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기아, K9 5.0 퀀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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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래그십 대형 세단. 말이 쉽지 사실은 너무나도 어려운 분야다. 우선 메르세데스-벤츠 S-클래스가 최정상에 자리한다. S-클래스와 비슷한 급으로 인정받는 모델은 BMW 7시리즈, 아우디 A8 정도가 꼽힌다. 여기에 렉서스는 LS로, 재규어는 XJ로 이들에게 도전한다. 국산 제네시스 EQ900도 이 그룹에 속하지만 존재감은 없다.
대형급 세단들은 딱 이 정도다. 경쟁을 하기에 S-클래스의 벽은 너무나도 높다. 지독하게 개발을 해 차를 더 좋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것도 대중 브랜드라는 한계는 더더욱 발목은 잡는 요소가 된다.
닛산의 고급 브랜드인 인피니티, 혼다의 고급 브랜드 어큐라는 대형 차를 내놓지 않는다. 과거 인피니티가 닛산 시마(CIMA) 기반의 대형 차를 내놓은 적이 있지만 시장에서 참패했다.
캐딜락은 미묘하게 S-클래스를 피해가는 CT6, 링컨도 전륜구동 기반의 대형 차를 통해 이들과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플래그십 대형 세단으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개발을 해야 한다. 폭스바겐이 내놓은 페이톤이 실패한 이유는 차량의 완성도와 무관한 브랜드 밸류의 한계 때문이었다. 토요타 브랜드의 고급차를 추구하는 센추리도 오직 일본에서만 판매된다. 현대 에쿠스의 후속 모델이 제네시스 EQ900으로 ‘포장’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고급 브랜드로 편입시켜 이미지를 올리겠다는 전략인 것.
지금도 대중 브랜드에서 플래그십 대형 세단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있다. 국내 기아차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것이 K9이다. 2012년 등장한 K9, 이후 2세대 모델로 발전했다. 최근 현대기아차의 완성도가 높아진 만큼 새롭게 바뀐 K9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다. 한편으로 정말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걱정 반 기대반으로 2세대 K9, 그중에서도 최상급 모델인 퀀텀(Quantum) 모델을 만나봤다.
1세대 기아 K9
디자인은 1세대와 완전히 달라졌다. 1세대 K9이 날카로운 디자인을 통해 젊은 감각이 부각됐다면 2세대는 중장년층을 겨냥했다는 느낌이 짙다. 같은 예산을 쥔 20~40대 소비자들 상당수가 수입차로 눈을 돌릴 테니 차라리 보수층을 잡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진으로 봤던 첫인상은 과거 쌍용 체어맨의 ‘석굴암 헤드라이트’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으로 봤던 2개의 U자형 헤드라이트는 조금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접했을 때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거대한 크기의 호랑이코 그릴과 궁합도 좋고 깔끔한 범퍼도 심심하지 않은, 나름대로 스포티해 보였다. 특히 그릴 내부에 넓적한 금속을 꼬아 만든 듯한 효과가 눈에 띈다. U 자형 주간 주행등은 빛의 궤적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그 빛의 궤적… 1개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측면부는 길고 안정적인 모습이다. 대형 세단이 추구하는 디자인 요소를 충족시키는 모습이다. 전륜부터 후륜까지 직선으로 이어진 캐릭터 라인, 이외 평행선을 그리는 벨트라인, 평평한 도어 패널, 완만한 루프라인 등 차량이 길고 안정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휠은 18인치와 19인치가 준비된다. 멋스러운 휠은 타이어에서 발생하는 공명음 저감 기능도 갖췄다. 참고로 현대차가 2세대 제네시스(DH)를 내놓은 직후 타이어 공명음 문제가 불거졌다. 이후 기본 장착된 한국 타이어 S1 노블 2를 떼어내고 다른 타이어로 바꿔줬다. 수백억 규모의 손실. 여기에 이미지 손상도 불가피했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과 한국타이어 간의 사이가 벌어졌다는 얘기도 나돈다.
후면부도 고급스러운 모습이다. 테일램프 주위와 범퍼, 머플러 등을 금속 장식으로 꾸몄다. 제법 멋스러운 모습이다. 테일램프 테두리를 금속 장식으로 마감했는데 이 때문에 벤틀리 모델과 유사하다는 의견이 많다.
K9의 길이 x 너비 x 높이는 각각 5210 x 1915 x 1490 mm이며 휠베이스는 3105 mm의 크기를 갖는다. 차체 크기는 1세대 모델과 비교해 25mm 길어지고 15mm 넓어졌으며 높이는 동일하다. 특히 휠베이스가 60mm나 넓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크기를 비교해보자. 제네시스 EQ900보다 조금씩 작다. 전체적인 크기는 벤츠 S-클래스 숏휠베이스 모델과 비슷하다. S-클래스와 BMW 7시리즈의 롱휠베이스 모델과 비교하면 작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휠베이스만큼은 경쟁력을 뽐낸다.
엠블럼은 일반 기아 마크를 사용한다. 소비자들이 많은 우려를 표한 부분이다. 그래서일까? 유심히 살펴보면 와인빛 그라데이션이 추가돼 있다. K9 전용 엠블럼이라는데 그냥 보면 일반 엠블럼이랑 똑같다.
기함 세단인 만큼 인테리어는 고급스럽다. 물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예를 들어 스티어링 휠은 벤츠 S-클래스(W222 전기형)를 떠올리게, 기어 레버는 아우디가 연상된다. 도어 패널에 자리한 금속 스피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부메스터 스피커 디자인이랑 상당 부분 비슷하다. 자동차라는 제한적인 범위로 인해 어느 정도 비슷한 디자인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K9의 인테리어에서 ‘기아차만의 인테리어’라는 느낌은 없다. 디자인 정체성이 너무 미약하다는 것. 멋스러운 것과 다른 문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실내를 살펴보자. 기아차가 많은 노력을 했음이 느껴진다. 실내에서 저렴한 플라스틱 패널을 찾기 힘들다. 도어 패널을 비롯해 대시보드와 천장까지 실내 모두를 고급 소재로 덮었다. 촉감도 수준급. 물론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지뇨(Designo) 가죽이나 BMW 나파(Nappa) 수준까지는 아니다. 수입 플래그십과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적어도 국내에서 이 정도 고급스러움을 갖춘 내장재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실내는 수평적인 구도를 바탕으로 넓어 보이는 효과를 유도했다.
계기판은 시동을 거는 순간 그래픽부터 화려하다. 주행모드를 변경하면 마치 계기판이 변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화려한 효과도 보여준다. 방향지시등을 작동하면 계기판의 모니터를 통해 사각지대에 차량 접근 여부를 표시해준다. 혼다의 레인 와치(Lane Watch)를 응용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혼다의 시스템은 오른쪽만 확인할 수 있지만 K9은 좌우 모두 확인된다.
센터페시아에는 12.3인치 디스플레이가 장착됐다. 화면이 크고 넓으며 해상도까지 뛰어나다. BMW의 iDrive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메뉴에 속에 메뉴를 들어가고 다시 다른 메뉴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인터페이스는 매우 간결해 사용하기 쉽다. 터치도 가능하며 내비게이션의 완성도 역시 높다. 화면이 넓어 내비게이션이 실행된 상태에서도 멀티미디어 혹은 연비, 타이어 공기압 등 별도의 차량 정보까지 표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센터페시아 모니터 하단에는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 모리스 라크로와(Maurice Lacroix)의 아날로그 시계가 장착됐다. 1975년 설립된 스위스의 시계 업체로,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고급 시계 브랜드와 협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부 럭셔리 또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최고급 모델에서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기아라는 대중 브랜드로는 꽤 좋은 시계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조금 더 익숙한 고급 브랜드와 협업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운전석은 통풍과 열선 모두를 지원한다. 탑승자의 키와 몸무게 정보를 입력하면 최적의 자세를 추천하는 스마트 자세 제어 기능도 탑재됐다. 현대 기아차가 강조하는 부분은 운전자의 허리를 최대한 편안하게 만들고자 하는 자세라는 것. 달리 말하면 편안한 자세를 위한 것이지 안전한 운전 자세와는 거리감이 있다. 탑승자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그보다 아쉬운 것은 마사지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기함급 세단, 그중에서 최상급 모델이지만 지원하지 않았다. 뒷좌석에도 이 기능은 없다. 물론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의 인지도가 낮다면 작은 것들까지 세심하게 채워 소비자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휠베이스가 3.1미터에 이르는 만큼 뒷좌석은 매우 넓다. 시트 슬라이드와 시트백 각도 조절도 된다. 특히 우측 2열 공간을 위해 조수석 시트를 조작할 수도 있다. 조수석 시트백도 최대한 앞으로 숙여진다. 뒷좌석을 위한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도 있다.
햇빛을 가려주는 선셰이드, 통풍과 열선 기능도 있다. 별도로 장착된 모니터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누릴 수 있다. 참고로 이 모니터는 터치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또한 모니터 각도는 수동으로 조절한다. 벤츠나 BMW의 상급 모델은 이런 것들도 전동으로 작동한다.
한 브랜드의 기함급 모델인 만큼 편의 및 안전장비는 화려하다. 차로 유지 보조, 보행자와 자전거까지 인식하는 전방 추돌 방지, 후측방 추돌 방지, 후방 교차 충돌 방지 보조, 내비게이션 기반으로 과속 단속 시점에서 속도를 스스로 변경해주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고속도로 주행 보조, 12.3인치 UVO 3.0 고급형 내비게이션, FULL LED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등이 기본 사양이다. 흔히 기본형 모델은 ‘깡통’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는데, K9만큼은 정말 풍부한 기능과 장비들이 기본이다.
사운드 시스템은 렉시콘 제품을 사용한다. 최상급 모델답게 음질도 준수하다. 콘서트 무대의 당사자가 듣는 환경, 혹은 콘서트 관객석에서 듣는 환경을 가상으로 구현하는 기능도 있다. 다만 스피커 커버 디자인이 아쉽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인상을 주기 때문. 누가 봐도 부메스터 사운드 시스템을 카피했다는 느낌이 짙다.
흥미를 끄는 기능도 있다. 터널로 진입하면 자동으로 창문을 닫고 내기 순환 모드로 전환하는 터널 연동 자동 제어 기능이다. 내비게이션 데이터를 기초로 창문을 닫아주는데, 의외로 요긴한 기능이다. 하지만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일 필요는 있을 듯 하다. 다양한 터널에서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터널 진입 전에 미리 창문을 닫아 주기도, 터널에 들어간 후 한참 후에 창문을 닫아 주기도 했다. 아예 안 닫아줄 때도 있다. 작동 여부를 떠나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을 높이 사면 되겠다.
기함급 모델답게 정말 많은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막상 접해보면 아쉬운 부분들도 눈에 띈다. 최상급 모델임에도 시트는 마사지 기능이 없다. 어라운드뷰에 반자율 주행 기능도 있지만 자동 주차 기능은 없다. 뒷좌석 측면 유리창 선셰이드는 수동으로 올리고 내린다.
제네시스 EQ900에는 적용되는 4인승 리무진 시트도 K9에는 없다. 오직 5인승 시트 구성뿐이다. 분위기에 어울리는 방향제를 사용한다거나 디스플레이를 갖추고 있는 키가 있는 것도 아니다. 뭔가 전통적인 대형차의 느낌은 주지만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한방은 없다.
겉은 그럴 싸 하지만 EQ900 눈치를 보며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시동을 건다. K9 퀀텀의 8기통 5.0리터 엔진이 작동을 시작한다. 사실 플래그십 세단에서 8기통 대배기량 엔진은 성능을 위한 것이 아니다. 5리터라는 엔진에서 느낄 수 있는 권위다. 그리고 이런 엔진은 넉넉한 출력과 토크를 바탕으로 편안한 주행을 하기 위해 쓰인다.
K9 퀀텀. 시동을 걸어도 소음 진동을 느끼기 어렵다. 8기통 엔진 중에서도 상당히 부드러운 감각을 보이는 편이다. 아이들 정숙성을 확인한 결과 36.0 dBA 수준. 80km/h의 속도로 주행하는 상황에서도 57.0 dBA을 보였을 정도다. 우리 팀이 테스트했던 제네시스 EQ900 3.3 터보와 동일한 결과다. 정숙성 면에서는 불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다.
이제 5.0리터 엔진의 힘을 확인해 보자. 시험 결과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6.51초를 소요시켰다. 대형급 세단으로는 무난한 수치다. 이와 유사한 성능을 보인 모델로는 전 세대 파나메라 디젤, BMW 530i XDrive 정도가 있다. 엔진의 수치적 성능을 감안하면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형 세단에서의 대배기량 엔진은 여유로운 힘을 바탕으로 편안한 주행을 해나가기 위함이다.
다만 저속 토크가 아쉽다. 저속으로 운행하다 가속페달을 부드럽게 밟았을 때 생각보다 토크가 부족하다. 대형 세단에 대배기량 엔진을 쓰는 이유는 낮은 rpm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토크로 한층 부드럽고 편안한 주행을 이끌기 위함이다. 하지만 5.0리터 엔진은 저 rpm에서 충분한 토크를 발생하지 못했다. 때문에 가속페달을 조금 더 많이 밟아야 했다. 향후 이 엔진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체감상 대형급 세단에 3.0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사용할때와 유사한 느낌이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시원스러운 엔진의 힘이 나온다. 특히나 높은 rpm에서도 꾸준히 유지되는 성능이 가속을 즐겁게 한다. 이처럼 고회전 영역에서 힘을 내는 엔진 성향으로 본다면 대형 세단 보다 고급 쿠페와 궁합이 좋겠다.
변속기는 8단 자동. 변속 쇼크도 없어 승차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후진과 전진을 오가는 저속 환경, 가령 주차를 할 때 이따금씩 마운트를 때리는 진동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물론 테스트카 만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한 브랜드를 대표하는 고가차에서 이런 모습이 나왔다는 점이 아쉬움을 키운다. 또, 일부 기어비가 다소 길다고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데, 조금 더 매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듯하다. 물론 기어비가 K9 소비자들에게 불만이 될 내용은 아니다.
평탄한 직선 도로. 이 주행 환경을 만나면 K9에 대한 만족감이 커진다. 팀 내 기자 한 명은 마치 벤츠 S 클래스와 유사한 승차감이라 칭찬했다. 하지만 잠시 후, 노면이 거칠어지자 갑작스레 승차감 저하가 커진다. 진동을 빠르게 흡수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승객에게 불쾌한 진동을 전하는 모습이다. 진동을 전달하는 시간도 길다. 얼마 전 기아 K3를 테스트할 때도 유사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특정 조건을 만나면 매우 불쾌한 진동이 지속되는 문제였는데 K9은 그보다는 적지만 아쉬운 승차감을 표출해 냈다.
솔직히 말해 대형 세단에 어울리는 승차감은 아니다. 특히나 진동을 긴 시간 끌고 간다는 것은 이 차를 구입한 소비자들을 실망시키는 대목이 될 것이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결과 오히려 스포츠 모드의 서스펜션이 승차감 측면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K9에는 서스펜션의 압력을 바꿔주는 댐핑 컨트롤 기술이 쓰인다. 스포츠 모드라 하면 매우 단단한 서스펜션을 연상하기 쉽지만 대형차들은 승차감을 기반으로 성능과 조율하는 것이 보통이다. K9도 부드러움을 기반에 두고 약간의 성능을 이끄는 차원에서 스포츠 모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종합 환경에서의 승차감만 보자면 스포츠 모드가 나았다. 하지만 노멀 모드 대비 스포츠 모드가 낫다는 것이지 대형 세단에서 요구되는 서스펜션은 아니다. 이는 기아차 연구진들에게 많은 숙제가 남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차라리 성능을 접어두고 링컨 컨티넨탈처럼 승차감 지향으로 가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현대기아차는 파워트레인 개발을 위해 많은 자금과 시간을 썼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이 어느 정도 빛을 발하는 중이다. 하지만 서스펜션이란 장르에서 보자면 아직도 중하위권의 실력을 보여준다. 미래의 자동차는 내연 기관보다 모터 기반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이건 전기차건 서스펜션만큼은 지금의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제 현대차그룹은 서스펜션 기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에 있다.
최근 테스트한 일부 현대기아차의 모델들, 서스펜션에서 만족도가 높았던 것은 대부분 성능 지향형 모델들이었다. 가령 현대 i30, 코나와 같은 모델. 이들은 1.6T 엔진을 기반으로 민첩성을 확보해 만족감을 높였다. 승차감은 다소 떨어졌지만 차의 성능을 이끄는 측면서 유리함이 많아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승차감이 필요한 차들로 접근하면 한계가 나온다. 저속에서는 단단하고 고속에서는 물렁한 느낌을 주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도로 환경과 속도 영역, 여기서 이상적인 승차감과 성능을 이어가는 것. 이것이 정상급 브랜드들이 보유한 노하우이자 실력이다. 물론 안다. 벤치마크 대상의 것을 느낄 수는 있지만 직접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 그렇기에 노력이 필요해진다.
그룹 내 경영진들이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최고급 세단들을 장시간 타보길 권하고 싶다. 르노그룹을 이끄는 카를로스 곤 사장은 과거 포르쉐 911을 몰고 다녔다. 닛산이 R35 GT-R을 개발하던 시기다. 지향점이 있다면 그 정점에 있는 상품을 기준 삼아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데, 지금의 K9에서 고급차의 승차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기아차 경영진들이 K9의 뒷좌석 공간 크기에 취하기 보다 냉정한 입장에서 수입 세단의 뒷좌석을 이용해 보라 권하고 싶다. 매일 같이 출퇴근하는 길. 과연 그곳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의 상품들은 어떤 느낌을 주고 있는지 확인해 줬으면 한다.
참고로 메르세데스-AMG S63S도 꽤나 좋은 승차감을 갖췄다. AMG이기에 단단함, 이를 기초로 성능만 지향할 것 같지만 S-클래스라는 대형 세단에서 요구되는 승차감 만큼은 지켜낸다. 승차감도 K9 보다 좋다.
많은 이들이 K9의 승차감에 대해 우호적 평가를 한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기준을 기아차의 상품으로 잡았기 때문. 기아차의 대형 세단, 이 정도면 잘했네. 이런 의미다. 만약 기준을 수입 대형 세단에 맞춰 재평가를 해달라고 말한다면 두 가지 의견이 나올 것이다. 부족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직 비교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고 얘기할 것이다.
이번에는 제동 능력을 보자. 시험 결과 시속 100km로 달리던 K9은 42.1m의 거리에서 멈춰 섰다. 보편적인 승용차의 범주에서 보자면 적당한 수치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2톤이 넘는 차체, 여기에 400마력대 5.0리터 엔진이 보여주는 가속 성능을 감안하면 제동력은 대단히 부족한 수준이 된다. 사실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할 때의 느낌은 무난했다. 과거와 달리 적당히 좋은 조작감을 보여준다는 점도 좋다. 하지만 강력한 제동이 들어가는 순간 타이어가 미끄러져 나간다. 브레이크 시스템의 성능 강화도 좋겠지만 타이어의 성능 확보도 필요해 보인다. 참고로 제네시스 EQ900은 이보다 좋은 성능을 보였다. 차량 간 컨디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EQ900은 37.5m 내외에서 멈춰 섰다. 거리로 보면 4.5m 차이다. 긴박한 상황을 맞는다면? EQ00은 사고를 피할 수 있지만 K9은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에는 코너링이다. 이 부분에서도 수입 대형 세단들과 격차가 벌어진다. 수입 대형 세단들은 매우 놀라운 수준의 코너링 성능을 뽐낸다. 즉, 기본적인 성능이 매우 좋다는 얘기다.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이런 대형 세단으로 누가 그런 코너링을 즐기냐?’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왜 그리 좋은 성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까?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갑작스럽게 도로에 뛰어든 야생동물, 급하게 스티어링 휠을 돌린다. 기본 성능이 좋은 모델은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반면 성능이 떨어지는 어떤 차는 급격한 조작에 의해 미끄러져 사고를 낸다. 에어백을 몇 개 갖췄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사고를 피해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올해 초 KATRI(자동차 성능시험 연구소)에서 진행된 차량 테스트 현장에서 S 클래스는 시속 180km 내외의 빠른 레인 체인지(차선 변경)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형 세단들이 저마다 좋은 성능을 내는 이유는 이처럼 긴박한 상황에서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안전성을 위해 대형 세단 소비자들은 많은 돈을 투자한다.
K9 퀀텀은 기대 이하의 코너링 성능을 보인다. 물론 타이어 영향도 크다. 400마력 급, 2톤을 넘어서는 모델이지만 타이어는 컨티넨탈의 프로컨텍을 사용한다. 컴포트 차원에서 보자면 이점이 많긴 하다. 하지만 주행 안전성 차원에서 보면 아쉬움이 커지다.
K9 퀀텀에는 AWD 시스템이 달린다. 하지만 4륜 구동이란 말이 무색하게 오버스티어 현상이 쉽게 표출된다. 언더스티어를 보이는 것 같지만 이내 리어 휠이 궤도를 이탈하는 것이다. 최근 동향을 보면 후륜구동 모델조차 일관적인 언더스티어를 내도록 튜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4륜 구동 모델에서도 오버스티어 현상이 짙다는 것은 향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전륜 245, 후륜 275mm 급의 큰 타이어를 사용함에도 이런 현상을 부각시켜 안전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은 개선을 요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물론 자세제어장치가 열심히 제 역할을 하려 한다. 하지만 타이어 성능이 현저하게 낮다면 쉽사리 제어 불능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기아차 보다 대형 세단에 대한 경험이 많은 해외 브랜드의 상품을 보자. 400마력대 대형 세단에 어떤 타이어들을 넣고 있는지. 그들이 택하는 타이어는 성능을 바탕으로 탑승자의 안전을 위해 쓰인다. 최근 현대기아차는 다양한 수입 타이어들과 손잡았다. 그리고 다양한 제조사들에게 OE(순정) 타이어를 제공받는다.
특히 자사의 고급 상품에 컨티넨탈의 프로컨텍이란 모델을 즐겨 쓴다. 컨티넨탈에도 좋은 제품군이 많은데 차의 성격과 안전성 확보를 위해 다른 제품을 사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아무래도 고급차 또는 대형차에 대한 노하우 부족, 혹은 컨티넨탈에 대한 편애(?) 둘 중에 하나 같은 느낌이다.
연비는 고속도로 정속 주행을 중심으로 11km/L 정도를 보여준다. 배기량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 참고로 시속 80km/h 내외로 국도를 달릴 때의 연비는 12km/L로 100km/h 주행 때보다 소폭 좋은 모습이었다. 시내 주행 때 연비는 대략 4km/L 내외다. 이 역시 배기량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타협이 필요하다.
K9에는 다양한 엔진이 쓰인다. 이 가운데 추천 대상은 3.8 자연흡기 또는 3.3T 터보다. 5.0 가솔린 엔진은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고급차의 특성에 잘 매칭 되지는 않는다. 수치적인 것보다 저속 토크를 통한 편안함에서 3.3T가 낫고, 일상에서 이용한다면 가성비 차원에서 봐도 3.8이 낫다.
정리하자면 성능 측면에서 K9 5.0은 아쉬움이 많았다.
저속에서 부족한 토크는 대배기량 엔진의 경쟁력을 살리지 못했고, 컴포트 중심의 타이어는 제동거리를 늘리며 코너링 성능까지 악화시켰다. 진동 처리 때 아쉬움을 보인 서스펜션의 셋업 기술에도 보완이 필요하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기아란 대중 브랜드의 일원이기에 상품의 가치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낮다.
테스트를 마치며 팀원들이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 K9은 고급차가 아닌 대중 브랜드의 비싼 차로 정리됐다. 제네시스 EQ900이 보다 높은 가격을 갖지만 그래도 EQ900을 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적어도 국내 시장에서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고급 브랜드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고급 상품 구입에 많은 돈을 내는 이유는 그 상품이 가진 가치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치란 브랜드, 다시금 그 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서 나온다. 연예인들이 들고 나오는 고가의 명품 백, 소비자들이 그 상품을 동경하는 이유는 그 상품 자체의 가치와 소유자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제네시스 EQ900의 이용자들을 보자. 알아주는 정계, 재계 인사들이라면 대부분 이를 이용한다. 수입차를 구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들의 이목 때문에 국산 최고급 세단을 구입하는 소비자들도 많다. 이유가 무엇이건 국내 정상급 인사들은 EQ900을 탄다. 그리고 그 정상급 인사들에 의해 EQ900의 가치는 한 번 더 높아진다. 기아차가 정계. 재계의 최상급 인사들에게 K9를 판매할 수 있다면 가치는 크게 향상될 것이다. 다만 그 인사들이 주변인들에게 ‘요즘 어렵냐?’는 농담 같은 진담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K9은 가진 것이 별로 없다. EQ900 보다 성능이 좋은 것도 아니며 단순히 저렴한 가격만 내세워야 한다. 저렴한 가격, 누군가는 가성비를 얘기하겠지만 고급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치다. 그 가치를 위해 수백, 수천만 원의 돈을 투자한다고 보면 된다.
북미 시장에서 판매된 K9(수출명 K900)의 판매량을 보자.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형급 세단으로는 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일상에서 이용하기 좋은 합리적인 SUV와 세단들. 대형 세단을 택하는 소비자가 원하는 요소들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선택의 폭이 넓은 북미 시장에서 가치가 낮은 대형 세단을 택할 소비자는 많지 않다.
물론 국내 시장에서는 다른 모습을 가져갈 수 있다. 실제 최근 판매량도 무난한 수준이다. 국내 시장을 기준으로 K9은 일정 수준을 판매량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비싸게 구입한 차의 가치가 크지 않다는 점을 인지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질수록 판매량 저하 가능성은 커진다.
특히나 EQ900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곧 나온다. 그리고 1년 남짓이면 K9과 경쟁하는 G80 차기 모델이 등장한다. 다수의 소비자들은 그쪽을 향해 갈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K9의 판매량이 미래를 보여줄 것이다.
기아차의 결단이 필요하다. 만약 고급차로 K9을 성공시키고 싶다면 조금 더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만약 현대차 그룹에서의 입지, 제네시스 브랜드와의 충돌이 우려된다면 K9의 개발비를 다른 차에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기아차는 과거 한국 자동차 기술의 선도를 이끌었던 브랜드다. 엔지니어 중심의 마인드를 내세운 유일한 브랜드였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보다 넓고 부드러운 것을 원했고 그런 이유로 지금은 현대차 밑의 하위 브랜드로 자리하게 됐다. 그룹 안의 서열상 기아차가 최고의 상품을 내놓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부 상품에서라도 과거 기아차가 갖췄던 그 기술의 저력을 한 번 더 보여줬으면 바람이다.
대형급 세단들은 딱 이 정도다. 경쟁을 하기에 S-클래스의 벽은 너무나도 높다. 지독하게 개발을 해 차를 더 좋게 만들 수는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인식을 바꾸기는 어렵다. 그것도 대중 브랜드라는 한계는 더더욱 발목은 잡는 요소가 된다.
닛산의 고급 브랜드인 인피니티, 혼다의 고급 브랜드 어큐라는 대형 차를 내놓지 않는다. 과거 인피니티가 닛산 시마(CIMA) 기반의 대형 차를 내놓은 적이 있지만 시장에서 참패했다.
캐딜락은 미묘하게 S-클래스를 피해가는 CT6, 링컨도 전륜구동 기반의 대형 차를 통해 이들과 다른 노선을 걷고 있다.
플래그십 대형 세단으로 인정받으려면 먼저 프리미엄 브랜드에서 개발을 해야 한다. 폭스바겐이 내놓은 페이톤이 실패한 이유는 차량의 완성도와 무관한 브랜드 밸류의 한계 때문이었다. 토요타 브랜드의 고급차를 추구하는 센추리도 오직 일본에서만 판매된다. 현대 에쿠스의 후속 모델이 제네시스 EQ900으로 ‘포장’된 것도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고급 브랜드로 편입시켜 이미지를 올리겠다는 전략인 것.
지금도 대중 브랜드에서 플래그십 대형 세단을 판매하는 브랜드가 있다. 국내 기아차다. 그리고 그들이 내놓은 것이 K9이다. 2012년 등장한 K9, 이후 2세대 모델로 발전했다. 최근 현대기아차의 완성도가 높아진 만큼 새롭게 바뀐 K9에 대한 기대감도 커진다. 한편으로 정말 괜찮을까? 하는 걱정도 앞선다. 걱정 반 기대반으로 2세대 K9, 그중에서도 최상급 모델인 퀀텀(Quantum) 모델을 만나봤다.
디자인은 1세대와 완전히 달라졌다. 1세대 K9이 날카로운 디자인을 통해 젊은 감각이 부각됐다면 2세대는 중장년층을 겨냥했다는 느낌이 짙다. 같은 예산을 쥔 20~40대 소비자들 상당수가 수입차로 눈을 돌릴 테니 차라리 보수층을 잡겠다는 것으로 해석된다.
사진으로 봤던 첫인상은 과거 쌍용 체어맨의 ‘석굴암 헤드라이트’를 떠올리게 한다. 사진으로 봤던 2개의 U자형 헤드라이트는 조금 어색해 보였다. 하지만 실제로 접했을 때 그리 이상하지는 않았다. 거대한 크기의 호랑이코 그릴과 궁합도 좋고 깔끔한 범퍼도 심심하지 않은, 나름대로 스포티해 보였다. 특히 그릴 내부에 넓적한 금속을 꼬아 만든 듯한 효과가 눈에 띈다. U 자형 주간 주행등은 빛의 궤적을 형상화한 디자인이라고 한다. 그 빛의 궤적… 1개만 있어도 좋을 것 같다.
측면부는 길고 안정적인 모습이다. 대형 세단이 추구하는 디자인 요소를 충족시키는 모습이다. 전륜부터 후륜까지 직선으로 이어진 캐릭터 라인, 이외 평행선을 그리는 벨트라인, 평평한 도어 패널, 완만한 루프라인 등 차량이 길고 안정적으로 보이게 만드는 요소들이다. 휠은 18인치와 19인치가 준비된다. 멋스러운 휠은 타이어에서 발생하는 공명음 저감 기능도 갖췄다. 참고로 현대차가 2세대 제네시스(DH)를 내놓은 직후 타이어 공명음 문제가 불거졌다. 이후 기본 장착된 한국 타이어 S1 노블 2를 떼어내고 다른 타이어로 바꿔줬다. 수백억 규모의 손실. 여기에 이미지 손상도 불가피했다. 이 때문에 현대차그룹과 한국타이어 간의 사이가 벌어졌다는 얘기도 나돈다.
후면부도 고급스러운 모습이다. 테일램프 주위와 범퍼, 머플러 등을 금속 장식으로 꾸몄다. 제법 멋스러운 모습이다. 테일램프 테두리를 금속 장식으로 마감했는데 이 때문에 벤틀리 모델과 유사하다는 의견이 많다.
K9의 길이 x 너비 x 높이는 각각 5210 x 1915 x 1490 mm이며 휠베이스는 3105 mm의 크기를 갖는다. 차체 크기는 1세대 모델과 비교해 25mm 길어지고 15mm 넓어졌으며 높이는 동일하다. 특히 휠베이스가 60mm나 넓어졌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크기를 비교해보자. 제네시스 EQ900보다 조금씩 작다. 전체적인 크기는 벤츠 S-클래스 숏휠베이스 모델과 비슷하다. S-클래스와 BMW 7시리즈의 롱휠베이스 모델과 비교하면 작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휠베이스만큼은 경쟁력을 뽐낸다.
엠블럼은 일반 기아 마크를 사용한다. 소비자들이 많은 우려를 표한 부분이다. 그래서일까? 유심히 살펴보면 와인빛 그라데이션이 추가돼 있다. K9 전용 엠블럼이라는데 그냥 보면 일반 엠블럼이랑 똑같다.
기함 세단인 만큼 인테리어는 고급스럽다. 물론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예를 들어 스티어링 휠은 벤츠 S-클래스(W222 전기형)를 떠올리게, 기어 레버는 아우디가 연상된다. 도어 패널에 자리한 금속 스피커는 메르세데스-벤츠의 부메스터 스피커 디자인이랑 상당 부분 비슷하다. 자동차라는 제한적인 범위로 인해 어느 정도 비슷한 디자인은 불가피하다.
하지만 K9의 인테리어에서 ‘기아차만의 인테리어’라는 느낌은 없다. 디자인 정체성이 너무 미약하다는 것. 멋스러운 것과 다른 문제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실내를 살펴보자. 기아차가 많은 노력을 했음이 느껴진다. 실내에서 저렴한 플라스틱 패널을 찾기 힘들다. 도어 패널을 비롯해 대시보드와 천장까지 실내 모두를 고급 소재로 덮었다. 촉감도 수준급. 물론 메르세데스-벤츠의 디지뇨(Designo) 가죽이나 BMW 나파(Nappa) 수준까지는 아니다. 수입 플래그십과 비교하면 부족하지만 적어도 국내에서 이 정도 고급스러움을 갖춘 내장재를 쓰는 경우는 드물다.
실내는 수평적인 구도를 바탕으로 넓어 보이는 효과를 유도했다.
계기판은 시동을 거는 순간 그래픽부터 화려하다. 주행모드를 변경하면 마치 계기판이 변신이라도 하는 것처럼 화려한 효과도 보여준다. 방향지시등을 작동하면 계기판의 모니터를 통해 사각지대에 차량 접근 여부를 표시해준다. 혼다의 레인 와치(Lane Watch)를 응용했다고 보면 된다. 하지만 혼다의 시스템은 오른쪽만 확인할 수 있지만 K9은 좌우 모두 확인된다.
센터페시아에는 12.3인치 디스플레이가 장착됐다. 화면이 크고 넓으며 해상도까지 뛰어나다. BMW의 iDrive 시스템을 생각해보자. 메뉴에 속에 메뉴를 들어가고 다시 다른 메뉴를 선택해야 한다. 하지만 현대기아차의 인터페이스는 매우 간결해 사용하기 쉽다. 터치도 가능하며 내비게이션의 완성도 역시 높다. 화면이 넓어 내비게이션이 실행된 상태에서도 멀티미디어 혹은 연비, 타이어 공기압 등 별도의 차량 정보까지 표시할 수 있는 수준이다.
센터페시아 모니터 하단에는 스위스의 시계 브랜드 모리스 라크로와(Maurice Lacroix)의 아날로그 시계가 장착됐다. 1975년 설립된 스위스의 시계 업체로, 프리미엄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이처럼 고급 시계 브랜드와 협업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일부 럭셔리 또는 프리미엄 브랜드의 최고급 모델에서만 사용되는 경우가 많다. 기아라는 대중 브랜드로는 꽤 좋은 시계를 사용했다고 생각하면 된다. 다만 조금 더 익숙한 고급 브랜드와 협업했다면 좋았을 것 같다.
운전석은 통풍과 열선 모두를 지원한다. 탑승자의 키와 몸무게 정보를 입력하면 최적의 자세를 추천하는 스마트 자세 제어 기능도 탑재됐다. 현대 기아차가 강조하는 부분은 운전자의 허리를 최대한 편안하게 만들고자 하는 자세라는 것. 달리 말하면 편안한 자세를 위한 것이지 안전한 운전 자세와는 거리감이 있다. 탑승자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릴 수 있는 부분이다.
그보다 아쉬운 것은 마사지 기능이 없다는 점이다. 기함급 세단, 그중에서 최상급 모델이지만 지원하지 않았다. 뒷좌석에도 이 기능은 없다. 물론 이것이 꼭 필요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시장의 인지도가 낮다면 작은 것들까지 세심하게 채워 소비자 눈높이를 맞춰야 한다.
휠베이스가 3.1미터에 이르는 만큼 뒷좌석은 매우 넓다. 시트 슬라이드와 시트백 각도 조절도 된다. 특히 우측 2열 공간을 위해 조수석 시트를 조작할 수도 있다. 조수석 시트백도 최대한 앞으로 숙여진다. 뒷좌석을 위한 스마트폰 무선 충전 기능도 있다.
햇빛을 가려주는 선셰이드, 통풍과 열선 기능도 있다. 별도로 장착된 모니터를 통해 엔터테인먼트 기능을 누릴 수 있다. 참고로 이 모니터는 터치 기능을 지원하지 않는다. 또한 모니터 각도는 수동으로 조절한다. 벤츠나 BMW의 상급 모델은 이런 것들도 전동으로 작동한다.
한 브랜드의 기함급 모델인 만큼 편의 및 안전장비는 화려하다. 차로 유지 보조, 보행자와 자전거까지 인식하는 전방 추돌 방지, 후측방 추돌 방지, 후방 교차 충돌 방지 보조, 내비게이션 기반으로 과속 단속 시점에서 속도를 스스로 변경해주는 스마트 크루즈 컨트롤, 고속도로 주행 보조, 12.3인치 UVO 3.0 고급형 내비게이션, FULL LED 헤드램프와 리어램프 등이 기본 사양이다. 흔히 기본형 모델은 ‘깡통’이라는 표현을 종종 사용하는데, K9만큼은 정말 풍부한 기능과 장비들이 기본이다.
사운드 시스템은 렉시콘 제품을 사용한다. 최상급 모델답게 음질도 준수하다. 콘서트 무대의 당사자가 듣는 환경, 혹은 콘서트 관객석에서 듣는 환경을 가상으로 구현하는 기능도 있다. 다만 스피커 커버 디자인이 아쉽다. 메르세데스-벤츠의 것을 그대로 옮겨 놓은 인상을 주기 때문. 누가 봐도 부메스터 사운드 시스템을 카피했다는 느낌이 짙다.
흥미를 끄는 기능도 있다. 터널로 진입하면 자동으로 창문을 닫고 내기 순환 모드로 전환하는 터널 연동 자동 제어 기능이다. 내비게이션 데이터를 기초로 창문을 닫아주는데, 의외로 요긴한 기능이다. 하지만 조금 더 완성도를 높일 필요는 있을 듯 하다. 다양한 터널에서 테스트를 진행한 결과 터널 진입 전에 미리 창문을 닫아 주기도, 터널에 들어간 후 한참 후에 창문을 닫아 주기도 했다. 아예 안 닫아줄 때도 있다. 작동 여부를 떠나 새로운 시도를 했다는 점을 높이 사면 되겠다.
기함급 모델답게 정말 많은 기능을 갖추고 있다. 하지만 막상 접해보면 아쉬운 부분들도 눈에 띈다. 최상급 모델임에도 시트는 마사지 기능이 없다. 어라운드뷰에 반자율 주행 기능도 있지만 자동 주차 기능은 없다. 뒷좌석 측면 유리창 선셰이드는 수동으로 올리고 내린다.
제네시스 EQ900에는 적용되는 4인승 리무진 시트도 K9에는 없다. 오직 5인승 시트 구성뿐이다. 분위기에 어울리는 방향제를 사용한다거나 디스플레이를 갖추고 있는 키가 있는 것도 아니다. 뭔가 전통적인 대형차의 느낌은 주지만 소비자의 시선을 사로잡을 한방은 없다.
겉은 그럴 싸 하지만 EQ900 눈치를 보며 만든 흔적이 역력하다.
시동을 건다. K9 퀀텀의 8기통 5.0리터 엔진이 작동을 시작한다. 사실 플래그십 세단에서 8기통 대배기량 엔진은 성능을 위한 것이 아니다. 5리터라는 엔진에서 느낄 수 있는 권위다. 그리고 이런 엔진은 넉넉한 출력과 토크를 바탕으로 편안한 주행을 하기 위해 쓰인다.
K9 퀀텀. 시동을 걸어도 소음 진동을 느끼기 어렵다. 8기통 엔진 중에서도 상당히 부드러운 감각을 보이는 편이다. 아이들 정숙성을 확인한 결과 36.0 dBA 수준. 80km/h의 속도로 주행하는 상황에서도 57.0 dBA을 보였을 정도다. 우리 팀이 테스트했던 제네시스 EQ900 3.3 터보와 동일한 결과다. 정숙성 면에서는 불만이 나오지 않을 정도로 만족도가 높았다.
이제 5.0리터 엔진의 힘을 확인해 보자. 시험 결과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데 6.51초를 소요시켰다. 대형급 세단으로는 무난한 수치다. 이와 유사한 성능을 보인 모델로는 전 세대 파나메라 디젤, BMW 530i XDrive 정도가 있다. 엔진의 수치적 성능을 감안하면 조금 부족해 보이지만 앞서 언급한 것처럼 대형 세단에서의 대배기량 엔진은 여유로운 힘을 바탕으로 편안한 주행을 해나가기 위함이다.
다만 저속 토크가 아쉽다. 저속으로 운행하다 가속페달을 부드럽게 밟았을 때 생각보다 토크가 부족하다. 대형 세단에 대배기량 엔진을 쓰는 이유는 낮은 rpm에서 나오는 여유로운 토크로 한층 부드럽고 편안한 주행을 이끌기 위함이다. 하지만 5.0리터 엔진은 저 rpm에서 충분한 토크를 발생하지 못했다. 때문에 가속페달을 조금 더 많이 밟아야 했다. 향후 이 엔진에서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체감상 대형급 세단에 3.0리터 자연흡기 엔진을 사용할때와 유사한 느낌이다.
가속페달을 끝까지 밟으면 시원스러운 엔진의 힘이 나온다. 특히나 높은 rpm에서도 꾸준히 유지되는 성능이 가속을 즐겁게 한다. 이처럼 고회전 영역에서 힘을 내는 엔진 성향으로 본다면 대형 세단 보다 고급 쿠페와 궁합이 좋겠다.
변속기는 8단 자동. 변속 쇼크도 없어 승차감을 높이는데 도움이 됐다. 하지만 후진과 전진을 오가는 저속 환경, 가령 주차를 할 때 이따금씩 마운트를 때리는 진동이 나오는 경우가 있다. 물론 테스트카 만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한 브랜드를 대표하는 고가차에서 이런 모습이 나왔다는 점이 아쉬움을 키운다. 또, 일부 기어비가 다소 길다고 느껴지는 경향이 있는데, 조금 더 매끄러운 모습을 보여주면 좋을 듯하다. 물론 기어비가 K9 소비자들에게 불만이 될 내용은 아니다.
평탄한 직선 도로. 이 주행 환경을 만나면 K9에 대한 만족감이 커진다. 팀 내 기자 한 명은 마치 벤츠 S 클래스와 유사한 승차감이라 칭찬했다. 하지만 잠시 후, 노면이 거칠어지자 갑작스레 승차감 저하가 커진다. 진동을 빠르게 흡수하지 못하고 계속적으로 승객에게 불쾌한 진동을 전하는 모습이다. 진동을 전달하는 시간도 길다. 얼마 전 기아 K3를 테스트할 때도 유사한 문제를 지적한 바 있다. 특정 조건을 만나면 매우 불쾌한 진동이 지속되는 문제였는데 K9은 그보다는 적지만 아쉬운 승차감을 표출해 냈다.
솔직히 말해 대형 세단에 어울리는 승차감은 아니다. 특히나 진동을 긴 시간 끌고 간다는 것은 이 차를 구입한 소비자들을 실망시키는 대목이 될 것이다. 우리 팀이 테스트한 결과 오히려 스포츠 모드의 서스펜션이 승차감 측면에 도움을 주는 경우가 많았다. 참고로 K9에는 서스펜션의 압력을 바꿔주는 댐핑 컨트롤 기술이 쓰인다. 스포츠 모드라 하면 매우 단단한 서스펜션을 연상하기 쉽지만 대형차들은 승차감을 기반으로 성능과 조율하는 것이 보통이다. K9도 부드러움을 기반에 두고 약간의 성능을 이끄는 차원에서 스포츠 모드를 운영하고 있는데 종합 환경에서의 승차감만 보자면 스포츠 모드가 나았다. 하지만 노멀 모드 대비 스포츠 모드가 낫다는 것이지 대형 세단에서 요구되는 서스펜션은 아니다. 이는 기아차 연구진들에게 많은 숙제가 남았음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차라리 성능을 접어두고 링컨 컨티넨탈처럼 승차감 지향으로 가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현대기아차는 파워트레인 개발을 위해 많은 자금과 시간을 썼다. 그리고 그 결과물들이 어느 정도 빛을 발하는 중이다. 하지만 서스펜션이란 장르에서 보자면 아직도 중하위권의 실력을 보여준다. 미래의 자동차는 내연 기관보다 모터 기반으로 운영될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하이브리드이건 전기차건 서스펜션만큼은 지금의 것을 그대로 사용한다. 이제 현대차그룹은 서스펜션 기술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할 시점에 있다.
최근 테스트한 일부 현대기아차의 모델들, 서스펜션에서 만족도가 높았던 것은 대부분 성능 지향형 모델들이었다. 가령 현대 i30, 코나와 같은 모델. 이들은 1.6T 엔진을 기반으로 민첩성을 확보해 만족감을 높였다. 승차감은 다소 떨어졌지만 차의 성능을 이끄는 측면서 유리함이 많아 좋은 점수를 받았다.
하지만 승차감이 필요한 차들로 접근하면 한계가 나온다. 저속에서는 단단하고 고속에서는 물렁한 느낌을 주는 경우도 많다. 다양한 도로 환경과 속도 영역, 여기서 이상적인 승차감과 성능을 이어가는 것. 이것이 정상급 브랜드들이 보유한 노하우이자 실력이다. 물론 안다. 벤치마크 대상의 것을 느낄 수는 있지만 직접 만들기는 어렵다는 것. 그렇기에 노력이 필요해진다.
그룹 내 경영진들이 유럽 프리미엄 브랜드들의 최고급 세단들을 장시간 타보길 권하고 싶다. 르노그룹을 이끄는 카를로스 곤 사장은 과거 포르쉐 911을 몰고 다녔다. 닛산이 R35 GT-R을 개발하던 시기다. 지향점이 있다면 그 정점에 있는 상품을 기준 삼아 상품을 개발해야 하는데, 지금의 K9에서 고급차의 승차감을 느끼기는 힘들다.
기아차 경영진들이 K9의 뒷좌석 공간 크기에 취하기 보다 냉정한 입장에서 수입 세단의 뒷좌석을 이용해 보라 권하고 싶다. 매일 같이 출퇴근하는 길. 과연 그곳에서 프리미엄 브랜드의 상품들은 어떤 느낌을 주고 있는지 확인해 줬으면 한다.
참고로 메르세데스-AMG S63S도 꽤나 좋은 승차감을 갖췄다. AMG이기에 단단함, 이를 기초로 성능만 지향할 것 같지만 S-클래스라는 대형 세단에서 요구되는 승차감 만큼은 지켜낸다. 승차감도 K9 보다 좋다.
많은 이들이 K9의 승차감에 대해 우호적 평가를 한다. 여기엔 이유가 있다. 기준을 기아차의 상품으로 잡았기 때문. 기아차의 대형 세단, 이 정도면 잘했네. 이런 의미다. 만약 기준을 수입 대형 세단에 맞춰 재평가를 해달라고 말한다면 두 가지 의견이 나올 것이다. 부족하다. 그리고 또 하나는 아직 비교 대상이 되지는 못한다고 얘기할 것이다.
이번에는 제동 능력을 보자. 시험 결과 시속 100km로 달리던 K9은 42.1m의 거리에서 멈춰 섰다. 보편적인 승용차의 범주에서 보자면 적당한 수치라 말할 수 있다. 하지만 2톤이 넘는 차체, 여기에 400마력대 5.0리터 엔진이 보여주는 가속 성능을 감안하면 제동력은 대단히 부족한 수준이 된다. 사실 브레이크 페달을 조작할 때의 느낌은 무난했다. 과거와 달리 적당히 좋은 조작감을 보여준다는 점도 좋다. 하지만 강력한 제동이 들어가는 순간 타이어가 미끄러져 나간다. 브레이크 시스템의 성능 강화도 좋겠지만 타이어의 성능 확보도 필요해 보인다. 참고로 제네시스 EQ900은 이보다 좋은 성능을 보였다. 차량 간 컨디션 차이가 있을 수 있지만 EQ900은 37.5m 내외에서 멈춰 섰다. 거리로 보면 4.5m 차이다. 긴박한 상황을 맞는다면? EQ00은 사고를 피할 수 있지만 K9은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번에는 코너링이다. 이 부분에서도 수입 대형 세단들과 격차가 벌어진다. 수입 대형 세단들은 매우 놀라운 수준의 코너링 성능을 뽐낸다. 즉, 기본적인 성능이 매우 좋다는 얘기다. 이렇게 반문할 수 있다.
‘이런 대형 세단으로 누가 그런 코너링을 즐기냐?’
맞는 말이다. 그렇다면 수입 프리미엄 브랜드들은 왜 그리 좋은 성능을 만들기 위한 노력을 할까?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해 보자. 갑작스럽게 도로에 뛰어든 야생동물, 급하게 스티어링 휠을 돌린다. 기본 성능이 좋은 모델은 그 상황을 모면할 수 있다. 반면 성능이 떨어지는 어떤 차는 급격한 조작에 의해 미끄러져 사고를 낸다. 에어백을 몇 개 갖췄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사고를 피해 가느냐 마느냐의 문제다. 올해 초 KATRI(자동차 성능시험 연구소)에서 진행된 차량 테스트 현장에서 S 클래스는 시속 180km 내외의 빠른 레인 체인지(차선 변경)에서도 안정적인 모습을 보였다.
대형 세단들이 저마다 좋은 성능을 내는 이유는 이처럼 긴박한 상황에서도 최고 수준의 안전성을 확보하기 위함이다. 그리고 그와 같은 안전성을 위해 대형 세단 소비자들은 많은 돈을 투자한다.
K9 퀀텀은 기대 이하의 코너링 성능을 보인다. 물론 타이어 영향도 크다. 400마력 급, 2톤을 넘어서는 모델이지만 타이어는 컨티넨탈의 프로컨텍을 사용한다. 컴포트 차원에서 보자면 이점이 많긴 하다. 하지만 주행 안전성 차원에서 보면 아쉬움이 커지다.
K9 퀀텀에는 AWD 시스템이 달린다. 하지만 4륜 구동이란 말이 무색하게 오버스티어 현상이 쉽게 표출된다. 언더스티어를 보이는 것 같지만 이내 리어 휠이 궤도를 이탈하는 것이다. 최근 동향을 보면 후륜구동 모델조차 일관적인 언더스티어를 내도록 튜닝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4륜 구동 모델에서도 오버스티어 현상이 짙다는 것은 향후 개선이 필요한 부분이다. 특히 전륜 245, 후륜 275mm 급의 큰 타이어를 사용함에도 이런 현상을 부각시켜 안전성을 떨어뜨린다는 점은 개선을 요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물론 자세제어장치가 열심히 제 역할을 하려 한다. 하지만 타이어 성능이 현저하게 낮다면 쉽사리 제어 불능 영역에 들어가게 된다.
기아차 보다 대형 세단에 대한 경험이 많은 해외 브랜드의 상품을 보자. 400마력대 대형 세단에 어떤 타이어들을 넣고 있는지. 그들이 택하는 타이어는 성능을 바탕으로 탑승자의 안전을 위해 쓰인다. 최근 현대기아차는 다양한 수입 타이어들과 손잡았다. 그리고 다양한 제조사들에게 OE(순정) 타이어를 제공받는다.
특히 자사의 고급 상품에 컨티넨탈의 프로컨텍이란 모델을 즐겨 쓴다. 컨티넨탈에도 좋은 제품군이 많은데 차의 성격과 안전성 확보를 위해 다른 제품을 사용해 보는 것도 좋겠다. 아무래도 고급차 또는 대형차에 대한 노하우 부족, 혹은 컨티넨탈에 대한 편애(?) 둘 중에 하나 같은 느낌이다.
연비는 고속도로 정속 주행을 중심으로 11km/L 정도를 보여준다. 배기량을 감안하면 나쁘지 않다. 참고로 시속 80km/h 내외로 국도를 달릴 때의 연비는 12km/L로 100km/h 주행 때보다 소폭 좋은 모습이었다. 시내 주행 때 연비는 대략 4km/L 내외다. 이 역시 배기량에 따른 것이기 때문에 소비자들의 타협이 필요하다.
K9에는 다양한 엔진이 쓰인다. 이 가운데 추천 대상은 3.8 자연흡기 또는 3.3T 터보다. 5.0 가솔린 엔진은 상징적 의미가 크지만 고급차의 특성에 잘 매칭 되지는 않는다. 수치적인 것보다 저속 토크를 통한 편안함에서 3.3T가 낫고, 일상에서 이용한다면 가성비 차원에서 봐도 3.8이 낫다.
정리하자면 성능 측면에서 K9 5.0은 아쉬움이 많았다.
저속에서 부족한 토크는 대배기량 엔진의 경쟁력을 살리지 못했고, 컴포트 중심의 타이어는 제동거리를 늘리며 코너링 성능까지 악화시켰다. 진동 처리 때 아쉬움을 보인 서스펜션의 셋업 기술에도 보완이 필요하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기아란 대중 브랜드의 일원이기에 상품의 가치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낮다.
테스트를 마치며 팀원들이 의견을 모았다. 그 결과 K9은 고급차가 아닌 대중 브랜드의 비싼 차로 정리됐다. 제네시스 EQ900이 보다 높은 가격을 갖지만 그래도 EQ900을 택하는 것이 더 합리적이라는 의견이 많았다. 적어도 국내 시장에서는 제네시스 브랜드가 고급 브랜드로 자리매김했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이 고급 상품 구입에 많은 돈을 내는 이유는 그 상품이 가진 가치 때문이다. 그리고 그 가치란 브랜드, 다시금 그 제품을 이용하는 소비자들에게서 나온다. 연예인들이 들고 나오는 고가의 명품 백, 소비자들이 그 상품을 동경하는 이유는 그 상품 자체의 가치와 소유자에 대한 관심 때문이다.
제네시스 EQ900의 이용자들을 보자. 알아주는 정계, 재계 인사들이라면 대부분 이를 이용한다. 수입차를 구입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남들의 이목 때문에 국산 최고급 세단을 구입하는 소비자들도 많다. 이유가 무엇이건 국내 정상급 인사들은 EQ900을 탄다. 그리고 그 정상급 인사들에 의해 EQ900의 가치는 한 번 더 높아진다. 기아차가 정계. 재계의 최상급 인사들에게 K9를 판매할 수 있다면 가치는 크게 향상될 것이다. 다만 그 인사들이 주변인들에게 ‘요즘 어렵냐?’는 농담 같은 진담을 듣게 될지도 모르겠다.
K9은 가진 것이 별로 없다. EQ900 보다 성능이 좋은 것도 아니며 단순히 저렴한 가격만 내세워야 한다. 저렴한 가격, 누군가는 가성비를 얘기하겠지만 고급 상품을 구입하는 소비자들에게 중요한 것은 가치다. 그 가치를 위해 수백, 수천만 원의 돈을 투자한다고 보면 된다.
북미 시장에서 판매된 K9(수출명 K900)의 판매량을 보자. 수요가 없는 것은 아니지만 대형급 세단으로는 별 인기를 끌지 못하고 있다. 일상에서 이용하기 좋은 합리적인 SUV와 세단들. 대형 세단을 택하는 소비자가 원하는 요소들이 없기 때문이다. 특히나 선택의 폭이 넓은 북미 시장에서 가치가 낮은 대형 세단을 택할 소비자는 많지 않다.
물론 국내 시장에서는 다른 모습을 가져갈 수 있다. 실제 최근 판매량도 무난한 수준이다. 국내 시장을 기준으로 K9은 일정 수준을 판매량을 이어갈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비싸게 구입한 차의 가치가 크지 않다는 점을 인지하는 소비자들이 많아질수록 판매량 저하 가능성은 커진다.
특히나 EQ900의 페이스리프트 모델이 곧 나온다. 그리고 1년 남짓이면 K9과 경쟁하는 G80 차기 모델이 등장한다. 다수의 소비자들은 그쪽을 향해 갈 것이다. 그리고 1년 후 K9의 판매량이 미래를 보여줄 것이다.
기아차의 결단이 필요하다. 만약 고급차로 K9을 성공시키고 싶다면 조금 더 적극적인 투자가 필요하다. 만약 현대차 그룹에서의 입지, 제네시스 브랜드와의 충돌이 우려된다면 K9의 개발비를 다른 차에 쓰는 것이 더 합리적일 수 있다.
기아차는 과거 한국 자동차 기술의 선도를 이끌었던 브랜드다. 엔지니어 중심의 마인드를 내세운 유일한 브랜드였다. 하지만 국내 소비자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 기술보다 넓고 부드러운 것을 원했고 그런 이유로 지금은 현대차 밑의 하위 브랜드로 자리하게 됐다. 그룹 안의 서열상 기아차가 최고의 상품을 내놓기는 어렵다. 하지만 일부 상품에서라도 과거 기아차가 갖췄던 그 기술의 저력을 한 번 더 보여줬으면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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