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카 시장을 뒤흔들 세꼭지 별: MERCEDES-AMG GT S EDITION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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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담 없이 탈 수 있는 스포츠카. 메르세데스 AMG는 GT를 이렇게 정의한다. 실제 GT는 본격적인 스포츠카와 푸근한 GT카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고 있다. 하지만 느슨한 섀시와 사륜구동이라는 유혹을 외면했다. 탄탄한 섀시와 후륜구동이라는 정공법을 택했다. 주위를 압도하는 극단적인 비율과 소름 돋는 V8 사운드는 덤이다.
GT는 메르세데스 AMG(이하 AMG)가 개발한 두 번째 스포츠카다. SLS AMG의 뒤를 이어 등장했다. 그러나 AMG는 GT와 SLS AMG의 선을 명확하게 그었다. 수퍼 스포츠카인 SLS AMG와는 달리, 부담 없이 탈 수 있는 스포츠카라는 설명이다. 이전에 비해 길이(90mm)와 휠베이스(50mm)를 줄인 것도, 걸윙도어가 아닌 스윙도어를 단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실제 GT의 성격도 이런 설명과 크게 다르지 않다. GT는 본격적인 스포츠카와 푸근한 GT카의 경계를 절묘하게 넘나들고 있다.
빈틈없이 맞물린 V8 엔진과 알루미늄 섀시
GT의 핵심은 V8 4.0L 바이터보 M178 엔진이다. GT를 위해 설계된 특제 엔진이지만, 백지에서부터 개발된 건 아니다. 신형 C63의 M177 엔진이 밑바탕에 깔려 있다. 모듈화 시대에 엔진을 모델에 맞게 다시 다듬거나 핵심 부품을 공유하는 건 흔한 일. 사실 M177도 45 AMG에 쓰고 있는 직렬 4기통 M133의 블록 두 개를 90도로 붙여 완성한 엔진이다. 보어와 스트로크는 같고 배기량은 정확히 두 배 크다.
M177과 M178에는 AMG의 최신기술이 모두 녹아 있다. 두 개의 터보차저를 블록 사이에 끼워 넣은 핫 인사이드 V 설계가 대표적이다. 구조가 복잡하지만 엔진 전체 부피가 작고 리스폰스가 빠르다는 장점이 있다. 그런데 C63과 달리 GT에서는 냉각도 문제가 된다. 엔진을 깊숙이 밀어 넣은 까닭에 터보차저의 열이 실내로 전달될 수 있는 것. 게다가 GT의 섀시는 열전도율이 높은 알루미늄으로 제작된다. AMG는 이를 보닛 안쪽에 공기 유도관을 붙여 해결하고 있다. 라디에이터 그릴을 통과한 공기를 터보차저로 직접 공급해 열기를 아래쪽으로 밀어내는 방식이다. 참고로 터보차저를 거친 배기가스의 온도는 최고 1,000℃를 넘나든다.
M177과 M178의 결정적인 차이는 두 가지로 요약된다. 첫 번째는 윤활 방식이다. 웨트섬프 방식의 C63과는 달리 GT는 드라이섬프 방식을 택했다. 덕분에 무게중심이 55mm 더 낮고 내구성도 더 뛰어나다. GT의 드라이섬프는 1분당 최대 250L의 오일을 엔진의 핵심 부품에 공급한다.
두 번째는 흡입 공기 냉각 방식이다. C63과 GT는 터보랙을 최소화한 수랭식 인터쿨러가 기본이다. 하지만 GT에는 공랭식 쿨러도 추가된다. 엔진에 붙어 있는 수랭식 인터쿨러를 식히기 위한 냉각기가 범퍼 아래쪽에 하나 더 있는 설계다. AMG는 이를 다이렉트 에어/워터 인터쿨링이라고 부른다.
의외로 최고출력은 차이가 없다. 시승차인 GT S의 경우 C63 S와 같은 510마력을 낸다. 엔진 부스트도 1.2바로 같다. 최대토크의 경우 66.3kg·m로 오히려 더 낮다. 대신 힘을 내는 범위가 1,600~4,750rpm으로 더 넓다. 수치보다는 반응에 중점을 둔 세팅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메르세데스 벤츠는 누구보다 ‘플랫토크’를 중요하게 생각하는 브랜드. GT가 스포츠카임에도 롱 스트로크 엔진을 사용하는 이유도 바로 이런 고집 때문이다.
물론 이런 설정에는 터보 엔진이 세계적인 추세가 됐다는 사실도 한몫하고 있다. 터보를 붙이면 엔진회전을 높여봤자 별 이득이 없기에 롱 스트로크 설정으로 초중반에서의 토크를 살리는 게 유리하다. 그래도 M178은 터보치고는 상당히 고회전 엔진에 속한다. 최고출력을 내는 시점이 6,250rpm이며 회전한계도 7,200rpm이나 된다.
GT의 앞뒤 무게배분은 47:53이다.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를 SLS처럼 차체 뒤쪽에 붙여 얻어낸 결과다. 엔진과 변속기는 원피스 토크 튜브 안에 넣은 탄소섬유 드라이브 샤프트로 연결했다. 견고하되 가볍고, 빠른 반응을 얻어낼 수 있다는 것이 AMG의 설명이다. LSD는 GT와 GT S 모두 기본으로 갖춘다. 다만 GT는 기계식, GT S는 전자 제어식이다.
이 급의 스포츠카 대부분이 그렇듯, 섀시는 파워트레인에 맞춘 구성이다. 알루미늄 스페이스 프레임은 앞 차축과 캐빈룸 사이에 엔진을, 뒤 차축 가운데에 변속기를 품는다. 물론 파워트레인이 섀시에 맞췄다고도 볼 수 있다. 그러나 이를 논하는 건 닭이 먼저냐 달걀이 먼저냐를 따지는 것과 비슷하다. 그만큼 GT의 섀시와 파워트레인은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있다.
한계 역시 마찬가지다. 섀시가 파워트레인을 찍어 누르지도, 파워트레인이 섀시를 압도하지도 않는다. 서로가 팽팽한 긴장을 유지하고 있다. 심지어 둘은 무게마저도 비슷하다. 섀시는 231kg, 엔진은 209kg이다. 둘 모두 동급에서 가장 가벼운 축에 속한다. 참고로 스티어링은 가변식이며 서스펜션 구조는 앞뒤 모두 더블 위시본이다. 앞은 SLS의 것을 활용했고, 뒤는 처음부터 새로 설계했다. 앞 브레이크의 디스크 직경은 GT 360mm, GT S 390mm이며 시승차인 GT S 에디션 1은 402mm의 카본 세라믹 옵션을 달고 있다. 캘리퍼는 모두 6피스톤이다.
주위를 압도하는 극단적인 비율
GT의 외모는 한마디로 정의된다. 비율 깡패. ‘롱노즈 숏데크’라고 부르는 전통적인 뒷바퀴굴림(FR) 스포츠카의 모양새를 띠고 있는데, 보닛의 길이가 굉장히 길고 캐빈룸이 완전히 뒤쪽으로 밀려 있다. 지금까지 이런 양산차가 있었나 싶을 만큼 극단적인 비율이다. 비현실적으로 머리가 작고 다리가 긴 패션모델과 비슷하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길이 4.5m가 넘는 2인승 FR 쿠페/컨버터블이 워낙 희귀하고 우월한 종자이긴 하지만, GT는 그 중에서도 별종이다. 페라리 F12 베를리네타, 메르세데스 벤츠 SL클래스 등 같은 장르에서 길이가 더 긴 모델들보다도 한참 더 늘씬하게 보인다. 한 끝 차이가 미녀와 추녀를 결정한다는 말은 자동차 세계에서도 통한다. 펜더의 에어 벤트, 파팅 라인을 앞쪽으로 잡아당긴 도어, 완만하게 떨어지는 C필러 등이 균형을 잡고 있지 않았더라면 괴물처럼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현재의 GT는 더 없이 섹시하다.
사실 이런 비율은 매끈한 면 덕분에 더욱 부각된다. GT에는 쓸데없는 장식이 거의 없다. 그 흔한 캐릭터 라인도 찾아보기 힘들다. 지난여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만난 벤츠의 디자인총괄 부사장 고든 바그너(Gorden Wagener)는 GT를 벤츠의 디자인 언어인 ‘감각적 순수미(Sensual Purity)의 결정체’라고 정의했다. 그리고 모서리를 정교하게 다듬고 선을 줄이는 게 좋은 디자인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사람의 눈은 빛의 반사를 통해 사물의 형태를 인식한다. 감각적 순수미는 바로 이 부분에 포커스를 맞춘 디자인 철학이다. 선을 긋거나 철판을 접어 억지로 형태를 표현하기보단, 면의 굴곡을 이용해 빛을 반사시켜 의도를 전달한다는 게 핵심이다. 물론 GT의 파격적인 비율과 벤츠의 이런 디자인 철학은 하루아침에 뚝딱 완성된 게 아니다. 1950년대의 1세대 SL과 300 SLR이 생생한 증거다.
실내 역시 스포티한 분위기다. 바짝 선 A필러와 작은 대시보드, 그리고 넓적한 센터터널이 이런 느낌을 주도한다. 화려한 디자인 때문에 복잡해 보이는 센터페시아는 의외로 직관적이다. 시동, 드라이브 모드, ESP, 댐핑 설정 등 주행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는 버튼들은 운전석 쪽에, 그 이외 급한 조작이 필요 없는 버튼은 반대편으로 몰아 놓았다.
센터페시아 가운데에는 커맨드 컨트롤러가 자리한다. 그 앞쪽에는 광활하다고 할 수 있는 두 개의 컵홀더가 있다. 수동변속기를 고려하지 않았기에, 전자식(와이어리스) 변속레버를 사용했기에 가능한 구성이다. 변속레버는 센터터널 아래쪽에 자리한다. 어차피 후진할 때가 아니면 사용할 일이 없으니 이 편이 더 낫다. 조작할 때의 자세도 꽤 특별하다. 그러나 비상등과 시트 히터 등의 일부 버튼을 굳이 머리 위에 붙인 건 이해할 수 없다. 비행기 콕핏에 오른 기분을 내지만, 사용이 영 불편하다.
실내에 드나드는 과정은 여느 2도어 쿠페와 크게 다르지 않다. 개구부가 넓고 문턱도 낮다. 공간 크기도 본격적인 2인승 스포츠카치고는 넉넉하다. 트렁크는 체적(350L)도 크지만 형상이 넓적해 굉장히 실용적이다. 골프백 두 개를 눕혀서 넣을 수 있을 정도. 여러모로 이전 모델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친절한 패키징이다.
소름 돋는 V8 사운드와 생생한 핸들링
낮게 깔린 시트에 몸을 포개면 다소 황당해진다. 끝을 가늠할 수 없을 만큼 길게 뻗어나간 차체가 운전자를 압도하고 있다. 윈드실드 너머 너울진 보닛의 굴곡을 보면 숨이 턱턱 막힌다. 하지만 조금만 익숙해지면 이런 부담은 즐거움으로 바뀐다. 뒤 차축에 걸터앉아 차체를 휘두르는 재미가 GT만큼 좋은 차도 없기 때문이다. 적응도 생각보다 쉬운 편. 스티어링의 반응이 빠르고 회전반경이 짧아 손에 착착 붙는다.
이런 즐거움에는 과격한 사운드도 한몫한다. AMG의 V8 사운드야 이미 정평이 나 있지만, GT는 조금 더 특별하다. 세계 최고의 V8 사운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머플러 설정을 스포츠+로 바꿔서 플랩을 열면 각 뱅크에서 빠져나온 배기가스의 일부가 소음기를 거치지 않고 바로 방출되는데, 이 때의 사운드는 비교 대상을 찾을 수가 없을 정도로 생동감이 넘친다. 엔진 사운드를 무기로 삼는 페라리나 포르쉐가 최근 배기음을 ‘오버’에 가깝게 강조하는 이유를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회전수를 올리면 사운드는 더욱 거칠어진다. 대부분의 최신 터보 스포츠카가 그렇듯, 회전 상승에 따른 톤 변화는 적다. 볼륨이 커지고 파열음이 더해질 뿐이다. 특히 GT처럼 배기음을 강조한 케이스는 더욱 심하다. 회전수에 개의치 않는 톤처럼, 가속 감각도 시종일관 폭력적이다. 터보랙과 고회전에서의 출력 하락이 최대한 억제돼 저회전부터 고회전까지 차체를 쉬지 않고 밀어낸다. 물론 여기에는 1,750rpm부터 쏟아져 나오는 최대토크를 빈틈없이 뒷바퀴로 전달하는 7단 듀얼 클러치 변속기의 공이 적지 않다. 참고로 0→시속 100km 가속시간은 3.8초로 배기량과 출력이 한참 큰 SLS AMG 기본형과 같다.
움직임은 드라이브 모드에 따라 확연하게 달라진다. 엔진, 변속기, 댐퍼 등의 반응이 큰 폭으로 바뀐다. 느슨하게 풀면 GT카에, 빡빡하게 조이면 퓨어 스포츠카에 가까워진다. 그런데 다이내믹 마운트를 선택할 경우 그 차이는 한층 더 커진다. 엔진/변속기의 마운트가 입력에 따라 강도를 바꿔 컴포트 모드에서는 매끈한 주행감을, 레이스 모드에서는 빠른 반응을 이끌어낸다. 다이내믹 마운트는 전용 계기판, 스포츠 서스펜션 등과 함께 다이내믹 플러스 패키지(382만원)에 포함된다.
섀시는 새 파워트레인의 한계를 끌어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어떤 상황에서도 탄탄하게 버틴다. 앞머리와 꽁무니의 움직임도 흠잡을 곳이 없다. 스티어링을 비틀면 차체 앞뒤가 거의 동시에 움직인다. 특히 레이스 모드에서의 반응은 동급 어떤 스포츠카보다도 생생하다. 대부분의 포르쉐 911보다도 스포티한 세팅. 스포츠 서스펜션 옵션이 빠져 있음에도 GT3와 같이 트랙을 염두에 둔 911과 비교해도 좋을 수준이다. ESP는 온, 스포츠, 오프 등 세 가지 모드를 지원한다. 온에서는 타이어의 슬립을 거의 허용하지 않으며, 스포츠에서는 적당한 스릴을 맛볼 수 있게 한다.
실력 입증이 우선
GT는 스포츠카 시장에서 벤츠의 입지를 넓힐 주인공이다. 맡은 임무가 막중한 만큼 완성도도 높다. 가장 큰 매력은 달라진 성격. SLR 멕라렌, SLS AMG 등과는 달리 매일 편하게 탈 수 있는 친절한 스포츠카로 거듭났다. 게다가 이전보다 문턱도 낮췄다. 이제는 동급 어떤 스포츠카와 비교해도 좋을 만큼 합리적인 가격표를 달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 높게 사는 부분이 따로 있다. 벤츠, 그리고 AMG가 정공법을 선택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다소 느슨한 섀시와 사륜구동의 조합이라는 유혹을 외면했다. 다시 한번 탄탄한 섀시와 후륜구동 방식을 들고 뛰어들었다. GT가 속한 시장에선 실력을 증명하는 게 우선이다. 부자들의 취향에 맞춘 가지치기 모델은 그 이후의 이야기다. 선택은 옳았고 결과물은 훌륭하다. 곧 사륜구동 GT를 볼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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