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승기] 기아 쏘렌토: 아빠가 되면 전혀 달리 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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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한번도 SUV를 구입할 생각은 하지 않았다. 아기가 생기기 전까지는 말이다. 벌써 7년째 BMW 3시리즈를 타는데 지난해부터 아이가 둘이 되면서 부터는 소위 ‘멘붕’이다.
트렁크도 좁고 뒷좌석도 좁고 머리공간도 좁고 카시트를 넣고 빼기도 어렵고 카시트에 아이를 태우기도 어렵다. 유모차는 용을 써도 하나밖에 못싣는데 그나마 잘 들어가지 않아 넣고 뺄때마다 분해조립의 대공사를 해야 한다. 이런말 쓰기 뭐하지만 때로는 화가나서 돌아버릴 지경이다.
국산 SUV에 눈을 돌려봤지만 대부분 너무 못났다. 어떤 SUV의 테일램프를 보면 말그대로 '엉망진창'이라는 단어가 떠오르기도 한다.
그런 와중에 신형 쏘렌토가 나왔다. 디자인이 지나치게 과격한 면이 없지 않지만 그런대로 마음에 든다. 앞서 기아차 시승행사에서 몇시간 시승해봤지만 도심에서 실제로 가족을 태우고 시승하는 느낌은 전혀 달랐다.
# 모든 면이 괜찮다…선입견만 버린다면
실내 공간은 너무나 넉넉하게 느껴진다. 유모차에 따라 분해하기는 커녕 안접고도 트렁크에 넣을 수 있는 정도다. 얼마만에 느끼는 여유인가. 요즘은 SUV도 소형화가 대세지만, 기아차 쏘렌토나 카니발은 이와 반대로 쑥쑥 커지고 있다. 아빠들을 위해선 가끔 이런 차도 있어야 한다.
카시트를 장착할 때도 고개를 빳빳히 세우고 ISOFIX에 "철컥" 채워넣으면 그만이다. 구차하게 허리를 굽히고서 후레쉬를 비춰가면서 진땀 빼던 내 모습이 바보 같이 느껴졌을 정도다. 카시트에 앉은 애들은 파노라마 선루프를 통해 눈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너무 기뻐한다. 컵홀더가 수없이 많고 온갖 짐을 다 집어넣을 수 있어 아내도 좋아한다. 후우 역시 아빠라면 이런 차를 사야 하는건가 하는 생각에 좀 처량해진다. 나는 달리는 차를 무엇보다 중시해왔는데, 결국 그걸 포기해야 하나 싶어서다.
하지만 주행성능도 그리 나쁘지 않다. 국산 SUV의 승차감도 매우 좋아져 마치 ‘널뛰듯’하던 과거 승차감은 어디론가 사라졌다. 이번 쏘렌토는 차라리 몇몇 세단보다는 훨씬 안정감이 느껴지기도 한다. 코너에서도 가속패달을 바닥까지 밟고 핸들을 마구 좌우로 흔들어 보는데, 미끄러질지언정 거동이 흐트러지지 않는게 기특하다. 그동안 내가 국산 SUV를 오해한거였나 생각도 든다. 아 물론 핸들은 예리함과 거리가 멀어서 마치 게임기 핸들 같이 둔하게 느껴진다. 둔한 핸들의 대명사격인 메르세데스-벤츠 G클래스를 모는 것 같다.
엔진 출력이 예상은 훨씬 뛰어넘는다. 2.2리터 디젤 R엔진은 현대기아차의 명기라 할 만 하다. 202마력이나 되니 출력도 높은데다 토크가 45kg.m이어서 엔진회전수가 낮을때도 매우 빠르게 가속하고 매우 부드럽기도 하다. 유로6에 부합해 친환경적이기도 하고 승객들 건강도 덜 해칠 것 같다. 배기음은 조용하고 진동도 적어 마음에 드는 편이다. 하지만 디젤은 디젤. 고회전에서 “카르르”하는 소리가 나는 점은 좀 거슬리고, 꾹 밟았을때 확 튀어나가주는 느낌도 좀 부족하다. 돈이 정말 많다면 디젤보다는 가솔린 SUV를 사는게 옳을지도 모르겠다.
# 이 정도 차에 이런 것까지 갖춰져 있다니
쏘렌토의 실내에는 다양한 편의 사양이 가득 채워져 있다. 얼마나 사용할지는 모르지만, 꼭 필요했던 사람들에게는 큰 도움이 될지도 모른다. 특히 220V 전원이 나오는 점이나 트렁크 아래에 숨겨진 수납공간을 통해 더 많은 짐을 가지런히 보관할 수 있는 점은 캠핑 마니아들에게는 유용하겠다.
캠핑을 한다거나 오프로드까지 갈 일이 많은 차량 특성상 서라운드뷰 모니터를 지원하는 후방카메라도 아주 좋은 선택이다. 특히 세단의 서라운드뷰 모니터는 범위가 좁아 유용하지 못한 경우도 있는데, SUV여선지 왜곡도 적은 편이고 구석구석까지 잘 보인다.
언제나 떠날 준비가 돼 있는 자동차인만큼 내비게이션 시스템의 중요성은 더 말할 나위가 없겠다. 내비게이션은 오픈소스 안드로이드를 이용해 반응이 즉각적이고 이해하기 쉽게 만들어졌다. 정전식 터치의 감도도 좋은 편이어서 스마트폰을 만지는 기분도 든다.
다른 기아차들과 마찬가지로 공조장치와 각종 버튼들이 잘 만들어져 있어서 장갑을 낀채로 눌러도 조작하기 쉽고 매우 직관적이다. 밤에는 모든 버튼들이 빨간색으로 빛나는데, 아우디나 BMW가 연상되긴 하지만 고급스럽고 시인성이 좋다.
뿐만 아니다. 계기반은 바늘이 아니라 커다란 LCD창에 그래픽으로 나타나는 방식이고, 크루즈컨트롤에 열선 핸들이며, 통풍시트 등 각종 기능들을 쭉 살피다보면 이런게 이 정도 차급에 들어있어도 괜찮은건가 하는 생각도 든다.
# 매력을 더 갖추는 법...'무난한 차' 이미지 벗어나야
며칠간 서울에서 쏘렌토를 탄 느낌은 대만족이다. 다만 수입 소형 SUV보다 더 크고, 출력 높고, 연비 좋고, 실용적인 자동차라 하더라도 국내 소비자들 상당수는 한단계 작은 수입차를 사는게 현실이다. '매력'이 있어서다.
수입 SUV들은 두드러지게 우수한 성능이나 안전성, 호화로운 인테리어 등을 내세운다. 모든 트림이 그런건 아니고, 이른바 ‘플래그십 트림’을 통해 해당 차종이 굉장히 고급인 것처럼 분위기를 이끈다. 쏘렌토는 이 점이 좀 부족하다. 그저 보통 사람들이 타는 ‘보통차’정도의 이미지다.
기아차는 이 차를 광고하면서 ’남자의 자존감’이라는걸 내세우는데, 그런식으로 폼을 잡겠다면 이보다는 작은 수입 SUV가 낫지 않을까. 진정 폼나도록 차량 이미지를 업그레이드하든, 마케팅을 실용적인 노선으로 변경하든 방향 전환이 필요하겠다.
* 장점
- 넉넉한 공간, 이 정도 공간은 수입차에서 찾기 어렵다
- 우수한 연비와 괜찮은 주행감각
-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기능들
* 단점
- 밋밋한 핸들 감각
- 과연 이 차로 오프로드를 갈 수 있을까 싶은 느낌
- 특별한 개성을 내지 못하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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