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아 니로 하이브리드 시승기, 효율·실속 갖춘 “Mr.애매모호 SU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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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성적인 환경주의자들의 고상한 취향으로만 여겨지던 친환경차는 이제 우리의 곁으로 성큼 다가왔다. 지난 2008년 글로벌 자동차 시장에서 점유율 0.7%에 불과했던 친환경차(하이브리드, PHEV, 전기차, 수소연료전지차)는 2014년에 점유율이 2.2% 수준까지 늘어났다. 판매량으로 보면 48만 대에서 187만 5,000대로 불어난 것이다. 6년 간 판매량이 무려 4배 가까이 늘어났으니 그 미래는 실로 장밋빛이라 할 수 있겠다.
매년 가혹해지는 환경규제와 친환경차에 대한 수요 증가로 완성차 업체들에게도 친환경차는 좋은 미래 먹거리로 부상하고 있다. 특히나 지난 해 디젤 게이트로 "클린 디젤"의 위세가 한 풀 꺾이면서 가장 현실적인 친환경차, 하이브리드와 PHEV에 대한 관심도 높아지고 있는 추세다.
시기적절하게 올 초 현대차가 선보인 아이오닉은 현대차의 첫 친환경 전용 모델이다. 하이브리드와 PHEV, 전기차 등 여러 친환경차에 대응할 수 있는 전용 플랫폼으로 토요타 프리우스가 지배하고 있는 하이브리드 시장에 도전장을 내미는 것이다. 오는 2020년까지 26종의 친환경차 라인업을 선보이겠다는 현대기아차 계획의 선봉인 셈이다.
그리고 지난 3월 29일, 아이오닉의 형제차인 기아 니로 하이브리드가 정식 출시됐다. 니로는 아이오닉과 동일한 플랫폼에 동일한 파워트레인을 유용하지만 효율을 조금 희생하는 대신 SUV형 차체로 실용성을 극대화했다. 친환경차는 물론 작년 큰 폭으로 성장한 소형 SUV 시장에서도 패권을 잡겠다는 전략이다.
기아차는 니로를 "기아의 RV 라인업을 완성하는 소형 SUV"라고 홍보하고 있지만, 엄밀히 말해 과연 니로가 SUV라고 할 만한 지에 대해서는 고민해 볼 필요가 있겠다. 니로(Niro)라는 이름이 처음 소개된 것은 2013년 프랑크푸르트 모터쇼에서다. 근육질의 하이브리드 컴팩트 SUV 컨셉이었던 니로는 꽤 남성적인 디자인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2년 반만에 출시된 양산 모델은 컨셉트카와는 다소 거리감이 느껴진다. 우선 SUV라고 부르기에는 꽤 낮은 전고가 그렇다. 전장*전폭*전고는 4,355*1,805*1,545(mm)로, 전장과 전폭은 국산 경쟁모델(티볼리, QM3, 트랙스)과 비교했을 때 가장 길고 넓지만 전고는 가장 낮다. 실물로 봐도 지상고를 조금 높인 해치백이라는 느낌이 강하다.
일반적으로 SUV는 동급 세단보다 한 등급 위 모델과 가격이 비슷하다. 가령 준중형 SUV인 스포티지는 중형 세단인 K5와 가격이 비슷하고 중형 SUV인 쏘렌토의 가격은 준대형 세단 K7과 중첩되는 식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니로가 플랫폼을 공유한 현대 아이오닉과 거의 가격차이를 내지 않은 것은, 결국 SUV라기보단 해치백 내지는 왜건에 가까운 바디 형태에 기인하는 것이다. 요컨대 SUV라고 홍보하기는 다소 민망한 것이 아니냐는 말이다.
물론 "SUV는 이래야 한다"라는 공식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니 나쁘다고만 할 수는 없다. 이미 시장에서는 SUV인 듯 아닌 듯한 크로스오버가 인기를 끌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일반적으로 SUV에 기대하는 높은 지상고와 험지주파능력을 기대하기는 어렵겠다.
전체적인 스타일링은 무난하고 깔끔하다. 특히 전면부 헤드라이트는 컨셉트카의 영향이 많이 느껴지는데, 최근 디테일을 강조하고 기교가 많아진 기아차의 디자인 큐와는 다소 동쩔어진 밋밋한 느낌이다. 그나마 범퍼 하단의 크롬 가니쉬가 약간의 포인트를 더한다. 범퍼와 사이드 스커트 하단, 휠 아치 등은 무광 플라스틱으로 마감돼 제법 SUV 티를 냈다. 뒷모습은 이전 세대 스포티지와 현재의 프라이드 등을 연상시킨다. LED 낱알이 보이는 리어 컴비네이션 램프가 면발광 위주인 최신 트렌드에는 맞지 않는 느낌이다.
기아차는 니로 디자인의 최대 강점을 "하이브리드답지 않은(un-hybrid)"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많은 하이브리드 전용 모델들이 공기저항을 최소화하는 바디라인과 첨단기술을 강조하는 디테일때문에 무난함을 원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부담스럽게 느껴지는 점에 착안해 거부감 없이 선택할 수 있는 하이브리드 자동차로 디자인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개성 강한 젊은 소비자가 주 수요층인 만큼 개성을 보다 어필했어도 좋지 않았을까? 명색이 "디자인 기아"인데 디자인의 강점을 잘 살리지 못했다는 아쉬움이다.
실내 역시 계기판을 제외하면 하이브리드라는 것을 생색내지 않았다. 기껏해야 에어벤트를 두른 하늘색 라인 정도. 운전석을 둘러싼 스타일에 트림 배치는 매우 심플한데, 도어트림은 허전하게 느껴질 정도다. 스티어링 휠도 기아차의 익숙한 디자인을 유용해 전용 D-컷 스티어링 휠을 채택한 아이오닉에 비해 무난함을 강조했다.
통풍과 열선 기능을 모두 갖춘 1열 시트 포지션은 상당히 낮아서 운전 중에는 거의 SUV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다. 껑충한 느낌이 덜한 것은 장점이지만 시야의 이점은 다소 적다.
앞도 앞이지만, 뒷좌석은 정말 훌륭하다. 아이오닉의 경우 특유의 바디라인때문에 2열 헤드룸이 매우 좁았고, 이 부분은 많은 소비자들이 구매를 망설이게 하는 요인이었다. 반면 니로의 뒷좌석은 웬만한 중형 세단과 견줘도 손색이 없다. 동급 최장을 넘어 형뻘인 스포티지(2,670mm)보다 긴 2,700mm의 휠베이스 덕이다. 현대차 싼타페와 같은 수치다.
헤드룸은 성인 남성이 앉아도 넉넉하고 가운데 자리도 바닥이 평평해 세 사람이 앉기에도 불편함이 없겠다. 센터콘솔 뒷편에는 220V 인버터도 마련했다. 2열 활용도가 떨어지는 소형 SUV 시장에서는 상당한 경쟁력이다. 2열 리클라이닝도 가능했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티볼리의 경우 27.5도, 티볼리 에어는 32.5도 리클라이닝을 지원한다.
오버행을 줄이면서 아이오닉보다 전장은 짧아졌지만 D-필러를 뒤로 끌어당겨 트렁크 공간도 넓게 확보했다. 배터리를 시트 아래에 배치해 평상시 427L, 폴딩 시 1,425L의 트렁크 공간을 확보했다. 티볼리가 425~1,115L, 티볼리 에어가 720~1,440L인 것과 비교해보면 휠베이스가 긴 만큼 폴딩 시의 공간확장이 뛰어나다.
시승은 짧게나마 고속과 중저속·도심구간을 모두 체험할 수 있는 코스에서 이뤄졌다. 특히 니로의 경우 공인연비가 아이오닉 대비 낮아진 만큼 실연비에서 얼마나 차이나는 지에 초점을 맞췄다. 니로의 공인연비는 16인치 타이어가 복합 19.5km/L, 18인치 타이어가 복합 17.1km/L이며 둘 다 도심연비가 고속연비보다 좋다. 시승차는 18인치 타이어가 적용된 풀옵션 차량.
파워트레인은 1.6L 카파 GDi 앳킨슨 사이클 엔진과 32kW급 전기모터의 조합에 하이브리드 전용 6속 DCT가 맞물린다. 시스템 출력은 141마력, 시스템 토크 26.9kg.m으로 제원 상 성능으로만 볼 때는 동급 경쟁모델 대비 떨어질 것이 없다. 아이오닉과 마찬가지로 경쾌한 주행감각을 포기하지 않으면서 효율을 극대화하기 위해 CVT 대신 DCT를 채택했다. 하이브리드 친환경차에 DCT를 채택한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다.
DCT 변속기는 수동변속기 기반인 만큼 정지 상태에서 출발할 때 변속 충격이 느껴지지만, 전기모터가 출발할 때 힘을 내는 하이브리드에서는 그런 충격을 느끼기 어렵다. 매끄러운 출발 뒤에는 스로틀 조작에 따라 엔진을 켰다 끄기를 반복한다.
이전 현대기아 하이브리드에서는 시동 시의 소음·진동이 적지 않았지만 니로의 경우 NVH 대책에 상당히 심혈을 기울인 것이 느껴진다. 시승 중 시동이 걸려있는 지 확인하기 위해 수시로 계기판을 봐야 할 정도로 조용했다. 차가 조용한 만큼 동급에선 상당히 매력적인 크렐 프리미엄 오디오 시스템이 빛을 발한다.
가속 중 시동을 걸었다가도 탄력주행 중에는 곧바로 엔진을 멈춘다. 최고 120km/h에서도 시동을 끌 수 있고 내리막길에서는 탄력주행을 활용해 배터리를 충전하면서 연료도 아낄 수 있다. 다만 내비게이션 정보와 연동해 탄력주행을 안내해주는 Eco-DAS 기능은 시승 중에는 잘 작동하지 않았다.
가다 서다를 반복하는 구간에서도 상당히 적극적인 모터 개입이 느껴진다. 가속 페달을 제법 깊게 밟아도 약 40km/h까지는 최대한 모터를 활용하다가 여유있게 시동이 걸린다. 물론 더 빠른 가속을 원할 때는 단숨에 시동을 걸 수도 있다. 시스템 출력 대비 모터 출력(43.5마력)이 높은 편이라 막히는 길에서 서행 중일 때는 엔진을 거의 돌릴 필요가 없다.
시프트 레버를 수동 모드로 전환하면 자동으로 주행 모드도 스포츠 모드로 바뀐다. 이 때는 변속기도 단수를 낮추고 스로틀 반응도 보다 빨라진다. 아이오닉은 스포츠 모드로 전환하면 계기판 속도계가 타코미터로 전환되지만 니로의 클러스터는 조명이 붉은 색으로 바뀌는 정도의 변화만 이뤄진다. 하드웨어의 한계 상 드라마틱한 스포츠 주행을 기대하기는 힘들어도, 여타 현대기아차가 구색갖추기 식으로 마련한 스포츠 모드에서 별반 변화를 보여주지 못한 것에 비하자면 제법 그럴싸하다.
따뜻한 날씨에 시승 내내 에어컨을 켰음에도 최종 복합연비는 23.1km/L을 기록했다. 도로 흐름을 방해하지 않는 선에서 제한속도에 가깝게 속도를 내며 연비 위주의 주행을 한 결과다. 도심구간에서는 23.8km/L, 고속 구간에서는 21km/L 정도의 연비를 기록해 실제로도 도심연비가 더 뛰어났다.
시승 기자단의 평균 연비는 23.9km/L이었고 최고 33.5km/L의 연비를 기록한 기자도 있었다. 시승 내내 스포츠 모드에서 가혹주행을 한 경우에도 15km/L 수준의 평균연비를 기록했다. 앞서 현대기아차 하이브리드를 시승할 때마다 공인연비에 못 미치는 실연비를 비판했었는데, 니로만큼은 실연비와 공인연비의 격차가 크지 않았다. 물론 아이오닉의 경우 한겨울에 시승회가 치뤄져 하이브리드 특성 상 연비 측정에 다소 불리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하겠다.
니로의 SUV로서의 정통성 여부와 무관하게, 적어도 기아 가(家)에서 니로는 막내 SUV로 확실하게 포지셔닝된 모양이다. 기아차는 앞서 중국 등지에서 소형 SUV인 KX3를 선보인 바 있는데, 이와는 별개로 하이브리드 수요가 큰 북미·유럽 등지에서는 니로를 통해 소형 SUV 시장을 공략하겠다는 다원화 전략이 잘 먹힐 지는 두고봐야 할 부분이다. 글로벌 시장에서는 소형 SUV 뿐 아니라 프리우스 V같은 하이브리드 MPV도 경쟁상대가 된다.
어쨌거나 니로의 경쟁력은 확실하다. 동급에서 가장 뛰어난 수준의 공간 활용도, 경쟁 디젤 모델 대비 대등한 연비와 월등한 정숙성을 갖춘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등이 그렇다. 특히 기아차가 누차 강조했듯 하이브리드 차량의 다양한 세제혜택과 보조금 덕분에 경쟁 모델대비 더 "첨단"인 차를 같거나 저렴한 실구매가로 구입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큰 매력이다.
다만 개인적으로는 이 세그먼트 소비자들이 개성을 중시하는 만큼 다양한 외관 액세서리와 자극적인 바디 컬러 선택지가 있었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도 남는다. 현재 니로의 바디 컬러는 흰색·은색·회색·갈색·진청색·검정색 등 보수적인 컬러 6종에 불과하다.
구입 후에도 주차료·통행료 감면혜택이 주어지고 하이브리드 10년 20만km 보증, 최초구매자 배터리 평생보증 등이 제공되니 장기적으로 봤을 때 인젝터 등 고가의 핵심 부품 정비 수요가 많은 디젤 엔진 대비 유지 부담도 같거나 적다. 지상과제는 하이브리드 자체에 대한 소비자의 부담감이나 거부감을 극복하는 것이다. 니로가 성공한다면 가파르게 성장하는 소형 SUV 시장의 주도권을 잡을 뿐 아니라 젊은 소비자들의 친환경차에 대한 인식 개선에도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기아차는 니로에 PHEV와 순수전기차를 라인업에 추가할 예정이니 니로가 앞으로 기아의 주력 친환경차가 될 것 또한 명백하다.
현재까지 니로는 사전계약을 포함해 15영업일 간 2,500대의 계약을 이뤄냈다. 첫 출발은 형제차인 아이오닉보다 좋은 편이다. 하지만 동급 시장에는 작년 무려 4만 7,000대를 팔아 치운 티볼리와 그 형제인 티볼리 에어, 유럽 출신의 QM3 등 강적들이 포진하고 있다. 후발주자로서, 게다가 하이브리드로서 쉽지만은 않은 게임이다. 이제는 소비자의 선택을 기다릴 시간이다. 니로의 가격은 2,433~2,845만 원이며 취득세·공채 감면, 보조금 혜택 등으로 실구매가는 150~200만 원 가량 저렴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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