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교 시승기] 카이엔 터보 VS 레인지로버 스포츠, 최고의 SUV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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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술과 디자인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지만, 아마 수십년이 지나도 슈퍼카엔 유모차를 실을 수 없을거다. 만약 유모차나 골프백이 여유롭게 들어간다면 그건 이미 슈퍼카가 아니라해도 무방하겠다. 결국 스포츠카나 슈퍼카는 태생적인 결핍이 있고 그래서 더 끌리기는 것이기도 하다.
SUV는 어떤가. 부족함 없이 자란 8학군 학생같다. 원하는 것은 뭐든 채워 넣을 수 있다. 또 지형도 가리지 않는다. 다양한 레저활동의 동반자며 차안에서의 격정적인 데이트를 즐기기도 용이하다.
완벽해 보이지만 그래도 단점은 있었다. 빠르게 도로를 질주하는데 적합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최홍만의 거대한 주먹도 느리면 아무짝에 쓸모 없지 않던가.
애초부터 SUV는 느린게 상식이었다. 탈탈 거리는 엔진을 달고 거대한 기관총을 붙이거나, 군물자를 이송하는 일을 담당하는게 주된 역할이었기 때문이다. 일반 소비자들에게 판매가 시작 됐어도 속도보다는 험로주파 능력이나 견인력이 부각됐다. 하지만 세월은 변했고, 소비자들의 욕망과 욕심은 끝을 몰랐다. SUV에게 스포츠카를 능가하는 성능을 요구하기 시작한 것이다.
결국, 제조사들은 코끼리를 냉장고에 안에 넣기 위해서 코끼리보다 더 큰 냉장고를 만들어낸 느낌이다. 포르쉐는 911만큼 빠른 카이엔 터보를 내놨고, 뚝심있게 이 바닥을 지켜온 랜드로버는 레인지로버 스포츠를 내놓았다. 두대의 최고급 SUV 모두 지향하는 점은 같지만, 동시에 시승해보니 극명한 차이점도 느껴졌다.
◆ 디자인에서부터 뚜렷한 개성이 돋보인다
랜드로버는 전형적인 브랜드 특성을 잘 지켜가고 있다. 차종을 막론하고 각지고 남성적인 디자인은 랜드로버의 강인함을 잘 보여준다. 여기에 이보크부터 시작된 대대적인 디자인 변경은 현대적이고 세부적인 디자인도 꽤 섬세하다. 최근 랜드로버의 디자인 변화는 업계에서 가장 활발하고 진취적이다. 같은 그룹 재규어 브랜드 또한 디자인에 물이 올랐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이름에 걸맞은 스포티한 디자인을 갖췄다. 레인지로버가 정장에서 운동복으로 갈아 입은 셈이다. 운동복 사이 굵직한 근육이 돌출됐고, 힘줄도 도드라졌다. 한껏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은 당장이라도 앞으로 튀어나갈 것 같은 긴장감을 불러일으킨다.
카이엔의 경우는 포르쉐의 정체성이 잘 녹아들었다. 강렬하고 공격적인 앞모습은 여느 포르쉐의 스포츠카를 떠올리기 충분하다. 출시된지 4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세련됐고, 이목을 집중시킨다. 반대로 생각해보면 4년전에 나왔을때는 얼마나 엄청난 혁신이었던걸까.
더욱이 카이엔 터보는 보기만 해도 아드레날린이 솟구쳐 오른다. 이 차에는 옵션이 가득 채워져 있어 더 감동적이다. 물경 3천만원이 넘는다는 노란색 카본세라믹 브레이크 캘리퍼, 거대한 휠, 원형 헤드램프 테두리에 박힌 ‘호버링 4 포인트 LED’, 연통을 연달아 박아놓은 것 같은 배기구 등은 카이엔 터보를 범상치 않은 존재로 만든다.
포르쉐를 '옵션의 귀재'라고도 말하는데, 이 차를 보고 나서 카이엔 디젤 기본 모델을 타보면 이유를 알게 된다. 그놈의 바이러스만 한꺼풀 벗겨내면 정말 ‘깡통’이나 '오징어'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의 지갑을 탈탈 털게하는 영리한 회사인 것은 분명하다.
◆ 고급스러움은 이미 SUV를 넘어섰다
두 모델 모두 달리기도 잘하지만 고급스러움에서도 둘째가면 서러울 SUV다. 포르쉐는 특유의 개별 주문생산 방식을 운영해 자율성이 높다.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카이엔 터보에 비해 자율성은 떨어지지만 충분히 양질의 소재를 사용한다.
상대적으로는 비교하면 카이엔 터보의 고급스러움이 한 수 위다. 하지만 카이엔 터보는 최신 모델인 레인지로버 스포츠에 비해 구식이라는 느낌도 있다.
▲ 레인지로버 스포츠(위)와 카이엔 터보(아래) |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터치 스크린을 통해 많은 부분을 컨트롤한다. 버튼이 줄면서 디자인 측면에서 큰 자율성을 얻고 간결하고 깔끔한 실내 분위기를 연출했다. 다만 간단한 기능도 터치를 여러번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
반면 카이엔 터보의 실내는 매우 복잡하다. 수많은 기능을 자랑이라도 하는 듯, 버튼으로 가득 채워져 처음엔 당혹스럽다. 하지만 익숙해지면 종류별로 버튼이 잘 배치돼서 한번에 작동할 수 있게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게 된다.
▲ 레인지로버 스포츠 실내. |
실내는 양쪽 모두 꼼꼼하게 가죽으로 마감됐다. 오히려 가죽이 사용되지 않은 곳을 찾아내는게 더 쉽다. 시트는 물론, 대시보드, 스티어링휠, 문짝, 센터 암레스트 등의 가죽은 촉감이 부드럽고 푹신하다. 바느질도 정교하다. A필러나 천장은 알칸타라 재질로 마무리됐다. 약간의 차이가 있다 한들, 결국 두 차 모두 '노는 물'이 같고 보편적인 자동차와 견줄 수준은 아니다.
▲ 카이엔 터보 실내. |
대형 SUV 답게 넉넉한 실내 공간은 기본이다. 이전 포르쉐 카이엔은 뒷좌석 등받이가 수직에 가까워 좀 불편했는데, 이번 카이엔과 레인지로버는 뒤로 꽤 젖혀져 편안한 자세를 설정 할 수 있다. 완벽한 독립식 공조시스템을 갖추고 있는데, 레인지로버 스포츠에는 뒷좌석 쿨링 시트까지 적용됐다. 또 시승차는 레인지로버 스포츠 중에서도 가장 최고급 모델이기 때문에 뒷좌석 승객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디스플레이까지 놓였다. 카이엔 터보는 이런 편의사양 대신 이 자리에 두툼한 손잡이가 놓였다. 카이엔 터보에겐 확실히 모니터보단 손잡이 같이 의지할 곳이 필요하다고 주장하는 듯 하다.
◆ 확연하게 구분되는 주행감각, "우린 가는 길이 달라"
고성능을 표방한 SUV지만, 성격은 크게 다르다. 레인지로버 스포츠에 재규어랜드로버가 자랑하는 5.0리터 슈퍼차저 엔진이 장착됐다면, 더 완벽한 비교가 됐을 수도 있을텐데 아쉽다. 그래도 차의 성향을 파악하는덴 큰 무리가 없었다. 또 절대적인 성능 비교는 어렵다는 점을 감안하고 시승에 임했다.
카이엔 터보는 주행성능에 있어서 그야말로 궁극의 SUV다. 부족한 점을 찾기 힘들다. 포르쉐가 스포츠카라고 우길만 하다. SUV에게 정지 상태에서 시속 100km까지 도달하는 시간이 4.7초라는 것은 믿어지지 않는 수치다. 엔진회전수가 높아지면 중독성 높은 배기음이 운전자를 유혹한다. 공포스러운 순간은 곧 희열로 바뀐다. 빠른 속도로 달릴 수록 차의 크기는 잊혀져가고 오른발은 제멋대로 가속페달을 짓누르게 된다. 스티어링이나 페달의 반응, 믿음직스러운 카본세라믹 브레이크 시스템 등은 이 차의 신뢰감을 더욱 높인다.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랜드로버 중에서 달리기에 최적화된 모델이지만 3.0리터 V6 터보 디젤 모델은 그 맛만 살짝 보여주고 만다. 특히 아우디 SQ5, BMW X5 M50d, 카이엔 디젤S 등과 같이 극적인 모습은 찾아보긴 힘들다. 최근엔 엔진회전수를 꽤 높게 가져갈 수 있는 디젤 엔진이 많은데 그런 모습도 없다. 8단 자동변속기와 결합돼 부지런히 속도를 올릴 뿐 목이 뒤로 젖혀지는 순간적인 힘은 느껴지지 않는다. 단 디젤 엔진의 세팅은 옛 것이지만 진동이나 소음에 대한 대비는 철저하다. 또 부드러운 주행질감은 어쩌면 일반적인 소비자들에게는 더 환영받을 일이기도 하겠다.
고속도로에선 두 차의 성향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일단 디젤 엔진이 장착된 레인지로버 스포츠로는 카이엔 터보를 도저히 쫓아갈 수 없다. 이건 베텔이든 로브든, 누가와도 안된다. 그저 하염없이 카이엔 터보의 뒷모습만 바라봐야 한다. 하지만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우아하고, 평온하게 달릴 수 있었다. 원초적인 SUV의 형태를 취하고 있지만, 풍절음이나 노면 소음은 거의 없다시피 한다.
카이엔 터보는 빠르게 달리는 만큼 연료도 빨리 줄어든다. 8단 자동변속기 덕에 어느 정도 효율적인 주행도 가능하지만, 레인지로버 스포츠완 비교가 안된다. 주유할때마다 고급유가 있는 주유소를 찾아 헤매는 것도 고역이다. 반면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디젤이 있는 곳이라면 전국 어디든 자유롭게 다닐 수 있다.
◆ 당신은 분명 차를 끌고 산으로 가고 싶을거다
스포츠카로 서킷을 달리는 것 만큼 짜릿한게 SUV로 산을 오르는거다.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카이엔 터보도 예외는 아니다. 생채기 걱정하면 이 차의 또 다른 면을 볼 수 없다. 매일 헐렁한 바지만 입던 여자친구가 가끔은 몸에 달라붙는 원피스를 입었다고 생각해보자.
카이엔은 기본적으로 온로드 주행시 후륜에 대부분의 동력을 보내는 스포츠카 세팅이어서 오프로드 성능은 간과하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차가 미끄러지면 즉시 전륜으로 힘을 보내는 상시 4륜은 물론이고 본격적인 오프로드 주행을 위한 파트타임 디퍼렌셜락 버튼도 센터와 후륜을 구분해 장착했다. 심지어 토크를 더 높이는 로기어(Low gear)까지 달렸다. 차체를 높일 수 있는 에어서스펜션도 원활한 험로 주행을 위한 수단이다. 여기에 낮은 무게중심과 힘 좋은 엔진도 오프로드에서 빛을 본다. 그러나 온로드 전용 고성능 타이어, 피랠리 피제로가 기본 장착된게 오프로드에선 옥의 티로 느껴졌다.
▲ 레인지로버 스포츠의 오프로드 관련 시스템. |
오프로드에 올라선 레인지로버 스포츠는 카이엔 터보보다 훨씬 믿음이 갔다. 에어서스펜션이나 전자식 사륜구동 시스템은 유사하다. 다만 의외로 파트타임 디퍼렌셜락이 적용되지 않았다. 오프로드 패키지에는 적용된다고 한다. 미끄러지면 그때서야 반응한다는 식이어서 본격적인 오프로더라 할 수는 없었지만, 실제 달려본 결과는 기대 이상으로 우수했다. 아무래도 타이어의 힘이 크다. 컨티넨탈의 오프로드 겸용 타이어인 크로스컨텍트가 장착됐다.
또 레인지로버 스포츠에는 다양한 환경에 따라 주행모드를 설정할 수 있는 시스템이 탑재된 점도 마음을 든든하게 만든다. 도로포장율이 세계 최고 수준인 우리 나라에서는 사용 빈도가 떨어지긴 하지만, 신뢰감을 주는 부분이다. 또 차체 사방에 장착된 카메라를 통해 도로 환경을 모니터하며 달릴 수 있기 때문에 섬세한 조작도 가능하다.
◆ 최고급 SUV 전쟁은 지금부터 시작
레인지로버 스포츠와 카이엔 터보는 단연 상위 1%에 해당하는 SUV다. 크기, 성능, 가격 모두 쉽게 넘볼 수 없는 차다. SUV 중에서 가격이 비싼 것은 분명하지만 롤스로이스나 벤틀리 등 최고급 세단에 비해서는 한없이 저렴하다. 또 카이엔 터보가 2천만원 가격이 낮다 해도 판매가 급증할 것도 아니다. 어쩌면 이런 차들은 오히려 가격이 비싸야 더 잘팔리는 경향도 있다.
여러 브랜드도 이에 관련해 대책을 내놓았다. SUV 시장은 양적으로나 질적으로나 누구보다 빠르게 성장하고 있고, 최고급 SUV에 대한 소비자들의 요구는 계속돼 왔다. 이젠 SUV를 등한시하던 여러 스포츠카 브랜드가 SUV를 생산하겠다고 나섰다. 벤틀리, 마세라티, 람보르기니 등은 이미 구체적인 출시 계획을 세웠고, 머지 않은 미래에 이들의 SUV를 볼 수 있다.
랜드로버와 포르쉐도 이를 가만 지켜보진 않는다. 랜드로버는 고성능 및 최고급 양산모델, 레이싱카, 리미티드 에디션 등을 담당하는 ‘스페셜 비히클 오퍼레이션(SVO)’ 부서를 만들었다. 최근 공개된 레인지로버 스포츠 SVR은 이들이 만든 괴물이다. 독일 뉘르부르크링에서 SUV 중 가장 빠른 기록을 갖고 있는 모델이다. 포르쉐는 3세대 신형 카이엔과 날렵한 디자인에 초점을 맞춘 쿠페형 카이엔도 내놓을 계획이다. 또 플러그인 하이브리드 시스템까지 탑재하며 성능과 효율성을 동시에 노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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