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얼굴, 넓은 가슴. 야마하 MT-10 시승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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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T시리즈의 새로운 기함인 MT-10은 독특한 외형으로 등장 전부터 화제가 됐다. 우리가 시승할 차량은 메인 컬러인 맷 그레이에 형광색 휠이 어우러진 모델이다. 마치 애니메이션에서 툭 튀어나온 듯한 느낌이다. 혹자는 영화 <트랜스포머>의 악당 로봇 같다고 하는데, 아무튼 일반인에게도 강렬하고 신선한 인상을 주는 것만은 확실하다.
MT-10은 독특한 외형만큼 강력한 심장을 가졌다. 크로스 플레인 4기통 엔진을 사용한 YZF-R1과 같은 DNA를 가졌기 때문이다. 지난 달의 기사 내용대로 스즈카 내구레이스에서 2연패를 달성한 그 엔진이다.
관계자는 YZF-R1에 비해 오히려 더욱 강력해 진 점이 중간영역대의 두터운 토크라고 설명했다. 우리는 그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보기로 했다. 박스형 둔탁한 모양으로 이뤄진 스위치 뭉치를 둘러보니 작게 스타트 버튼이 있다. 엔진은 가볍게 돌며 아이들링 상태에서는 무척 조용하다. 병렬 4기통 특유의 웅웅거리는 부밍음이 없는 것은 이 엔진의 독특한 필링 중 하나다.
스로틀은 전자제어식으로 와이어의 저항감은 없다. 스탠다드 모드, A모드, B모드로 구성된 엔진 맵핑은 다양한 수준의 라이더에게 즐거움을 준다고 하는데, 일단 스탠다드 모드부터 경험해보기로 했다.
시트에 착석하니 스포츠 바이크답지 않은 평평한 경사의 넓고 푹신한 재질감이 안락했다. 핸들은 연료탱크에 바짝 붙어있고 상체 포지션은 오리지널 네이키드 바이크에 가까웠다.
핸들은 두텁지만 양쪽으로 길게 뻗어 나온 요즘 스트리트파이터와 달리 좁은 편이다. 이런 점이 동양인 체형을 가진 우리에게 더 편안한 포지션을 제공한다. 계기부는 풀 디지털 액정으로 속도, 회전수, 기어 단수 외 다양한 정보를 표시하는데 보기가 좋고 미래지향적인 분위기도 물씬 풍긴다. 콘셉트에 따라 사각 위주의 남성적인 느낌은 다소 투박해 보이기도 한다.
스탠다드 모드의 스로틀 반응은 묵직하다. 공회전 해보아도 회전이 단번에 올라가다 뚝 떨어지는 설정이 아니라, 회전을 내릴 때도 질량감 있게 여운을 남긴다. 크랭크샤프트의 무게를 조절했는지 몰라도 YZF-R1의 고회전 성향과는 상당히 달랐다. 아이들링 회전수를 지나서 약 3,000rpm부터는 가속력이 나오기 시작한다.
놀라운 것은 출발 시 부담이 없고 컨트롤이 쉽다는 것이다. 이 클래스라고 믿기에 어려울 정도로 스로틀링이 억제되어 있다. 반면 아이들링을 벗어나기 시작하면 묵직하게 차체를 밀어내다가 약 5,000rpm을 넘으면서부터 강렬하게 달려나가기 시작한다. '아, 이거 원래 200마력 엔진이지!'하는 마음이 든다. 10,000rpm까지 맹렬하게 도는 이 엔진은 회전감각에 저항이 없다는 것만큼은 여전하다.
스로틀을 끝까지 열면 3단만 되어도 180km/h 가깝게 가속할 수 있다. 풍압을 견디는 것은 라이더의 몫이고, 그 이상의 초고속 영역도 무리 없이 닿을 수 있다. 실로 엔진 파워는 대단하다. 스탠다드 모드의 세팅은 아주 유연하다. 대단히 라이더 지향적으로 설정되어 있어 스로틀을 비트는 데 전혀 피곤하지 않다. 그러면서도 원할 때 파워를 제대로 내준다.
재미있는 것은 A모드와 B모드다. 레인모드나 컴포트 모드같은 것은 없다. A모드는 스로틀 조작에 더욱 민감한 세팅이다. MT-09의 A모드처럼 원하는 대로 쭉쭉 가속할 수 있고 라이더의 손목과 엔진 반응을 일치하고 싶으면 눌러도 좋다. B모드는 거기에서 한 발자국 더 앞선다는 표현이 어울린다.
스로틀은 마치 하프 스로틀 튜닝이라도 한 듯 민감하게 반응하며 날카로운 파워로 차체가 용수철처럼 튕겨 나간다. 슈퍼모타드를 타듯 자극적인 반응에 약간 피곤하기도 하지만, 반대로 말하면 심심하거나 지루할 때 쓰면 따분함이 싹 달아난다.
기어비는 꽤 넓어서, 1단으로도 상당한 속력을 커버한다. 도심주행은 2단으로만 달려도 피곤하지 않을 만큼 엔진브레이크가 세지 않고, 다루기가 간편하다. 이 점은 토크가 좋은 엔진으로는 의외인데, YZF-R1 또한 1단에서 어마어마한 속력까지 가볍게 달릴 수 있었음을 상기한다면 이상하지 않다.
투어링에서도 4단 이상 쓸 일이 없을 정도로 부드럽고도 강력하다. 이런 점은 장시간 주행에 지쳐있을 때도 무척 도움이 된다. 이 바이크가 운전자를 부담스럽게 하는 일이라고는 서행을 반복할 때 엔진 사방으로 뿜어져 나오는 뜨거운 열기밖에 없다.
트랙션컨트롤은 3단계로 조절할 수 있다. 어시스트/슬리퍼 클러치와의 조합으로 차체는 어지간해서 균형을 잃지 않는다. 생긴 것은 표독스러운 악당 같은데 발놀림은 나긋나긋한 담배 가게 아가씨 같다. 과연 야마하의 핸들링은 묘수다. 이렇게 큰 덩치에 센 엔진을 넣어놓고도 움직임은 전혀 부담이 없다. 1,400mm의 짧은 휠베이스와 노면에 즉각적인 반응을 보이는 서스펜션 덕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솔직한 서스펜션은 우리나라같이 이랬다저랬다 하는 도로사정 속에서 곤욕스럽기도 하다. 울퉁불퉁한 노면에서는 '좀 더 부드럽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앞 포크, 뒤 쇽 옵저버 모두 압축/신장 댐핑까지 손댈 수 있다. 세팅은 자신의 몫이다. 정답이란 것은 없다. 미세하게 자신의 라이딩 스타일과 환경에 맞게 세팅을 바꿔가는 것도 즐거움이 될 것이다.
의외의 선물, 크루즈 컨트롤은 MT-10의 확장성을 대변해주고 있다. 투어링 패키지를 장비한 MT-10의 모습이 이미 인터넷에는 화제가 되고 있다. 롱 윈드 스크린과 사이드 백, 컴포트 시트 등 다양한 액세서리가 저돌적인 모습을 완전히 순화해 놓았다. 의외로 푹신하고 평평한 시트 위에 앉았을 때부터 눈치채기는 했지만 최근 등장하는 스트리트 파이터 중에 투어링 바이크로의 변신이 이렇게 자연스러운 경우도 드물다.
와인딩 로드에서의 MT-10은 전형적인 스포츠 바이크다. 경험해본 바로는 스탠다드 모드만으로도 충분히 스포티하게 즐길 만하고, 오히려 한계를 끄집어내기가 즐겁다. 내가 지금 160마력짜리 210kg의 리터급 4기통 바이크를 타는 것이 맞나 싶을 만큼 가볍게 움직인다. 이는 몇 달 전 레이싱 트랙에서 경험해본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긴 오르막과 내리막, 그리고 직선주로는 물론 짧은 헤어핀까지 공존하는 인제 스피디움에서의 MT-10은 물 만난 물고기처럼 퍼덕거렸다. 거기서도 왠지 A모드와 B모드의 신경질적인 초반 스로틀 반응은 뒷바퀴에 트랙션을 슬며시 붙이기 부담스러웠던 것이 사실이다. 직선구간에서는 시속 230km가 우습게 나왔고, 실력만 더 됐다면 훨씬 빠르게 달릴 수도 있는 바이크라는 확신이 들었다.
하물며 과도한 욕심으로 트레일 브레이킹 하다가 슬쩍 균형이 흐트러지거나, 혹은 실력 이상으로 1번 코너를 진입해서 라인을 크게 벗어나도 리어브레이크 툭툭 치고 고개를 돌리는 것만으로도 금세 라인을 되찾아 가는 모습은 신뢰를 주기에 충분했다. 타기 편하게 다듬어놨어도 현행 슈퍼바이크 중에서 가장 핫한 YZF-R1의 피는 어딜 가지 않는 것이다.
MT-10은 단순히 야마하 스트리트 바이크의 상징이 된 MT시리즈의 맏형이 아니다. 트랙용 머신을 누구라도 조련하게 쉽게 꾸며놓은 슈퍼바이크다. 이것이 도심과 투어링 구간은 물론 트랙에서도 숨 가쁘게 달려본 결론이다.
YZF-R1이 처음으로 크로스플레인 엔진을 달고 데뷔했을 때 했던 생각이 떠오른다. '일본에서도 이런 재미있는 엔진을 만들다니, 이걸 더 편하게 즐길 수 있게 네이키드화 한다면...'이라는 즐거운 상상. 화려한 스포트라이트 속 등장한 YZF-R1을 보고 그런 상상을 하는 우리 목소리를 들은 모양이었다. 얼굴 표정은 짓궂고 매일 타기에 꽤 뜨겁기는 하지만, 지친 일상 속에 가슴 속 시원해지는 사이다가 되어 줄 바이크가 확실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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