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시승기

럭셔리와 스포츠의 절묘한 조합, 메르세데스 벤츠 SL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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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L이 약 4년 만에 부분변경을 거쳤다. 컨셉트는 이전과 같지만 성격은 조금 달라졌다. 럭셔리 로드스터와 스포츠 로드스터의 애매한 경계 어딘가를 절묘하게 짚었다. 이제 SL을 다시 볼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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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히 AMG SL63일 줄 알았다. 그런데 차를 받아보니 ‘일반’ SL이었다. 왜 착각하고 있었는지 모르겠다. 홍보 담당자가 ‘신형 SL’이라고만 말해서 그런 것 같다(…뻘쭘). 어쩌면 그동안 메르세데스 벤츠 코리아가 AMG SL63을 주력 모델로 내세워서 그랬을 수도 있다. 꽤 오랫동안 이런 스페셜티카는 AMG 버전이 진리인 것처럼 굴지 않았던가? 현재도 그들은 S클래스 쿠페와 카브리올레는 AMG 버전만 공급하고 있다.

어쨌든, 약간의 실망감과 함께 운전석 시트에 몸을 포갰다. 트렁크 리드에 붙어 있던 엠블럼은 SL400. 예전 SL350을 대체하는 SL의 엔트리 모델이다. 엔진의 숨통을 트니 예상외로 날카롭고 묵직한 소리가 고막을 때렸다. 차들이 빽빽이 들어찬 실내 주차장이라 그렇겠거니,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건물을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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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기자가 글러브박스에서 등록증을 꺼내보고 차에서 내려 엠블럼을 재차 확인하는 데에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운전 감각이 그간 알고 있던 SL400과는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조금이나마 실망했던 것이 미안할 만큼 자극적이고 빠릿빠릿했다. 분명 AMG 43(450 AMG)쯤 되는 것 같은데, 등록증과 엠블럼은 모두 400이었다. 그것 참 환장할 노릇. 결국 기자는 담당자에게 전화를 걸어 물었다. “이 차 정체가 뭐에요?”

못난 얼굴은 잊어주세요

SL이 부분변경을 거쳤다. 현행 6세대(R231)가 2012년 데뷔했으니 약 4년 만의 변화다. 그간 SL의 세대교체 주기는 최소 10년. 따라서 5년은 버틸 줄 알았는데 다소 의외다. 컨셉트는 이전과 같은 럭셔리 로드스터다. 하지만 성격은 조금 달라졌다. 분위기와 주행 감각이 이전보다 한결 스포티하다. 기존의 GT 성향을 조금 덜어냈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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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부분변경의 백미는 새 얼굴이다. 범퍼와 그릴은 물론 보닛, 펜더, 헤드램프 등 윈드실드와 A필러를 제외한 모든 부분을 새로 만들었다. 부분변경이 아닌 세대교체라고 해도 믿을 수 있을 정도다. 사실 변경 전의 앞모습은 SL(SuperLight, 초경량)이라는 이름에 걸맞지 않게 둔탁해 보였다. SL의 인기가 조금 시들해진 것도 바로 이 때문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지금은 SL의 전성기를 다시 한번 재현할 수 있을 만큼 매력적이다. 메르세데스 AMG GT처럼 매끈하고 날카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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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형적인 FR 스포츠카의 비례는 그대로다. 여전히 프론트 액슬과 A필러의 간격이 아득하다. 물론 AMG GT만큼 기형적이진 않다. 같은 2인승 스포츠카이긴 하지만, SL은 리트렉터블 알루미늄 루프와 제대로 된 수납공간을 갖춘 GT 하드톱 컨버터블이다. 때문에 뒤 차축 앞뒤 공간을 확보하기 위해 캐빈룸을 조금 앞쪽으로 조금 밀어냈다. 참고로 국내에 수입되는 신형 SL400은 ‘AMG 라인’ 범퍼와 휠 등이 기본이라 AMG SL63 못지않게 스포티한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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뒷모습 역시 한층 더 날렵해졌다. 테일램프를 붉게 물들이고 범퍼를 오밀조밀하게 다듬었을 뿐인데 분위기가 확 바뀌었다. 하지만 실내에는 큰 변화가 없다. 한층 더 입체적인 D컷 스티어링 휠과 애플 카플레이를 지원하는 신형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커맨드) 등이 눈에 띄는 전부다. 견고한 느낌의 대시보드와 제트 엔진 모양의 송풍구 등 벤츠의 최신 스포츠카 인테리어 스타일링이 이미 도입된 상태이니 아마 크게 손볼 곳이 없었을 것이다. 개인적으로는 센터페시아의 정신없는 버튼들이 그대로라 조금 아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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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피부에 크게 와 닿는 개선들은 적지 않다. 하드톱 적재공간을 스스로 확보하는 오토매틱 부트 세퍼레이터가 대표적이다. 덕분에 지붕이 움직이지 않아 트렁크를 들여다볼 일이 크게 줄었다. 루프 개폐 도중 시속 40km까지 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도 반가운 변화. 참고로 루프는 리모트 키로도 작동되며 열거나 닫는 데 걸리는 시간은 약 15초다.

AMG 43이나 다름없는 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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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은 이전 SL400과 같다. V6 3.0L 가솔린 바이터보 M276이다. 하지만 최고출력과 최대토크가 개선됐다. 이전보다 약 34마력, 2.0kg·m 더 높은 367마력의 출력과 50.9kg·m의 토크를 낸다. 흥미로운 건 AMG 43 엔진과 최고출력은 같고 최대토크는 겨우 2.2kg·m 적다는 점이다. 즉, 이름만 400일 뿐 실제로는 SL에 맞게 캘리브레이션을 거친 AMG 43 엔진이나 다름없는 셈이다. 사실 400 엔진은 그대로 두기에는 포텐셜이 워낙 높았다. 벤츠가 바이터보 M276의 다양한 버전을 만드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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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속 감각은 굉장히 경쾌하다. 엔진도 엔진이지만 이런 느낌에는 신형 변속기도 한몫하고 있다. 전진 기어가 7개에서 9개로 늘었고, 변속 시간도 확연하게 줄었다. 또한 다운 시프팅 때는 능숙하게 회전수까지 보상한다. 덕분에 ‘터보랙’ 따위를 느낄 겨를이 없을 뿐더러 굽이진 길에서도 한층 더 즐겁다. 물론 실제 성능도 개선됐다. 0→ 시속 100km 가속을 이전보다 0.3초 줄어든 4.9초 만에 끝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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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운드는 굉장히 자극적이다. 기존 V6와는 차원이 다르다. 스포츠 버전의 V8과 비교해도 좋을 정도다. 엔진이 쏟아내는 날카로운 고음과 트렁크의 사운드 제너레이터가 내뱉는 웅장한 저음의 조화가 굉장히 매력적이다. 기자가 이 차의 정체를 의심한 것도 바로 이 사운드와 핸들링 때문이다. 사실 기자의 몸은 10% 정도의 출력 차이나 가속 성능 차이를 바로 알아챌 만큼 민감하지 않다. 비교 시승이라면 또 몰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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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진의 반응이나 사운드만큼 섀시도 탄탄하다. 완벽하게 파워트레인을 압도하고 있다. 스티어링 조작에 즉각적으로 반응하는 것은 물론, 한계를 넘어서는 시점에서도 운전자에게 무게이동 과정을 세밀하게 전달한다. 특히 서스펜션의 완성도가 인상적이다. 수축 과정은 부드럽고 이완 과정은 단호해 자세 제어 능력과 승차감이 모두 훌륭하다. 이 정도라면 고성능 버전에 들어가는 공기압(에어매틱) 또는 가변 유압(ABC) 방식의 서스펜션보다 SL400의 재래식(스틸 스프링) 서스펜션이 더 나을 수도 있겠다. 움직임이 솔직하고 유지보수 비용도 훨씬 적게 드니 말이다.

아쉬운 점도 있다. 뒤 타이어는 노면을 간간이 놓쳤고, 주행안정장치(ESP)는 지나치게 보수적이었다. 물론, 타이어 길들이기마저 채 끝나지 않은 신차였다는 점과 AMG 버전이 아닌 ‘일반’ SL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리 흠잡을 거리도 아니기는 하다.

이제 SL을 다시 볼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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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형 SL은 외모, 운전감각, 성능이 모두 스포티해졌다. 럭셔리 로드스터와 스포츠 로드스터의 애매한 경계 어딘가를 절묘하게 짚었다. 이는 완벽한 GT를 지향하는 오픈톱 모델 S클래스 카브리올레와 곧 등장할 정통 스포츠 오픈톱 모델 AMG GT 로드스터를 의식한 결과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오픈톱 모델(5종)을 소유하고 있는 메르세데스 벤츠이기에 가능한 전략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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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SL은 ‘고성능 벤츠’를 상징하는 차였다. 하지만 최근에는 슬럼프에 빠져 지냈다. 이는 SLR 맥라렌, SLS AMG에 치여 소극적인 자세를 취했던 6세대(R231)부터 시작됐고, AMG GT의 등장으로 인해 심화됐다. 메르세데스 벤츠는 이번 부분변경을 통해 SL의 성격을 재정립하려 하고 있다. 이런 변화는 신형 SL400에서 더욱 뚜렷하게 와 닿는다. 아마 메르세데스 AMG SL63이나 SL65를 탔다면 이를 눈치 채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이전에도 무지막지했고 지금도 무지막지할 것이 뻔하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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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민 기자
사진
최진호
제공
자동차생활(www.carlife.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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