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니인 듯 미니 같지 않은 클럽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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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니가 중요한 기로에 섰다. 프리미엄과 대량생산 브랜드 사이의 모호한 입지에서 벗어날 참이다. 당연히 나아가야 할 방향은 프리미엄 소형차다. 미니의 왜건 버전인 클럽맨이 그 신호탄으로 나섰다. 미니의 수많은 모델 중 하나였던 과거와는 달리 신형은 미니의 기함으로 포지셔닝했다. 프리미엄 브랜드 미니를 가장 앞서서 이끌 상징적 아이콘이다.
“정말 미니 맞아?” 출발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자연스레 이 말이 나왔다. 기자뿐만 아니라 이날 운전대를 쥔 기자 대부분이 뭔가에 홀린 듯 같은 말을 반복했다. 일본의 프리랜서 자동차 저널리스트 시마시타 야스히사의 의견 또한 비슷했다. “굉장히 편안하고 부드러워요. 실은 그래서 혼란스럽네요. 눈으로 보기엔 100% 미니인데, 손발의 느낌으론 미니의 그것을 찾기 어렵거든요.”
지난 10월 1일, 미니가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신형 클럽맨 국제시승회를 열었다. 시승 전엔 미니가 굳이 쌀쌀한 스웨덴까지 날아와 행사를 치르는 이유가 궁금했다. 그러나 시승이 시작되면서 호기심은 단숨에 미니로 쏠렸다. 미니가 주최한 프레젠테이션에서 홍보 총괄 안드레아스 람프카가 내린 정의는 실마리를 풀 열쇠였다. “클럽맨은 미니의 기함이에요.”
그의 ‘준비된’ 설명은 계속되었다. “클럽맨은 미니의 스타일을 유지하되 기능성과 활용성, 장거리 편의성을 극대화시켰어요. 고카트 필링과 편안한 승차감을 미니 역사상 최대로 조화시켰고요.” 이날 기자는 스톡홀름 알란다 공항을 출발해 고속도로와 국도를 누볐다. 차에 탑승한 채 페리도 두 번이나 탔다. 스톡홀름이 14개의 섬과 76개의 교량으로 이어진 탓이다.
미니 고유의 특징 살린 디자인
이번 클럽맨의 디자인은 미니의 전형적인 유전자를 고스란히 품었다. 가령 동그란 눈망울은 반짝이는 크롬 장식으로 감쌌다. 라디에디터 그릴은 육각형으로 다듬었다. 엔진 후드(보닛)는 볼록한 파워 돔을 머금었다. 그러나 실질적 기능은 없다. 흡기구도 막혀 있다. 보닛을 열어보면 엔진도 충분히 납작하다. 곧이어 나올 클럽맨 JCW(존 쿠퍼 웍스)를 위한 배려다.
프론트 그릴은 모델에 따라 차별을 뒀다. 미니 원 클럽맨은 검정색 바탕으로 채웠다. 쿠퍼 클럽맨은 번호판 위쪽에 크롬을 씌운 가로 줄을 세 가닥 그었다. 쿠퍼 S 클럽맨은 크롬 줄을 한 가닥만 긋고 그 위에 빨강색 ‘S’ 로고를 붙였다. 앞뒤 범퍼도 조금씩 다르다. 원과 쿠퍼 클럽맨은 크롬 띠로 차별화했다. 쿠퍼 S 클럽맨은 흡기구가 좀 더 입체적이다.
이번 클럽맨은 프론트 에이프런에 차폭등의 기능을 지닌 주간주행등을 달았다. 헤드램프는 위쪽의 LED 라이트 링과 그 아래의 방향지시등으로 기능을 나눴다. 옵션에 따라 LED 헤드램프는 코너링 램프 역할도 한다. 앞쪽 휠 아치엔 BMW에선 ‘브리더’(Breeder)라고 부르는 흡기구를 팠다. 이 홈을 지난 공기는 휠 앞에서 커튼처럼 펼쳐지며 소용돌이를 줄인다.
테일램프는 시원하게 키웠다. 좌우 바깥쪽에 원을 그려 넣고, 그 옆에 반원 세 개를 더했다. 그런데 브레이크 램프가 아니다. 방향지시등과 후진등만 들어온다. 정작 브레이크 램프는 범퍼에 따로 들어온다. 꽁무니 도어는 이전처럼 양쪽으로 연다. 일명 ‘스플릿’(Split) 도어다. 이전 세대는 동반석 뒤의 쪽문까지 도어가 총 5개였는데, 이젠 6개다.
‘스플릿’ 도어는 오른쪽과 왼쪽 문을 차례로 연다. 닫을 땐 반대다. 실수할 걱정은 없다. 오른쪽 문을 먼저 닫으면 걸쇠에 맞물리지 않는다. ‘스플릿’ 도어는 리모컨으로 하나씩 열 수 있다. 또한, BMW 일부 모델의 트렁크 도어처럼 뒤 범퍼 아래쪽을 향해 ‘발차기’ 시늉을 하면 오른쪽과 왼쪽 문이 차례로 열린다. 양문 아래쪽엔 조명을 달았다.
신형 클럽맨의 덩치는 과연 미니의 기함답다. 미니의 형제들 가운데 가장 크다. 신형 클럽맨의 차체 길이는 이전 세대보다 293mm 늘어난 4,253mm. 너비와 높이 또한 각각 115, 16mm 늘어난 1,800mm와 1,441mm다. 미니 5도어와 비교하면 길이 270mm, 너비 90mm, 휠베이스는 100mm 더 넉넉하다. 높이만 빼면 미니 컨트리맨보다 크다.
역사상 가장 크고 넓은 미니
미니 최대의 크기. 그건 미니 가운데 가장 넓은 실내를 뜻하기도 한다. 운전석에 앉는 순간 피부에 와 닿는다. 체감 공간이 굉장하다. 좌우로 쭉 뻗은 대시보드와 깊숙이 파 넣은 도어 트림 덕분이다. 뒷좌석에서 느끼는 공간감 역시 마찬가지. 거짓말 조금 보태 중형 세단에 앉은 듯 여유롭다. 그러나 뒷좌석 등받이가 다소 곧추서 있고 센터 암레스트도 없다. 허벅지 받침도 꽤 단단한 편이다.
신형 클럽맨은 총 5개의 좌석을 품었다. 미니는 ‘제대로 된 크기’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5명이 앉기에 충분하다. 앞좌석엔 전동식 조절장치를 준비했다. 미니 브랜드로서는 최초다. 시트 높이와 앞뒤 거리, 등받이 각도, 허리 받침 등을 스위치로 매만질 수 있다. 메모리 기능도 품었다. 시트는 취향에 따라 가죽이나 직물, 또는 두 가지 소재를 섞어 씌울 수 있다.
클럽맨의 트렁크는 모든 좌석에 사람이 앉았을 때 기준으로 350L. 그러나 뒷좌석을 60:40(40:20:40은 옵션)으로 나눠 접어 짐 공간을 필요에 맞게 확장해 쓸 수 있다. 뒷좌석을 모두 접을 경우 최대 1,250L까지 늘어난다. 게다가 ‘스플릿’ 도어가 화끈하게 열려 짐을 싣기가 편하다. 그러나 트렁크 입구와 바닥 사이 단차는 큰 편이다.
클럽맨은 각종 정보를 대시보드 한복판에 띄운다. 동그란 중앙 계기판 가운덴 옵션에 따라 2.7인치 투톤 또는 6.5나 8.8인치 풀 컬러 모니터를 품는다. 이 디스플레이를 통해 인포테인먼트, 전화, 내비게이션 등의 기능을 확인할 수 있다. 또한 스마트폰과 연계해 미션 컨트롤, 다이내믹 뮤직, 드라이빙 익사이먼트 등 미니 특유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클럽맨 프로젝트를 이끈 에른스트 프리케 박사는 “앱을 통해 스마트폰과 차를 연결할 수 있다. 그 결과 미니 커넥티드를 이용해 실시간 교통정보는 물론 영국에서 독일 라디오도 들을 수 있다”고 자랑했다. 모양과 조작법 모두 BMW의 최신 i드라이브와 판박이인 미니 컨트롤러도 달았다. 내비게이션을 비롯한 주요 기능을 이 다이얼과 버튼으로 소화한다.
시동은 심장이 두근거리듯 불을 밝히는 토글 버튼을 눌러 건다. 속도계와 타코미터는 운전대 위 계기판에 마련했다. 실내 곳곳엔 은은하게 빛나는 간접조명을 심었다. 운전석 문을 여닫을 땐 사이드미러에서 바닥으로 20초 동안 미니 로고를 비춘다. 천장엔 길이 120cm의 전동식 파노라마 선루프를 씌웠다. 쿠퍼 S 클럽맨엔 미니 헤드업 디스플레이도 준비했다.
미니 최초로 8단 자동변속기 얹어
신형 클럽맨의 파워트레인은 총 6가지다. 가솔린은 원(One)과 쿠퍼, 쿠퍼 S, 디젤은 쿠퍼 원 D와 쿠퍼 D, 쿠퍼 SD로 나뉜다. 원은 직렬 3기통 1.5L 가솔린 터보로 102마력, 원 D는 같은 형식의 디젤 터보로 116마력을 낸다. 쿠퍼는 원과 같되 출력이 34마력 더 높은 136마력이다. 쿠퍼 D는 직렬 4기통 2.0L 디젤 터보로 150마력, SD는 190마력을 낸다.
현재 클럽맨의 꼭짓점은 쿠퍼 S다. 직렬 4기통 2.0L 가솔린 터보 엔진을 얹고 192마력을 낸다. 변속기는 3기통엔 6단 자동, 4기통엔 미니 최초로 8단 자동을 물렸다. 굴림방식은 앞바퀴굴림 한 가지다. 사륜구동(미니 ‘올4’) 추가 계획을 물었다. 미니 개발 엔지니어 파리스 게룸은 “지금 말할 순 없지만, 부정할 수도 없다”고 했다. 결국 나온다는 이야기.
그의 말을 듣고 뒷좌석 바닥을 보니 센터터널이 불룩 솟았다. “그렇게 되면 컨트리맨과 너무 겹치는 건 아닌지” 물었다. 그는 “플랫폼뿐 아니라 운전석 높이나 공간활용성이 달라 충분히 차별된다”고 밝혔다. 클럽맨은 미니 중 유일하게 BMW 2시리즈 액티브 투어러와 같은 뼈대(UKL2)를 쓴다. 그래서 액티브 투어러와 휠베이스가 같다. 다만 서스펜션은 미니 해치와 같다.
폭스바겐의 ‘디젤 스캔들’을 의식한 탓인지 시승차는 쿠퍼 S 한 가지. 변속기만 6단 수동과 8단 자동 가운데 고를 수 있다. 기자는 8단 자동을 단 쿠퍼 S를 먼저 몰았다. “미니답지 않다”는 평가의 시작은 ‘정숙성’이었다. 특히 노면에서 올라오는 소음을 꽁꽁 틀어막았다. 신형 클럽맨에서 귀에 거슬리는 소음은 아이들링 때 차 바깥으로 흘러나오는 엔진 소리 정도다.
클럽맨은 기본과 그린, 스포츠 등 세 가지 운전 모드를 마련했다. 모드에 따라 차의 성격이 바뀐다. 가속 페달을 같은 깊이로 밟은 채 모드만 바꿔보면 금방 알 수 있다. 그린, 기본, 스포츠의 순서로 엔진회전수가 치솟는다. 그린 모드에서는 냉난방 장치까지 개입해 연료를 최대한 아낀다. 스포츠 모드에서는 운전대가 좀 더 묵직해진다. 큰 차이는 아니다.
8단 자동변속기 모델은 ‘글라이딩’ 기능도 담았다. 가속 페달에서 발을 떼면 엔진과 변속기의 연결을 끊는다. 엔진 브레이크 효과가 사라지기 때문에 관성을 최대한 이용해 달릴 수 있다. 기본 또는 그린 모드에서 시속 50~160km로 달릴 때 작동한다. 스타트-스톱, 제동에너지 회수, 액티브 플랩(고속에서 그릴 틈새를 막아 공기저항을 줄이는 장치)도 기본이다.
불편함 지우고 재미만 오롯이 살려
클럽맨 쿠퍼 S의 가속은 예상대로 시원시원했다. 그러나 한껏 부풀린 덩치 때문에 같은 심장을 얹은 미니 해치백의 경쾌한 발걸음과는 차이가 있다. 클럽맨 쿠퍼 S의 0→시속 100km 가속 시간은 자동 기준 7.1초. 수동이 오히려 0.1초 더 느리다. 변속기는 은밀하게 각 기어를 오르내렸다. 기함의 품위 때문인지 스티어링 휠에 패들시프트가 없는 점은 아쉬웠다.
승차감은 낯설다. 미니란 사실을 믿기 어려울 만큼 부드럽다. 스티어링 감각 역시 마찬가지. 한때 미니의 상징이던 ‘뻣뻣함’은 세대를 거듭나며 조금씩 누그러졌다. 급기야 클럽맨에선 자취를 감췄다. 굽잇길에서는 덩치와 무게를 느낄 수 있다. 코너를 얼싸안는 움직임이 좀 더 크다. 앞뒤 서스펜션이 차례로 수축되며 무게중심을 옮기는 과정도 한층 점진적이다.
그렇다면 미니가 클럽맨에서조차 ‘고카트 필링’을 주장하는 근거는 어디에 있을까? 바로 독특한 서스펜션 구조 덕분에 바짝 낮춘 무게중심과 정교한 섀시 제어기술에 있다. 가령 회전할 땐 코너 안쪽 바퀴에 제동을 걸고(코너링 브레이크 컨트롤: CBC), 주행안정장치(DSC)를 끌 경우 앞 차축의 전자제어식 차동제한장치(EDLC)가 구동력을 좌우로 쓸어 옮긴다.
과거 미니의 ‘고카트 필링’은 적응이 필요할 만큼 민첩하고, 부담스러울 만큼 거친 느낌을 뜻했다. 주행에 꼭 필요한 것만 갖춘 탈것의 원초적 감각을 의도적으로 부각시켰다. 그러나 신형 클럽맨과 더불어 미니의 ‘고카트 필링’은 새로운 차원으로 진화했다. 불편함을 낱낱이 발라내고, 드라이버가 의도한 대로 차가 움직이는 즐거움만 오롯이 남겼다.
이날 종일 클럽맨과 함께 했다. 이전의 클럽맨이나 다른 미니였다면 녹초가 될 법도 했다. 그러나 피곤하지 않았다. 클럽맨은 넉넉한 스케일만큼 운전감각과 승차감 모두 여유로웠다. 미니의 개성과 디자인을 선망하되 불편해서 망설였다면 마침내 기회가 왔다. 미니인 듯 미니 같지 않은 클럽맨이 답이다. 미니 또한 이 점을 노렸다. 이런 게 바로 ‘신의 한 수’다.
클럽맨의 뿌리
초대 미니는 1959년 최초의 클래식 모델 이후 60년대 초 모리스 미니 트래블러와 모리스 세븐 컨트리맨을 출시했다. 공간을 좀 더 창의적으로 활용할 수 있도록 옆면을 과감히 뜯어 고쳐 기본형인 클래식보다 길이는 25cm, 휠베이스는 10cm 더 늘렸다. 휴가나 여행에 어울리는 컨셉트로 개발되었으나 민첩한 조향 특성 덕분에 미니 고유의 운전감각은 고스란히 유지했다.
이후 1969년 클럽맨이란 이름이 클래식 미니의 라인업에 공식 등장, 20만 대 이상 팔린 모리스 미니 트래블러와 세븐 컨트리맨으로부터 바통을 이어받았다. 미니 클럽맨 에스테이트라고도 불린 클럽맨은 앞선 모델보다 길이가 10cm 늘어나 차체 길이가 3.4m에 달했다. 1982년 단종될 때까지 총 19만7,606대가 팔렸다.
클럽맨은 BMW 품 안에서도 계속 살아남았다. 2007년 부활한 클럽맨의 차체 길이는 3,945mm. 클래식 미니 클럽맨보다 무려 30cm 더 길었다. 또한 조수석 쪽엔 기본 도어와 맞물려 반대로 열리는 보조문을 달았다. 승하차 편의성을 위해서다. 뒷좌석 다리 공간도 3도어 미니보다 8cm 넉넉했다. 이 모델은 총 20만4,669대 팔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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