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르세데스-AMG C63 시승기, “M의 권좌에 도전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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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프리미엄 브랜드들이 고성능화에 뛰어들면서 가장 먼저 선보이는 것이 다름아닌 D-세그먼트 스포츠카다. BMW M, 메르세데스-AMG, 그리고 아우디 RS 등 전통의 강호들은 이 고성능 격전지에서 자신들의 색깔을 보여주기 위해 이미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여기에 렉서스의 RC F, 캐딜락의 ATS-V, 알파로메오 쥴리아 등이 신흥 라이벌로 뛰어들고 있는 형국이다. 심지어는 현대조차 제네시스 브랜드의 컴팩트 세단이 될 G70의 N 버전을 선보이겠다고 공언했다.
그렇다면 왜 많은 사람들은 D-세그먼트 스포츠카에 열광하는가? 문득 궁금증이 생길 만한 주제다. 우선은 운전 재미와 퍼포먼스, 실용성이 가장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체급이라는 까닭이 클 것이다. 이보다 작으면 차체의 한계로 인해 출력을 무작정 끌어올리기 어려운데다 퍼스트 카로 사용하기에는 다소 좁은 공간과 저렴한 마감이 걸린다.
반면 이보다 큰 차들은 슈퍼카에 버금가는 심장을 얻는 대신 컴팩트 카의 예리한 운전 감각을 희생하기 마련이다. 1억 원 안팎의 가격은 결코 만만치 않지만, 자동차 매니아들의 현실적인 드림카로 자리매김하기에도 충분히 합리적이다.
이 세그먼트에서는 BMW M3/M4가 절대적인 지지를 얻고 있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을 것이다. 물론 취향의 차이지만 데일리 카로 타기에 부담스럽지 않으면서도 아찔한 운전 재미를 선사하는 M3/M4의 밸런스는 이미 명성이 자자하다. 반면 기존의 AMG는 강력한 V8 엔진의 가속력이 매력적이지만 코너링 퍼포먼스에서는 부족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새로운 C63이 나선다면 어떨까? 이제는 메르세데스-벤츠 C63 AMG가 아닌 메르세데스-AMG C63이라 불러줘야 한다. 유서깊은 AMG의 이름을 전면에 내세워 제대로 붙어보겠다는 것이다. 새 심장은 더 가벼워졌지만 동급에서 최고로 강력해졌고 꽉 조여진 세팅 덕에 이제는 코너에서도 망설임이 없다. 과연 메르세데스-AMG C63은 M의 공고한 권좌를 무너뜨릴 수 있을 것인가?
C 클래스는 일찍이 퍼포먼스 모델을 선보이며 그 역사를 이어왔다. C 클래스의 전신인 190E부터 DTM 출전을 위한 호몰로게이션 카를 선보였었고, 이후 1세대 C 클래스(W202)부터 매 세대마다 V8 엔진을 탑재한 AMG 라인업을 갖췄다. 최초에는 4.3L V8로 시작해 5.5L V8을 거쳤고, 지난 세대인 W204에서는 6.2L V8에 이르며 절정에 다다랐다.
그러나 컴팩트한 차체와 대배기량 자연흡기 엔진의 조합도 세계적인 다운사이징의 흐름은 피해가지 못했고, 이번 세대에서는 새로 개발된 M177 4.0L V8 바이터보 엔진을 탑재하게 됐다. 최고출력과 최대토크는 일반 모델이 476마력에 66.3kg.m, S가 510마력에 71.4kg.m을 마크해 이번에도 역시 동급 최고의 출력을 자랑한다. 시승차는 후륜구동 방식의 일반 C63.
새 엔진은 앞서 출시된 메르세데스-AMG의 플래그십 스포츠카, 메르세데스-AMG GT의 M178 엔진과 설계를 공유해 더욱 의미가 크다. 그룹에서 가장 강력한 퍼포먼스 카와 같은 심장을 쓰는 셈이다. 다만 오일 순환 시스템과 흡기 시스템에 약간의 차이가 있을 뿐 출력도 동일하다.
AMG의 "원 맨-원 엔진(One Man-One Engine)" 방침에 의해 C63의 엔진도 한 사람의 장인에 의해 조립된다. 갈 수록 엔진이 작아지는 시대에 V8 엔진은 여전히 높은 가치를 지닌다. 이제 동급 경쟁모델에서 V8 엔진이 얹힌 차는 렉서스 RC F 정도만 남았다.
이 근사한 심장이 얹히는 차체는 W205 C 클래스의 모습을 하고 있지만, 근육질 차체를 더욱 벌크업했다. 전장이 35mm, 전폭이 30mm 길어지고 전고는 10mm 낮아져 공기역학 성능과 접지력을 극대화하는 스포츠카의 형상이 됐다. 온 세상 공기를 다 빨아들일 것만 같은 과격한 범퍼와 리어 디퓨저, 립스포일러는 각각 카본 파이버로 꾸며져 멋스러움을 더한다.
싱글 루브르 그릴은 격자무늬 대신 메쉬 타입이 적용되고 AMG 로고가 더해진다. 인텔리전트 LED 헤드라이트 역시 기본사양. 레이싱용 센터락 휠을 연상시키는 19인치 알로이휠도 퍽 저돌적이다. 타이어 트레드는 앞 245mm, 뒤 265mm가 적용되고 출고 타이어로는 던롭 스포츠맥스가 장착된다.
개인적으로는 지나치게 티나지 않는 스포츠 모델을 선호하기 때문에 경쟁자들 대비 비교적 얌전(?)한 AMG C63이 마음에 들지만, 좀 더 돋보이고 싶은 이에게는 불만일 수도 있겠다.
문을 열면 누구나 감탄사가 터져나올만큼 멋진 실내가 반긴다. 레이아웃은 일반 C 클래스와 다를 것이 없지만, 소재와 마감품질 만큼은 명성에 걸맞는 최고의 수준이다. 앞서 M4와 RS5, RC F까지 웬만한 경쟁 모델은 다 시승해 봤지만, 어느 차도 실내만큼은 C63에 견줄 수 없다.
가죽 시트는 퀼팅 마감된 나파 가죽이 기본인데 착좌감은 실로 탁월하다. 운전 피로가 거의 없을 정도로 편안한 디자인이지만 홀딩도 뛰어난 편. 여기에 트림은 은색 메탈 재질과 카본 파이버가 혼용돼 고급스러우면서도 스포티한 분위기가 실내를 뒤덮는다. 7,000rpm에서 레드존이 시작되는 타코미터와 320km/h까지 새겨진 속도계, 그리고 클러스터의 체커패턴이 이 차가 진짜배기 AMG임을 실감케 한다.
C63에는 두 개의 명품 브랜드가 공존한다. 하나는 S 클래스의 오디오로 유명한 부메스터 13-스피커 오디오 시스템. S 클래스의 24-스피커 3D 오디오 시스템에 견줄 수는 없지만 맑고 청명한 사운드를 자랑한다. 또 하나는 스위스의 IWC 시계다. 모든 C 클래스에는 아날로그식 시계가 센터페시아에 부착되지만, C63만큼은 장인이 수제작한 IWC 시계로 대체돼 고급스러움을 강조한다.
실내에서 가장 불만인 것은 시프트 레버가 센터 터널에 위치하지 않고 일반 C 클래스와 마찬가지로 칼럼식 시프트 노브가 적용됐다는 점이다. 원래 메르세데스-벤츠 승용 모델들을 모두 칼럼식 시프트 레버를 채택하고 있지만, AMG 만큼은 센터 터널에 배치하는 것이 불문율이었다. 심지어 가장 작은 A·CLA·GLA AMG마저도 센터 터널에 스포츠 타입 레버가 위치했었다. 커맨드 조작 시스템과 수납공간을 모두 포기하지 않기 위함이지만 영 아쉬움을 떨치기 어렵다.
이제 시동을 걸고 AMG의 고동을 느낄 시간이다. 우렁찬 사자후와 함께 회전계 바늘이 가파르게 치솟는다. 순정 배기음이 여느 V8 스포츠카보다도 근사하다. 아이들링과 일상 주행에서는 배기음을 강조하되 엔진 사운드는 절제해 불필요한 소음을 유발하지 않지만 회전수를 높이면 이내 부드러우면서도 카랑카랑한 소리를 내뿜는다.
변속기는 7단 MCT가 채택됐다. 변속용 클러치와 출발용 습식 클러치가 조합된 이 독특한 변속기는 수동 못지 않은 체결감을 자랑하지만,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정체구간이나 골목길 서행 상황에서는 출발할 때마다 다소 울컥임이 느껴진다. 그것조차도 매력으로 여기고 사랑할 수 있다면 모를까, 영 거슬리기는 한다.
하지만 속도를 높이면 그런 불만은 이내 사그러든다. 드라이브 모드는 에코·컴포트(노멀)·스포츠·스포츠 플러스 및 인디비주얼 등 5가지 세팅을 제공하며 이와 별개로 강제변속이 이뤄지지 않는 완전 수동모드 버튼이 존재한다. 서스펜션 감쇠력도 3단계로 개별 조작이 가능해 노면이 나쁜 곳이라면보다 부드러운 승차감을 선택할 수도 있다.
가속은 이 작은 차체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울 정도로 빠르다. 0-100km/h 가속은 일반 C63이 4.1초, C63 S가 4.0초면 마무리된다. 경쟁 모델과 비교하자면 M3/M4가 4.1초, RS5와 RC F가 4.5초, ATS-V가 3.8초에 이른다. 4매틱이 적용된다면 보다 안정적이고 빠른 가속이 가능하겠지만, 국내에 수입되는 모델들은 후륜구동이다.
정차 상태에서 출발하는 일순간 약간의 터보래그가 느껴지다가 터빈이 작동하면서 마치 끌어당기듯 튀어나가는 맛이 일품이다. 결코 경박스럽거나 우악스럽지 않은 가속이다.
하지만 C63이 가속력이 뛰어나다는 것은 이미 이전 세대부터 공공연한 사실이었다. 우수한 가속력에도 불구하고 스포츠 드라이빙을 즐기는 이들에게 2% 부족하게 느껴졌던 것은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코너링 성능 때문이었다. 체급에 맞지 않는 거대한 엔진과 일반 모델의 경우 LSD(리미티드 슬립 디퍼렌셜)이 장착되지 않은 드라이브트레인 탓에 좀처럼 코너를 예리하게 파고들지 못했고, 오죽하면 "직진 대장"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까지 얻어야 했다.
하지만 단언컨대 새로운 C63의 코너링 실력은 그야말로 발군이다. 우선은 새 엔진 덕이 크다. 무게도 줄였을 뿐 아니라 엔진 자체를 컴팩트하게 설계해 무게중심을 보다 차량의 중심 쪽으로 옮기고 더 낮게 배치하는 데에 성공했다. 이와 더불어 전 모델에 LSD를 기본 장착해 코너링을 대폭 향상시켰고 C63 S의 경우 전자식 AMG 리어액슬 LSD가 탑재돼 3단계로 차량의 거동을 조작한다.
눈부신 초고속 안정성을 만끽하며 고속화도로를 가로지른 뒤, 드라이브 모드를 스포츠 플러스로 바꾸고 산길에 올랐다. 아이들링 회전수가 소폭 상승하면서 언제든 가속할 준비를 마친다. 배기 역시 매 변속 순간마다 팝콘이 튀겨지는 듯한 후적음을 내며 짜릿함을 더한다. 가속 페달을 힘껏 밟자 스포츠 ESP가 날뛰는 준마의 고삐를 쥐어잡고 달리기를 시작한다.
코너에 들어서는 순간은 매번 놀라움의 연속이다. C63이 이렇게 잘 도는 차였나? 코너에 진입할 때까지는 앞이 무거운가 싶더니 어느 순간 코너 안쪽으로 빨려들어가듯 예리하게 선회하며 무서운 속도로 빠져나간다. 후륜구동이라 두렵지만 두툼한 타이어는 쉬 접지력을 잃지 않고 차체를 운전자가 원하는 방향으로 인도한다. 재가속이 시작되면 무서운 속도로 치솟는 회전수에 변속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쏜살같이 나가다가도 바닥에 가라앉듯 멈춰서는 강력한 브레이크 시스템도 퍽 미덥다.
어쩌면 서스펜션은 일상에서 좀 불편하겠다는 생각도 든다. 컴포트 모드에서도 서스펜션은 상당히 단단한 편인데, 예전같으면 컴포트 모드에서 긴장이 완전히 풀린 편안함을 제공했을 AMG가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다. 앞서 AMG GT를 시승할 때도 메르세데스라고는 믿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하고 유격 없는 세팅이 인상적이었는데, C63 역시 크게 다르지 않다. 스포츠 플러스에서는 극단적으로 더욱 단단해지지만 희안하게도 노면이 좋지 않더라도 접지력을 완전히 잃고 튀어오르지는 않는다. 물론 스포츠 플러스는 서킷에서 가장 잘 어울린다.
메르세데스-AMG C63은 슈퍼카 AMG GT의 손맛과 가속력을 오롯이 옮겨 심은 컴팩트 스포츠카다. 이전 세대가 완전히 잊혀질 정도로 예리한 거동과 명불허전 AMG다운 폭발적인 가속력의 조합은 다른 모든 경쟁자를 잊게 만들어 준다. 여기에 오직 C63에서만 만날 수 있는 초호화 실내까지 마음에 쏙 든다.
일반 C63의 가격은 1억 1,440만 원으로 M3/M4(1억 1,140만 원)와 가격표 상으로는 별 차이가 없지만, BMW의 높은 할인율때문에 상대적으로 비싸게 느껴지기는 한다. 하지만 전반적인 차의 만듦새나 퍼포먼스, 주행질감은 가격 차이를 기꺼이 감수할 수 있게 만들어 준다.
아마 이 세그먼트를 고민하는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BMW M에 대한 무한한 신뢰를 보낼 것이다. C63은 가속을 즐기는 이들을 위한 편안한 차일 뿐이며 서킷은 M의 독무대였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하지만 상황이 바뀌었다. M이 일상의 실용성을 고민하는 사이 AMG는 느슨함을 바짝 조이고 맹렬한 추격을 시작했다.
예전같은 AMG의 여유를 기대했던 이에게는 실망스러울 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경주장에서 붙어볼 만한 차가 됐다는 것은 환영할 일이다. 이어서 출시될 쿠페와 카브리올레에 대한 기대도 더욱 커졌다. 기회가 된다면 M3/M4와 제대로 달려보고 싶다.
메르세데스-AMG C63은 고상한 투어러의 영역을 벗어나 칼처럼 예리한 스포츠카로 환골탈태했다. 이제는 M의 무대를 뒤집고 이 세그먼트의 강자로 부상한 것이다. 말 그대로 게임 체인저(Game Changer)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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