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로버는 최고의 SUV가 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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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드로버의 플래그십 모델 레인지로버를 만났다. 시선을 압도하는 크기와 각을 살린 디자인은 위엄을 주기에 충분하고, 커다란 보닛 안에는 V형 8기통 4.4리터 엔진이 연신 꿈틀댄다. 게다가 이 차는 '오토바이오그래피'라는 고급 옵션도 넣었다. 모든 걸 다 갖춘 '엄친아'같은 SUV 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더욱 의문이 들었다. 과연 레인지로버는 1억원이 훌쩍 넘는 돈이 아깝지 않을 만큼 뛰어난 SUV라고 말할 수 있을까? 최고의 SUV로서 자질이 있는 걸까? 같은 궁금증 말이다. 그리고 물음표에 대한 답을 얻기 위해 구석구석 살펴보고, 꼼꼼히 만져보고, 자세히 느껴봤다.
레인지로버 첫 인상은 일단 기부터 눌린다. 5미터에 육박한 길이와 2미터에 가까운 너비, 높이가 압도적이다. 22인치 휠은 별로 크다는 생각이 안 들고, 직선과 각으로 쓱쓱 그려 넣은 디자인은 요즘 차들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투박한 생김새로 어디 하나 세련된 느낌이 없다. 그런데 자꾸만 눈길이 간다. 화려한 디자인으로 꾸민 요즘 SUV들보다 더 시선이 끌린다. "이 차는 랜드로버니까!" 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우직한 뚝심으로 표현한 디자인이 브랜드 정체성을 정확히 보여준다. 그리고 그 속에서 누구도 표현할 수 없는 멋이 나온다.
두툼한 문짝은 정말 무겁다. 여기에 차고도 높아 말 그대로 올라 타는 수준이다.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그러나 한 번 실내에 올라타면 앞선 짜증이 모두 사라진다. 단정한 센터페시아와 깔끔한 버튼 구성, 사이사이를 덮고 있는 가죽과 최고급 나무는 마치 고급스러운 응접실을 마주한 기분이다.
플래그십 SUV답게 기능은 차고 넘친다. 일목요연한 엔터테인먼트 시스템은 물론 전자동지형반응시스템, 에어서스펜션, 서라운드 카메라, 4존 에어컨, 통풍 및 마사지 시트 등 일일이 나열하기도 힘든 고급 옵션들이 즐비하다. 이 기능들을 온전히 느끼려면 하루아침에 잠깐 써보고 해결될 일이 아닌 것 같다.
이 차는 일반 모델과 달리 '오토바이오그래피' 옵션이 장착된 차다. 전용 휠을 비롯해 가죽 시트에 음각으로 새겨진 로고, 알파벳이 쓰여진 문지방, 최고급 가죽과 나무로 만든 스티어링 휠 등이 오토바이오그래피만의 특징이다. 눈에 확 들어오는 차이는 크게 없지만 부분부분 섬세한 변화를 통해 오토바이오그래피의 특징을 잘 살렸다. 이런 옵션들은 직접 만져보고 몸으로 느껴보면 나도 모르게 감탄사가 흘러 나온다. 다만, 최신 인터페이스와는 거리가 먼 뒷좌석 모니터와 리모컨은 약간 흠이다.
롱휠베이스 모델이 아닌데도 뒷좌석은 광활하다. 여유롭게 무릎을 꼬고 앉아도 앞사람 시트가 닿지 않는다. 역시 무늬만 큰 차가 아니었다. 디자인에 신경 써 실내는 옹색하기 짝이 없는 요즘 SUV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C필러 끝까지 높은 루프라인이 유지되는 덕분에 머리 위공간은 물론 트렁크 공간도 부족함이 없다. 테일 게이트는 위-아래 두 단계로 열린다. 모두 전자동 방식을 사용하며, 트렁크에서도 버튼 하나로 뒷좌석 시트를 접었다 펼 수 있다.
마냥 실내만 보고 있을 순 없는 일. 급히 시동을 걸었다. 레인지로버는 3.0 디젤부터 5.0 슈퍼차저까지 다양한 스펙트럼의 파워트레인을 갖고 있다. 그 중 시승차는 V형 8기통 4.4리터 터보 디젤엔진이 탑재된 모델로 최고출력 339마력, 최대토크 75.5kg.m를 발휘한다. 하나같이 엔진을 줄이고 있는 요즘 세상에 4,400cc 대배기량 엔진은 꽤 두근거리는 경험이다.
하지만 기대감이 그리 오래 가지는 않았다. 높은 숫자들을 보고 있으면 금방이라도 무섭게 튀어나갈 것 같은데 막상 달리는 감각은 부드럽고 경쾌하며, 고요하다. 힘차게 가속페달을 밟으면 속도바늘은 순식간에 최고속도에 바짝 붙어있고, 주변 사물은 순식간에 지나간다. 하지만 그 과정이 한 없이 편하고 여유롭다. 여기에 높은 차체가 만나 마치 물 위를 떠가는 듯한 느낌이다.
차의 성격은 코너에서도 마찬가지다. 도로를 움켜잡고 거칠게 나가는 것 보단 자세를 잃어버리지 않으려 노력하면서 차분히 코너를 통과한다. 무지막지한 성능만 믿고 욕심을 부렸다간 큰일 날 것 같다. 서스펜션도 단단함 보단 승차감이 더 우선이며, 대형 가솔린 세단을 타는 것처럼 실내는 고요하다. 차의 콘셉을 생각하면 전반적인 성능에는 크게 단점이 없다. 오히려 커다란 차체와 2.5톤이 넘어가는 무게를 생각하면 분명 빠르고 잘 달리는 차다. 하지만 운전 재미까지 느끼고 싶다면 레인지로버 스포츠를 선택하는 게 더 좋을 것 같다.
이 외에 랜드로버의 주특기인 오프로드 기능은 아쉽게도 느껴볼 수 없었다. 한정적인 시간과 장소로 인해 미쳐 다 사용해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실 레인지로버는 오프로드에 특화된 각종 장치와 신기술만 소개해도 무궁무진 하다. 그리고 이렇게 고급스러운 느낌의 차가 험로에서는 또 다른 터프가이로 변신한다는 것도 반전 매력으로 꼽힌다. 이런 느낌을 독자분들에게 더 자세히 소개해 드리지 못해 죄송할 뿐이다. 어떻게 보면 "이 차를 갖고 진흙탕 튀기며 바위덩어리 넘어 타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싶기도 하다. 그러나 이런 고정관념을 버리고 브랜드 정체성과 특장점을 살려 한 층 완벽한 SUV로 진화한 것이 랜드로버 레인지로버다.
이젠 최고의 SUV가 될 수 있을까?에 대한 답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결론부터 말하면 최고의 SUV가 맞다. 거대한 크기는 차를 타고 있는 사람으로서 자부심을 느끼게 해주고, 플래그십 세단을 그대로 옮겨놓은 구성과 감각, 온로드와 오프로드를 모두 잡은 기술력은 레인지로버가 유일하다.
적어도 현재 우리나라에서 이 차를 뛰어넘을 SUV는 딱히 보이지 않는다. 크기, 성능, 상품성, 심지어 가격까지도 모두 최고다. 하지만 최고 SUV 타이틀이 계속 레인지로가 될 수 있을까? 하는 질문에는 명확한 답변이 내기 힘들 것 같다. 세계적으로 럭셔리 SUV 만들기 열풍이 불고 있는 요즘 후발 주자들의 반격이 매섭기 때문이다. 그 중에 벤틀리 벤테이가와 마세라티 르반떼는 국내 출시도 계획되어 있다. 최고의 최고를 원하는 소비자들에게는 더 이상 레인지로버가 최상의 답안이 아닐 수도 있다는 얘기다.
실제 경쟁차들은 더 럭셔리하고, 기발하고 다양한 최신 기술로 무장해 호시탐탐 시장 점령을 노리고 있다. 이에 레인지로버는 몇몇 부분에서 그들과는 조금 떨어진 올드한 느낌도 없지 않아 있었다. 현실에 안주하면 언젠가는 큰 코 다칠 수 있다. 후발주자들의 매서운 질주를 랜드로버는 알아야 한다. 그리고 꾸준한 개발과 새로운 혁신을 통해 지금 것 지켜왔던 최고 SUV 자리를 내주지 않아야 한다. 적어도 사람들에게 레인지로버는 간절히 꿈꾸는 또 하나의 드림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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