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범생의 과격한 벌크 업, BMW X5 M50d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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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V의 인기는 어제 오늘 일이 아니지만, 최근에 들어서는 유독 그 인기가 날로 높아지고 있다. 우리나라 시장을 기준으로 SUV의 시장 점유율은 내년 37%에 육박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패밀리 카라는 인식이 강했던 SUV가 생애 첫 차인 소형 세그먼트까지 그 세력을 확장하면서 매년 꾸준히 성장세를 보이고 있는 것이다.
운전 재미에 큰 의미를 두지 않는다면 상관없겠지만, 사실 달리기를 즐기는 매니아들에게 SUV는 썩 달가운 세그먼트가 아니다. 높고 무거운 차체와 (주로 탑재되는) 디젤 엔진은 고성능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함께 하는 가족에게 SUV만큼 편하고 실용적인 차는 없지만, 속도를 즐기는 운전자 입장에서는 포기해야 할 부분이 적지 않다.
하지만 이번에 시승한 BMW X5 M50d는 운전자의 숭고한 희생과는 거리가 있는 차다. 도심형 대형 SUV의 모범답안이라 할 수 있는 옹골찬 차체에 극적으로 벌크 업된 3.0L 트라이터보 디젤 엔진을 탑재해 넘치는 성능을 자랑한다. 완전한 고성능 버전인 X5 M보다 현실적인 효율을 갖추면서도 "M" 뱃지가 무색하지 않을 정도로 경쾌한 주행감각이 특징이다.
SUV에 이렇게 과격한 퍼포먼스가 굳이 필요한 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것처럼, 운전자의 즐거움을 보장할 수 있는 성숙한 패밀리 카라는 점에서 X5 M50d의 가치는 충분하다. 아우토반이 낳은 고성능 SUV는 실용성과 퍼포먼스를 모두 놓치고 싶지 않은 운전자들을 위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거대한 체구의 차는 첫 만남부터 기자를 압도했다. 앞서 형제 모델인 X6를 시승한 적 있지만, 쿠페 스타일의 루프라인 대신 테일게이트까지 쭉 뻗은 차체는 볼륨감이 상당하다. 시승차의 경우 흰색 바디 컬러가 차를 더 커 보이게 만들었다.
점잖은 일반 X5와 달리, M50d는 M 스타일 범퍼가 채택된다. 화려한 최신 M 스타일에 비하자면 얌전한 편이지만, 좌우의 공기흡입구는 제법 공격적 인상을 준다. 또 범퍼 하단과 사이드 스커트 역시 무광 검정이 아닌 바디 컬러와 같은 색상으로 도색되면서 온로드 주행에 집중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다. 여기에 전용 디자인 알로이 휠이 적용된다.
스포티하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지만, 원래 투톤이었던 바디가 모노톤으로 바뀌면서 다소 디자인적 액센트가 부족하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다. M 퍼포먼스 액세서리인 카본 프론트립과 디퓨저, 사이드미러 커버 등이 기본 적용된다면 보다 차별화가 잘 이뤄지지 않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실내 역시 M 스티어링 휠과 전용 시트 정도를 갖췄을 뿐이다. 인테리어 트림은 고급스러운 우드 트림을 채택했고, 시프트 노브와 도어 스카프 등에 M 뱃지가 눈에 띈다. 메탈 페달 등을 적용해줬어도 좋지 않았을까? 다른 모델의 M 퍼포먼스 패키지에 비해 유독 차별화에 인색하다.
기본적으로 X5의 최상위 모델인 만큼 편의사양은 화려하다. 스포츠 시트는 사이드 볼스터까지 조절 가능한 타입이고, 열선 및 통풍 기능을 모두 지원한다. BMW가 자랑하는 헤드 업 디스플레이(HUD)는 당연히 탑재돼 있다.
인텔리전트 세이프티 기능은 전방추돌경고, 대인충돌경고, 차선이탈경고를 지원하고, 어댑티브 크루즈 컨트롤도 적용되지만 차선유지보조 기능은 적용되지 않는다. 기함으로서는 아쉬운 부분이다. 대신 14년형 대비 오디오 시스템이 하만 카돈에서 뱅 앤 올룹슨으로 교체되면서 감성적인 만족감은 높아졌다.
여유로운 뒷좌석과 클램쉘 타입의 테일게이트는 여전히 매력적이다. 대형 SUV의 실용성과 편의성이라는 본질에 충실하다. 공간 활용도에 있어서는 불만을 찾기 어렵다.
X5 M50d의 안팎을 둘러봤지만, 좀처럼 확연한 차별점을 찾기가 쉬운 일은 아니다. 약간의 디테일 업 정도에 그치는 기분이다. 하지만 실망하기는 이르다. 현용 3L급 디젤 엔진 중 최고의 성능을 발휘하는 50d 엔진이야말로 이 차의 진가이기 때문이다. 엔진 커버에 새겨진 "M 퍼포먼스" 로고는 예고편일 뿐이다.
제원을 살펴보자. 3.0L 직렬 6기통 트라이터보 디젤 엔진은 최고출력 381마력, 최대토크 75.5kg.m의 성능을 낸다. 3L급 엔진 중에서는 경쟁상대가 없다. 이 엔진은 폭스바겐 그룹의 4.2L V8 TDI 엔진과 견주는 것이 맞겠다. 참고로 4.2 TDI 엔진은 최고출력 382마력, 최대토크 86.7kg.m 가량의 성능을 낸다. 이 엔진은 국내에서 포르쉐 카이엔과 아우디 A8 등에만 탑재된다.
코드명 N57S인 M50d의 심장은 M67이라 불리던 V8 디젤 엔진의 다운사이징 버전이다. 총 6종의 N57 계열 엔진 중 가장 강력한 성능을 내기 위해 회전수 역시 최고 5,400rpm까지 사용하는 점이 특징이다. 디젤 엔진은 구조적 한계로 인해 고회전 영역의 사용이 어려움에도 5,000rpm 이상의 회전수를 내는 점이 매력적이다.
"외계인을 고문했다"는 말이 어울리는 이 엔진 덕에 2톤이 넘는 X5의 거구는 5.3초 만에 100km/h에 도달하며, 최고속도는 250km/h에서 전자 제한된다. 스포티하게 세팅된 ZF제 8속 자동변속기와 xDrive 전자식 풀타임 4륜구동 시스템의 조합은 뿜어져 나오는 퍼포먼스를 안정적으로 노면에 전달한다. xDrive 시스템은 전후 구동력을 100:0~0:100까지 배분할 수 있어 가속하는 순간에는 휠 스핀 없이 내달리도록 도와주며, 코너에서는 전륜의 구동력 배분을 늘려 오버스티어를 방지한다.
가속은 매우 경쾌하지만, V8 디젤과는 다른 느낌을 준다. 카이엔 S 디젤이 뿜어져 나오는 토크를 추스리며 폭발적으로 치고나가는 느낌이라면, M50d는 매끄럽게 차체를 밀어내는 듯한 가속감이다. 제원 상으로는 비슷한 성능이나, 상대적으로 작은 배기량의 한계를 세 개의 터보차저를 이용해 끌어올린 만큼 대배기량의 여유와는 다소 차이가 있다. 머릿털이 곤두설 정도는 아니지만, 아드레날린이 뿜어져 나오기엔 충분한 가속력이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로 바꾸고 시프트 노브를 S 레인지로 옮기면, 차는 망설임 없이 가속할 준비를 마친다. 서스펜션 역시 컴포트 모드에서는 일반 X5와 별 차이가 없지만, 스포츠 모드에서는 단단해지며 육중한 차체를 거뜬히 받아낸다. 워낙 큰 차체 때문에 코너링을 예리하다고 하기는 어렵지만, 운전자가 원하는 만큼 깔끔하게 돌아나가는 실력은 평균 이상이다. BMW가 사용하는 "SAV(스포츠 액티비티 비클)"라는 표현이 부끄럽지 않다.
고집스럽게 스포티한 차를 만들어 온 BMW는 지난 십수년 새 판매가 배 이상 성장하며 보다 다양하고 보편적인 수요에 대응하는 상황에 직면했다. 2000년 전 세계에서 83만 대를 팔았던 BMW는 지난 해 200만 대가 넘는 신차를 판매했다(그룹 기준). 자연히 특유의 묵직하고 스포티한 주행감각이 갈 수록 희석된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었다.
하지만 일반 모델에서 BMW의 색이 연해지는 만큼, "M" 뱃지가 부착된 모델들은 과거 이상으로 스포티한 드라이빙을 선사한다. 선택과 집중이라 해도 되겠다. 흥분되는 퍼포먼스를 원하는 드라이버를 위한 BMW의 극적인 처방전은 BMW의 기함 SUV인 X5에서도 유효하다. 첨단 기술이 집약된 트라이터보 엔진은 V8 못지 않은 퍼포먼스를 내면서도 우수한 효율을 자랑하고, 코너링 역시 발군이다.
BMW에는 몬스터 SUV라 할 수 있는 X5 M이 존재하지만, 무시무시한 외모에 연료를 들이키며 동승객의 등골을 서늘하게 하는 하드코어한 X5 M은 스피드를 갈망하는 이에게조차 너무 부담스러울 수도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 않는 퍼포먼스를 온전히 지니고도 다소곳한 스타일에 안락하고 효율적인 X5 M50d는 대안이 될 수 있다. 말도 잘 듣고 공부도 잘 하지만, 웃통을 벗으면 운동선수 못지 않게 벌크 업된 근육까지 갖춘, 반전매력의 모범생 같은 차가 바로 X5 M50d인 것이다.
자, 이제 아찔한 스포츠카와 연비 좋은 패밀리 카가 모두 필요한 이들을 위한 완벽한 해답이 여기 있다. 1억 3,760만 원의 X5 M50d를 만나기 위해서는 일반 X5 30d보다 4,320만 원을 더 지불해야 한다. 2,240만 원을 더 지불하면 X5 M을 선택할 수도 있다. 퍼포먼스와 실용성의 현실적인 타협안이지만, 가격 만큼은 퍽 비현실적인 것이 유일한 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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