종된지 일년 만에, 랜드로버가 뚜껑이 열리는 신차를 내놓겠다고 발표했다. 그리고 2015년 LA 모터쇼를 통해 레인지로버 이보크 컨터버블이 공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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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실패를 지켜봤기 때문일까, 이보크 컨버터블은 어색함이 없었다. 소프트톱은 이보크 특유의 감각적인 디자인을 헤치지 않았다. 오히려 더 유니크한 디자인으로 탄생됐다. 생각해보면 랜드로버 시리즈1의 모티브가 됐던 ‘윌리스 MB’도 뚜껑이 없지 않은가. 랜드로버는 약간의 정체성도 집어넣을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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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엔 뚜껑이 핵심이다. 나머진 달라진 게 거의 없다. 소프트톱이 닫혔을 때, 기존 이보크의 날렵한 루프 라인이 연상되도록 심혈을 기울였다. 방음과 단열, 방수를 위한 처리도 중요한 부분이었고, 루프가 접혔을 때의 부피를 최소화하기 위한 설계도 핵심이었다. 적재공간이 절반 이상으로 줄었지만, 작은 여행용 캐리어를 두개 정도 넣을 공간은 확보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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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Z-폴딩 컨버터블 루프’는 센터 콘솔에 위치한 버튼으로 조작된다. 시속 48km 이하의 속도에서 열고 닫을 수 있다. 열 땐 18초, 닫을 땐 21초가 소요된다. 뒷좌석에 탑승객이 없다면, 윈드 디플렉터를 장착해 차량 뒤쪽에서 유입되는 바람을 차단할 수도 있다. 윈드 디플렉터 없이 달리게 되면, 일반적인 낮고 작고 빠른 컨버터블에 비해 바람이 많이 들이친다. 그리고 자꾸 바람이 얼굴을 때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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뚜껑이 열린 SUV가 신기하긴 했다. 컨버터블은 그동안 스포츠카의 전유물 같았다. 이보크 컨버터블은 스포츠카에 비해 하늘에 더 가까운 느낌이랄까. 그리고 뚜껑이 열린 채로, 승용차를 내려다 보는 기분이 참 묘했다. 혼자만 이색적으로 느꼈던 것은 아니었다. 차체 윗부분이 싹뚝 잘린 것 같은 생소한 SUV를 사람들은 신기한 듯 바라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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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랑카랑한 엔진 사운드가 바람과 함께 고막을 울렸다면 더 좋았을 것 같았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에서는 2.0리터 인제니움 디젤 엔진만 만날 수 있다. 꿩 대신 닭이지만 디젤 엔진과 9단 자동변속기의 조합도 꽤 매력적이긴 했다. 교묘하게 기어를 나눈 9단 자동변속기는 매끄럽게 기어를 높였다. 단지 자극이 부족했을 뿐, 방음이나 진동도 높은 수준으로 억제됐기 때문에 불쾌한 요소들이 오픈 에어링을 방해하진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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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는 역시나 오프로드 성능을 강조했다. 랜드로버는 어떤 환경에서도 뛰어난 성능을 발휘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뚜껑을 열고 강을 건너고, 산길을 오르는 것도 이보크 컨버터블을 즐기는 또 하나의 방법이다. 랜드로버의 ‘터레인 리스폰스’ 시스템보단 거친 노면에서도 차체의 비틀림을 최소화하는게 관건이다. 랜드로버는 A필러와 기존 C필러가 위치한 차체, 도어 등의 강성을 보강했다고 설명했다. 컨디션이 좋은 시승차는 삐걱거리는 소리 하나 없었지만, 거친 환경에서 얼만큼 오랫동안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을진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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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인지로버 이보크 컨버터블의 가격은 SE 모델이 8380만원, HSE 모델이 9400만원이다. 참고로 시승차의 외장 색상을 선택하려면 약 110만원이 추가된다. 이 정도의 가격이면 포르쉐 마칸, BMW X4, 메르세데스-벤츠 GLE, 아우디 Q7도 살 수 있다. 하늘을 얻고, 자연을 조금 더 가까이 느낄 수 있는 대가는 크다. 그런데, 그럼에도 끌린다. 이보크 컨버터블보다 잘 달리고, 편안하고, 고급스러운 SUV는 많겠지만, 이보다 낭만적인 SUV는 없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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