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묠니르를 손에 넣은 고결한 해치백, 볼보 V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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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세그먼트 해치백 시장에 전운이 감돌고 있다. 춘추전국시대의 서막이다. 환경부의 철퇴를 맞은 골프가 왕좌에서 물러나자 A클래스, 1시리즈, CT, 308, DS4가 도끼눈을 뜬 채 일촉즉발의 대치를 벌이고 있다. 바로 그때, 바이킹의 후손 V40이 전장에 뛰어들었다. 토르의 해머 묠니르가 은은한 빛을 발하자, 전장은 술렁이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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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위를 피해 카페에 앉아있었다. 옆자리 여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떤 아이돌은 눈이 달라졌네, 여배우 누구는 코가 바뀌었네”에서 시작된 대화는 “어디서 했다던데. 결과가 좋았네, 나빴네”로 이어지더니, 매몰법과 절개법, 실리콘과 서지폼의 장단점 분석으로 치달았다. 평소였으면 흘려들었을 이야기를 굳이 귀에 담아 두었던 건 카페 앞에 세워둔 시승차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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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형외과에 다녀온 스웨디시 바이킹

볼보의 막내가 눈, 코, 입을 손봤다. 성형외과 상담을 받을 때 누구 사진을 내밀었을지는 불 보듯 뻔하다. 새로운 아이언마크, 세로형 그릴, 헤드램프가 신형 XC90의 그것과 판박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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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고결한 자만이 손에 넣을 수 있는 묠니르(Mjolnir)를 두 눈에 담은 걸 보니, 집도의는 압구정 성형외과 의느님이 아닌 아스가르드에서 온 천둥의 신 토르(Thor)였던 모양이다. 새로운 망치눈은 기존 볼보차의 투박하고 보수적인 이미지를 시원하게 깨부수고 세련미와 우아미를 보는 이의 가슴 깊이 박아 넣었다.

프론트 그릴은 가로에서 세로로 결을 달리했다. 덕분에 무덤덤하던 표정이 사라지고 한층 적극성을 띠게 됐다. 그릴 중앙에 위치한 새로운 아이언마크는 군더더기가 없어 시크한 느낌이다. 엠블럼 바탕색이 파랑에서 검정으로 바뀌고 VOLVO 레터링이 작아지면서 링 안으로 폭 담겼다. 볼보가 지나온 긴 세월을 방증하듯 아이언마크의 화살표가 1시 반에서 2시 방향으로 살짝 고개를 틀었다. 덕분에 그릴을 가로지르는 대각선과 이 화살표가 똑 맞아떨어지면서 시침과 분침이 포개지듯 산뜻한 일체감으로 프론트 뷰에 화룡점정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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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시 패완얼이다. 예뻐진 얼굴 덕분에 예전 그대로인 옆모습까지 새삼 매력적으로 느껴진다. 잔뜩 누운 윈드실드와 후방상승형의 벨트 라인은 팽팽한 긴장감으로 보는 사람을 안달나게 한다. C필러를 따라 흐르는 L 모양의 테일램프와 검은 유리로 꾸며진 뒷모습은 10년 전 애플힙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C30의 앙증맞은 뒤태를 쏙 빼닮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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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테리어는 정갈하고 산뜻하다. 다른 프리미엄 브랜드에 비해 실내 구성이 화려한 건 아니지만 섬세한 터치와 높은 품질 덕에 오래두고 봐도 질리지 않을 디자인이다. 세 가지 디스플레이 모드에 따라 컬러와 구성을 달리하는 계기판, 베젤이 거의 없어 산뜻한 룸미러, 크지는 않지만 깔끔하고 실용적인 중앙 인포테인먼트 디스플레이, 센터페시아 뒤편에 꼭꼭 숨겨둔 살가운 수납공간까지. 실내 구석구석 군더더기 없이 깔끔한 스웨디시 프리미엄의 정수가 담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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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내는 부분변경 전과 똑같구나’ 했는데, 스티어링 휠 위에 앉은 새 아이언 마크와 에어벤트에 새겨진 CLEANZONE 레터링이 “나 신상이야”라며 수줍게 속삭인다. 이 레터링은 신형 V40에 CZIP(Clean Zone Interior Package)가 적용됐다는 의미다. CZIP는 탑승 전에 차 안 공기를 환기시켜주는 기능이다. 외기 온도가 10°C 이상일 때 리모컨 키를 통해 잠금 해제하면 실내 환기 사이클이 시작된다. 덕분에 한여름에 차에 탈 때도 숨 막힐 듯 답답한 공기를 마시지 않아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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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45mm의 휠베이스는 폭스바겐 골프(2,640mm)와 비슷한 수준. 실내공간이 보기보다 넓어 성인남자가 타더라도 2열 레그룸과 헤드룸이 빠듯하지 않다. 6:4 분할 폴딩이 가능한 뒷좌석 등받이는 접었을 때 트렁크 바닥과 평평해져 큰 짐을 깊이 밀어 넣기에 좋다. 트렁크 매트를 A 모양으로 세워 칸막이로 사용할 수 있다는 점 역시 단순하지만 솔깃한 장점이다.

심장을 두드리는 토르의 해머

D3, D4, T5로 구성된 파워트레인은 기존 모델과 동일하다. 볼보가 세계 최초로 개발한 지능형 연료분사 기술인 i-ART(Intelligent-Accuracy Refinement Technology)가 적용된 볼보의 드라이브 E 디젤 엔진은 인젝터 하나하나에 달린 센서가 각각의 실린더에 필요한 연료를 세밀하게 나눠 분사하도록 조정해준다. 때문에 하나의 센서로 정보를 받아 모든 실린더에 같은 양의 연료를 분사하는 다른 디젤 엔진에 비해 출력과 연료효율에 이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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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승차는 직렬 4기통 디젤 싱글터보 엔진의 D3 모델. 최고출력 150마력, 최대토크 32.6kg·m의 힘을 내고, 16.0km/L의 연비를 기록한다. 요즘 디젤 승용차를 시승할 때마다 빼놓지 않고 하는 말이지만 소음과 진동을 잘 걸러내 실내로는 거의 들이치지 않는다. 공회전 중에도 겔겔거림이나 덜덜거림이 없어 ‘디젤’이라는 말에 긴장했던 고막과 엉덩이가 한시름 놓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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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하고 안정적인 주행감은 두루두루 고급스럽다. 강성이 높은 든든한 섀시 덕에 기본기가 탄탄한 파워트레인과 서스펜션, 스티어링 등 각 부분이 기대 이상의 실력을 보여준다. 달리기 실력에 있어서만큼은 전과목 80점 이상을 줄 수 있을 것 같다. 6단 자동 기어트로닉 변속기는 엔진과 유기적으로 동작하며 두터운 토크를 매끈하게 앞바퀴로 전달한다.

기어레버를 운전자 쪽으로 당겨 주행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자, V40은 운전자의 발끝에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는 듯 기민하게 치고 나가며, 더 세게 밟아달라는 듯 구성진 곡조를 뱉어냈다. 디젤 엔진치고는 잘 정돈된 목소리가 마음에 든다. 젠틀하면서도 쫀득한 주행질감은 여유로운 드라이브를 즐기기에 충분하며, 스포츠 주행을 하기에도 무리가 없다. 겉치장이 화려하지 않고 ‘럭셔리, 프리미엄, 최고급’이란 말로 덕지덕지 포장하지도 않았지만 주행질감만으로 볼보가 진정한 프리미엄 브랜드라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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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전의 볼보, 수많은 모델 중에서도 V40은 특별하다. 세계 최초로 보행자 에어백을 달고나온 자동차이기 때문이다. 보행자 에어백은 안전을 향한 볼보의 의지에 끝이 없음을 보여주는 상징적인 기술이다. 물론 2016년 8월 현재 국내 판매 중인 V40에는 보행자 에어백 적용 모델이 없다(부분변경 전과 마찬가지로, V40 R디자인에 달려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볼보 V40이라는 이름 속에는 ‘2012 유로 NCAP 충돌 테스트에서 사상 최고 점수를 획득한 차’라는 빛나는 훈장이 숨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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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한 듯 긴급제동 시스템(시티 세이프티)과 사각지대경고 시스템(BLIS)이 기본 적용된다. 이러한 안전장비는 더 이상 볼보의 전유물이 아니지만 여전히 볼보의 상징이며, 그들이 오랜 시간동안 더 안전한 차를 만들기 위해 고심해왔다는 증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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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 볼보차는 강인하고 듬직하되, 고리타분하고 고지식해 보이는 차였다. 다시 말해 젊은 소비자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엔 어딘가 부족했다. 토마스 잉엔라트(Thomas Ingenlath)가 망치를 꺼내 든 이유다. 2006년부터 폭스바겐 디자인 총괄 부사장을 맡았고 2012년부터 지금까지 볼보자동차의 디자인 수장을 맡고 있는 그는 기존 볼보의 이미지를 깨부수고 새로운 디자인 아이덴티티를 정립해나가고 있다. 부분변경을 거친 V40은 옛 볼보와 요즘 볼보의 경계에서 두 시대의 가치를 한몸에 품었다. 기존 모델로부터 볼보 고유의 안전과 신뢰라는 유산을 넘겨받았으며, 신세대 볼보 디자인의 멘토 XC90과 S90으로부터 아름다운 얼굴을 물려받았다.

골똘히, 그리고 신중하게 새 얼굴을 감상했다. 등에 맺힌 땀이 어느새 식어 있었다. 남은 커피를 마저 마시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리모컨 키로 도어 잠금을 풀자, 묠니르가 은은하게 빛을 발했다. 성형 이야기로 꽃을 피우던 여자들의 시선이 V40으로 향했다. 바이킹은 기다렸다는 듯 해머를 높이 들어, 젊은 소비자의 가슴을 세차게 두드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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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래 기자
사진
최진호
제공
자동차생활(www.car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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