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막힌 빠르기와 우수한 실용성, 골프 R 에스테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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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영국 노동당 의원인 제레미 코빈이 폭스바겐 골프 R 에스테이트를 소유할 확률이 꽤 높다. 우리 시승차가 빨간색이기 때문에 하는 말이 아니다. 사실, 폭스바겐은 말 그대로 '사람들의 차'다. 그리고 오리지널 비틀은 대중에게 자유를 선사했다. 이런 폭스바겐 비틀의 정신적인 후계자가 골프이니, 296마력에 605L 적재 능력까지 겸비한 골프 R 에스테이트는 '민중에게 권력을'이란 표현에 가장 가까운 차일 것이다.
하지만 샤프하게 디자인된 R-디자인 범퍼, 사이드 스커트 그리고 배기관을 보면, 코빈 의원의 블루칼라 이미지보단 오히려 매끈한 양복을 입은 신노동당을 떠올리게 한다고 생각할 수도 있다. 아무튼, 이제 이런 이야기는 마무리하고 차를 더 세밀하게 살펴보자.
뒷좌석을 접었을 때 1.8m짜리 물건을 실을 수 있도록 설계되어 골프 R 해치백보다는 더 길고, 후방 서스펜션도 조금 더 탄탄하다는 점을 제외하곤 제원은 거의 동일하다.
에스테이트 모델에도 해치백에 탑재된 2.0L 터보차저 엔진을 그대로 심었다. 1,800~5,500rpm 사이에서 38.7kg.m의 토크가 발산된다. 폭스바겐 배출가스 사태 때문에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옳은지는 모르겠지만, 5.1초의 0→시속 100km 가속시간을 기록한 자동차치고는 이산화탄소 배출량과 연비 수치도 괜찮다.
터보가 작동될 때까지의 짧은 기다림을 제외하면 R 에스테이트는 끔찍하게 빠르고 소리까지 엄청나다. 드라이버 프로필 설렉트 버튼으로 레이스 모드를 선택하면 버터플라이 밸브가 열리면서 배기관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심지어 외관 칸막이의 덮개가 열리면서 내부로 소리를 유입시킨다. 스바루 WRX의 메아리가 섞인 심포니 같다.
R 해치백과 달리, 수동변속기는 제공하지 않으며, 기본 장착된 6단 DGS 듀얼클러치도 그만의 약점이 있다. 빨간불에 걸려 R 에스테이트의 성능을 보고 싶어 하는 튜닝된 포드 포커스 옆에 정차되어 있다고 상상해보자. 아쉽게도 스톱-스타트 시스템이 작동되고, 엔진이 다시 깨어나고, 기어박스가 1단을 준비한 후 클러치를 맞물렸을 땐, 포드는 이미 먼발치를 앞서 나가 있을 것이다.
이 자동변속기는 기어를 높은 단에 올려놓고 엔진 회전 속도를 낮게 유지시키는 습성을 가졌다. 분명 연비 효율성을 위한 것이고, 그게 문제가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어느 순간 가속을 조금만이라도 하려고 하면 기어박스가 패닉 상태에 빠져서 회선 속도를 성층권까지 치솟게 한다.
다행히도 고칠 방법은 있다. 변속기를 수동모드에 넣고 패들로 변속하면 된다. 그러면 1000분의 1초 단위로 깔끔하게 조정할 수 있다. 물론, 레드라인에 가까워질 때쯤 기어가 자동 변속되지 않았으면 좋겠다. 수동은 수동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
네바퀴굴림 시스템은 유압식 할덱스 5 센터 디퍼렌셜을 사용한다. 이 때문에 대부분 토크를 앞바퀴로 모두 보낸다. 그러나 때론 거의 모든 토크를 뒷바퀴로 보낼 수도 있다. 그래서 R 에스테이트는 한계에 도전하는 골프 해치백만큼 장난기 많고 재미있다. 언더스티어를 줄이기 위해 바퀴 안쪽을 제동해주는 XDS+ 시스템 덕분에 그립도 엄청나다.
전자동 스티어링 랙도 장착되어 있다. 이런 구조는 조작감을 간혹 망치기도 하지만, R 에스테이트에서는 꽤 잘 작동한다. 코너에 진입할 때 기분 좋은 급박함이 느껴지긴 해도 다시 직선주행을 할 땐 불안감이 전혀 없다. 인디비쥬얼 모드를 선택하면 각자 선호도에 맞춰 스티어링 무게감을 조절할 수도 있다.
전자동 댐퍼를 옵션으로 선택하면 주행감도 기호에 맞게 설정 가능하다. 컴포트 모드에서도 매서운 홈을 쿵하고 지나치거나 패인 도면에서 약간 뜨기도 하지만, 일상 주행을 망가뜨릴 정도는 아니다. 레이스 모드로 넘어가면 차체는 훨씬 더 단단해지고 골프는 노면을 강철 같은 집중력으로 읽어가지만, 운전자를 따르는 성향이 완전 없어지지 않아 미끄러짐을 피할 수 있다.
내부는 여느 골프에 있을 법한 기능들이 다 들어 있다. 그래서 보통 자동차처럼 쓸 수 있다. 폭스바겐은 여기에 약간의 기교를 부렸다. 계기판은 검정 유광 재질로 덮었고, 다이얼에 파란색 바늘을 넣었을 뿐만 아니라, 문틀과 발판에는 형광 파란색 불빛이 새어 나온다. 부분 알칸타라 재질로 마감된 R 스포츠 시트도 매우 편안하다.
해치백 버전과 마찬가지로, R 에스테이트도 르노 메간 275 트로피처럼 트랙데이를 갈망하는 순수주의자를 위한 차는 아니다. 하지만 기막히게 빠른 왜건임은 분명하다. 영국에서 3만3천585파운드(약 6천45만원) 선에서는 이케아의 노르들리 옷장을 더 신속하고 더 편안하게 집까지 옮길 수 있는 차가 없다. 그리고 결국엔 R 에스테이트도 골프이기 때문에 운전자가 코빈처럼 진보적이던지, 캐머런처럼 보수적인지는 상관없다. 왜냐하면 골프 R 에스테이트는 고귀하면서도 미천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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